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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인생은 만화처럼 끝나지 않으니까요

Writer: 민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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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민지환. 그에게는 ‘문제적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곤 해요. 뒤틀린 캐릭터를 작품에 등장시켜 ‘광기 어린 사랑’을 소재로 삼기도 하고, ‘인간의 허무함’을 꼬집는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하죠.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대체 불가능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말을 들으니 작품을 보고 난 후 떠오르는 의문이 좀 더 해소되는 기분입니다. 최근 단편집 『허무의 기록』을 통해 ‘인생은 만화처럼 극적인 결말을 맺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민지환 작가의 이야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허무의 기록›, 박제가 된 천재, 2022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웹툰, 일러스트레이션 등 시각 매체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민지환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소설가를 꿈꿨어요. 소설을 정말 많이 읽고, 직접 써보기도 했죠. 그런데 소설은 사람들이 잘 보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당시에는 웹 소설도 없어서,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장벽이 매우 높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내가 만든 이야기를 만화로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보통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가의 꿈을 꾸는데, 저는 그 계기가 달랐던 거죠. 부모님이 만화를 보지 못하게 하시기도 했고요.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난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마음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창작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항상 2D로 작업을 했으니, 이번에는 무대 디자인이나 도예처럼 3D 작업물을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허무의 기록›, 최종적 형태의 가해, 2022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작업 공간이라기엔 매우 좁아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자랑스레 보여드릴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더러워서요…) 책상 위에는 컴퓨터, 액정 타블렛 ‘신티크 16’이 놓여 있습니다. 전자기기로 가득한 원목 테이블을 바라보면 그 상황이 가끔 웃기기도 해요. 테이블에는 공간이 부족해서 옆에 식탁을 두고 작업용으로 쓰고 있고요. 이제 빈 공간마다 책더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책에서 영감을 얻어요. 주로 고전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생각나는 장면이나 문장을 메모해 둡니다. 그리고 싶은 시놉시스가 떠오르면 메모를 다시 들춰보면서 열심히 퍼즐 맞추기를 해요. 그러다 보면 스토리가 완성되어 있더군요. 최근 구상한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인용도 많이 했고요. 때로는 역순으로 작업하기도 해요. 그리고 싶은 유형의 캐릭터가 떠오르면, 해당 캐릭터의 서사를 고려해 스토리를 짜는 거죠. ‘이 캐릭터의 성장에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일까?’, ‘반동 인물은 누구이고, 조력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작업을 이어갑니다. 앞서 설명한 두 가지 방법 중 딱 하나만 선택하지 않고, 서로 섞을 때도 있어요.

‹화차›, 2023

‹허무의 기록›, 체네렌톨라,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우선 트리트먼트를 보고 글 콘티를 짠 후에 그림 콘티를 그려봐요.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만화를 완성하는 편이에요. 사실 작화 과정은 단순노동에 가까워서 그다지 특별하게 알려 드릴 면모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그림 콘티를 짤 때 글로 정리한 콘티를 계속 읽어보며 마치 스스로 영사기가 된 듯 캐릭터의 흐름을 영화처럼 재생해 봅니다. 그리고 이를 토막 내서 종이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요. 만화는 정지 상태가 기본이기 때문에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부분에서 멈춰야 가장 적은 동작과 정보로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제 만화가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네요. (웃음)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직 신인이라 소개해 드릴 작품이 몇 개 없는데요. 하하. 최근 단편만화집 『허무의 기록』을 출간했고, 현재는 포스타입과 리디북스에 『화차』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허무의 기록› 단행본 표지, 2023 (좌)

‹화차›, 2023 (우)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허무의 기록』에서는 ‘인생은 만화처럼 극적인 결말을 맺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인생은 만화와 다르게 범죄자가 처벌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잊히거나,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거나,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누군가의 도구로 이용하곤 하잖아요. 제목처럼 허무한 기록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인생과 닮은, 그런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어요.

