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레인(A.TRAIN)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신지환은 자신을 ‘쓸데없이 진심인 사람’이라고 말해요. 솔직한 마음을 노래에 담아내기 위해 작사, 작곡, 녹음, 편곡, 엔지니어링 작업은 물론 MV 촬영과 편집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데요. “이렇게까지 해야만 나를 걸고 있는 지금의 삶이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답변에는 창작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이 어려 있답니다. 매사에 마음을 쏟고, 행복해하면서도 괴로워하며, 필연적으로 곁에 두어야 하는 고통을 노래하는 그의 깊은 속마음을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에이트레인(A.TRAI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신지환입니다. 저는 쓸데없이 진심인 사람이에요. 매사에 마음을 쏟으며 행복을 느끼지만, 동시에 괴롭습니다. 그런 태도로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불러서 음악 때문에 행복하고, 괴로워요. 저는 주로 불안정함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필연적으로 곁에 두어야만 하는 고통을 노래하는데요. ‘고통이 삶에서 사라질 수 없다면 이를 한편에 밀어두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이런 목표 아래 기획부터 작사·작곡·녹음·편곡·엔지니어링까지 직접 맡아서 모든 곡을 만들죠. 아름답고도 솔직한 표현으로 심연을 짚어내고 온전하고 솔직한 표현을 위해서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가끔은 미련하게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하려 합니다. 그리고 최근 4년간은 영상기술까지 익혀서 MV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분야지만 비용 문제로 좌절하기보다는, 귀여운 수준이더라도 직접 해결하며 나아가는 방향을 택하고 싶어서요.
‹커야 돼(PAIN TREE)› 스틸 이미지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무대만 있다면 뛰어나갔고, 공연을 마치고는 책상 앞으로 돌아오는 일이 자연스러웠죠. 다만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가난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던 부모님의 희생 아래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요. 그 덕분에 반도체 관련의 신소재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LG화학 반도체재료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월급 중 남는 돈으로 입문용 레코딩 장비를 구입해, 오랜 시간 좋아했던 커버 곡을 녹음하고 음악 커뮤니티에 올렸죠. 그렇게 방구석 녹음을 거듭하다 보니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휴대용 앰프를 들고, 제 목소리로 부른 코러스가 깔린 MR과 함께 거리로 나갔어요. 그렇게 꿈이 현실이 되는 소박한 순간들이 쌓여가던 중, 한 소속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당시의 저로서는 과분한 순간들을 소속사와 함께 겪은 것 같아요. 한번은 2016년 가수 지코와 에픽하이의 합동 콘서트 ‘The Cry’ 오프닝 무대에 올라 3,000여 명 앞에서 노래할 기회가 생겼는데요. 많은 청중 앞에서 떨지 않고 노래하며 춤추는 스스로를 보며 ‘더 늦기 전에 여기에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얼마 후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퇴직 사유로 ‘꿈을 찾아서’라고 적어 냈죠. 그렇게 2016년 9월에 데뷔해서 현재 7년 차 가수가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며, 그간 모은 돈으로 ‘소울숲’이라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관용적인 표현으로 ‘라면만 먹고 살아도 될 각오’는 제게 없었어요. 현금이 없어서 마음마저 가난해지지 않도록 소울숲 공간 대부분을 대여 공간으로 운영하면서 저는 한편에 방음벽을 치고 따로 문을 내어 음악 작업을 했어요. 소울숲 공간 전체는 초록색 방음재로 둘렀는데요. 초록색을 선택한 이유는 통계적으로 분명히 불안정해질 제 자신에게 평화를 암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공간을 운영하던 초기에는 충분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파티룸이 영업 금지 업종으로 지정되자 현금줄이 말라버렸죠.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흥분, 좌절, 권태로움, 평화, 환희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저는 소울숲에서 여러 싱글과 2장의 EP, 2장의 정규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평단과 소수의 대중에게 인정받은 1집 앨범 명이 ‹PAINGREEN›인 것도 소울숲이라는 공간에서 비롯해요. 