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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푸르게 생각하는 사록

Writer: 정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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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정사록은 문화예술계 창작자와 주로 협업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일상에서 포착한 순간에 다가가 이를 늘리고, 연결하고, 포개며 전체를 조망하는 일을 즐기죠. 디자이너로서의 관심사를 출판, 워크숍, 전시 등으로 풀어내고요. 그는 커머셜 작업과 함께 개인 작업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어요. 그렇게 무언가 계속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행위에서부터 창작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사(思), 푸를 록(綠) ‘푸르게 생각하자’.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디자인 판을 누비는 정사록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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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Paradise Road› 포스터, ‘100 Films 100 Posters’ 참가작, 2023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정사록입니다. ‘정사록’이란 이름이 본명인지 활동명인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랍니다. 생각할 사(思), 푸를 록(綠)으로 ‘푸르게 생각하자’라는 의미가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두 곳에서 일했어요.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며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지친 터라 그래픽 디자인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건 어떨지 고민도 했답니다. 하지만 그냥 그만두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작업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운이 좋게도 일들이 이어져서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고등학교 때 생활기록부를 보게 됐어요. 3학년 진로 희망란에 ‘멀티 디자이너’라고 써두었더라고요. 디자이너는 되고 싶은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몰라서 ‘멀티’라는 단어를 쓴 것 같은데요.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진짜 꽤나 ‘멀티’ 디자이너로 사는 느낌입니다.

장서영 개인전 «SKID» 온라인 포스터, 2022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업실은 서울역 근처에 있어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덕분에 어딘가로 미팅 가기도 좋고, 여러 사람이 들르기에도 좋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을 결정하면서 서울역 앞은 제법 익숙한 공간이 되었는데요. 우연히 서울역 뒤편에 자리 잡은 이 공간에 와보고 굉장한 흥미로움을 느꼈어요. 예스러운 감성이 남아 있는 동네라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요. 예전에 공간을 사용하던 분이 만든 목제 가구를 이어서 활용하면서 내부 분위기는 따뜻한 편이에요. 컴퓨터를 놓은 책상 외에도 1 × 2.2m 정도의 큰 책상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프로젝트별로 참고할 자료를 쌓아두고 보는 걸 좋아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생활 모든 것에서, 어느 순간에, 어떤 영감을 얻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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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p›, 2023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평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해 두고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따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체로 고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위한 방향으로 여러 조건을 맞추어 나가죠. 석사 논문 주제를 다듬으면서 학교에서 했던 작업을 모두 꺼내서 살펴봤는데 어떤 특징이 있더라고요. 그 정도나 범위는 다르지만, 모든 작업에서 질서와 무질서를 계속 오가려고 노력했더라고요. 작업할 때 규칙을 설정해서 잘 정리된 여러 이미지를 만들었다면 마무리 지을 때는 모두 흩트려 버리고, 흐트러진 상태라면 또 기준을 세워서 정리해 버린달까요. 이런 작업 과정을 ‘가지런히 어지르고 흐트리며 정리하기’라는 문장으로 정리해서 논문 제목으로 정했어요. 석사 청구 전에서는 결과물을 부각하기 보단 작업을 진행하며 들었던 상념을 쓴 종이, 참고했던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 형성물을 모두 함께 전시했었죠. 이 내용으로 단행본도 만들었어요. 커미션 작업을 진행할 때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미술 전시 포스터를 디자인한다면 참여 작가의 과거 작업을 꼼꼼히 찾아봐요. 만일 어디선가 작업을 접할 수 있다면 찾아가서 실제 작품이 뿜는 에너지를 느껴봅니다. 이를 통해 제가 맡은 일이 의뢰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가늠해 보려고 해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으로 도전해도 좋을지, 아니면 예전 느낌을 이어가는 게 좋을지 판단을 내리고 디자인을 진행합니다.

