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작가는 조각과 설치를 통해 일상에 산재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에 몰두해요. 주어진 환경과 공간적 맥락에 관심이 많아서 작업이 관계할 장소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오는 요소가 평소의 고민, 감각과 사고의 단편과 만나 작업의 여러 면모로 도출된답니다. 그러다 보니 전시에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배치되던 작업이 작업실로 옮겨진 후 공간에 맞춰 효율적으로 집적되는 모습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의 창작 과정은 다음과 같은 행위의 불규칙한 반복이라 할 수 있어요. 질문, 읽기, 생각, 적기, 상상, 기록, 그리기, 딴청, 계산, 리서치, 또 상상, 의논, 만들기, 주문, 좌절, 다시 상상, 두근거림, 만족, 또 좌절, 그렇지만 만족, 기록, 딴생각, 질문… 창작자에게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PTSD를 일으킬만한 나열일까요? 그는 너무 먼 미래를 꿈꾸며 걱정하기보다, 작은 성취를 만들어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꿈꾸기에만 머무르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니, 일단 하고 보는 사람이 임자랍니다. 무모함과 집요함, 인내심을 중시하는 김민애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안녕하세요. 김민애입니다. 조각과 설치를 통해 일상에 산재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좋아하고 궁금한 일을 선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테이블, 의자, 컴퓨터, 책, 수집한 이미지나 사물, 작업을 위한 도구, 자투리 재료와 더불어 과거에 만든 작업이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서로 간에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배치되던 작업이 이제는 공간에 맞춰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적된 장면을 보면 시간과 공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창이 크지 않아서 해가 잘 들지 않지만, 화분 두 개를 잘 키워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아무래도 주어진 환경과 공간적 맥락에 관심이 많아서, 작업이 관계할 장소를 살피는 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이런 관찰은 비단 물리적인 조건에만 해당하지 않아요.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제가 평소에 생각하거나 고민했던 문제들, 감각과 사고의 단편들과 만나 작업의 여러 면모로 도출되는 것 같습니다.
질문, 읽기, 생각, 적기, 상상, 기록, 그리기, 딴청, 계산, 리서치, 또 상상, 의논, 만들기, 주문, 좌절, 다시 상상, 두근거림, 만족, 또 좌절, 그렇지만 만족, 기록, 딴생각, 질문… (불규칙적으로 반복)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년 8월 말 일민미술관에서 «IMA Picks 2024»의 일환으로 선보인 개인전 «화이트 서커스White Circus»를 최근의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화문광장 건너편에 위치한 미술관의 문화적·지리적 특성에서 비롯한 광장과 옥상의 공간적 정서를 서커스의 다중적 의미와 포개어, 미술과 현실의 모순을 동시에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이를테면, ‘관람 혹은 관망’, ‘눈먼 행진’, ‘때늦은 휴가’, ‘은폐’, ‘위장’, ‘방어’ 등의 이름을 지닌 작업들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낯선 장면으로서 관람객에게 다가가길 바랐어요.
반면, 2023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치른 개인전 «거인(Giant)»에서는 3층으로 나뉜 전시장의 공간적 조건과 동선, 그리고 제 교육적 배경인 조각이라는 매체에 대한 질문을 중첩해서, 허상에 가까운 여러 욕망에 기대어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작업이 관객과 만나는 전시라는 장은 저 혼자만의 창작의 무대가 아닙니다. 본 적 없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는 시간에서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이렇게 고심해서 완성한 전시의 장면들을 관객이 알아차리거나, 각자의 생각과 엮어 새로운 감상 지점을 만들어낼 때 만족스럽고, 감사함을 느낍니다. 더불어, 의도치 않았지만, 작업의 요소들이 만들어낸 뜻밖의 서사를 저 스스로 발견할 때 새로운 작업의 의미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편, 작업에서 내리는 최종 결론이 늘 비슷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뒷골이 서늘하기도 해요.
기본적인 삶의 양상과 돌출하는 사건들은 대체로 모순적입니다. 그러한 삶의 양면성, 혹은 다면성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작업에 지속적으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조금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슬럼프는 과도하게 생각이 많아질 때 스멀스멀 저를 잠식해 오곤 했어요. 그래서 하던 일을 ‘그냥’ 지속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짧은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성취하는 경험을 통해 극복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슬럼프는 도약을 위한 발버둥이기도 합니다. 잠깐은 누릴 필요가 있다는 의미죠. 최근 슬프게도 슬럼프를 충분히 느낄 틈이 없네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기반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더 견고해지고, 심지어 방어적으로 경직되는 모습이 큰 문제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모두에게 일종의 생존 본능인 것 같은데요. 다소 추상적인 답변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상태를 저조차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도리어 현실적인 불안감으로 엄습합니다.
기본적으로 창작이란 이 세상에 없던 것,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한 게 사실이죠. 그런데 일단 한 발 내딛고 나면 길이 조금 보이고, 그 길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지기도 해요. 그런 여정이 자연스럽게 나만의 방법론과 추진력을 형성하기도 하죠. 따라서 너무 먼 미래를 꿈꾸며 걱정하기보다는, 작은 성취들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또한 꿈꾸기에만 머무르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일단 하고 보는 사람이 임자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도록 내·외부적인 동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절망적으로 향하는 세상의 여러 지표가 새로운 방향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Artist
김민애는 개인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환경과 공간의 의미를 묻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적 상황을 조각과 설치를 통해 발표해 왔다. 구조·제도의 견고함, 혹은 취약함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주로 전시 공간을 특정적인 프레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조건이 어떤 맥락과 호흡을 만드는지 관찰함으로써 완성된다. «IMA Picks 2024: 화이트 서커스»(2024, 일민미술관), «거인»(2023, 원앤제이 갤러리), «기러기»(2018, 아뜰리에 에르메스)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을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리움미술관 등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