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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부풀고 갈라지는 세상 위에서

Writer: 안데스
[VP]안데스_1_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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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안데스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물질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지질학·천문학·물리학처럼 거대한 규모의 세계를 빵 굽기나 테크노와 같은 친숙하고 흥미로운 요소로 번역해 내죠. 그의 오븐은 작은 실험실이자 천문대이며, 실패한 시도의 균열은 지층의 단면이 되고, 부풀어 오른 반죽은 막 태어난 행성의 표면을 닮아갑니다. 우주 탐사가 그러하듯, 안데스의 작업은 언제나 ‘비어 있는 자리’를 감각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을 쫓기보다 일상에 스며 있는 미세한 떨림을 가만히 듣는 일.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나가던 순간에 불현듯 떠오르는 한 점의 빛 같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서 별의 잔광을 기다리는 천문학자처럼, 그는 조급함보다 기다림의 기술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 과정에서 감정과 생각은 부푸는 반죽처럼 조용히 모양을 바꿔가죠. 때문에 어제의 작업이 낯설게 느껴질 때조차, 작가는 그것을 충돌이나 괴리가 아닌 꾸준한 실천이 남긴 또 다른 층위, 다음 탐사를 위한 미세한 지표가 되어준다고 믿습니다. 창작은 완결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공전하는 행성의 행로를 따라 기록을 남기는 탐사 일지에 가까우니요. 정답을 찾기보다 결핍의 자리를 비워두고 매끈한 표면보다 균열과 틈에서 자라는 영감을 나침반 삼아 다음 목적지로 나아가는 사람. 안데스의 다음 항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BE(ATTITUDE) 비애티튜드 매거진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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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wildlife›, 2025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지질학적 베이커리› 작업을 하고 안데스 작가라고 합니다. 베이킹의 과정으로 땅, 산 지구를 너머 우주의 형성과정을 추적하고 있어요. 베이킹과 지질학, 지진파와 테크노, 광물과 코스메틱 등 지질학이라는 다소 근원적인 학문을 일상적인 차원으로 소환해 물질세계의 비밀을 탐구해 보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창기 작업은 저에게 일종의 ‘취미의 심화활동’이었습니다. 디자이너로 웹, 광고, 매장, 무대 등 경계 없이 일했습니다. 구전동요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밴드 활동과 매일의 착장을 기록하는 데일리 코디 활동을 겸했어요. 작업을 한다는 특별한 자의식 없이 했던 일과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본격적인 창작 작업으로 넘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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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wildlife›,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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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wildlife›, 2025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대문구에서 여러 작업을 하는 창작자들과 작업실을 공유해서 쓰고 있어요. 작업보다는 주로 수다방이었는데, 일상의 리츄얼을 만들어 나가는 공간 혹은, 일상이 사막화되는 걸 막는 공간입니다. 이제 곧 없어질 공간이에요. 새로운 비빌 공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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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2024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멀리 떠나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혹은 누워 있다가 번쩍 일어나서 계시처럼 떠오른 생각을 적기도 합니다. 목적 없이 주어지는 빈 시간에 무언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적극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패시브한 상태, 사냥보다는 낚시에 가까운 비어 있기의 기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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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드리프팅 스테이션 – 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2025,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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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드리프팅 스테이션 – 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2025, 아르코미술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처음 작업의 영감을 남미의 버스 안에서 받았고, 이후 서울로 돌아와 유튜브를 보며 빵을 만들어보는 수련 과정이 1년 정도 있었어요. 초창기 만들었던 빵들은 터지고, 찌그러지고 말 그대로 처참했는데, 이런 실패한 빵들에서 오히려 지질학적 단서들을 찾아볼 수 있었어요. 

