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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우연히 마주한 고통

Writer: 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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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셀 우엘벡은 에세이 「계속 살아 있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고통을 펼쳐놓는 것이 세상이다. 고통의 교차점에 세상의 근원이 있다.” 여기에 크게 공감하는 이손 작가는 우리가 외면하는 비극, 아픔, 고통에 대해 긴밀히 파고드는 수행자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그가 연작으로 진행한 ‹Drift Bottle›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한 실종자를 찾는 현수막을 추적해 사진으로 담고, 끝내 실종자가 살던 마을에 이르러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황무지로 변하는 풍경을 기록하고, 현수막에서 느낀 고통의 근원인 단절된 가족 관계를 찾아 가족이 사는 제주로 내려와 보름달마다 풍경을 찍는 5년간의 대장정을 담았어요. 우연히 마주한 타인의 고통과 사적인 고통 사이를 표류하는 그의 작업은 다소 무거우면서도 시적으로 다가오는데요. 미술을 통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있다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픈 마음이 샘솟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손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덩쿨, 2022, 100x80(cm), digital pigment print

‹덩쿨›, 2022, digital pigment print, 100 × 80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사진과 퍼포먼스를 주요 매체로 작업하는 이손입니다. 가족 관계나 성장 배경과 관련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왔어요. 사진 작업은 단절된 가족 관계에 초점을 맞춰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타인의 고통을 제 서사로 이어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요. 퍼포먼스는 성장 배경에 무게를 두고 낭독이라는 행위를 주안점 삼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해 온 두 매체를 어떻게 한 지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고민 중입니다.

동화와 변주, 이손 김재은, TINC, 2023 (2)

«동화와 변주», 2023, TINC

성당-2020-50x40cm-digital-pigment-print

‹성당›, 2020, digital pigment print, 50 × 40 cm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에는 미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사춘기 때 손에 잡히는 대로 소설을 많이 읽곤 했는데요. 돌이켜보면 그 무렵에 어떤 감수성 같은 게 형성된 것 같아요. 막연하게 문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고등학생 때 우연히 현대 미술을 접했어요. 미술에 대해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과 커리큘럼에 사진 수업이 있었어요. 순수 미술에 가장 가까운 수업이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레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근데 사진 수업만으로는 미술에 대한 갈증이 모두 해소하기 힘들더라고요. 타과 수업을 듣거나 학교 외부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다 보니 조금 결이 다른 두 매체를 독립적으로 생각하며 다루게 되었습니다.

굴다리, 2023, 100x80(cm), digital pigment print
화장실, 2020, 50x40(cm), digital pigment print

(좌) ‹굴다리›, 2023, digital pigment print, 100 × 80 cm

(우) ‹화장실›, 2020, digital pigment print, 50 × 40 cm

(상) ‹굴다리›, 2023, digital pigment print, 100 × 80 cm

(하) ‹화장실›, 2020, digital pigment print, 50 × 40 cm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재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 중입니다. 따로 작업실을 두지는 않고, 제주 집 다락방에 컴퓨터와 필름 스캐너, 작은 프린터와 마이크를 두었어요. 종종 제작이 필요할 땐 아버지 창고에 가서 이것저것 만들고 있고요. 창고에 남는 공간을 잘 꾸며 작업실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평소 짧은 메모를 자주 적는 편인데, 나중에 이를 확인하며 작업의 출발점을 찾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도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고요. 긴 영상 작업을 가만히 관람하다 보면 딴생각하면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상황이 종종 있답니다. 퍼포먼스를 발표하거나 전시에 참여할 때도 ‘앞으로 어떻게 가야겠다’라는 게 더욱더 분명히 생기는 것 같아요. 특히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보다는 관객과 만날 준비가 된 결과물에서 그런 지점을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앞서 말한 메모나 다른 이의 작업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얻는다면, 후자의 경우 영감을 얻는 경험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작업에 들어가기 보다는, 큰 방향성을 잡고 작업에 임하며 구체화하는 스타일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과물이 더욱더 인상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게 좋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작업의 핵심이 되는 지점을 포착하고, 이에 대해 설득가능한 형식을 찾을 때까지 계속 수정하고 쌓아가는 식으로 작업에 임합니다. 어느 정도 진행한 후 어떻게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이런 결과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정리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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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 2023, the Willow

덩쿨, Narrat, the Willow, 2022

«Narrat», 2023, the Willow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5년 동안 진행한 ‹Drift Bottle› 사진 연작으로 지금 개인전을 열고 있어요. 거리에서 우연히 반복적으로 마주한 실종자를 찾는 특정 현수막을 오랜 기간 따라간 작업입니다. 크게 4개의 챕터로 나뉘는데요. 구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처음에는 현수막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았어요. 그러다가 현수막에서 느끼는 제 감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수막이 놓인 동선의 주변부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현수막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실종자가 살던 마을에 이르렀고요. 그 마을이 재개발의 영향으로 황무지처럼 변한 풍경을 보면서 해당 장소에 주기적으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방문해 매달 한두 장씩 촬영하며 또 2년여간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 부분이 작업의 중심이 되고요. 최종적으로는 현수막에 반응하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인 가족이 있는 제주로 돌아와 여전히 보름달이 뜨는 날 촬영을 나가는 식으로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보통의 사진 작업이 대상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업은 사진을 찍는 행위에 더욱더 집중해서 진행했어요. 어떤 의식처럼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정 장소, 특정 시간대, 특정 행위의 반복이 의식을 구성한다고 말한다면, 실종자가 살던 마음에서 보름달이 뜨는 밤에 장노출로 사진을 찍는 작업은 저만의 의식을 수행한 결과물입니다. 우연히 마주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다가가려고 하지만, 조금씩 밀려나고 멀어지려던 제 고통에 대해서는 조금 붙잡아두려고 하는, 이 둘 사이에서 긴 시간 동안 헤매고 표류하며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담은 작업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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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한남대교›, 2024, «Drift Bottle»,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흔들리는 배, 2023, 60x75(cm), digital pigment print

