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부터 관심의 더듬이가 파르르 떨렸지만 쉽게 인연을 맺지 못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매년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입니다. 특히 그래픽 디자이너 100인이 참가하는 ‘100 Films 100 Posters’ 행사가 큰 역할을 했지요. 영화제가 열리는 시즌이 돌아오면 참여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린 포스터가 제 인스타그램을 도배했거든요. 그러던 중 올해는 기필코 직접 가봐야겠다, 마음을 굳게 먹고 지난 5월 드디어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당일치기나 다름없는 1박 2일 일정이었는데요. 영화제의 특성을 미리 제대로 파악했다면 좀 더 길게 체류했을 텐데, 아쉬움이 마구 드네요. 영화제 뉴비로서 겪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첫인상, 돌아다니며 느낀 감상과 깨달음을 한 줌의 칭찬, 한 줌의 후회와 섞어 글로 버무려 보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제 실패를 양분 삼아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는지요. 평소 전주국제영화제를 눈여겨보신 분이라면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눈물 어린 노하우를 습득해 보세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무빙 포스터
드디어 가봤다. 지난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소셜미디어를 도배하던 ‘그곳’에.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쭉쭉 증발하는 몸을 이끌고 마침내 방문에 성공했다. 서울에서 2시간 40분이 걸리는 곳, 머릿속으로는 이미 몇 번은 가본 듯한 소문 속 행사. 매년 전주에서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와는 통 인연이 없는 편이다.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 시각 예술이다 보니 전시가 훨씬 편하기도 하거니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조용히 보면 잠 귀신이 찾아오는 탓에 평소보다 2~3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20대 때는 교양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찰리 채플린, 앨프리드 히치콕 등 클래식이라 불릴 만한 감독의 명작들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곤 했지만, 내겐 언제나 모니터 속 ‘시작’과 ‘중지’라는 강력한 버튼이 있었다. 반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극장에서 유유히 흐르는 영화를 멀뚱멀뚱 바라볼 때는 잠의 여신이 굉장한 축복을 뿌려댔다. 서서히 퓨즈가 끊겼다가 정신을 다시 차리면 엔딩 크레딧이 장대하게 올라가는 마법 같은 시간 여행이라니.
구글 제미나이가 친절히 만들어준 스폰지밥 스타일의 ‘잠의 여신’과 정신 못 차리는 ‘나’의 모습.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시네필cinephile과 발권 경쟁을 벌이는 영화제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프레스 배지를 신청하고 어영부영 다녀오긴 했지만, 기사를 작성하지 못했다. 영화제를 소개하기엔 이미 경험이 풍부한 애호가들이 가득했고, 프리미어 딱지가 붙은 영화 리뷰를 쓰기엔 전문성이 부족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북돋우며 감독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기사 발행이 취소되면서 되려 ‘마상’까지 입었다. 에디터로서 영화를 다룰 때 트라우마가 생긴 계기였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활약하는 ‘100 Films 100 Posters’ 관련 포스팅이 아무리 내 소셜미디어를 도배해도, 정작 그 현장인 전주국제영화제를 직접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 영화, 실험 영화, 독립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영화제의 강점은 인터뷰, 리뷰뿐 아니라 영화제 현장을 소개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전주국제영화제는 내게 일종의 ‘그림의 떡’이었달까.
구글 제미나이에 의뢰한 ‘그림의 떡’ 일러스트레이션.
사실 지금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한 줌의 용기와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외면하던 곳에 직접 발걸음하는 일도 낯선 도전이었기에, 영화제를 알뜰살뜰 잘 즐겼다고 당당히 말하기는 조금 곤란하다. 소문으로만 듣던 행사에 늦게나마 가봤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니 5월 황금연휴에 맞춰 장중하게 펼쳐진 영화제 중 하루를 기록한 글이 혹여나 어수룩하게 보일지라도 이해와 양해를 슬쩍 구해본다.
처음 겪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상상과 꽤나 다르게 전개됐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무지에서 비롯한 오만이었다. 이번 방문은 4월 30일 밤 서울에서 시작해 5월 2일 새벽 서울에서 끝났다. 4월 30일이 개막식이었으니, 결국 개막 2일 차인 5월 1일만 겪은 셈이다. 지금도 뼈저리게 후회하는 부분이 바로 당일치기에 가까운 스케줄이다. 영화제가 성대하면 하루만 경험해도 에센스를 뽑을 수 있다고 여긴 게 오판이었다.