빵 만들기를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을 솟게 한 힘의 근원까지 추적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지질학을 넘어 물리학, 천문학으로까지 관심이 옮겨갔고, 기초과학을 더듬더듬 탐문하게 됐죠. 2021년에는 ‘아티언스 대전’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질자원연구원과의 협업으로 연구원님과 암석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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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합정점›, «지질학적 베이커리—화강암의 맛», 합정지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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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합정점›, «지질학적 베이커리—화강암의 맛», 합정지구, 2021

이런 경험과 학습으로 도출된 이론적 모델에서 출발해 빵을 만드는 것으 보이지만, 막상 만들면서부터는 질료와 내가 서로 반응하면서 예상치 못한 길들이 열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어떤 빵을 만든다기보다는 어떤 빵이 발견되는 것에 가까워요.

파생 작업인 ‹빵산별원정대›와 ‹지질학적테크노›는 관객참여적인 작업이고, 각분야의 전문가, 작가들과의 협업이 많았기에 매개자 혹은 기획자로 분하며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서 저의 역할을 달리 하며 작업에 개입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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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산별원정대 홍보물›, 만화: 전지

‹지질학적 베이커리›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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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테크노›, 2022, 남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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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테크노›, 2023,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에 제작한 ‹쇄설물빵›을 소개해볼게요. 베이킹 과정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들을 모아서 구운 빵이에요요. 화산폭발시 파쇄된 바위의 파편, 화산재같은 부스러기들이 분화구 주변에 쌓이는데, 이런 것을 화산쇄설물이라고 합니다. ‹쇄설물빵›의 의의는 부스러기들을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다시 구워 새로운 빵으로 탄생시켰다는 점입니다. 자연에는 애초에 쓰레기라는 개념이 없어요. 부스러기들은 버려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퇴적암이나 변성암으로 이어져요. 그저 다른 형태로 변화해 갈 뿐이고, 지질학적 순환의 원리를 따라 움직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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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설물빵›,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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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워크, 인도네시아 이젠 화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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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자가레점›, «자가레프린지 페스티벌», 리투아니아, 2025

‹지질학적 베이커리 자가레점›, «자가레프린지 페스티벌», 리투아니아, 2025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 작업이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순환한다는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어요. 이전 작업과 이후 작업,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작업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흐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용뿐 아니라 작업의 형식까지도 지질학적 순환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가장 최근 전시에서는 빵에 처음으로 돌을 넣어봤어요. 복숭아 씨앗처럼 돌을 발라내고 먹는 빵입니다. 1945년 8월에 발생한 해남 옥매광산 광부수몰사건 희생자 추모 80주기를 기리는 특별 전시 ‹바다의 마음으로 : Soothed by Ocean’s Silence›에서 공개한 작업이에요. 

옥매광산의 응회암이 열수 작용으로 옥으로 변성되었듯, 추모의 마음들도 모이면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염원을 작은 주문 혹은 계시 삼아 돌을 빵에 넣어 보았습니다. 제게는  파격적인 행위였어요.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장면처럼 금기를 건드린 듯한 기분이 들었죠.

전시 오프닝 때 그 빵을 관객분들께 나눠드렸어요. 금방 동이 날 정도로 구워내기에 바빴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행사가 먹는 행위 쪽으로만 기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이 관객과 만나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있었을지, 그 접점을 더 정교하게 준비했어야 했다는 부분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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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바다의 마음으로», 2025, 해남예술회관