‹흔들리는 배›, 2023, digital pigment print, 60 × 75 cm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배경이 되는 서사가 작업에서 중요하지만, 설사 서사가 완전히 지워지더라도 각각의 사진이 작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했어요. 제가 현수막에서 느낀 (그것에 대해 작업하게끔 했던) 감각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사진을 시각적인 지표로서 읽어내려고 하면 아마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물질처럼 보고 감각하려고 노력할 때 발생하는 지점을 기대하며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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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ft Bottle», 2024,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이 작업은 타인의 고통과 제 고통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즉 대상의 주변을 맴돌 뿐, 중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시를 준비하며 작업을 계속 보니까, 내용상으로는 중심에 다가가지 못했지만 제가 동기화하려고 시도한 감각에는 제대로 나아갔다고 느꼈어요. 대상의 주변부를 맴도는 방식이 적절했구나, 생각도 들었고요. 결과적으로 작업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깃발, 2020, 40x50(cm), digital pigment print

‹깃발›, 2020, digital pigment print, 40 × 50 cm

길, 2021, 125x100(cm), digital pigment print

‹길›, 2021, digital pigment print, 125 × 100 cm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제주에 있을 때는 보통 오전부터 늦은 점심까지 생계를 위해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작업하거나, 책을 읽는 등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한동안은 일하는 시간 외의 대부분을 전시 준비에 할애했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작업과 관련해 사람들을 만나거나, 전시를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초상, 2020, 50x40(cm), digital pigment print
함성, 2020, 120x150(cm), digital pigment print

(좌) ‹초상›, 2020, digital pigment print, 50 × 40 cm

(우) ‹함성›, 2020, digital pigment print, 120 × 150 cm

(상) ‹초상›, 2020, digital pigment print, 50 × 40 cm

(하) ‹함성›, 2020, digital pigment print, 120 × 150 cm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제가 만드는 것과 보는 것에 대해 더욱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도록 폭넓게 미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시에 관해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최근 제 작업이 시와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시를 쓰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고, 평소에 남기는 메모도 시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많이 찾아서 읽어보며 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사진과 퍼포먼스의 연결고리 역할을 시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 중입니다.

영원히 죽을까봐, 2023, 150x120(cm), digital pigment print

‹영원히 죽을까봐›, 2023, digital pigment print, 150 × 120 cm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텍스트가 있어요.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의 에세이 「계속 살아 있기(To Stay Alive)」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고통을 펼쳐놓은 것이 세상이다. 고통의 교차점에 세상의 근원이 있다.” 삶은 원래 덧없고 비극적인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감각을 일깨워주는 글이나 창작물을 좋아해요. 작업물이 대부분 삶의 문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자연스레 묻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속 작업하는 삶을 결정한 것 또한 비슷한 방향의 삶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까마귀, 2023, 40x50(cm), digital print

‹까마귀›, 2023, digital print, 40 × 50 cm

교회, 2023, 80x100(cm), digital pigment print

‹교회›, 2023, digital pigment print, 80 × 100 cm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작업에 구조를 부여하면 어떻게든 계속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보름달이 뜨는 밤에 촬영하는 구조를 세우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어요. 결국 작업을 통해 상황을 환기하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달, 2021, 40x50(cm), digital pigment print

‹달›, 2021, digital pigment print, 40 × 50 cm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대출을 빨리 갚고 싶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미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외적인 것보다, 미술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미술을 지속하면서 실제 나아지는 건 없고 문제만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줄 수 있게끔 작업하고 싶습니다.

저수지, 2024, 125x100(cm), digital pigment print
들풀 (꽃), 2022, 120x150(cm), digital pigment print

(좌) ‹저수지›, 2024, digital pigment print, 125 × 100 cm

(우) ‹들풀(꽃)›, 2022, digital pigment print, 120 × 150 cm

(상) ‹저수지›, 2024, digital pigment print, 125 × 100 cm

(하) ‹들풀(꽃)›, 2022, digital pigment print, 120 × 150 cm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저도 작업 경력이 오래되진 않아서 노하우나 팁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오래 봐왔던 주변 작가들이 하나둘 작업을 발표하는 걸 볼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껴요. ‘다음 지점으로 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고요. 그런 순간을 기대하고 마주하다 보면 저 또한 계속 조금씩 작업을 지속할 힘을 얻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작업자. 마음이 가난하지 않고, 좋은 생각과 영향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행장, 2023, 80x100(cm), digital pigment print

‹비행장›, 2023, digital pigment print, 80 × 100 cm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많이 만들면서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걸 계속하고, 그걸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가까운 친구가 있으면 아주 이상적일 것 같아요.

Artist

이손은 타자화되는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을 연구하고,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 발생하는 고통의 주변부에서 미술의 언어로 다룰 수 있고 전달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조율한다. ‘제14회 KT&G SKOPF’, 보스토크 프레스의 ‘Docking’ 등 공모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Drift Bottle»(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2024), «Narrat»(the willow, 2023), «동화와 변주»(TINC, 2023), «낯선 청중 앞에서»(00의 00, 2022)등 여러 전시와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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