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민 작가의 작업은 보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마치 어떤 기묘한 세계를 훔쳐보는 느낌이 들거든요. 바로 여기는 폴리곤의 나라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스로 대상을 구현하는 특유의 느낌이 로우하게 살아있어요. 이는 단지 시각적 표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대상을 CG로 만들고 현실 세계에 구현한 뒤 이를 분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거쳐요. 일단 원형을 먼저 만들어 두고 즉흥적으로 해체 및 조합하는데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조하는 수준의 끝판왕인 ‘마개조’의 당혹스러움과 신선한 매력은 무척 강렬합니다. 무엇보다, 원형 데이터를 재료 삼아 마치 게임 캐릭터를 뽑아내듯 쭉쭉 만드는 게 제맛인 지라 작업을 접하는 사람은 작가가 전권을 발휘하는 가상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 들어요. 하기 싫은 작업만큼 사람 몸서리치게 하는 일이 없지만, 그만큼 포기할 지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종민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최근 개인전을 준비하며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 학교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회화, 미디어, 입체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친구들 네 명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작업실을 구할 때 많이 염두에 뒀던 것 층고였어요. 마침 교회로 쓰던 곳이라 층고가 350cm 정도 나와서 큰 작업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답니다. 학교를 벗어나 작업실을 구한 게 처음이라 없는 것도 많고 정리도 안된 터라 조금씩 시간 날 때마다 공구를 사고 동선을 만들고 있어요.
초기에는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요즘에는 주로 2차 창작물이나 개조한 물건들을 찾아봐요.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튜닝, 커스텀처럼 자기 입맛대로 수정한 것에서 영감을 받아요. 특히 ‘마개조(魔改造)’된 것들을 찾아보는데요. 필요에 따라 혹은 그저 재미를 위해서 다양한 물건이 기이하게 붙여진 모습에서 재밌는 지점들이 많이 보여요. 프라모델이나 피규어의 경우, 더 이상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정도로 개조한 결과도 볼 수 있는데요.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조합했는지 그 동기를 유추하다 보면 작업적으로 영감을 받습니다.
대상을 선정하고 제 방식대로 철저히 가상화하여 구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조합된 상태를 먼저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각 대상의 원형을 만들고 즉흥적으로 해체하고 조합을 합니다. 마치 컴퓨터 폴더에서 꺼내듯 그때그때 조합하기 위해서, 시간이 나면 뭐든 만들어 놓으려고 해요. 작업은 3D 프로그램처럼 와이어 프레임인 골조와 표면인 메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골조를 용접으로 세우고 표면을 실크와 시멘트로 덮고 에어브러시로 채색합니다. 초기에는 3D 프로그램에서 모델링한 후 폴리곤 모양을 디자인하고 현실화했는데요. 요즘은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작업하고 있어요. 이제 컴퓨터로 모델링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번역이 되네요.
(좌) 작업 참고 사진 (골조 용접)
(우) 작업 참고 사진 (에어브러시 채색)
(상) 작업 참고 사진 (골조 용접)
(하) 작업 참고 사진 (에어브러쉬 채색)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에는 제 주변 인물―가족이나 친구―에 집중했어요. ‹Asset:/ragdoll/김영재›, ‹Asset:/ragdoll/신종민› 등의 작업 제목에 쓰인 이름은 실존 인물이고, 파일 위치 경로를 본떠 마치 데이터처럼 제목을 붙였어요. 이러한 애셋Asset 작업은 다음 단계의 창작을 위한 재료로서 잘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결국 저는 구축한 데이터를 가지고 ‘플레이’를 시작합니다.
구현된 조각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췄어요. ‹MOD:/Deus ex machina›는 서사로 가득한 대상이 어떻게 해방되어 새로운 서사를 가지게 되는지 담아내고 있어요. 무엇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각각의 조각이 어떠한 자기 반영의 결과로 나타나는지 합성 이미지처럼 기이하고 확장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이때 저는 현실을 2차 창작한다고 볼 수 있죠. 주어진 세계를 그대로 구현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세계처럼 제 입맛대로 수정 및 조작가능한 가상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디스플레이에서 아쉬움을 느낍니다. 설치 작업을 주로 하는 터라 공간을 예상하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막상 조각이 전시장에 들어오면 느낌이 달라져요. 그래서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치되기도 합니다. 전시장에서 더 많이 시도하지 못하는 게 항상 아쉬워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형태로 슬럼프가 오는데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다 보면 다시 집중력이 돌아오더라고요. 회복이라기보단 저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다가 불현듯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건 없어. 무기력할 시간에 움직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일어납니다. 매번 무기력 끝에 깨닫는 것 같아요.
저는 매일 목표를 세우고 작업을 시작하는데요, 목표량을 맞추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쉬는 시간이나 밥 생각이 들지 않고도 작업에 빠져들곤 해요 그러다 보니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어서 살이 계속 빠지고 있어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잘되지 않아 힘드네요.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걱정해서 고치고 싶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는 창작자 스스로 좋아하고 지속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그래서 이를 늘 다짐하면서 작업에 임하는데요. 작업할 때는 여러 고통을 수반하지만, 하기 싫은 작업만큼 사람을 몸서리치게 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만들고 그리는 일을 정말 즐기지 않는다면 작업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신종민(@shin_j0ngmin)은 컴퓨터 그래픽스의 원리와 게임에서 파생된 모드MOD를 조각에 착안해 작업한다. 조각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며,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카니발적이고 일탈적인 세계를 만들어 간다. 개인전으로는 «Add-on»(2024, OCI미술관)을 열었고, «쫄티와 허벙한 바지»(2024, 중간지점하나), «NTERPOLATED SCENES»(2024, 공간형), «영웅없음»(2023, 갤러리인HQ), «소생된 폭발음을 기록하며»(2023, 안팎스페이스)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