영화제는 정밀하게 짠 각본과도 같다. 전체 기간을 염두에 두고 완급조절을 하며 수많은 영화를 상영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즉 사무국에서 의도한 영화제의 참맛을 느끼려면 장기 체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상하건대 적어도 3일 정도 머물러야 만족스러움이 차오를 것 같다. 이건 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혹시 전주국제영화제처럼 일주일 넘게 지속하는 장기 영화제를 경험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을 망설이지 말자. 나 또한 출발 전에 주변에 있는 시네필에게 상의하지 않은 어리석음에 가슴을 쳤다. 허둥지둥거리며 시간이 어디로 어떻게 증발하는지 당최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유경험자의 지고지순한 충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57개국 224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이 정보를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무식하게도) 하루에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상영 시간표를 분석해 보니, 하루에 영화를 상영하는 주요 시간대는 아침, 오후, 저녁, 심야 정도로 나뉘었고, 여러 앵커 극장과 그에 소속된 다양한 상영관에서 해당일에 배정된 영화를 사이좋게 나누어 상영하는 형태였다. 결국 분신술을 쓰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는 하루 최대 4편 정도를 볼 수 있는 셈인데, 자기가 원하는 영화로만 스케줄을 채우는 건 꿈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주 열린 마음으로 상영작을 예매한 나조차도 결과적으로 2편에 그쳤으니, 보수적으로 잡아 하루에 2편만 제대로 보아도 충분히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 듯싶다.
나는 프레스 배지에 기대어 리뷰에 필요한 영화를 온라인 스크리닝 서비스을 통해 간단하게나마 추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대중에게 해당하지 않는 매우 특수한 상황 아니던가. 그러니 영화제를 충분히 즐기고 싶은 사람은 겸허한 마음으로 철저한 사전 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 시간은 언제인지 알아보며 자신만의 스케줄을 짜고, 예매까지 성공해야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다.
참고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현장 예매 없이 사전 예매로만 진행했는데, 최종 좌석 점유율이 81.6%를 찍었다. 총 586회 차 상영 중 448회 차가 매진됐으니, 그 열기가 엄청나다. 7만 명 이상이 찾는 영화제에서 패닉이 오지 않으려면,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의외의 복병을 하나 더 꼽는다면 날씨랄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사에서 날씨가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된통 당한 주인공이 바로 여기 있다. 영화제는 영화에 관한 행사를 집약한 축제이고, 축제란 결코 날씨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보도 자료 속 방문객의 밝고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싱그럽고 쨍쨍한 날씨가 차지하는 지분은 막강하다. 실제 내가 들린 5월 1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비가 주룩주룩 내린 탓에 영화의거리를 가득 메운 현수막이 바람에 후루룩 날리며 비가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어둡고 침침한 디스토피아를 연상시켰다. 그동안 오매불망 고대했던 영화제의 첫인상치곤 고약했달까. 무엇보다 날씨가 과하게 좋지 않으면 자칫 영화제에서 준비한 각종 행사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는 게 진짜 문제다.
영화제에서는 순수하게 영화 상영만 하지 않는다.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고, 야외무대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비, 돌풍, 황사 등 자연재해는 심술 궂은 불청객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폭우가 쏟아지지 않아서 홀딱 젖는 일은 없었지만, 축축한 분위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열정이 스르륵 사그라들었다. 미리 체크해놨던 야외 행사, 영화제의 중심부인 영화의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움직일 동력이 증발했달까.
그런 와중에 전주국제영화제의 강점을 오히려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으니, 바로 최적화된 동선이었다. 앵커 시설이 영화의거리에 몰려있어 도보 이동이 무척 수월했고,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 또한 많아서 사람들 사이에 당황한 기색이 크지 않았다. 만약 주요 극장 간 거리가 멀었다면 오가는 교통편을 이용하는 순간부터 악몽이 시작되었을지도? 가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나중에 올라온 보도 사진을 보니 날씨가 맑고 쨍쨍했다. 황금연휴 때 기획했던 각종 행사가 잘 이루어진 것 같아서,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다.
앞서 말한 장기 체류에 대해 첨언하자면, 도시의 인프라 또한 큰 역할을 담당한다. 방문객이 머물만한 숙소가 많아야 하고,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볼거리 또한 충분해야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은 건 상식이다. 그런 면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태생부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영화의거리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그 유명한 ‘전주한옥마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호텔 말고도 머물 수 있는 적당한 숙소, 이색적인 숙소가 충분하고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경험과 먹부림이 제대로 발휘된다는 뜻이니, 장기 체류에 대한 심적 저항이 낮아지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말은 1박 2일이지만 실제로는 단 하루만 머물렀던 나는 영화 보고 전시 보고 여기저기 움직이느라 식사다운 식사를 단 한 끼도 즐기지 못해서 더욱더 아쉬웠다. 예전 «씨네21»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출장을 앞둔 기자들 눈이 반짝인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갸우뚱했는데, 이제는 온전히 통감한다.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전주에서 맛 탐험을 하지 않고 영화만 보는 건 아무리 씨네필이라도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맛집 조사까지 끝내야 전주국제영화제를 즐길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겠다.
