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주 작가는 설치와 조각 작업에 집중합니다. 그는 사물에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묻어난다고 믿어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물건, 도구, 재료에 그의 손길이 닿으면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는 작품으로 변모합니다. 한국에서 이례적으로 큰 규모의 설치 작업에 도전하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데요.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해요. ‘하면 된다’의 결기보다 ‘어떻게든 하겠다’라는 냉소 쪽에 가까울 것이고, 나아가서는 ‘어떻게든 하면 안 될 것은 없다’의 해학이 엿보인다고요. 작가 또한 정확한 평가라고 동의하며. 평범하게 사는 모든 사람이 가진 태도라고 겸허하게 말하는데요. 어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결단코 대단하답니다. 매일 꾸준하게 엎치락뒤치락 발전과 퇴보를 반복하는 것이 창작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믿는, 그러면서도 제 코가 석 자라 제발 작업을 아주 많이 남기고 싶다는 권용주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캐스팅 24-1&2›, 2023, «Nostalgics on Realities», 타데우스 로팍 서울, 2024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권용주입니다. 설치와 조각 작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사물에 관심이 많아요. 정확히는, 사물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들이 어딘가에 모이고, 그 움직이는 모양과 쓰임이 사람의 손길로 바뀌는 모습을 통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우리 모습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일상에서 발견한 풍경의 일부분을 베끼고 따라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연경›, 2016, «씨실과 날실로», 서울시립미술관, 2018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경기도 파주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창고 건물을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중입니다. 읍내와도 2~3km 떨어져 있고, 마을과도 거리가 있어요. 서울보다 개성이 가깝답니다.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용하고 노을이 예쁜 곳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 풍경에서 얻어요. 사람들이 일하는 일터에 널브러진 도구와 재료들, 오랜 시간 골목에 방치된 물건 등을 보면서요.
‹연경› 영상 스틸 이미지, 2016, «씨실과 날실로», 서울시립미술관, 2018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어디서 본 인상적인 대상을 빈 종이에 그립니다. 그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입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대부분 그대로 만들 수 있지만,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경우도 생깁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스케치업 같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시뮬레이션도 진행해요. 그 후로는 일반적인 조각 작업과 차이가 없습니다. 뼈대를 만들고, 무엇이든 붙이고, 깎고, 손에 잡히는대로 쌓거나, 묶기도 하고요. 근래에는 석고 캐스팅으로 작업의 끝을 맺습니다.
‹포장천막 III›, 2018, «Casting», 두산갤러리 서울, 2018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는 야외 설치 작업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제1회 서울조각상에 출품한 ‹슬링벨트 외›와 ‘달성 대구현대미술제’에 설치한 ‹폭포 2024›을 꼽을 수 있겠네요. ‹슬링벨트 외›는 너비 4.6m, 높이 2.2m 정도의 크기이고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성형한 작업이에요. 점심시간에 철공소를 지나다가 근무자들이 자리를 비운 풍경을 보게 되었는데, 슬링벨트가 여러 모양으로 남아 있었어요. 남겨진 물건을 보았을 뿐인데 바삐 움직였을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슬링벨트를 활용한 연작을 몇 점 만들었어요. 앞선 연작에서는 슬링벨트라는 물질 자체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번 ‹슬링벨트 외›는 슬링벨트 덩어리 밑으로 사람의 다리를 달아서 마치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습니다. 물건들 밑으로 사람이 숨겨져 있는 모습인데요. 요즘 노동 시장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막상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예전처럼 정확하게 살펴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웹에서조차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짧고 강력한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반면, 정작 우리의 평범한 모습과 삶,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 같은 대상은 점점 숨겨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지금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열리는 조각 기획전 «경계없이 낯설게»에서 볼 수 있으니, 오가는 길에 들러 보세요.
‹슬링벨트 외›, 2024, «경계없이 낯설게», 열린송현 녹지광장
‹슬링벨트 외›, «Casting», 두산갤러리 서울, 2018
대구 달성군 강정보에서 선보인 ‹폭포 2024›는 2011년부터 시작한 오래된 ‹폭포› 연작의 일부에요. 도심에서 줍거나 사들인 물건들을 쌓고 그 위로 물을 끌어 올려 아슬아슬한 형태의 인공 폭포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강 같은 평화»(space99, 2011), «폭포-생존의 구조»(문래예술공장, 2011), «Floating, Concrete»(두산갤러리 뉴욕, 2016), «석부작(石附作)»(아트 스페이스 풀, 2016), 지산락페스티벌(2017),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2020) 등 여러 공간에서 각각 다른 버전으로 발표했는데요. ‘물이 흐르는 폭포’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전시의 주제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 풍경에 대한 감상(«폭포-생존의 구조»),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강 같은 평화»), 사회 경제적 구조에 대한 성찰(«Floating, Concrete») 등이죠. 뼈대를 잡고 여러 물건을 적당히 쌓아 올린 다음 물을 쏟아붓는 펌프와 호스를 연결해 아슬아슬한 형태가 겨우 유지될 정도로 구조적인 보완을 하며 완성합니다. 전시가 진행될수록 물이 더러워지고 물이끼가 생기는 필연적인 면모가 작업의 포인트에요.