«가지런히 어지르고 흩트리며 정리하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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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히 어지르고 흩트리며 정리하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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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히 어지르고 흩트리며 정리하기』, 2021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최근에 진행한 개인 작업은 『QQ 2』가 있습니다. ‘QQ’는 2019년부터 기획·진행하고 있는 워크숍이에요. 생활에서 작업 아이디어를 얻는 사람으로서, 디자인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돋우기 위해 사소한 것에 질문하고, 질문을 이어나가자는 의도로 시작했어요. 질문 26개를 준비하고 워크숍 참여자를 모집한 후 구글 독스에 접속해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이 고른 하나의 질문에 답하고, 또 그 답에 질문하며 자문자답하는 형식입니다. 관련 내용은 다른 개인 작업인 ‹design agility›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지난 2020년 발간했어요.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두 번째 워크숍을 준비했는데요. 급격히 온라인 매체에 적응하는 상황에서 공간에 대한 질문을 하려다가, 다시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주목해 숫자로 방향을 바꿨죠. 코로나19 때문에 참 많은 숫자를 셌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확진자 수의 증감도 확인해야 하지, 마스크는 1인당 몇 개까지 살 수 있는지 알아야 하지 오늘은 몇 시까지만 몇 명이 모일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만 하던 시절이었죠. 이처럼 무언가 ‘제한’하려는 의미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해왔던 숫자세기를 이어가면 상황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몇 명의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가?’, ‘이름을 알고 있는 강아지/고양이는 몇 마리인가?’, ‘하루 중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몇 번 누를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줌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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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Q 2』, 2023

커미션 작업으로 도시공학과 졸업 전시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어요. 도시공학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리서치해 보니 제가 다니는 모든 길과 공간에 관한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졸업 전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어떤 풍경을 보고 학교에 다녔을까, 궁금해져서 학교에 직접 가보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버스 밖 풍경을 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마침 서울시의 초록색, 파란색 버스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포스터의 텍스트와 움직임이 추상이라면, 이 영상을 포스터 바탕으로 활용할 때 구상을 담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공간전 «BIG IDEAS: MAKE NO SMALL PLAN» 온라인 포스터, 2023