아, 맞다. 전주국제영화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결정적 계기인 ‘100 Films 100 Posters’를 실견한 소감을 빠뜨릴 수 없지. 그해의 상영작 중 100편을 뽑아 그래픽 디자이너 100명이 영화에 대한 포스터를 제작해 전시하는 행사는 2015년 시작해 올해로 11년 차를 맞으며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적인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작년 10주년을 기념해 1000점의 포스터를 공개할 만큼 아카이빙의 힘 또한 놀랄 정도인데, 올해부터 ‘100 Films 100 Posters’의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행사가 비단 전시뿐 아니라 토크, 포럼, 워크숍, 부대 전시까지 여러 갈래로 확장됐다.
즉 ‘행사 속 행사’처럼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강화된 셈인데, 다다익선이란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하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에서는 꽤나 고민거리다. 영화 관람과 ‘100 Films 100 Posters’ 관람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느냐에 따라 다른 이보다 포기할 게 많아지고, 셈법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개막 2일 차에 방문한 터라 전시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지만, 영화제 중반에 방문하는 이들은 전시를 제외하고도 포럼과 토크, 워크숍 등의 선택지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만일 자기가 정말 보고 싶은 영화의 상영 시간과 디자인 관련 행사가 겹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 생길 수 있다.
전시만 하더라도, 시간 관계상 포스터 100장을 모아 놓은 메인 전시에만 집중한 나와 달리, 여유가 있다면 다른 전시에도 분명 관심이 갈 터. 총 네 곳의 전시장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는 5개의 전시는 그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고, 그 규모 또한 관람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기에는 애매한 느낌이었다. 전주시립인후도서관, 완판본문화관 등 해당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겠지만, 작은 전시를 보기 위해 길게는 왕복 1시간 거리를 오가는 일은 영화제를 찾은 이에게 상영작보다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커 보였다.
메인 전시를 소개하는 포스터의 불명확한 정보 표기가 혼란을 가중시키는 면도 존재했다. 전시 장소로 팔복예술공장, 영화의거리, 문화공판장 작당을 표기했는데, 실제 확인해 보니 영화의거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시 형태가 아니었다. 거대한 현수막에 포스터를 줄줄이 인쇄해 허공에서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거리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코레이션에 가까웠다.
100장의 포스터를 보여주는 행사의 근본 전시는 팔복예술공장과 문화공판장 작당,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는데, 본진으로 추정되는 팔복예술공장 쪽이 궁금해서 택시까지 탔고 갔다가 다소 허무함을 느꼈다. 벽에 설치한 포스터가 시야에서 너무 벗어나 디테일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종이가 들뜬 부분이 계속 눈에 거슬린 점이 주효했다. 예전부터 유지해 온 포맷이라 예상은 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경험할 때 느끼는 아쉬움이 존재하더라. 추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 속 문화공판장 작당의 디스플레이는 훨씬 직관적이고 휴먼 스케일에 적합했는데, 영화의거리와도 거리 면에서 훨씬 가까웠다. 내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포스터 전시를 보러 간다면, 1순위로 문화공판장 작당을 추천하고 싶다.
이번 여정을 준비하며 처음 안 사실 하나.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더불어 전주국제영화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비주류 영화, 예술 영화, 독립 영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더 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작품 또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기에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과 창작자, 평론가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고. 그동안 ‘100 Films 100 Posters’라는 디자인 행사를 꾸리는 독특한 영화제로만 생각한 무지함에 살짝 부끄러웠는데, 실제 관람한 영화가 예상보다 무척 좋았기에 민망함이 더해졌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백현진쑈 문명의 끝›, ‹3670›, ‹핑크문›까지 총 3편으로, 이 중 ‹3670›은 티켓 매진 때문에 추후 온라인 스크리닝으로 접했고, 나머지 두 편은 현장에서 관람했다.
음악가, 화가, 연기자, 시인 등 다재다능하기로 유명한 예술가 백현진이 연극 연출에 도전한 ‹백현진쑈: 공개방송›의 공연 기록을 감독이자 예술가인 박경근이 해체하고 추가로 촬영한 장면을 집어넣어 어디까지가 진짜 공연인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던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여러 낯익은 인물의 등장과 기묘한 장면의 영상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3670›은 극영화의 뼈대를 이루는 플롯이 매우 특별했다. 친형제 같은 탈북자 커뮤니티와 동갑내기 게이 커뮤니티 사이를 오가는 27살 탈북 게이 청년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상처를 입고 이를 극복하는 방식을 흡입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기반해 움직이는 각기 다른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과연 4관왕을 차지할 만했다. ‹핑크문›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 불리는 윤석남 작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마흔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그가 40여 년간 쏟아냈던 에너지의 흔적을 반추하고, 지금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작업에 몰두하는 열정에 매료됐다.
