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욱 작가는 자기 작업에 대해 ‘나무의 본능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형태와 쓰임에 따라 인위적으로 나무를 변형하지 않고, 나무가 지닌 본래의 결과 색감을 온전히 살려내며 작품을 만들기 때문인데요. 사회가 내세우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재단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목수 일을 배워 지금의 길을 걷는 모습을 마주하며 본래 나무가 가진 힘을 끌어내려는 마음이 서려 있어요. 나무의 인내심을 배우는 ‘나무 작업자’ 김민욱 작가의 이야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플라잉 디스크 모음, 2023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나무의 매력에 빠져, 나무의 고유한 매력을 탐험하는 김민욱입니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다 보니 고집과 생각이 확고한 편인데요. 나무의 인내심을 배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때 남성복 테일러를 동경하며 관련직에 종사했었어요. 사람은 보통 이루고 싶은 꿈을 생각하면서 회사 생활을 견디는 힘을 얻는데, 저는 회사 생활을 할수록 제 꿈이 닳아 없어지는 기분을 느꼈어요. 이유를 찾기 위해 제 삶을 되돌아보니, 고등학교 입시 활동이나 군대 시절의 단체 활동을 끔찍이도 싫어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결국 독자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이민을 결심하고 목수가 되어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나무를 들여다볼수록 느끼게 된 나무의 의연함이 삶에 큰 위안이 되었거든요. 가능한 한 오래도록 나무를 곁에 두고 싶어서 목수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업이 되어 나무를 매개로 여러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고립됐던 면모가 저를 창작자의 길로 이끈 게 아닌가 싶어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재 저는 부산에 작업실과 쇼룸을 두고 있어요. 작업실 이름은 제 이름과 유사한 발음으로 ‘키미누QI MINU’라 지었습니다. 작업실은 기계와 공구, 나무들이 뒤엉켜 어질러져 있는 공간이에요. 여러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편이라, 작업실 곳곳에 여러 물건과 나무들이 놓여 있습니다. 작업실에 방문하는 분마다 ‘나무 향이 참 좋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저는 잘 느끼지 못해요. (웃음) 작업실은 반지하에 있는데요. 그래서 조그만 창문 하나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적어질 때면, 근처에 자리한 와우산으로 산책을 가요. 조그만 숲을 걸으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면서 천천히 산보하죠. 그런 면에서 와우산도 작업실의 일부라 할 수 있겠네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숲을 걷다가 종종 고라니를 만난답니다!
키미누 작업실 내부 전경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다양한 시각 이미지에서 자극을 받아요. 주변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 특정 자동차 브랜드, 젊은 사람의 패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거대한 나무의 형태, 수석과 분재, 아름다운 사람과 동물 등, 앞서 나열한 대상을 살피다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머릿속을 지나는 생각이 있으면 스케치 과정 없이 바로 본 작업으로 들어가요. 나무의 크기, 옹이의 위치, 작업하는 칼의 날 상태에 따라 세세한 과정이 유동적으로 바뀌는데요. 한 번에 하나의 작업만 진행하지 않고, 작업실에 놓인 나무 덩어리를 계속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해보죠. 만들고 싶은 모습이 떠오를 때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자리를 크게 차지하는 나무를 치워야 하는 시점에 일할 때도 있어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새로운 작업을 ‘신작’이라 한다면, 언제나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작년 초겨울, 경상도 어딘가에서 잘린 상수리나무에 빠져 있어요. 결과 색감이 유난히 깊고 신비로워서요. 앞으로도 이런 나무를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오브제 모음, 2023
세 가지 색의 긴 오브제, 2023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나무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사실 우리가 목재로 만나는 나무는 건조를 포함해 다양한 안정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에요. 하지만 나무는 원래 갈라지고 휘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본성이랍니다. 수분 비율을 이상적으로 유지해 변형되지 않는 나무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기준에서는 아주 완벽한 소재겠죠. 하지만 저는 나무가 부족한 존재라서 되려 더 끌려요. 그래서 많은 분이 제 작품을 접하면서 갈라지거나 휘어진 나무를 ‘모자란 소재’가 아니라 ‘자기 모습 그대로를 드러낸 소재’로 생각하길 바라고 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결과 색감이 멋진 나무를 만나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나무를 작업으로 제대로 표현하는 능력이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서 답답한 기분이 들곤 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편입니다. 생활 반경이 좁고, 하루를 보내는 루틴이 매일 똑같아요. 날짜나 요일 감각이 무감각해질 정도로요. 주변 사람의 무드를 보고, 당일이 공휴일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지할 정도예요. (웃음) 저는 보통 일찍 일을 시작해 식사를 마친 후 낮잠을 잡니다. 이후 저녁까지 일하다가,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요. 웹 서칭이나 독서를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죠. 심지어 작업실 바로 옆에 집이 있어서 격주로 언덕을 내려가고, 가끔 캠핑이나 여행 가는 걸 빼고는 하루가 언제나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언어의 사용도 극히 적은 편이에요. 아내와 부모님과 나누는 몇 마디 대화가 전부거든요. 무료하고 심심한 하루처럼 보이겠지만, 다행히 제 성향과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무위키와 이종격투기 대회 UFC는 처음 알았을 때부터 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나무위키는 궁금한 것이 생길 때 한참 살펴봅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르지만, 늘 재밌고 신기한 곳이에요. 그리고 UFC는 제가 요일을 인지하는 중요한 기준점이죠. 각 체급의 챔피언과 떠오르는 신성들, 기량이 쇠퇴하는 베테랑을 꼼꼼히 체크하는 게 취미입니다. 이외에도 흥미진진한 요소로 가득 찬 세계가 UFC라고 생각해요. 격투기는 다른 분야에 비해 운의 영향이 적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나거든요.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가늠할 수 있어서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일본의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에 관심이 생겼어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은 터라 지금도 현대미술의 특정 요소를 보면 의문을 품곤 하는데요. 올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를 보고 현대미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부산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그는 현시대의 예술가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보이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의 명성에 합당한 작업을 선보였기 때문에,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하기로 마음먹은 행동은 꼭 해내려고 노력해요. 지금 하고 싶지 않거나 미루고 싶은 것은 그때그때 매듭지으려고 합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요. 현재의 행동이 미래의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거라고 믿어요.
