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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채우고 비우는 일

Writer: 손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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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손정민은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전시들 사이에서 공간과 사물을 디자인하는 ‘무진동사’를 운영합니다. 전시장을 다니다 보면 한 귀퉁이에 놓인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기관마다 서로 다른 현장으로 호출되지만, 결국 무진동사가 하는 일은 명확합니다. 텅 비어 있던 공간을 점유해 ‘전시’라는 기능과 호흡을 가진 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일. 구조물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기물까지 직접 제작하는 일. 그 모든 과정이 무진동사의 몫이에요. 그렇지만 손정민을 ‘공간 디자이너’라는 한 줄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해요. 전시장 바깥의 손정민은 또 전혀 다른 사람이거든요. 오래된 숲속을 거닐며 새를 찾아 헤메고, 그러다 작업실로 돌아오면 자수를 놓고, 손끝으로 다양한 질감을 모으고, 무용한 오브제를 만드는 분주한 창작자에요. 도시의 속도와 압박에 멈칫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다시 감당 가능한 형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는 섬세한 면모도 지녔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채움과 비움 사이를 오가며 공간과 감각을 수집하는 창작자 손정민, 그의 포개어진 일상의 궤적을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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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피›, 2025, Embroidery on the fabric, 270×190m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손정민입니다. 주로 전시공간 디자인과 조성을 하며 설치미술을 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주변 친구들의 전시 공간을 만들어 주던 일이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ACC에서 열리는 단체전에 참여하게 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도 함께 병행하게 되었고, 지금도 예술 프로젝트에 필요한 여러 일을 거들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소재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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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백남준 시점» 공간디자인, 백남준아트센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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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백남준 시점» 공간디자인, 백남준아트센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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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백남준 시점» 공간디자인, 백남준아트센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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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하는 물질들» 공간디자인, 김포국제공항, 2025, Image Courtesy of gallery sp and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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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하는 물질들» 공간디자인, 김포국제공항, 2025, Image Courtesy of gallery sp and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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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하는 물질들» 공간디자인, 김포국제공항, 2025, Image Courtesy of gallery sp and the artist.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년에 살던 집을 정리한 뒤로는 스튜디오 형태의 공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환경들(싱크대, 샤워실 등)을 직접 만들어가며 생활하고 있는데, 손이 많이 가면서도 나름의 재미가 있어요. 지금은 고양이 수자와 함께 이리저리 공간을 꾸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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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y Crush» 공간디자인, hall1, 2025, Image Courtesy of Hall 1 and the artist. Photo : 양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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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의 천사» 전시 전경, 2025, Factory2, image Courtesy of factory2 and the artist.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오래된 숲을 걷거나, 새들을 찾아다니며 관찰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 편이에요. 틈틈이 영화를 챙겨 보고, 무용한 물건들을 만들면서 손끝으로 다양한 질감을 모으는 것도 좋아하고요.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다 보니, 자연 속에 들어가면 생각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쌍안경과 텔레스코프를 챙겨 다녀요. 점과 선으로 보이는 것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것을 관찰하고 실제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머릿속으로 다른 형태를 상상한 뒤 스케치나 무용한 오브제를 만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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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2022, Embroidery on the fabric, 3700×2600 mm, «물결 위 우리», 2022, 부산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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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idable Air» 공간디자인, primary practice, 2024, Image Courtesy of Primary Practice and the artist. Photo : CJY AR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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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idable Air» 공간디자인, primary practice, 2024, Image Courtesy of Primary Practice and the artist. Photo : CJY ART STUDIO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Self-portrait series› 작업에서 사회와 정치적 구조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스며들듯이 구성하는지, 우리가 기억하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탐색해 보고 있어요. 

회화적 초상에서 출발한 형상은 개인을 특정하던 요소들을 서서히 비워내며 추상에 가까워졌어요. 이러한 변화는 자수가 만들어내는 고유한 언어를 따라 재구성 되는 부분이에요. 얼굴의 표정과 인상,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비워낸 자리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감지하는 사회적 기류가 서서히 떠오르게 되죠.