특히 ‹핑크문›은 예정에 없던 깜짝 GV를 진행하며 윤석남 작가와 그의 조카이자 이번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은 감독이 무대 중앙에 앉아 관객과 질문을 주고받았는데, 많은 여성이 창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진지하게 상의하는 장면이 인상에 남았다. GV가 끝난 후에도 작가를 둘러싸고 사인을 받으며 옹기종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록스타를 보는 듯했다. 8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순전한 웃음으로 대중을 대하는 작가의 모습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픈 욕망이 생겼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제가 잠시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비록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찍었지만, 한평생 치열하게 작업하고 삶을 개척한 예술가의 모습이 완연했다. 어쩌면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내게 허락한 깜짝선물일지도?
영화제가 더 많은 사람의 참여와 관심과 인기와 특색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일을 도모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결국 영화가 있다. 더 좋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일정한 주제로 엮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영화의 힘을 믿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모이고 모여 옥석을 가리는 노력과 열정으로 영화제를 이끌어 간다. 그 집약체인 영화제 상영작 대부분이 실은 국내 극장이나 OTT를 통해 다시 서비스할 가능성이 희미하고, 그렇기에 지금 마주하는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은 매년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무르는 동기로 충분해 보인다.
‘인생을 바꾸는 예술’, ‘인생을 바꾸는 영화’라는 수식은 뻔하다. 그러나 조약돌을 호수에 던질 때 일어나는 파장처럼, 우리가 접한 무언가는 어떤 형태와 의미로든 결국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두운 극장에서 영화를 통해 내면으로 침잠하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전주국제영화제야말로 편견의 껍질을 부수고, 감정의 파고를 넘나드는 여정의 한복판으로 제격이다. 마음속 고요한 호수를 흔드는 퐁-당 혹은 풍-덩의 장으로.
덧. 전라북도에 위치한 전주는 지리적 위치가 약간 애매하다. 광주처럼 먼 것도 아니고 대전처럼 가깝지도 않다. KTX가 다니지만, 매일 운행하는 직행 편이 5회에 불과하다. 환승 편을 포함하면 당연히 훨씬 많아지지만, 열차 환승을 꺼리는 이에겐 1시간 50분이라는 소요 시간이 그리 매력적으로 와닿지 않을 테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우리 기억에서 어느덧 사라진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예상외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고속버스는 차편이 훨씬 다양하고 시간대도 넓으며, 무엇보다 얼마 전 외국인 유튜버가 환호했던 전설의 프리미엄 버스가 존재한다. 소요 시간은 2시간 40분으로 KTX에 비해 50분이 더 길지만,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의자를 완전히 뒤로 젖힌 채 편하게 갈 수 있고, 개인별로 커튼을 칠 수 있어 사생활 보호도 가능하다. 요금마저 KTX보다 20% 저렴하다. 야밤에 움직이는 터라 할 수 없이 고속버스를 이용했던 나는 프리미엄 버스에서 꿀잠을 자며 그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자차로 가지 않는 분은 KTX 말고 프리미엄 버스를 이용해 보시라.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센트럴시티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먹거리 인프라도 즐길 수 있다.
Write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에서 발행한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인 루이 비통은 디자인과 장인 정신에 관심이 많습니다. 장인과 창작자에 대한 존중을 자신들의 애티튜드로 자주 내세우는데요. 세계 최고의 디자인 축제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가구 컬렉션인 오브제 노마드의 신제품과 마크 뉴슨과 협업한 스페셜 에디션을 발표하는 행사에서는 그런 애티튜드가 처참할 정도로 무너졌답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루이 비통의 행사 진행에 맞서 에세이 한 편이 맹렬히 뚝딱 써졌어요. 우리 모두 ‘I don’t know’를 남발하는 루이 비통의 신비한 세계로 떠나보실까요?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알리는 공식 포스터. ‘Home of Design’이란 어구가 인상 깊다.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 다녀왔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구 박람회로 알려진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가 바로 밀라노에서 열린다. 매해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전문가들이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를 찾으면서 거대한 박람회장인 피에라 밀라노를 벗어나 밀라노 도심 곳곳으로 각종 행사가 파고들었다. 도심에 거대한 쇼룸을 가진 가구 브랜드는 더욱더 멋진 공간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IT 브랜드, 자동차 브랜드, 심지어 럭셔리 브랜드까지 거대한 예산을 들여 공간을 빌린 후 다채로운 콘셉트로 브랜드 체험 공간을 열고 있다. 이런 장외 전시인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와 살로네 델 모빌레를 두 축 삼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디자인 축제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돌아간다.