현재 소울숲은 운영하지 않고 있어요. 어려운 폐업 과정과 이사를 거쳐 최근 새로운 곳에 작업실을 마련했죠. 시원섭섭함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몰려드는데요. 새 작업실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어서 언젠가 이곳 이야기를 들려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그때그때 마음을 울리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요. 하늘이 파랗고 예쁘면 희망적인 음감이 떠오르고, 파란 하늘에 벚꽃이 흩날리면 죽음을 연상하는 음감이 떠오르죠. 연출이 훌륭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제 마음을 찌르는 대사를 만나면 창작의 단추가 채워지기도 해요. 죽었다고 확신한 식물이 겨울을 지내고 갑자기 새싹을 드러낼 때에는 창작하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공원에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기도 하고요. 매 순간이 음악으로 치환될 수 있도록,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HURT› MV 스틸 이미지
‹HURT› MV 스틸 이미지
‹커야 돼› MV 스틸 이미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노래를 만들 때 순서를 정해두고 작사·작곡·편곡 과정을 거치지는 않아요. 다만 근 2년간은 작사가 우선이었어요.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 그 이유가 중요해지고 있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때는, 음악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 작업을 중단하기도 했어요. 반대로 명확한 의도로 가사가 정리되면 노랫말이나 반주 트랙이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진행되기도 해요. 이후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나누어져 있는 공간들을 악기로, 목소리로 채워나가며 편곡과 사운드 엔지니어링 과정을 진행하는데요. 보통 정해진 방식이 존재하지만, 저는 음악을 따로 배우지 않아서 경험적으로 습득한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제가 터득한 경험이 그저 개성으로만 치부되지 않도록 준수한 궤도에 결과물을 올려놓는 것이야말로 제 창작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작업 중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시겠어요?
2022년 9월 발표한 2집 ‹PRIVATE PINK›에서는 저의 사적인 ‘속살’과 ‘흉터’를 그려냈어요. 심연을 밝히는 주마등을 비추어 저의 불안정함과 우울함, 역치가 낮은 고통 반응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짚어내고, 온전한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각자의 주기에서 마주하는 고통의 시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삶을 돌아보는 사적인 주마등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자 초연함을 위한 핵심적인 열쇠라고 생각했어요. 우울감, 자격지심, 열등감, 성공에 대한 열망, 열망에 대한 체념, 가족과 친구의 죽음에도 여전히 살아가는 우리, 죽음에 대한 동경과 같은 선명한 감정과 경험은 삶이라는 나이테에 흉터로 남게 되잖아요. 어느 순간 나의 경험과 감정에 기반한 흉터들이, 이제는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희망과 확신을 품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PRIVATE PINK›를 발표했고, 해당 음반은 2023년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앨범상’을 수상했답니다. ‘장르의 정통성과 동시대성, 비전을 모두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요.
해당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자가 치유의 과정을 담은, 지극히도 개인적인 서사가 모두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기를 바랐어요. 죽음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던 제가, 이제는 ‘함께 살아있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요. 또한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날카롭고 개인적인 가사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은 궁금해하고 희망했던 것에 대한 증명이자 확산으로 작용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저의 ‘자신 있는 벌거벗음’이 듣는 이에게 희망과 위로로 가닿기를 기원했습니다.
작업을 진행했을 때 만족했던 부분과 불만족했던 부분이 궁금합니다.
