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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배워야 산다

Writer: 오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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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오혜진 작가는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들어갈 때까지 7~8년 동안 늘 슬럼프에 빠진 기분이라고 고백해요. 그래픽 디자인의 목적이 그저 보기 좋게 정리하는 건가, 현타가 쎄게 온 건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딱 잘라 말해요. 왜냐하면 그에게 그래픽 디자인은 생계 수단이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거든요. 그래서 매번 다른 내용을 다루는 프로젝트에서 기존에 해보지 않은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 매번 리서치에 몰두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배우며 권태로움이 스며드는 구석을 차단한답니다.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게 지천이라 연차가 쌓여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를 보니,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의 미래가 너무나도 궁금해지네요. 오늘내일 차근차근 재미있는 작업을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이 성실한 창작자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MBR, cover, square1-1, 오혜진

『메이크 브레이크 리믹스: K-스타일의 부상(Make Break Remix: The Rise of K-Style)』표지,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시각 언어를 바탕 삼은 여러 활동에 관심을 두고 그래픽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오혜진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만화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지원하게 되었어요. 이후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Zip23, poster2, 2023, 오혜진

‹Zip’23 Festival› Poster, 2023

Zip23, poster, 2023-1, 오혜진

‹Zip’23 Festival› Poster, 2023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난 2017년부터 IWMW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매 건축가 친구들과 함께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어요. 현재 위치는 서울역 근처인데요. 교통이 편리하고, 창문 바깥으로 서울로7017과 빌딩숲이 보입니다. 자연을 바라보지 않는 인공적인 도시 뷰 역시 꽤나 재미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면서 만족스럽게 잘 지내고 있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정말 죄송하지만, 영감의 출처를 묻는 것은 다소 진부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들 알잖아요. 영감이 어딨습니까…그냥 미친 듯이 계속하는 수밖에 없죠.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먼저 내용을 파악하고 이를 시각 언어로 어떻게 변환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이런 행위를 번역에 비유하곤 해요.

‹수동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내지 비디오, 2023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한데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특정 매체와 분야에 한정해서 작업하기 보다는 재미있어 보이는 이런저런 기회가 생기면 경계 없이 해보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에요. 최근에는 주로 북 디자인, 이벤트 아이덴티티, 전시 참여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그중 작년에 진행한 작업 몇 가지를 말씀드려 볼게요. 북 디자인 중에서는 미메시스에서 출판한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의 에세이집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시간의흐름에서 출판한 요나스 메카스의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이 있어요. 키 비주얼을 만드는 아이덴티티 작업으로는 ‘오픈하우스서울 2023: 서울 산책’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Zip’23’ 프로그램 디자인을 진행한 걸 꼽을 수 있고요. 작년 봄과 여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한 «젊은 모색 2023»과 wrm에서 열린 «릴레이 서재 #5» 전시에도 참여했답니다. 더불어 2022년부터 2년 동안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발행하는 ‘KST 통신’이라는 뉴스레터 프로젝트를 신덕호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우리는-언제나-과정-속에-있다, 표지, 2023, 오혜진
우리는-언제나-과정-속에-있다, 표지, 2023-1, 오혜진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푸하하하프렌즈 지음, 미메시스

릴레이-서재1, 2023, 오혜진
릴레이-서재2, 2023, 오혜진

‹릴레이 서재›, 2023

수동-타자기를-위한-레퀴엠, 2023-1, 오혜진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2023

오픈하우스서울2023, 4

«오픈하우스 2023: 서울 산책» 아이덴티티, 2023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경계 없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에 특히 자주 하는 것 같아요. 작년에 참여한 «젊은 모색 2023»만 하더라도, 그렇게 큰 전시장에서 설치의 디테일까지 스스로 진행한 적이 없었기에 공간에서 그래픽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어요. 그래도 참 재밌었죠. 저는 평면 기반의 작업을 주로 하지만, 보이는 방식을 공간이나 사물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젊은 모색 2023 전시 작품 중 하나였던 ‹전시 기간›

젊은-모색, MMCA과천, 2023-1, 오혜진

«젊은 모색» MMCA과천, 2023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제 일상은 매우 규칙적인 편이에요. 아침 8~9시쯤 일어나서 10시 전후로 사무실에 출근한 후, 저녁 6~7시 전후로 사무실을 나와요.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저녁 9~12시 사이에 몇 가지 일 처리를 하다가 새벽 1시 전에 잠들곤 하죠. 재미없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취미는 책 읽기입니다. (웃음) 평소에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작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요. 낮과 밤의 특징이 있다면, 손을 쓰며 집중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일거리는 낮에 처리하고요. 저녁 이후의 시간에는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면서 릴랙스한 기분으로 메일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하곤 해요. 지금 인터뷰도 퇴근 후 집에서 와인 한잔 즐기면서 하는 건데요. (취중 인터뷰입니다…) 주말에도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평일과 그닥 다르지 않게 지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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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정치학』, 2022