푸오리 살로네에서 화제가 되는 브랜드 중 루이 비통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이래 지속적으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호화롭고 기념비적인 장소를 골라 그들의 컬렉션을 공개해 왔다. 옷, 가방, 신발 등 루이 비통의 주된 상품이 주인공은 아니다. 가구의 성지인 밀라노이지 않은가! 루이 비통은 지난 2012년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컬렉션을 론칭했다. 브랜드의 오랜 철학인 ‘여행 예술’에 초점을 맞춰 세계 유수의 스타 디자이너와 협업한 가구 및 라이프스타일 제품이다. 첫 공개 장소로 컬렉터블 디자인 페어의 대표 주자인 ‘디자인 마이애미/’를 선택할 정도로 브랜드의 철학, 참여하는 디자이너의 이름값, 작업 자체가 지닌 예술적인 조형성, 이를 구현한 자사의 장인 정신을 고루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해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며 작업 수를 늘리던 오브제 노마드가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리빙 제품보다 독특하게 다가온 이유는 꽤나 명백했다. ‘여행 예술’이란 브랜드의 핵심 철학에 맞춰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완전히 열어놓아 상대적으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없는 흥미로움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컬렉션을 대놓고 판매하지 않았던 점이 한몫했다. 새로운 작업은 시제품에 머무를 때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주문 제작이란 익스클루시브한 형태로 소비자에게 다가섰다. 그래서 오브제 노마드를 지켜보는 사람 중에는 루이 비통이 리빙 디자인 신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이미 리빙 분야로 브랜드를 확장해 뻔한 제품을 내놓는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비교되는 신선한 긴장감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루이 비통이 어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브랜드던가. 몇 년 전부터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에는 가격표가 붙기 시작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의 뺨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였는데 루이 비통이란 라벨이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정작 문제는 루이 비통이 오브제 노마드를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었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브랜드 철학과 예술성, 장인 정신의 결합을 보여주는 브랜드 활동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세일즈 경쟁의 콜로세움에 서버린 물건의 일부가 됐다. 그만큼 지금껏 쌓아온 순수한 화양연화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특히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오브제 노마드 행사는 개인적으로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오브제 노마드를 흠모했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기분이다.
현지 시각으로 18일 화요일 저녁, 밀라노의 아름다운 명물 팔라조 세르벨로니Palazzo Serbelloni에서 프라이빗 파티가 열렸다. 루이 비통이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멀리서부터 건물에 걸린 두 가지 현수막이 펄럭였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스타 디자이너 마크 뉴슨과의 협업을 알리는 ‘Louis Vuitton by Marc Newson’, 다른 하나는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Louis Vuitton Objets Nomades’였다. 프레스로 미리 등록했던 터라 무리 없이 제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의 중정에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Marc Fornes가 구축한 노마드 파빌리온이 눈에 띄었다. 거대하고 환상적인 형태로 결합한 유기적인 금속 구조물의 아름다움은 잊지 못할 강력한 여운을 남겼다. 여기까진 완벽했다. 사건의 발단은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전시에 입장할 때부터 시작됐다.
‘Louis Vuitton by Marc Newson’이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좌)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환상적인 노마드 파빌리온. (좌)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내부 모습. (우)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환상적인 노마드 파빌리온. (상)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내부 모습. (하)
우아한 소용돌이 계단을 오르며 입구에 가려는데, 계단 가운데 빈 공간에 길게 늘어진 거대한 샹들리에가 무척 독특한 게 아닌가. 내 호기심 버튼을 누른 샹들리에의 정체가 궁금해서 근처에 서 있던 루이 비통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이건 누구 작업인가요?” 루이 비통 특유의 깐깐한 말투를 상상하던 나는 답변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잔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I don’t know.” 럭셔리 브랜드에서 외부인을 응대할 때 부정적인 표현을 쓰던가? 특히나 브랜드 이미지를 결벽적으로 관리하는 루이 비통이라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브랜드가 주최하는 행사에 존재하는 스태프는 곧 그 브랜드의 얼굴이자 브랜드 자체로 치환되기 마련이고, 이는 모든 브랜드 운영의 상식 아니던가. 손님의 안전을 돕는 경호원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루이 비통이라면 분명 따로 언질을 주었을 거라는 의아함이 교차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
전시장 입구는 아주 화려했다.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란 전시명 앞에는 이번 행사를 위한 특별판 두 점이 전시대에 올랐다. 브라질의 캄파냐 형제Campana Brothers가 예전에 만들었던 봄보카Bomboca 소파를 매끈한 금속 재질로 바꾸었고, 유명한 코쿤Cocoon 체어는 번쩍거리는 디스크 볼처럼 장식한 채로 제자리에서 끝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화려한 변신이 반가워서 입구에 서 있던 스태프에게 물었다. “이 작업들, 캄파냐 형제의 작업이 맞죠?” 그러자 이윽고 돌아온 대답은 바로 “No”. 응? 몇 시간 전에 캄파냐 형제의 특별판 기사를 읽었는데 이게 그게 아니라고? 나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누구 작업이에요?” 그는 전시대 앞으로 가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패널을 확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캄파냐 형제요.”