박서영 기획자가 진행한 이진영, 정지현 작가의 단체전 «바흐티노프 마스크»의 포스터와 도록도 기억에 남는 작업입니다. ‘바흐티노프 마스크’는 좁은 틈을 통해 천체를 관찰하는 기구인데요. 여러 개의 틈을 연결한 기구의 형태가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포스터의 조형에 꼭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이 익숙지 않기 때문에 홍보를 위해서 포스터에는 꼭 한글로 표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자연스럽게 이 틈과 한글을 합치는 방향으로 디자인이 풀렸습니다. 한글 레터링 작업을 한 적이 별로 없는데 그 형태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금별 색으로 인쇄한 포스터를 잘라서 도록 사이의 틈을 벌리는 장치로도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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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티노프 마스크 BAHTINOV MASK» 포스터, 사진: 이정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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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티노프 마스크 BAHTINOV MASK» 포스터, 사진: 이정빈, 2023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강조한다기보다 항상 확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작업 과정에서는 스스로 즐거운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작업 마무리 단계에서는 제가 표현한 이미지에 다른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완료한 작업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에요. 작업을 할 때의 제 능력과 환경을 떠올려보면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서요. ‘이러이러한 시도도 해봤다면 좋았겠다’라고 아쉬울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작업마다 할당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아이디어는 기록해 두고 다음 작업에 활용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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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정체성과 디자인›, 박기록(박고은, 김기창, 정사록) 작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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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라 2023 오디오비주얼 쇼케이스’ 포스터, 2023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별일 없으면 무조건 작업실에 나갑니다. 일주일 내내요. 작업실에는 제 즐길 거리를 모두 구비해 놓은 터라, 작업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해요. 그러면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일과 휴식을 분리한 삶을 살지 못하는 건가, 불만이 많았는데요. 제 개인 작업을 하면서 이젠 오히려 한 데 섞인 게 자연스럽다고 여깁니다. 문제는 작업실에 들어가면 좀처럼 밖에 나가질 않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보러 갈 전시 리스트를 만들거나, 지인과 약속을 잡거나, 밖에 나가서 산책 혹은 운동을 하려고 노력해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올해에는 수업을 나가는 학교에도 변화가 있고, 제가 맡았던 일의 임기도 마무리됐거든요. 시간을 활용하는 여건이 바뀌는데,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틈틈이 생각해요. 제 개인 작업도 계획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새로운 일도 도모하고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때!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여러 일을 두고 견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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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퍼즐: 여섯 장의 종이를 움직여 발견하라!, 워크숍,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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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퍼즐: 여섯 장의 종이를 움직여 발견하라!, 워크숍, 2023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거나 원치 않는데 억지로 하는 상황을 싫어하는데요. 세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불만이 많았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대처 방향을 바꿔서, 이제는 버겁다고 여기는 상황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고, 제가 흥미로워할 만한 장치를 만드는 데 능숙해졌어요. 예를 들어,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텍스트로 책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면, 평소에 궁금했던 서체를 구입해 작업에 사용하면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한창 팬데믹 때문에 집에 있던 시간이 길었던 때 ‹Sltiiflel, Stilllife.›라는 개인 작업을 했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활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더불어 당시의 상황을 꼭 제 시선으로 기록해 둬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집에만 있으니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서 촬영하고, 발급받았던 재난지원카드부터 마스크와 체온계, 마트에서 구입한 채소나 과일도 촬영했죠. 이렇게 기록한 사물들을 모으니 그 모습이 꼭 정물화 같더라고요. 하지만 정형적인 정물화보다 확실히 어색하게 읽히잖아요. 이런 모습에 ‘Still life’의 알파벳을 섞어서 ‘Sltiiflel, Stilllif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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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tiiflel, Stilllife. 2020. 6., 2022. 6.›, 2022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우선 몸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해 봐요.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몸이 아프면 별일 아닌 것에도 쉽게 싫증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요리를 해줍니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서 제가 저에게 밥을 한 끼 해먹이면 스스로 기특하고 힘이 난답니다.

‘라운드 더 테이블’ 타이틀 로고 및 무빙 디자인, 2022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거취의 문제입니다. 사는 집의 계약이 곧 종료되는데, 어디에 어떤 형태로 사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아요. 이 고민은 꽤 오래되었고 점점 답도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가끔 고향인 부산에 사는 모습이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상상해 보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무언가 계속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함은 물론이고 스스로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도 잘 알아야 하겠죠. ‘멋진 걸 만들어 내겠다!’라기보다는 ‘일단 만들고 보자! 만드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자! 만들어 낸 것에 대해 좋고 나쁨은 나중에 판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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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개인전 «림파 림파! Lympha Lympha!» 레터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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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개인전 «림파 림파! Lympha Lympha!» 포스터,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운동을 꾸준히 할 때 몸과 마음의 근육이 든든하게 생기는 느낌이 들었어요. 몸에 에너지가 있으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깁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여러 의미에서 신뢰가 가는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겨울철 서울에서 살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낮은 일조량 때문에요. 그래서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곳에서 지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을 지닌 사람이길 바랍니다.

Artist

정사록은 일상에서 포착한 순간에 다가가 이를 늘리고, 연결하고, 포개며 전체를 조망하는 일을 즐긴다. 디자이너로서의 관심사를 출판,ˑ워크숍,ˑ전시로 풀어내고 있다. 2년 반 동안의 작업 과정을 담은 『가지런히 어지르고 흩트리며 정리하기』를 펴냈고, 질문에 질문을 잇는 워크숍 ‘QQ’를 운영한다. 문화예술계 창작자와 주로 협업 중이다. sar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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