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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어서 오세요, 나의 물질세계로

Writer: 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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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최수진은 흙으로 손맛 가득한 작품을 만듭니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관객이 자기 작품을 쉽게 만지고,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도자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물질세계’라 부른답니다. ‘인간의 의식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현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인상을 손으로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꾸덕한 물질이 주는 ‘쾌(快)’를 전하고 싶은 최수진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수석 no.5›,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최수진입니다. 주로 흙을 이용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의 형상을 재현하고, 연출하며, 존재 방식을 탐구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 서양화를 전공했어요. 물감이 꾸덕하게 발리는 느낌이 좋았고, 제도권에서 그림이 미술품으로 향유되는 지점이 흥미로웠거든요. 그렇게 작업을 이어오던 중, 제 작품이 컵처럼 쉽게 만질 수 있고 사용성을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해 도자 공예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도자 공예를 주로 하고 가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은 왕관›, 2020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물질세계’라는 이름의, 15평 남짓한 공간을 혼자 쓰고 있어요. 작업실에 설치된 가마에서 흙을 굽고, 한편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때로는 손님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주소상으로는 한남동인데, 실제 위치는 보광동 끝자락 높은 지대라 탁 트인 경치가 마음에 드는 곳이에요. 

물질세계 전경

물질세계 전경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물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박물관의 유물이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미지 속 사물 등 아주 다양한 대상이 영감의 원천이 되곤 하죠. 인터넷을 산책하며 여러 영감을 수집하고, 이를 머릿속에 묵혀둡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우선 만들고 싶은 형상을 상상하며 크기를 가늠해 슥슥 그려봐요. 그리고 필요한 흙을 배합하고 반죽한 뒤, 스케치를 보며 실물로 만들어 냅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못생긴 형태로 마무리되어도, 표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면 얼추 마음에 드는 모습이 완성되더군요. 사실 작업 과정 대부분이 수습의 연속인 것 같기도 해요. (웃음)

‹화살촉과 반달돌칼과 돌칼›, 2019

‹검은 화병들의 모임›, 2018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Black Bird›와 ‹Bird›를 소개하고 싶어요. 먼저 ‹Black Bird›는 유럽 저택에서 볼법한 조각상을 본떠 만든 작품입니다. ‹Bird›는 제가 만든 세라믹 작품을 보고 그린 그림을 흙으로 만든 액자 속에 넣어 걸어둔 작품이에요. 만화 속 거실 풍경에서 종종 보이는 단순한 형태의 그림 액자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Bird›는 앞으로 시리즈로 내면서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 보고 싶어요.

‹Black Bird›, 2023

‹Bird›, 2023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물들의 생태계라고 해야 할까요? 다양한 층위와 연출에 따라 어떤 사물은 추앙받고, 어떤 사물은 무시당하곤 하죠. 때로는 너무 많이 쌓인 사물들 때문에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의 곁을 늘 지켜 온, 만지면서 함께하는 사물들에 애정을 보내고 싶어요. 동시에 꾸덕한 물질이 주는 ‘쾌(快)’를 작품을 통해 선사하고 싶어요.

‹검정 물질 덩어리 Lump of Black Matter›, 2022

‹수석no.2 (Fuck You)›, 2021

‹untitled›, 2022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스스로 만족해야 작업을 끝내는 편이라, 작품 자체에 대해 크게 불만족하는 부분은 없어요. 다만 주로 사용하는 흙이나 물감이 아닌, 다른 재료를 탐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에는 잠을 많이 자요. 얼추 점심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작업실로 향하죠. 웬만하면 12시가 되기 전에 작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려 해요. 이동 중에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웹 서핑, 쇼핑, 맛집 탐방, 이미지 수집 등을 합니다. 머릿속에 정보를 계속 넣으면서 뇌를 굴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걱정이나 잡념이 차오르지 않더라고요.

‹주먹스칼리버›, 2021

‹안전한 술자리를 위한 도구들, 그녀의 자리›, 2023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엔 ‘루미큐브’라는 게임을 즐겨 해요. 처음에 가입하면 게임에서 쓸 수 있는 돈으로 1000원을 주는데요. 요새 하도 많이 해서 2000만원이 넘게 모였답니다. (웃음)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작업을 할 땐,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응원하는 편이에요. 작품들도 그런 저를 닮아서일까요? ‘작품에서 칼맛이 아닌, 어눌한 손맛이 난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과일그릇과 동그라미들›, 2017

‹회색 과일접시›, 2018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오면, 최근 너무 비슷한 작업을 하지 않았나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조금은 색다른 작업을 해보는 식으로 작업 생활에 변주를 줘요. 작업실을 박차고 나와 지인들을 만나기도 해요.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작업 얘기를 나누다 보면 슬럼프가 극복되기도 하더라고요.

‹silver cup›, 2021 (좌)

‹가짜청자잔›, 2019 (우)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업실이 있는 동네가 재개발구역이라 곧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아요. 지금의 작업실만큼 조건이 좋고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지 못해서 걱정입니다. 무거운 짐이 많아 옮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약간 어두워집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되겠죠?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자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알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작가가 자기 작품을 좋아해야, 남들도 그 작품을 좋아하게 된다고 믿는 편이에요. 창작자라면 자기 인식과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나무들›, 2020

‹untitled›, 2019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한 번에 확 타올랐다가 지쳐서 쓰러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의 인생을 길게 보고, 힘을 살짝 뺀 채로 살기 위해 늘 노력 중입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갖고 싶은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긴 푸른 네모 Long Blue Rectangle›, 2017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평화롭게 작업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먼 미래에는 맛있는 음식, 술, 예쁜 접시와 좋은 음악이 있는 식당을 작업실과 함께 운영하고 싶어요.

Artist

최수진은 서울에 거주하며 사물의 형상을 재현하고 연출하고 그들의 존재 방식을 탐구한다. 주로 손수 배합한 점토 광물을 사용하며, 가끔 그림을 그린다. 개인전으로 «물질세계»(2019, 오르에르)를 열었고, «그녀의 자리»(2022, 우란문화재단), «완상_아름다움에 대한 유람»(문화역서울 284 RTO), «하얀 밤 까만 초대»(2020, 보안여관)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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