캄파냐 형제의 봄보카 소파는 이번 전시를 위해 금속으로 다시 만들었다. (상)
미러볼처럼 화려하게 겉면을 처리한 후 계속 제자리에서 돌며 반짝이던 코쿤 체어 특별판. (하)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그는 사람들이 작업을 건드리지 않는지 확인하는 ‘경비원 2’일 거야. 그런데 이게 캄파냐 형제의 특별판이라는 사실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패널에는 디자이너 이름과 작업 명뿐이고, 주변에 이 사람 말고 다른 스태프도 없잖아. 설마 루이 비통 가구 전시를 찾는 사람에게 예습을 기대하는 건 아닐 테니, 그냥 눈 호강만 하고 가라는 깊은 뜻인가? 머리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눈앞에 있는 전시에 집중하자고 구호를 외치며 내부로 들어가니 화려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며 동선을 계속 이어 나갔다. 참으로 환상적으로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마구 사진을 찍다가 그중 천장에 걸린 작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조화가 강렬하면서도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우아한 형태로 깃털이 반복되는 모습이 분명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의 작업이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지난 16일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서 비슷한 작업을 봤기 때문이다. 갤러리 버전은 색을 칠하지 않은 내추럴한 모습이었지만 디자인 어휘가 워낙 일치했다. 기억하지 못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할 정도였다.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화려한 깃털의 새, 케트살quetzal을 닮은 아틀리에 오이의 모빌 작업. (좌)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에 출품한 케찰 모빌과 시각 어휘가 매우 유사한 아틀리에 오이의 작업.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 전시했다. (우)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화려한 깃털의 새, 케찰quetzal을 닮은 아틀리에 오이의 모빌 작업. (상)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에 출품한 케찰 모빌과 시각 어휘가 매우 유사한 아틀리에 오이의 작업.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 전시했다. (하)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여기에는 전시에 관해 설명해 줄 스태프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로사나 올란디에 있는 작업과 어떻게 다른 걸까? 궁금증을 잠시 참고, 가장 전시 스태프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섰다. “여기 천장에 있는 작업은 아틀리에 오이가 디자인했나요?” 순간의 침묵과 함께 몇 분 전 들었던 말이 또다시 반복됐다. “I don’t know.” 와우. 지금까지 부정형이 세 번 연속이다. 이 정도면 루이 비통이 선사하는 신세계에 더 놀라야 하는 것 아닐까. 한 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설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루이 비통 스태프가 오브제 노마드 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곧장 실험에 들어갔다.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의 작업이 모인 곳에 가서 근처 스태프에게 말을 걸었다. “이 작업은 누가 디자인했어요?” “I don’t know.”라는 대답은 이제 반갑기까지 했다. 아아. 루이 비통은 이번 전시를 어떻게 운영하는 걸까?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온갖 디자인 거장과 협업한 가구들을 전시하는 까닭이 단순히 좋은 홍보 기사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일까? 아무리 그래도 스태프가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탑재해야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없을 텐데…오히려 루이 비통과 상관없는 내가 좌불안석이었다.
마르셀 반더스의 캐플린 조명과 다이아몬드 소파.
나는 작업 관람, 사진 찍기, 패널 확인을 병행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실제 가구를 체험하는 곳이 등장했다. 전시대가 없기에 패널도 찾을 수 없는 상황. 운 좋게도 상주하는 스태프가 있었다. 그녀에게 스툴의 출처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눈앞에 대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주르륵 내리며 무언가를 계속 찾았다. 이윽고 그녀는 빠르게 말했다. “@#₩%&^₩#.” 당황한 나머지 “What?”이라고 대꾸하자, 그녀는 아주 쿨하게 답했다. “이탈리안 디자이너예요.” 그리고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전시를 열어도 이것보단 더 성의 있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랐다. 루이 비통처럼 이미지에 목숨 건 럭셔리 브랜드에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의구심은 무척 빠르게 풀렸다. 함께 왔던 지인에게 그동안 겪은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하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는 대놓고 영업했어. 가구 사라고 계속 말을 걸더라고. 그리고 어떤 스태프는 여기 건물이 좋다는 얘기만 계속하던데? 나폴레옹이 3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라나 뭐라나.” 그때가 돼서야 눈앞에 환해졌다. 사람들로 가득한 이 활기 넘치는 전시는 애초에 그 목적이 관람에 맞춰진 게 아니었다. 고객에게 새로 나온 ‘물건’에 대해 소개하며 구매를 종용하는 거대한 쇼룸이었을 뿐이다. 작업 앞에 서 있는 스태프는 모른다는 말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앵무새와 비슷했고,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스태프는 자기 고객에게 가구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비즈니스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전시에 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신고전주의 양식의 인테리어와 벽화가 돋보이는 장중한 팔라조 세르벨로니의 모습.
