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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흐릿하게 담아낸 선명한 이야기

Writer: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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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현희 작가는 전통 가구에서 형태를 가져오되, 현대적인 소재를 활용해 작업을 완성해요. 특히 과거 여성의 생활공간에 쓰인 ‘규방 가구’를 반투명한 아크릴 소재로 재해석하며 주목받았는데요. 가구 내·외부의 경계를 지우고,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 관해 물음을 던지고 있어요. 가구를 통해 동시대의 담론을 꺼내는 김현희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White Nostalgia»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김현희입니다. 가구를 주 매체로 활용하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말하자면 길지만, 결국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할 때면, 이로부터 비롯한 작은 물음이 진지한 생각의 줄기로 이어지곤 했는데요.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시각적 부산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것 같아요.

‹Para Era, Para Area›, 2019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태원의 위치한 작은 상가 건물 1층을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제 작업은 무겁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운송이 용이한 1층 자리를 찾았습니다. 근처에 철물 상가나 화방이 따로 없어 인프라 측면에서 큰 이점이 있지 않지만, 작업실 주변에 정말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이 살아서 좋아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웃음) 그리고 작업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전방에 큰 유리창이 나 있어서 제가 안에서 대체 뭐 하는지 궁금한 분이 종종 문을 두드리곤 해요. 사람 만나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처음엔 좀 번거로웠는데, 이제는 즐겁게 대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제가 하는 일을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사진. 강지훈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엇비슷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며 힌트를 얻어요. 매일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비슷한 표정의 다양한 사람들, 돌아오는 계절, 나이를 먹어가는 내 가족과 친구들, 고향에 대한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즐거움과 힘듦에서 영감을 받곤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책 속 문장이나 속담, 영화의 특정 미장센Mise-en-Scène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미처 정의하지 못했던, 정처 없이 떠다니는 마음의 어떠한 감정과 딱 들어맞는 단어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요. 그 단어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확장합니다. 주변에 있는 익숙한 재료, 플라스틱이나 쇠, 신문지 등을 물질적으로 다르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재료를 이렇게 저렇게 깎아보기도 하고 태워보기도 하면서 가지고 놀기 시작해요. 그러다 생각과 물질이 한 지점에서 맞닿으면서 세상에 보여줄 만한 의미 있는 작업으로 완성되는 것 같아요. 

‹Q-bang series Bandaji›, 2016

‹Ham 4›, 2023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White Nostalgia› 연작 중 반닫이 시리즈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전 작업인 ‹Q-Bang› 연작의 반닫이 시리즈는 이분법적인 관념에 대한 저항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풀어낸 작업이었는데요. ‹White Nostalgia›는 개인적인 마음의 서사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고향인 제주를 떠나 서울이라는 사회에서 지내면서,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몸과 마음의 권태를 오랫동안 겪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부적응적 삶의 태도가 비단 저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이 겪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죠. 이런 생각을 시작으로 인간에게 내재한 과거지향적이고 관념적인 본능(Nostalgia)이 삶을 지속하는 데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고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얀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어요. 거짓말은 ‘이익을 위해 사실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인데, ‘하양(white)’이라는 색의 속성과 함께하는 순간 단어의 의미가 반대로 변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는 단어에서 ‘흰색’이 주는 긍정적인 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저 또한 ‘기억’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끌어오기 위해 흰색의 힘을 빌어오기로 했어요. 그리고 익숙하지만 퇴화해 버린 한국 전통 가구의 이미지를 차용해 하얗고 반투명한 이미지로 변환했습니다. 가구에 무언가를 담으면 흐릿한 안개처럼 잔상이 남는데요. 마음속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보는 추억과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보며 누군가 정적인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White Nostalgia Series, 반닫이Bandaji No.3›, 2023

‹White Nostalgia Series, 반닫이Bandaji No.2›, 2023 (좌)

‹White Nostalgia Series, 반닫이Bandaji No.3›, 2023 (우)

‹White Nostalgia Series, 함Ham 1›, 2022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이 떠안고 있는 문제의식이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고, 마찬가지로 나도 흔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전달이 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웃음) 작품이 슬쩍 내비치는 메시지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시들한 마음에 작은 불씨라도 지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사랑해 주신 덕에 ‘양’적으로 많이 제작할 수 있었어요. 아직 젊은 작가 입장에서 이런 행운이 큰 위로로 다가오지만, 이미 발표한 작업을 다시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는 점이 고민입니다. 새로운 구상과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어서 썩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해요. 올해 하반기에는 기존의 작업을 쉬고,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며 다시금 내면을 단단하게 하려 합니다.

‹Ancient Future Series No.1›, 2019

‹Ancient Future Series No.2›, 2019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평일에는 근로소득자로서 주 평균 40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어요. 주로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합니다. 오후 5시쯤 퇴근하고는 작업실로 향해 이르면 9시, 늦으면 12시까지 작업해요. 집으로 돌아가서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얼른 잠을 청하는… 치열한 한 주를 살아내고 있답니다. 주말이 찾아오면 하루 정도는 집 안에 숨어있어요. 100보를 채 걷지 않으며 에너지를 충전해요. 남은 시간에는 미뤄왔던 서류 작업을 마무리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남겨지는 것, 그리고 버려지는 것들에 많은 애정이 가요. 예를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버리는 택배 봉투나 작업을 마치고 난 자리에 남겨지는 수많은 부산물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관심 없이 바라보는 것에서 어떤 미의식을 되찾고 싶은 욕구를 느껴서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있어요.

‹White Nostalgia Series, Dui-ju›, 2020

‹White Nostalgia Series, Dui-ju›, 2020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논리적으로 표현할 길은 없지만, 생에 대한 의지, 삶과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누군가는 인생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죠. 그런데 제게는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슬럼프인 것 같아요.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삶이라는 긴 권태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 작업을 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White Nostalgia Series, 머릿장Meori Jang›, 2022

‹Meori Jang Rimowa Edition›, 2022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작업이 물리적인 힘을 많이 요하는지라, 최근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들어서, 최근 2년간 작업에만 집중하느라 운동이나 건강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중입니다. 왜 사람은 꼭 뒤늦게 후회하는 걸까요? (웃음)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누구나 창의적이고 멋진 일을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를 업으로 삼고, 과정과 결과를 내보이는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몇 초간 번뜩인 깨달음을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간 연구하고 가공하며 ‘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지루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창작자라면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고통의 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소화해야 오랫동안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A Dream of Butterfly›, 2019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는다면 절대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돼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어떻게 해야 나의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기를 바라요. 눈치 보지 말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으면 좋겠어요.

‹White Nostalgia Series, The Light›, 2020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데요… 아직 작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웃음)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세상이 이상과는 정반대로 펼쳐져도, 유머를 잃지 않고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가득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AS SEEN BY» Rimowa, 2022

Artist

김현희는 익숙하고 퇴화한 과거의 이미지와 현대인에게 자리 잡은 신소재를 결합해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가구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변화를 가져오는, 느린 속도감을 가진 매체라는 점에 주목하고 한국 전통 가구라는 연대적 매개체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진행한다. 특히 과거 여성의 생활공간에 쓰인 ‘규방가구’(규방은 집 안의 공간을 의미)에 주목해 고전미를 현재의 가치로 재정의한다. 젠더 문제에 관한 고정관념의 해방, 소홀히 여기는 일상의 가치 재발견 등 일상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구를 통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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