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소도시 에인트호번에서 활동하는 김대욱 작가에게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삶의 전환점이었어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갔다가 새롭고 넓은 창작 세계에 반했거든요. 흥미로운 작업과 작가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출신이었고, 자신 또한 바로 그 대학 석사 과정에 진학해 자기가 다루고 싶고 사람들과 소통하고픈 주제를 찾은 덕분에 에인트호번에서 창작자의 길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그의 작업은 처음 볼 때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전위적이에요. 아마도 어렸을 적 보수적인 가풍에서 자라며 억압받던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 다양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규범의 틀을 넘기를 소망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6월 끝난 첫 한국 전시에서는 긴 머리카락을 노리개 전통 기법으로 묶고 땋아 만든 큼지막한 오브제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내용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창작자가 되고 싶은 김대욱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LUKAS›, 2022, Silicone, hair, metal tube, metal piercing, wood, 20 × 20 × 72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네덜란드에서 오브제, 조각 및 이미지 등을 통해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는 김대욱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구경하며 너무나도 새롭고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었죠. 다양한 디자인과 아트가 존재하는 곳에서 마음껏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흥미롭게 느꼈던 작업과 작가를 찾아봤는데요. 나초 카르보네Nacho Carbonell, 바르트 헤스Bart Hess 등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Design Academy Eindhoven을 졸업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들의 작업에 자극받아 저도 네덜란드로 넘어가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의 석사 과정인 컨텍스추얼 디자인Contextual Design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정말 운이 좋게도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다루고 싶고, 흥미를 느끼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주제를 찾은 덕분에 졸업 이후에도 이곳에서 창작자의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LEKTRA›, 2020, Tires, high heels, silicone, PU, metal tube, 75 × 43 × 65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에인트호번에 있는 공용 작업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요. 우드, 메탈, 세라믹 등 다양한 공용 워크숍 시설과 함께 창작자마다 작은 개인 공간을 갖춘 곳입니다.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졸업생 및 로컬에서 일하는 목수 등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입주해 있는데요. 그래서 기술적으로 모르는 부분이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거의 모든 주제가 개인적인 이야기, 어릴 적 추억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제 경험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작업의 미학적인 부분은 패션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K팝 혹은 다양한 대중음악 뮤직비디오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고요. 뮤직비디오는 정말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아트가 압축된 풀 패키지라고 생각해요. 음악, 패션, 스타일링, 무대, 시노그래피, 3D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등 영감을 얻을 구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한 럭셔리 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에서도 영감을 구하고요.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 장인이 작업한 결과물과 그들의 장인 정신으로부터 영감과 함께 작업을 대하는 태도까지 배울 수 있습니다.
‹BLOOMING›, 2022, Silicone, hair, metal tube, metal piercing, wood, 20 × 20 × 72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제 작업의 가장 큰 주제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어릴 적 추억 혹은 경험을 회상하고 끄집어내고 파헤치고 분석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요. 이후 스케치를 하고 바로 손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작업에 따라 거의 완성작에 준할 정도로 스케치를 끝내고 제작 과정에 들어갈 때도 있지만, 보통 손으로 만들면서 과정을 보고 다시 수정하며 즉흥적으로 형태를 구현할 때가 많아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노리NORI›를 소개하고 싶어요. 제 어린 시절 추억의 오브제인 노리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전만 하더라도 한국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성별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확고했습니다. 남자아이가 바비 인형처럼 머리카락 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건 무척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는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옷장에 걸린 노리개를 집어 들고, 여기에 달린 술 장식을 인형의 머리카락으로 상상하며 가지고 놀곤 했는데요. 노리개야말로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긴 머리를 흩날리며 땋을 수 있는 세계에 접근하도록 돕는 오브제였어요. 억압되고 숨겨져야만 했던 제 욕망과 정체성, 선택의 자유를 생각하며, 머리를 묶고 땋는 행위를 노리개의 공예 기법과 결합해 어린 시절 꿈꾸던 상상의 세계를 담은 토템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 작업은 지난 6월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막을 내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전시에 초청받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터라, 제 고향과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작업에 집중해 더욱더 뜻깊었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적 자신만의 특이한 점, 취향이 모두 다르지만, 자라면서 사회의 기준에 맞춰 변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자신의 취향과 성향을 잘 간직하고 이를 잘 표현하며 성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사실 몇 년전부터 ‹노리NORI›를 계획하면서 크기와 비용 등 여러 제약 사항 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아이디어 및 크기를 축소해 ‹노리 마스크NORI mask›, ‹노리 로프NORI rope› 등의 시리즈를 제작해 왔어요. 그런데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전시를 위한 커미션 작업을 기회 삼아 원래 아이디어대로 구현했으니 스케일적인 부분에서 아주 만족스러워요. 이번 전시에 내놓은 ‹노리NORI›는 행잉 피스인데, 스케일이 조금 크다 보니 작업실에 걸어두고 전체적인 형태를 한눈에 멀리서 바라보며 만들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그래서 실제 작업을 전시장에 배치했을 때 제가 원하던 전체적인 형태의 비율이 살짝 아쉬웠습니다. 사실 모든 작업에 아쉬움이 존재해요. 항상 100% 완벽하다,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완성한 후에도 디테일이나 구조적인 부분에서 다음에는 이렇게 발전시켜야겠다, 생각하는 바가 항상 있어요. 그래도 발전시킬 부분을 찾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습니다.