그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모르겠다. 다만 무례한 사람이 곳곳에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마크 뉴슨과 협업한 작업을 보지 않은 게 찜찜해서 전시 층에 있는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마크 뉴슨의 신작인 ‘호기심의 캐비닛(A Cabinet of Curiosities)’은 어디에 있는지. 처음으로 분명한 답을 들었다. 야외에 있단다. 이상하다. 야외라면 마크 포르네스의 파빌리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20분 동안 와인을 마시면서 계속 둘러봤던 터였다. 할 수 없이 중정 쪽으로 내려가서 근처에 있는 스태프에게 물었다. “마크 뉴슨의 신작인 ‘호기심의 캐비닛’은 어디 있나요?” 그는 짜증이 한가득한 표정으로 저 아름답고 복잡한 파빌리온을 가르켰다. “Go, Go, Go! That’s it”. 마크 뉴슨과 마크 포르네스를 완전히 착각하는 그의 두둑한 배짱이 부러워졌다. 아니, 그래서 마크 뉴슨 작업은 어디 있는데?
이런 어정쩡한 상황을 그냥 넘기기엔 오기가 생겼다. 나는 22일 토요일 오후 팔라조 세르벨로니를 다시 찾아갔다. ‘루이 비통 by 마크 뉴슨’,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현수막들이 평온하게 펄럭이는 전시장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마크 뉴슨의 작업만 확인할 요량으로 저널리스트임을 밝혔다. 그리고 마크 뉴슨의 신작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중정 끝에 있단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걸어가 보니 화요일에는 닫혀있던 외부 통로가 존재했다.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경비원이 제지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널리스트인데, 마크 뉴슨의 작업을 보려고 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오직 루이 비통 스태프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마크 뉴슨과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글자를 함께 인쇄한 현수막을 건물에 저리 크게 걸어놓고 스태프 전용 출입이라니? 그때부터 난 루이 비통 스카프와 배지를 착용한 사람이 보일 때마다 말을 걸었다. “마크 뉴슨의 새로운 작업은 어떻게 해야 볼 수 있나요?” 제각기 다른 대답이 나왔다. “당신은 못 봐요”, “미안해요. 저는 다른 부티크에서 나와서 여기 사정을 전혀 몰라요.”, “고객님이랑 얘기해야 하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건물을 뱅뱅 돌며 입장을 위해 줄 서 있었다.
토요일 다시 만난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좌) 마크 뉴슨의 작업이 있는 정원으로 향하는 문.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했다. (우)
토요일 다시 만난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상)
마크 뉴슨의 작업이 있는 정원으로 향하는 문.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했다. (하)
여러 번 입씨름 끝에 단서를 잡았다. 루이 비통 웹사이트로 들어가면 된단다. 글로벌 사이트가 아니라 이탈리아 사이트 말이다. 그러자 스마트폰 화면에 마크 뉴슨의 사진이 최상단에 떴다. 급하게 눌러보니 이탈리아어가 나와서 번역기를 돌려 확인했다. 결론은 입장 불가. 하도 답답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48시간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단다. 그리고 일요일에 전시가 끝나므로 결국 이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나는 항변했다. 화요일 저녁에는 아예 입구가 닫혀있었다고. 그리고 인터넷 예약에 대한 어떤 사전 고지도 듣지 못했다고. 루이 비통 이탈리아 사이트를 통해야만 한다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찾는 전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마크 뉴슨의 신작을 볼 수 있겠냐고. 그러자 루이 비통 배지를 단 남자가 말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규정상 서 있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비켜주세요.” 그가 말한 자리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들은요?” 그는 지겨운 듯 한숨을 쉬며 우리 모두에게 자리에서 떠나라고 말했다. 화요일 저녁만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서 있었고, 바로 옆에는 오브제 노마드에 참여한 작가들의 포트레이트를 박은 패널이 있는 그곳에서.
루이 비통 직원이 얼른 비키라고 했던 자리 바로 옆에는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소개와 이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포트레이트가 패널로 세워져 있었다.