1집 ‹PAINGREEN›까지의 작업은 연주까지 모두 혼자 진행했어요. 부족한 연주 실력은 뒤틀렸지만 그만큼 개성 있는 사운드가 보완해 주었는데요. 혼자 앨범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니 소중한 동료를 만날 수 있었고, 2집 ‹PRIVATE PINK›에서는 제가 내민 손을 잡아준 동료들이 세션으로 참여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2집은 가우시안 필터Gaussian Filter 레이어를 벗겨낸 듯 선명하게 빛날 수 있었어요. 다만 2집은 압도하는 힘이 전보다 부족한 편인데요. ‘밝아짐’이 곧 ‘유치해짐’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유 같아요. 다음 작업을 진행할 때는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듣는 이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신경 쓰는 방향을 모색하고 싶어요.
1집 ‹PAINGREEN› 커버
1집 ‹PRAVITE PINK› 커버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자고,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요. 주로 해가 떠 있을 때 움직이고 창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을 시작한 후로 가지게 된 행동 철칙 중 하나는 ‘회사원 시절의 근무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음악 관련된 일에 쏟기’랍니다. 그래야 이 삶을 선택한 것에 떳떳한 마음이 들 것 같았거든요.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만큼은 벌지 못하니까 오랜 시간 더 열심히,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재밌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숨 쉬듯 음악을 만들고 있지는 않아요. 싱글보다는 앨범 단위를 완성하는 일에 가치를 두고 있어서 그런지, 요 몇 년은 앨범 기획에 따라 노래를 만들어 왔습니다. 대신 올해에는 책을 쓰는 데 집중했어요. 지난 9월에는 첫 수필집 『당신의 초록이 분홍으로 피어나기를』을 출간했죠. 음악에 담은 제 절망과 희망을 캐주얼하게 글로 풀어서 발표한 독립출판물인데요. 인디자인InDesign 프로그램에 내용을 기입하기 전까지, 저는 두꺼운 수첩에 연필로 일일이 글을 적었어요. 어찌 보면 미련한 건데요. 스스로 정한 기한에 맞추기 위해 매일 에피소드 하나를 적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현재의 제 삶을 살펴보면 창작하지 않는 순간이 더 많거든요. 그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삶이 창작이 될 수는 없으니까, 최대한 좋은 마음을 유지하면서 창작의 순간을 기다리며 글을 썼어요. 물론 글을 쓰는 일상은 평화롭고, 그 과정도 좋았어요. 익숙한 작업실에서도, 퇴근 후 TV 앞 소파에 앉아서도, 처음 가보는 카페에 앉아서도 가만히 집중해서 들여다본 제 삶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거든요.
제 반려견 ‘곰돌’이요. 10개월 된 곰돌이는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에서 만난 유기견이에요. 화이트 테리어 같은 모습에 민들레 홀씨 같은 털을 가진 믹스견인데, 센터에서 아무도 입양을 고려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제가 입양했어요. 결정적으로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외모가 저와 닮은 것 같아서 끌렸달까요. 이제 함께 한지 6개월 된 곰돌이는 겁이 많지만 친근하고, 인내심이 강해요. 그런 곰돌이의 모습에서 제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곰돌이를 신경 쓰는 게 꼭 제 마음을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신기할 따름입니다. 곰돌이는 책을 쓰는 동안 묵묵히 제 옆을 지켜주고, 산책하는 동안에는 제게 활력을 준 존재예요. 현재 준비 중인 새 앨범에는 곰돌이가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기대 중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는지 설명해 주세요.