오래된 오늘, 2023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젊은 시절, 저는 제 본성을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회의 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이 힘들고 괴로웠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지금 제가 누리는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직 만족할 만한 현실은 아니지만,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더 이상 나무를 보아도 즐겁지 않은 순간이 오겠죠. 그리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창작자로서의 고유함이 희미해지는 때가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이 늦게 찾아온다면 참으로 좋겠지만요. 만일 찾아온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훌쩍 떠날 거예요. 미국 알래스카나 스웨덴 라플란드, 일본 홋카이도 중 어느 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지금 일본 전시를 앞두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일본의 건축, 애니메이션, 기계, 공예 등은 다른 나라와 견주었을 때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본 전시를 통해 더욱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전시가 무척 즐겁지만, 동시에 어려운 도전을 앞둔 터라 긴장도 많이 되네요.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의 공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관람객에게 전하려고 해요. 그래서 경상도의 정서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진정 경상도와 부산의 정서가 실존하는지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개인적인 고민거리라면, 관성적이고 단조로운 생활 때문에 생각도 단순해지고 마음도 건조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데요. 세상으로부터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라서요. 작업물은 작업자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믿고 있는 입장에서, 단조로운 일상이 작업까지 건조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사람마다 각자의 길이 있고, 저마다의 방식이 있겠죠. 그렇기에 누군가의 철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란 힘들어요. 다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열정과 노력이에요. 고전적이고 뻔한 대답으로 들리겠지만,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벼운 마음보다는 조금 무거운 마음을 갖고, 진지한 태도를 갖추는 게 필요해요. 저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변하지 않는 우주의 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믿어요. 만약 무언가 얻는다 해도 금방 사라질 거라고 봅니다. 원하는 바가 크고 깊은 것이라면, 그에 걸맞은 소중한 것을 내놓아야 하죠. 저는 그게 노력이라고 봐요. 노력이야말로 비교적 높은 가능성으로 원하는 걸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닉보울즈,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우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려는 모든 사람을 응원합니다. 모든 창작자를 알지 못하지만, 창작자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창작자로서의 삶이 여러 삶의 방식 중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믿어요. 저는 타인의 평가나 시선 같은 외부가 아니라 스스로 정한 약속이나 목표를 충족하며 제 내부에서 창작의 기쁨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렇지만 마음에서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순간을 조우하기도 하죠. 그럴 때면,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웃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의 삶을 떠올립니다. 창작만큼이나 중요한 건, 마음의 안정과 평화니까요.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작업도 지속하기 어려워요. 만일 개인의 의지로 잘되지 않는다면, 신앙을 갖거나 어떠한 믿음을 좇는 것도 여러 방법 중 하나일 것 같네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는 인상적일 수도, 어떤 이에게는 빨리 잊히는 작업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작업에 늘 진심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라면 더욱더 그러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나무 작업자의 삶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쌓여가는 시간만큼 깊이를 가지고 싶어요. 언젠가 숲이 있는 조그만 마을 근처에서 멋진 나무를 산처럼 쌓아두고 작업하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Artist
김민욱은 나무의 본능을 드러내며 작업한다. 사회에 맞춰 자신을 재단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스스로 목선반을 배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간 것처럼, 사용하기 편하고 잘 재단한 목재가 아닌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는 나무의 힘을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2019년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어워드LEXUS CREATIVE MASTERS AWARDS’에서 위너에 올랐고,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 최종 파이널 리스트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