추상으로 옮겨진 형상은 과거 저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담고 있지만, 그 상처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아요. 서로 다른 초상이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표면은 경험의 층위를 확장시키고 관객이 다양한 감정의 결들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여지를 열고자 했어요. 연약함과 강함, 상처와 회복, 트라우마와 사랑 같은 상반된 감정의 결들이 선형적인 서사로 귀결되지 않고 작품 안에서 미세한 균형을 이루도록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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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속에서 태어나 실망의 옷을 입고›, 2025, Embroidery on the fabric, 475×58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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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속에서 태어나 실망의 옷을 입고›, 2025, Embroidery on the fabric, 475×585mm

‹상처 위에 또 상처›, 2025. Embroidery on the fabric, 475×7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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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gji #1›, 2025, Driftwood, embroidery thread, 가변크기, «내 책상 위의 천사», 2025, Factory2, image Courtesy of factory2 and the artist.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도시 속에 살아가다 보면  때론 계속해서 과한 도전을 요구받고, 때로는 무례하게 느껴지는 압박을 받을 때도 있잖아요. 저는 그 지점을 어떻게 다시 삶의 흐름으로 회복시키고,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아요.

또한 여러 해 동안 전시 공간을 조성하고 다양한 기물을 디자인·제작하는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조형물과 설치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기능을 잃은 채 남겨진 공간이나, 여전히 우리 곁에서 작동하는 ‘진짜 같은 가짜’ 공간의 성질도 그 과정에서 눈에 띄었고요. 그래서 작업에서는 이러한 공간이 지닌 버려진 인공성을 감각적 유희로 전환하는 지점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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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물은물음›, 2023, Embroidery on fabric, 550×438mm,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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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의 천사» 전시 전경, 2025, Factory2, image Courtesy of factory2 and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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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tching surface» 기물디자인 및 제작, thisweekendroom,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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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tching surface» 기물디자인 및 제작, thisweekendroom,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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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모양» 공간디자인, 북서울시립미술관, 2024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일과 휴식의 경계가 사실 없습니다. 틈틈이 광합성을 많이 하려 하며 오래된 숲과 나무를  찾아보며 지냅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결과보단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작업을 시작할 때 정확히 어떤 목적을 정하지는 않아요.  과정 안에서 발생하는 유연함을 즐기며 그 충돌을 잘 수긍하려 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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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proof 공간디자인, platz 2, 2023, Image Courtesy of AP (at) PLATZ 2 and the artist. Photo: 하시시박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가 올 정도로 치열하게 지내는 것 같진 않은데, 답답함 마음이 들 땐 숲에서 고요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그럴 때는 손으로 항상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어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한 해, 한 해 체력이 약해져 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멍한 시간들이 종종 찾아오는 것 같은데, 결국 작업은 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작업을 가득 채우는 것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그것을 어떻게 적절하게 잘 비울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은데 그 비움이 결국 작업의 Edge이자,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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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SH&PULL 밀어주고 당겨주기» 공간디자인, 2021, Factory2, image Courtesy of factory2 and the artist.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미술은 개인의 창작이 다른 분야에 비해 비중이 높죠, 그러다 보면 작업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주변 동료들과의 의미 없는 수다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가능하다면 유연한 사고를 지닌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숲과 나무들이 많은 곳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목련나무를 많이 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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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손정민(@lucien1893)은 공간과 사물을 디자인하는 무진동사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예술 프로젝트에 필요한 각종 일을 거들며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소재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Formidable Air»(primary_practice,2024) «전지적 백남준 시점»(백남준아트센터,2025), «교차하는 물질들»(김포국제공항,2025), «손길모양»(북서울시립미술관,2024), «Frieze Film»(인사미술공간,아마도예술공간,마더오프라인, 보안여관,2023),«서울국제도서전-책 이후의 책»(COEX,2022)등의 전시공간디자인 작업을 하였고 «내 책상 위의 천사»(factory2,2025,2023), «유령도시의 기념품»(아카이브 봄,2018),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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