『화차』는 ‘인간에게 남아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쨌든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에요.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적 기제가 되기도 하고, 남을 해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사랑을 인물 간의 요소로 활용하기보다 사랑의 근원을 짚어보려 했어요. 작품에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도피처가 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허무의 기록›, 체네렌톨라, 2022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기복 없이 일관적으로 작화를 유지하는 점은 만족스러워요. 다만 인체를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그림 실력이 자꾸 퇴화하는 기분이 드네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D 모델링 이미지를 러프 스케치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손도 풀 겸 인체 드로잉을 하는데 죄다 잊어버렸는지 술술 그려지지 않아서 위기감을 크게 느낀 기억이 나요. 더불어 최근 연재 중인 『화차』의 주인공이 남성이라서 여성 캐릭터를 그리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워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은 뒤 다시 일합니다. 대부분의 현대인처럼 단출한 루틴을 반복하고 있어요. 마감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도서관에서 콘티를 짜거나 책을 봅니다.

‹화차›, 2023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글 작법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 해서 사람을 꽉 가두는 입시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입시 준비를 하며 제 글이 지닌 매력이 퇴색될까 봐 걱정돼요. 무엇보다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서 입시 준비는 엄두도 못 내요. 그래서 우선 희망 사항으로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최근 관심사라면 일본 소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잘 읽지 않았는데 요즘 관심이 생겼어요. 문장의 구조와 단어의 배열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요. 물론 일본 소설이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제가 접한 일본 대문호의 글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연기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캐릭터의 행동을 그려나갈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허무의 기록›, 현훈, 2022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글쎄요… 제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래서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제정신을 가진 존재가 없고, 다들 불쾌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중성을 띤 캐릭터가 등장하는 까닭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인간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에 극단적인 요소를 넣어 이야기에 재미를 주려고 노력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직 슬럼프다운 슬럼프를 겪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슬럼프는 심적으로 지치거나, 마음이 조급할 때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슬럼프가 오면 충분히 푹 쉬고, 작업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싶어요. 창작욕은 지하수와 같아서, 마구 퍼내 버리면 고일 새도 없이 말라버리는 존재에요. 그러니 창작욕이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허무의 기록›, 현훈, 2022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일단 가장 큰 마음의 짐은 학교 문제입니다. 만약에 자퇴한 후 이 답변을 다시 읽으면 크게 웃을 것 같네요. 독립할 시기도 고민하고 있는데, 이 답변도 나중에 인터뷰를 다시 보면서 엄청 웃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트렌드를 따르려고 급급하기보다 대체 불가능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자’가 제 모토예요. 가르치는 학생에게도 여러 번 말했던 부분인데요. 1인 창작자일수록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에게 작품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그림과 글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요. 스스로 자기 작품의 팬이자, 비평가가 되어야 해요. 또한 ‘내 실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라고 어림짐작하며 찾아온 기회를 내치는 일은 좋지 않아요. 사람은 계속 발전하잖아요. 자기 작품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어느 정도 자기 타협을 하면서 자신과 독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화차›,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대중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본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견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본인에게 엄격해야 해요. 본인을 평가할 때는 의도치 않게 자기변호를 하게 되니까요. 주관성을 떨쳐내는 노력이 창작자에게는 어떠한 태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혹 제가 만화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알아봐 주신다면 정말 좋겠네요! 그게 무엇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비밀은 알면 재미없으니까요. 하하.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법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는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더욱더 절실히 느껴요. 저는 미래나 과거보다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인데요. 미래는 언젠가 현재가 되고, 현재는 언젠가 과거가 될 테니, 결국 이상적인 현재를 살아간다면 이상적인 미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허무의 기록›, 살인자와의 인터뷰, 2022

Artist

민지환은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등 시각 매체를 중심으로 작업한다. 만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고, 인간의 허무함을 꼬집는 이야기를 주로 그린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단행본 『허무의 기록』을 발행했고, 현재 포스타입과 리디북스에 『화차』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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