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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나의 구림을 버티는 용기가 필요해

Writer: 황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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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황휘는 전자 음악가이자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에요.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동시대 문제를 음악과 영상으로 풀어낸답니다. 현재 그는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전 작업이 작가 개인의 이면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대중 전반에 소구할 수 있도록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싶다고 해요. “천천히 가끔이라도 괜찮으니, 언제나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황휘 작가. ‘재미있고 이상한 걸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업체eobchae, ‹The Decider’s Chamber›, 202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황휘입니다. ‘HW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이자,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의 일원입니다. 업체eobchae에서는 음악과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 공부를 해서일까요. 커서 당연히 예술 분야에 종사할 거라 생각했어요. 웃긴 건 미술을 전공해 공부하는 와중에도 음악가를 꿈꿨다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갈등하고 많이 헤맸는데요. 결국 둘 다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답니다. (웃음)

왓챠 #홈퀘이크 1화 ‹HWI›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 1월부터 방음 설비를 갖춘 작업실을 임대해 쓰고 있어요. 이전까지는 고정적으로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러워서 집에서 쭉 작업했는데요. 막상 작업실을 써보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서울의 주거 공간은 제가 내든 남이 내든,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그런데 작업실은 이런 문제로부터 (거의) 완벽히 해방된 곳이에요. 작업 공간이 바뀌니 지향하는 소리도 조금씩 과감하게 변하는 것 같아서 무척 만족합니다. 영상 작업은 아직 집에서 마무리하는데요. 궁극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작업이든 할 수 있는 곳에서 살기를 바라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작업하는 시점에 꽂힌 단어나 관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요. 요즘 들어서는 기독교 미술이 알게 모르게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신앙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미션스쿨이었고, 친가 친척들이 개신교인데요. 아마 그래서 무의식의 20% 정도를 기독교가 형성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독교는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종교인데요. 전 특히 기독교 미술에 흥미가 가요.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도상조차도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더라고요. 여러 도상이 다양한 내러티브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기에, 암호화된 평면으로 나타나는 점이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읽을거리가 많은 시끌시끌한 그림이라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이야기가 절대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금기 혹은 징벌과 관련한 터라, 신비롭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사실도 마음에 듭니다.

업체eobchae,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2021

업체eobchae,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 2021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발표했던 작업은 대부분 업체eobchae의 작업이에요. 작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eoracle»은 저희에게 중요한 전시였어요. 그때 선보인 20여 분짜리 영상 작품 ‹eoracle›을 특히 소개하고 싶네요. 해당 작품은 Web3,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을 주제로 삼았지만, 가장 첨단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서 중세 기독교 회화나 고대 그리스 문양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답니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이미지를 리서치하고 콘티를 짤 때 느꼈던 즐거움 덕분에 더욱 기억에 남아요.

업체eobchae «eoracle» 홍보 이미지, 디자인: 김소희,  삽화: 윤희준

«AMAEBCH» 포스터, 디자인: 필립 킴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현재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보편성’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더 특별하고, 더 이상하며, 더 매니악한 존재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요. 이번 앨범에서는 저만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의 (진정한) 이면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떨치려고 해요. 돌아보면 이상한 것에 끌리는 와중에도, 남들이 울 때 함께 울고 웃을 때도 함께 웃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 보편의 감정을 찌르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완성한 작업물이 사람들의 감정을 잘 찔렀으면 좋겠네요.

업체eobchae, ‹eoracle›, 2022

업체eobchae, ‹eoracle›, 2022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eoracle›은 모션 그래픽만으로 4K 규격에 맞게 처음으로 완성한 작업이라 만족스러워요. 작업의 해상도가 높아지니까 디테일을 살릴 수 있더라고요. 배경이나 다름없는 화면 구석구석을 전경으로 끌어와 화면에서의 원근감을 최대한 없앨 수 있었죠. 다만 실제 전시장에서 영상의 컬러와 사운드가 어떻게 나타날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지점인데요. 디지털 작업을 하는 창작자라면 모두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30분 정도 책을 읽다가 그날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해요. 밤이 되면 드라마 한 편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요즘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빌리언스Billions›를 보고 있어요. 뉴욕의 억만장자 펀드 매니저와 그를 감옥에 집어넣으려 혈안이 된 검사장의 이야기인데요.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라서 추천드려 봅니다.

왓챠 #홈퀘이크 1화 ‹HWI›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금융·투자와 관련된 영화나 책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빌리언스›도 그래서 흥미롭게 보는 것 같아요. 특별히 해당 분야를 깊게 알고 있어서는 아니고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금융’이라는 시스템화한 픽션에 깊이 기대고 있다는 지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 중 ‘금융’은 가장 힘이 세고 위험한 허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보통 새로운 사람을 만나요. 아니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루틴을 만들어 봅니다. 루틴에 따라 생활하다 보면 서서히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저는 올해 재즈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 레슨을 받고 있어요. 연주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평소 쓰지 않는 뇌의 특정 부분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반복적인 일상에 파묻히면 평소 사고하던 대로 뇌의 회로가 굳어져요. 그래서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매번 새로운 문제가 날아드는데, 제가 가진 해법은 새롭지 않으니까요. 초등학생이 시간표를 짜는 것처럼, 시간을 잘게 쪼개어 꾸준히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뇌를 자극해 주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아기의 노래› 설치 전경, 2021, 윈드밀 © 박승만

‹지도› 설치 전경, 2021, 윈드밀 © 박승만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업실이 지하에 있는데 근처에 하천이 있어요.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작업실이 잠길까 봐 늘 걱정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느낌이라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대학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말이 있는데요. 요즘 종종 그 말을 되새기고 있어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로 기억해요. “중요한 건 나의 구림을 버텨내는 인내력이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천천히, 가끔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냥 계속하면 되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재미있고 이상한 걸 만드는 사람.

Artist

황휘는 ‘HW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이자,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업체eobchae’의 일원이다. 노래하는 목소리를 재료로 삼아 컴퓨터와 이펙터 등 기계 장치를 도구로 활용해 음악을 제조한다. 2019년 데뷔 EP ‹ExtraPlex›, 2021년 업체eobchae의 사운드트랙 앨범 ‹The Decider’s Chamber›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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