‹NORI rope›, 2022, Hair, color rope, 350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정말 단순합니다. 특별히 약속이 있지 않는 한, 작업실-집-작업실-집을 오가는 게 일상이에요.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동네 공원을 1시간 정도 걷는 산책은 자주 하고 있습니다.
‹LUKAS›, 2022, Silicone, hair, metal tube, metal piercing, wood, 20 × 20 × 72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작업 이외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가 작업 말고 진짜 좋아하는 것과 취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슬펐거든요.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찾고 있어요. 일단 좋아하는 운동을 하나 찾는 걸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작업할 때 체력적으로 너무 약하다는 걸 체감하거든요. 프로젝트 하나 끝낼 때마다 몸이 너무 망가져요. 더 건강하게 작업하고, 더 행복하게 삶을 보내는 방법에 관심이 갑니다.
‹SIRI›, 2021, Tires, high heels, silicone, PU resin, LED, PVC, leather, 50 × 55 × 80 cm. Photo by Koen de Bruyn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개인적으로 깔끔하고 정교하고 꼼꼼하고 성실한 게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작업에도 잘 묻어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저희 집에 놀러 올 때 항상 너무 깨끗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아, 내가 깔끔한 거구나’ 새삼 느끼거든요. 특히 저는 손이 엄청 예민해요. 예를 들어, 봉지 과자를 잘 못 먹는데요. 손에 묻는 가루의 느낌이 거북해서, 제가 먹기 위해 직접 사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 그런 손의 예민함이 작업에 디테일과 정교함, 꼼꼼함을 담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듯해요.
‹BOM›, 2020, Shovels, nail polish, acrylic, silicon, resin, bracelet, 113 × 43 × 160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그냥 슬픔에 더 빠져듭니다. 우울한 기분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기도 해요. 우울할 때는 일부러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거리를 걷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진짜 우울할 때는 정말 이 우울함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또 언젠가는 괜찮아지더라고요. 살면서 이런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요즘은 군대에서 정말 힘이 됐던 문구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또 지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슬픈 기간을 좀 더 받아들이며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지면 우울할 틈이 없어서, 극복하고 싶을 때는 무엇이든 하거나 움직이려고 노력해요. 아, 엄마와 통화를 자주 하기도 하고요. 누구에게나 엄마만큼 아무 말이나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는 없으니까요.
‹DAVID›, 2022, Silicone, hair, metal tube, metal piercing, wood, 120 × 120 × 200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이사를 못 가는 게 최근 가장 고민입니다. 에인트호번은 서울에 비하면 정말 작은 도시예요. 지하철도 없고,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탈 일도 거의 없어서, 웬만하면 도보로 이동하거나 조금 멀면 자전거를 이용할 정도로 아담합니다. 에인트호번이라는 도시가 좋아서 여기로 이사 온 게 아니다 보니, 학교 졸업 후 좀 더 큰 도시, 미술 신이 활발한 도시, 카페와 문화생활을 좀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는, 예컨대 암스테르담 같은 곳으로 주거지를 옮기고 싶은데요. 집값이 너무 비싼 게 큰 문제네요.
‹GAGA›, 2020, Mop, hair, silicone, hair accessories, 108 × 120 × 220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멈추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졸업하고 당장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나 다른 돈벌이를 해야 할 때, 혹은 작업을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좋으니 항상 작업을 생각하고 뭐라고 창작하는 게 너무 중요해요. 기회가 없다고 기존에 해놓은 작업에 머무르거나, 다른 생활에 지쳐서 작업을 너무 오래 쉬면 기회는 더욱더 오지 않습니다. 창작 활동이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의심도 들고요. 기회가 있든 없든, 주변 상황이 어떻든지 생각하지 말고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야만 창작자로서의 발전과 만족감을 성취하며 좋은 기회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이라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하는 게 중요해요.
‹JENNIE›, 2021, Tires, high heels, silicone, leather, PU resin, metal tube, 80 × 50 × 130 cm. Photo by Pierre Castignola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 작업을 보고 ‘김대욱답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내용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저만의 색이 뚜렷한 창작자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작업의 결을 넘어, 저라는 사람과 작업이 동일시되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Artist
김대욱은 오브제 제작자이자 스토리텔러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과 다양성에 대한 생물학적, 사회적 이야기를 활용해 제한된 침묵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오브제와 시각 작업을 만든다. 이를 통해 사회적 규범의 틀을 넘어,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기념하는 정체성, 성향에 대한 관점을 제안한다. 2020년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에서 컨텍스추얼 디자인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에서 그의 작업을 소장 중이다. 유럽, 미국 및 한국의 뮤지엄과 갤러리에서 작업을 선보였으며, 최근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및 브랜드와 협업해 작품 세계를 넓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