‹폭포-생존의 구조›, 2011, «폭포-생존의 구조», 문래예술공장, 2011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근 야외 설치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규모 때문에 캐스팅 과정을 외부 전문가에게 일임했어요. 작가가 직접 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부분을 전문가에게 맡기면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곤 해요. 특히 캐스팅의 경우, 재료가 바뀌면서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고, 제작 과정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구조상 변경되거나 제거되기도 합니다. 아직 제가 부족해서 그런지, 이런 점이 만족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쉬워요.
작업에 매진하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로 나눠볼 수 있겠네요. 작업에 매진하는 시기, 즉 프로젝트를 앞둔 때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작업합니다. 제 작업 과정에서 몸이 고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일과가 끝나면 일찍 잠에 듭니다. 작업을 하지 않는 시기에는 생업에 종사합니다. 공간 디자인 일을 하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요. 수업이 있는 날은 학교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폭포›, 2016, «석부작(石附作)», 아트 스페이스 풀, 2016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사람의 몸. 이상하게 학교 다닐 때는 소조 시간이 그렇게 지루했는데요. 지금은 사람의 몸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요. 동시에 무척 어렵기도 하고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작업을 시작하게 된 지점은 사물에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묻어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작업에는 어쩔 수 없이 저의 모든 태도가 묻어날 수밖에 없다고 봐요. 삶을 대하는 여러 태도 중 작업에 묻어나는 게 무엇인지가 문제겠죠.
‹석부작(石附作)›, 2016, «석부작(石附作)», 아트 스페이스 풀, 2016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제 작업과 태도에 대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하면 된다’의 결기보다 ‘어떻게든 하겠다’라는 냉소 쪽에 가까울 것이고, 나아가서는 ‘어떻게든 하면 안 될 것은 없다’의 해학이 엿보인다고요. 일견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했어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진 태도이기도 하죠. 슬럼프가 오든 말든 그냥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슬럼프고 뭐고 없고요. 그래서 제게 슬럼프라는 존재가 있다면, 제 작업 경력 전체가 이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폭포›, 2020, 부산비엔날레, 2020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대출이자입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만) 꾸준함이라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매일 꾸준하게 갱신하고 엎치락뒤치락 발전과 퇴보를 반복하는 것만이 창작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업의 좋고 나쁨은 조금 다른 문제지만요.
(좌) ‹익명›, 2020, «너와 내가 만든 세상», 포도뮤지엄, 2021
(우) ‹매달린사람들›, 2020, «너와 내가 만든 세상», 포도뮤지엄, 2021
(상) ‹익명›, 2020, «너와 내가 만든 세상», 포도뮤지엄, 2021
(하) ‹매달린사람들›, 2020, «너와 내가 만든 세상», 포도뮤지엄, 2021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제 코가 석 자라서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만 요즘 다양한 지원책이 존재하니 현실적인 문제를 영리하게 극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동료와 자주 교류하세요.
‹엉킨PP로프 외›, 2019, «사회적 조각을 위한 방법 연구», 아마도예술공간, 2019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지금 전혀 그렇지 못해서 그런데… 작업을 아주 많이 남긴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빚을 다 갚은 미래입니다.
‹Colanyl Black›, 2022, «포털Portal», 아마도예술공간, 2022
Artist
권용주(@yongju_kwon)는 평범한 재료, 사물, 형태에서 사회·경제적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작업을 조각, 설치, 영상으로 풀어왔다. 평범하고 단순하며 엉성한 임시적 형태에서부터 사회 구조를 향해 입구가 열리는 장면을 만들려 애쓴다. 그래서 평론가 박찬경은 그의 작업을 ‘가설미술 포털(Makeshift Art Portal)’이라고 부른다. 예술 활동과 노동 행위를 분리해서 보지 않으면서 노동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으로부터 작업을 구상하는 편이다. 예컨대, 여러 미술관의 전시 디자인을 맡으며, 디자이너로서 경험한 내용을 기반 삼아 미술 제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대형 설치 작품을 자주 만들면서, 야외 조각이나 공공 미술에도 종종 참여한다. 아시아의 경제·사회적 구조에 관심이 많지만, 자신의 작업이 셀프-오리엔탈리즘이나 경제적 계급에 관한 서사에 갇히는 일을 경계한다. 하나의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조각적 형태’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 «안료조각»(봄화랑, 2024), «포털»(아마도예술공간, 2022), «캐스팅Casting»(두산갤러리 서울, 2018), «연경(Tying)»(두산갤러리 뉴욕, 2017), «석부작(石附作)»(아트 스페이스 풀, 2016) 등이 있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수원시립미술관, 2024), «Nostalgics on Realities»(타데우스 로팍 서울, 2024), «포뮬라»(프라이머리프랙티스, 2023), 부산비엔날레(2020), «너와 내가 만든 세상»(포도 뮤지엄, 2021), 광주비엔날레(2018), «씨실과 날실로»(서울시립미술관, 2018), «젊은모색 201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4) 등 여러 단체전에 왕성히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