1-995, 오혜진

『디자인 정치학』,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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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정치학』, 2022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단연 운전입니다! 현재 초보운전 4개월 차인데요. 너무 무섭지만, 너무 재미있어요. 뚜벅이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세상 돌아가는 눈을 하나 더 장착한 것만 같아서 무척 기쁘네요. 평소에 일 외에는 거의 할 줄 아는 게 없는 터라, 인간으로서의 쓸모를 하나 만든 것 같아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하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으로 묻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작업에 대한 집착의 정도라면 혹 모르지만요. 일에 대해서 시간을 굉장히 많이 투자하고, 디테일에 집착하는 편이지만 그외에 제 다른 일상과 관계에 대해서는 별 고집부리지 않고, 심지어는 무심하기도 하거든요. 이를테면, 친구랑 밥 먹으러 어디로 갈지 논의할 때도 별로 주장하는 바가 없어요. 대체로 상대방 의견에 맞추곤 해요. 하지만 작업할 때는 다르죠. 제가 작업한 결과물로 상대를 최대한 설득하고, 제가 선택하는 걸 실현하려고 무진장 노력한답니다.

3, 3-1, 오혜진

‹l idiot utile› issue 0, 2022

작업 중에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7~8년 동안 거의 슬럼프였어요. 그래픽 디자인이 그저 보기 좋게 정리하는 직업인가, 현타가 왔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철저한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죠. 지금 제게 그래픽 디자인은 생계 수단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예요. 매번 다른 내용을 다루고, 리서치를 통해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방법을 시도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배울 때가 많거든요. 결국 기계적이고 관습적인 태도로 익숙하게, 효율적으로 일을 다루다 보면 권태를 느낄 수밖에 없어요. 즉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방법을 모색하거나, 다뤄야 하는 주제에 대해 리서치를 깊게 하는 등 다양하게 학습하는 태도를 지닌다면 이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게 산더미에요. 권태로워질 틈이 없죠. 그래서 저는 자기복제적 작업에 대해서 회의적인 편이에요.

‹전시 기간을 위한 다이어그램›, 2023_오혜진

‹전시 기간을 위한 다이어그램›, 2023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대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요. 프로젝트 비용은 정해져 있는데, 제가 쓰는 시간은 늘어나니 늘상 적자인 이 기분 아시려나요. 경력이 쌓일수록, 점점 디자인 작업이 오래 걸리는 느낌이에요. 시간을 많이 쓰고, 좋은 작업을 만드는 만큼 비용도 커지면 좋겠는데, 디자인이란 게 늘상 결과물이 다르다 보니 리스크가 큰 분야라서 쉽지 않은 듯해요. 이를테면, 일러스트레이터나 작가들은 쭉 해오는 시각적인 시그니처가 있기 때문에 결과물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거든요. 디자인은 방법과 태도에 가깝기에 결과물이 뭐가 어떻게 될지 예측불허한 면이 커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배우는 자세입니다.

기억공간, 리플렛, 오혜진

«기억 공간» 리플렛, 2023

기억공간, 리플렛3-1, 오혜진

«기억 공간» 리플렛, 2023

기억공간, 리플렛6-1, 오혜진

«기억 공간» 리플렛,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이것 역시 배우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학습하지 않는 태도는 권태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팁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지닌 성향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워낙 싫증을 잘 내다보니 한 번 해본 건 지겨워서 남이 시켜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오히려 안 해본 걸 자꾸 해보고 싶으니 이런 방향으로 작업을 지속하는 것 같아요. 책을 읽을 때도 한 번에 진득하게 한 권을 끝내지 못하고, 거의 5~10권을 가져다가 10~20분마다 계속 바꿔가며 보는 습성이 있답니다…

KST-press-4, 1, 2023-1, 오혜진

‹KST press 4›, 2023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남이 이렇게 기억해 주면 좋겠다’까지 의식하면서 작업하기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그저 주변 동료들과 재미있는 것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다가 현생을 마치면 한이 없을 듯해요…하하하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인터뷰에 응하다 보면 맨 마지막에는 꼭 미래에 관한 질문이더라고요. 근데 돌이켜보면 제가 답변한 미래는 불과 반년 후에도 완전히 바뀔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미래에 대해서 답하는 게 의미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는 그저 매달 세금 잘 내고, 약간의 저축도 하면서, 주변 동료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늘내일 차근차근 재미있는 작업을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단면, 오혜진, ohezin

‹미래의 단면›, 2022

Artist

오혜진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2014년부터 오와이이(OYE)를 운영하며 여러 시각 매체를 아우르고 있다. 리소 스텐실 인쇄 기법을 활용한 실험 워크숍 ‘Magical Riso’(2016, Jan Van Eyck Academie, 네덜란드)와 워크숍과 레지던시를 겸한 프로그램 ‘Designer in Residence 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2018, 미국)에 초청받았고, «It’s Nice That»의 ‘Once to Watch 2020’, 월간 «디자인»의 ‘2021 올해의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에 선정됐다. «idea» «Design360°» «étapes» «그래픽» 등 국내외 다수의 매체에서 작업을 소개한 바 있으며, «젊은 모색 2023»(202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21, 세운상가 일대), «Unparasite»(2021, Platform-L), «타이포잔치»(2019, 문화역서울 284), «Poster Show»(2018, Likely General, 토론토), «fanfare inc. Tools»(2018, fanfare, 암스테르담)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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