루이 비통이 팔라조 세르벨로니에서 진행한 행사는 한 마디로 사람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귀한 시간을 내고 오랜 시간 기다려서 전시를 보는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제대로 관람할 수 있었을까. 전시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신기한 기물을 구경하는 느낌으로 전시장을 배회했으리라. 루이 비통이 유일하게 챙긴 대상은 가구 매상을 올려줄 손님뿐이었고, 환한 미소는 그들에게만 허락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따로 있다. 바로 루이 비통과의 협업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창의성을 발휘하며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성심성의껏 준비했다. 그리고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떨리는 기대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들은 자기 작업이 관람 대상이 아니라, 단지 구매 리스트의 일부로 취급되는 상황을 알고 있었을까? 화려한 인테리어와 멋진 작업을 기록한 설치 이미지와 좋은 말로 가득한 언론 보도에서는 전혀 알아챌 수 없는 기괴하고도 슬픈 세계가 세계 최고의 디자인 축제에 기생하는 풍경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브랜드 철학이 담긴 멋진 창작물을 보여준다는 미명 아래 전 세계 창작자가 모이는 축제 기간에 근사한 장소를 빌리고 철저하게 물신을 숭배하는 루이 비통의 모습을 몸소 접하니, 지금까지 루이 비통이 외치던 장인 정신, 디자인, 예술성, 협업에 대한 원대한 의지가 허상처럼 흩어지는 느낌이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4월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루이 비통에 기대한 장면은 결코 이런 게 아니었다. 창작자의 축제에 참여한다면 최소한 지켜야 하는 선이라는 게 있다. 바로 창작에 대한 존중이다. 루이 비통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거세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수준으로. 이 글을 본 루이 비통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I didn’t know.” 그리고 다음 행사 때는 또 이렇게 말하겠지. “I don’t know.” 아무것도 모르기에 언제나 당당한 루이 비통의 모습이 처연하다.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DESIGN» «SPACE 空間» «NOBLESSE»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HUFFINGTON POST KOREA»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BRIQUE»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THE EDIT»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지난 9월 2일부터 4일까지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22-2023(이하 ‘사이사이’)’이 열렸다. 행사의 흥미로운 부분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타이포잔치: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이하 ‘타이포 잔치’)’와 ‘사이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게 필요해 보인다. ‘사이사이’와 ‘타이포잔치’는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행사다. 그중 ‘사이사이’는 지난 2011년부터 격년으로 열리는 ‘타이포잔치’의 사전 행사에 속한다. 즉 올해 ‘사이사이’의 경우, 내년 9월에 개최하는 ‘타이포잔치 2023’의 주제를 미리 탐색하며 기대감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참고로 내년 타이포잔치는 ‘타이포그래피와 소리’를 다룬다. ‘사물화된 소리, 신체화된 문자’라는 이름 아래 진행한 이번 ‘사이사이’는 총 두 번의 강연과 워크숍 그리고 공연을 선행 스터디 개념으로 알차게 살펴보았다.
첫 날 열린 강연인 ‹음n음o음d음e음s음›은 교육자이자 글쓰는 디자이너 그리고 장서광인 알렉스 발지우Alex Balgiu가 연사로 참여했다. 시에서 문자와 소리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고 소리·시·그래픽 디자인을 광범위하게 연결하며 ‘우리 삶에서 시를 구체화하는 데 악보(score)와 교점(node)은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음n음o음d음e음s음›은 둘째 날 오전에 열린 워크숍 ‹시s시o시u시n시d시i시n시g시›와 긴밀하게 짝을 이룬다. ‹시s시o시u시n시d시i시n시g시›는 첫 강연의 연사인 알렉스 발지우의 인도 아래 참가자가 문화역서울284 주변을 산책하며 도시의 소리와 문자를 채집하고, 타자기·복사기·가위 등을 활용해 채집한 소재를 재구성한 뒤 그 결과물을 한데 모아 ‘타이포 성가(typochant)’를 완성하며 끝났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는 소리 시(sound poetry)를 배우고, 직접 지어도 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지며 타이포그래피의 열린 에너지를 경험하는 기회로 삼았다.
둘째 날 오후에 열린 두 번째 강연 ‹연주할 수 없는 악보, 보기 위한 음악›은 신예슬 음악 비평가가 이끌었다. 그는 서양 음악사에서 형성된 문자적 악보의 긴 흐름과 20세기 들어 달라진 기보 양상을 소개하고, 특히 그래픽 기보를 매개로 1950~6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기보 실험을 들여다보았다. 강연 후에는 신동혁 그래픽 디자이너가 대화자로 참여해 타이포그래피와 음악의 접점에서 다양한 사례를 공유했다. 청중에게는 소리가 없더라도 청각적 연상을 촉발하는 텍스트나 이미지, 기호를 읽는 행위 또한 그 자체로 음악을 향유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성찰하는 계기로 충분했다.
마지막 날에는 ‹문장 부호 이어말하기›라는 독특한 옴니버스 공연이 펼쳐졌다. 시인, 성우 지망생, 그래픽 디자이너, 글자체 디자이너, 뮤지션 등 총 6명의 퍼포머는 각자에게 주어진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영역에서 문장 부호를 다뤄 온 경험을 각자의 언어와 문법으로 공유하며 문장 부호에 관한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영감의 시간을 만들었다. 특히 디자인 스튜디오 1-2-3-4-5가 일명 ‘문장 부호 통역사’로 참여해 퍼포머의 발화나 연주에서 감지한 문장 부호를 실시간 그래픽으로 스크린에 띄우는 장면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형과 유형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을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어젠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와 소리의 기묘한 관계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파헤치는 시도는 둘 사이의 양가적인 특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이번 ‘사이사이’의 강연과 워크숍, 공연은 내년 본 행사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에피타이저 역할을 톡톡히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