‹지질학적 베이커리›, «바다의 마음으로», 2025, 해남예술회관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착즙주스랑 노른자가 줄줄 흐르는 6분 삶은 계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해요. 요즘은 완전히 야행동물처럼 지내서 되돌리려고 노력 중이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작업을 하든 디깅을 하든 밤에 주욱 이어지는 선 같은 시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요즘 제일 크게 자리 잡은 건 결국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영원한 숙제죠.  내가 보편적인 인간이라서 이렇게 반응하는 건지, 아니면 나만의 특수성이나 개성이 작동하는 건지… 어떤 기제나 반응이 드러날 때마다 발견되는 ‘나’라는 존재가 아직도 낯설고, 그걸 이해해 보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정체성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예전에는 제 과거 작업을 들여다보는 게 꽤 괴로웠는데, 요즘은 조금씩 다시 볼 수 있게 됐어요. 과거의 저를 아예 전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나와 거리를 두니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平野啓一郎로는 자기 자신을 히라노 1기, 2기, 3기로 구분하고, 본래의 ‘나’ 같은 건 없으며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시기로 분화될 수 있는 존재로 이야기 하더라고요. 작가가 주장하는 이 ‘분인’의 개념이 요즘 저를 좀 치유해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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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자 속의 우주›, 2025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나와의 거리두기뿐 아니라 작업과의 거리두기도 중요하더라고요. 작업이 곧 내가 되어버리는 걸 경계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작업과 나 사이의 유착이 심해서, 프로젝트와 이별하는 걸 정말 어려워했거든요. 그때는 세 명의 자아가 동시에 싸우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작업을 계속 지속하고 싶어하는 나, 버리고 싶어하는 나,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나. 이 세 자아를 무대로 올린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그 이후로는 작업과 나 사이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해요. 언제든 작업과 이별할 수 있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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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자가레점›, «자가레프린지 페스티벌», 리투아니아, 2025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저도 저 자신에게 완전히 헌신하고 싶지만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무기력과 산만함에 휘둘릴 때는 좋은 작품을 보는 것이 최고의 약이에요. 좋은 작업을 보면 힐링도 되고, 동기부여도 되고, 여러 면에서 다시 일어나고 싶게 만드는 용기와 자극을 주거든요.

한편으로 조금 더 깊은 슬럼프가 올 때가 있어요. 저도 십 년에 한 번쯤 꽤 큰 우울증이 찾아오는데, 늘 어떤 질문과 함께 오더라고요. 그럴 때는 답을 찾든 못 찾든, 찾으려고 애쓰면서 그 우울을 그대로 겪어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망하면 망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 길목에서 마주하는 생각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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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지질학의 분자빵›, 2025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엉망진창으로 내버둔 현실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차례로 한 방씩 걷어차이는 중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현실이랑 어떻게 공존하면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하지만 잘 모르겠네요. 그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언젠가 조금은 나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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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족자카르타점›, 루앙메스56 레지던시, 인도네시아, 2022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장르 안에서 완벽하고 뾰족한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서툴고 거칠더라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세상을 반짝이는 결정체처럼 다듬어가는 이들이 있다면, 저는 오히려 뒤집고 파헤치는 쪽이죠.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늘 뭔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루게 되잖아요. 그렇지만 창작에 완벽한 때나  조건 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결핍이 있기 때문에 욕망이 생기는 것이고 그 결핍을 오히려 원동력으로 잘 활용하시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결핍과 욕망이 한 쌍이듯 위기와 기회 역시 결국 같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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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 베이커리 자가레점›, «자가레프린지 페스티벌», 리투아니아, 2025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 감독이 오래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 목적은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에서 감독이 고수하는 ‘비주류의 사명감’을 느꼈죠. 어릴 적 ‹The Fly›를 접했을 때 이런 기괴한 세계를 끝까지 만들어 보여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고 위로가 됐고요. 제 작업도 언젠가 아웃사이더들에게 그런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질서를 따르지 않을 자유, 그리고 그걸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저한테도 있으니까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모두가 생긴대로 사는 세상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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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안데스(@geologic_bakery)는 서울에 거주하며 ‘지질학적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물질세계의 비밀을 베이킹으로 탐구하고 있다. 자매 작업으로는 땅의 비트로 여행하는 ‘지질학적 테크노’(2022-2023), 서울의 산을 지질학적으로 등산하는 투어프로그램 ‘빵산별원정대’(2021-2022)가 있다. 개인전 «화강암의 맛»(합정지구, 2021), «지질학적 베이커리»(팩토리2, 2019)를 열었고, «지구오븐에 구워진 비밀 레시피»(서울시립과학관, 2025) «드리프팅 스테이션»(아르코미술관, 2025), «자가레프린지»(자가레컬쳐센터, 2025),«이것 역시 지도»(미디어시티서울, 2023), «평범함의 비범함»(수원시립미술관, 2023), «A SUPER MODERN PROJECT»(키스아트마일, 2022)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https://geologicbake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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