매사에 쓸데없이 진심인 태도는, 음악을 만드는 데에 꽤 도움이 돼요. 음악의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비롯되거든요. 대단히 사소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진심의 디테일은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절대적인 완벽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 시점에 아름답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집착하는 것 뿐이죠. 문제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얻게 되는 좋은 에너지가 안 될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사랑의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상처나 좌절은 될 일도 안 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제 노래 ‘견딜 만큼만’의 가사처럼, 부유하는 것은 언젠가 가라앉게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를 살아가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마음껏 좌절해요. 좌절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이상 자학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대신 좌절의 감정을 직면하면서 패배감의 근원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작은 마음까지 파헤쳐 보면서요. 그러면 마음이 조금 나아지고, 또 나아지는 방향으로 노력도 하게 돼요. 죽고자 했을 때에는 그 마음을 노래로 썼더니 오히려 구원 받기도 했어요. 삶이 결국 죽음 혹은 삶의 양자택일이라면 지금은 이왕이면 사는 쪽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죽은 마음으로 살고 싶지는 않으니,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을 가까이 하려고 해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처절히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 장면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나태함이 짓눌러도 마음을 불태워라.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대사가 나와요. 눕고 싶을 때면, 그 대사를 다시 한번 곱씹으면서 마음을 불태우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음악을 만드는 일에는 돈이 꽤 들지만, 금전적인 부분은 자력으로 해결하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가장 현실적으로 곤란한 문제는 사실 객석을 채우는 일이죠. 공연예술가의 삶을 지속하고, 현실적인 수익을 위해서는 공연이 필요한데요. 어느 수준 이상의 인지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 티켓 판매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쉽지 않더군요. 또한 수익성을 보장하는 뮤지션이 공연기획자의 메뉴판에 오르는 상황에서 아직 제 현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도 공연을 멈출 수는 없어요. 소중한 관객을 만나지 못하면, 마음의 불이 꺼질 듯 흔들리거든요. 그래서 제 돈을 써서라도 공연을 열고 있어요.
자신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되는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창작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마음은 속기 쉬운 존재예요. 그래서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쉽게 믿어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죠. 하지만 쏟아부은 인풋만큼 아웃풋이 없더라도 괜찮은 창작은 좀처럼 진심 어린 사랑이 아니라면 지속할 수 없어요. 저는 아직 찾아주는 이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소비자가 없는 순수 예술에 가까운 창작을 중시하고 있어요. ‘내가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라는 물음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내가 이걸 사랑하니까’라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충분하더라고요.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쉽게 생각하자면,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재능 있고 또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런 방향의 작업도 가능하다고는 생각해요. 어쨌든 제 얘기는 아니지만요.
‹HURT› MV 스틸 이미지
‹커야 돼› MV 스틸 이미지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답변이 없네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렇게까지 해야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들어본 말을 복기하면 ‘왜 가사를 저렇게까지 솔직하게 써야만 할까?’, ‘왜 저렇게까지 견고하게 음악을 만들어야 할까?’, ‘저 작은 무대에서 왜 비주얼까지 신경 쓸까?’, ‘왜 저렇게까지 작품성을 추구할까?’,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까?’와 같은 질문이 떠오르는데요. 스스로 자주 하는 말도 있어요. 그 중 ‘왜 이렇게까지 해왔나?’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이렇게까지 해야만 제가 걸고 있는 이 삶이 억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명분이 있는 선순환을 굴리는 음악가로 활동하고 싶어요. 그냥 하는 것도 사랑하니까, 하는 것도 분명 이유가 되더군요. 여기에 더해, ‘계속하면 좋은 이유’까지 더해지면 명분이 선다고 생각해요. 나름의 명분과 대외적인 명분까지 모두 불씨가 되어, 마음껏 마음을 태울 수 있는 미래를 꿈꿔봅니다.
Artist
에이트레인(A.TRAIN)은 불안정함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고통을 노래하는 뮤지션이다. 고통이 삶에서 사라질 수 없다면 한편으로 밀어둔 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성균관대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LG화학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퇴사한 후 2016년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죽음과 고통에 대해 과감히 담아낸 1집 ‹PAINGREEN›은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대중음악이 가지는 스펙트럼의 지붕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연분홍빛 흉터 아래 가장 사적인 분홍색 살갗을 굳이 내어 보이며, 여전한 고통을 지나 살아있기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을 담아낸 2집 ‹PRIVATE PINK›는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 알앤비/소울 부문 최우수 앨범상을 수상했다. 2023년 9월에는 수필집 『당신의 초록이 분홍으로 피어나기를』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