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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옴표 사이의 것들: 타이포잔치 2023

Writer: 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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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옛 서울역사를 활용한 문화역서울284는 매번 흥미로운 전시로 SNS를 달구는데요. 격년마다 찾아오는 단골인 ‘타이포잔치’가 지금 문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인 타이포잔치의 올해 주제는 ‘문자와 소리’입니다. 문자와 소리, 시각과 청각, 사물과 신체를 연결하고 실험과 실천을 촉발하는 타이포그래피에 주목하는데요. 비애티튜드의 귀중한 필자인 박재용 님이 전시 전반에 걸친 번역과 행사 통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옳다구나’ 싶어서 리뷰를 부탁드렸어요. 이번 타이포잔치에 관한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전시를 번역하기

리뷰를 시작하기 전, 타이포잔치 2023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전시 전반에 쓰인 텍스트 번역과 행사 통역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밝히는 게 좋겠다. 이 전시를 기획하지 않았고, 작가로 초대받지도 않았으나, 통·번역가의 입장에서 전시 준비 과정에서 생성되는 텍스트와 작품 일부를 그 어느 관객보다 빠르게 살펴보는 기회를 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고용된 한 명의 성실한 일꾼으로서 내게 전시 예산의 일부가 집행되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두고 싶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전시에 대한 나의 호오(好惡)의 판단은 독립적이다.

‘전시’에 관련한 텍스트를 번역하는 건 종종 큰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이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될 전시 텍스트를 잘 번역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따라서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수 없는 전시를 마음껏 상상해야만 한다. 물론 텍스트만 보고 멋대로 상상하는 건 아니다. 이미 완성된 결과물이 있다면 이미지나 영상을 미리 보기도 하고, 과거에 만들어진 것을 바탕으로 전시에서 구현될 작업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전시 공간에서 펼쳐질 작업을 다루는 텍스트를 적절하게 번역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전시를 어느 정도 그릴 수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종종 여러 감각을 향해 공감각적으로 뻗어 나가거나, 텍스트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틈을 잔뜩 집어두고 관람객을 기다리는 전시들이 있다. 또한 그런 부분을 자신이 쓴 텍스트에서도 콕 집어 이야기하는 큐레이터가 있는가 하면, 두루뭉술하게 혹은 흥미로운 암시를 제안하듯 전시의 구조에 삽입된 틈과 구멍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큐레이터도 있다. 번역가의 입장에서만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경우는 전자다. 하지만 관람객이나 동료 큐레이터, 비평가의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흥미롭다. 무엇보다, 2001년 첫 번째 전시를 개최한 후 10년 동안 공백기를 가지고 지난 2011년에서야 격년으로 꾸준히 열리기 시작한 ‘타이포잔치’가 항상 문자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오가며 여러 가지 문자 체계를 활용해 의미를 옮기는 번역가에게 타이포잔치는 즐겁지 아니할 이유가 없는 전시라 하겠다.

타이포잔치 2023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중앙홀 전경 © 글림워커스

소피 두알라, ‹검은 토끼를 따라› © 글림워커스

타이포 + 잔치 = 타이포그래피 × 전시 ≠ 오탈자 + 파티

2년에 한 번, 벌써 여덟 번째를 맞이한 타이포잔치는 누가, 무엇을 위해서 여는 전시일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DCF)과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공동 주관하고, 국립한글박물관과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협력하는 타이포잔치는 전 세계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로 옛 서울역 건물을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문화역서울 284를 주 무대 삼아 치른다. 지난 몇 차례, 비엔날레는 문자와 몸, 문자와 도시 등 문자와 ‘그것’을 둘러싼 관계를 주제로 삼았다. 전시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 전시와 얼핏 착각하기 쉽지만, 글자 혹은 문자의 배열을 뜻하는 ‘타이포그래피’를 출발점으로 삼는 본행사는 상당히 학구적이다. 전시장에 놓인 작업물을 그저 미술 작품 보듯 관람하는 대신, 일종의 시각적 선언문이나 연구를 해석하듯 바라보아야 할 이유다.

양위차오, ‹칠판 스크리보폰› 공연 © 글림워커스

손영은, ‹종이울음› 공연 © 글림워커스

한편, ‘타이포typo’와 ‘잔치janchi’는 하나로 모아 붙이기엔 조금 묘한 조합이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다. ‘typo’라는 단어는 곧 오탈자(誤脫字)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타이포잔치typojanchi’는 ‘오탈자 파티’를 뜻하는 걸까? 다행스럽게도 이제 타이포잔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기획 측에서 말하길, 세계에서 유일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라는 정체성은 참여 작가 섭외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글이라는 독특한 문자 체계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열리는 행사는 분명 매력적인 제안일 테다.

헤르디마스 앙가라, ‹라숙› 공연 © 글림워커스

헤르디마스 앙가라, ‹라숙› 공연 © 글림워커스

현대미술이더라도, 그것이 아니더라도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얼핏 현대미술 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참여 작가가 작업을 선보이는 방식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미술적 문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요쎄 필의 ‹ㄴㅐ새ㅇ가ㄱ으ㄹ마ㅅ보ㄹㅅㅜ가어ㅂㅅ어›는 폐허를 재현한 조각적 설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근대 문화재이기도 한 옛 서울역사의 고풍스러운 공간에 놓인 잔해들은 이 전시에 ‘작가’로 참여한 요쎄 필이 각각의 잔해에 새긴 부조의 형상을 통해 (우리가 아는 언어로는 소리를 내 읽을 수 없는) 문장을 만들어 보여주는 결과다. 이를 두고 언어를 주제 삼은 현대미술 작품으로 볼지, 언어를 표현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연구나 프레젠테이션에 가깝다고 판단할지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른 결로 다가설 것이다.

요쎄 필, ‹ㄴㅐ새ㅇ가ㄱ으ㄹ마ㅅ보ㄹㅅㅜ가어ㅂㅅ어› © 글림워커스

굳이,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가 미술 전시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전시가 만들어진 틀을 고려하며 바라보았을 때, 비엔날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훨씬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예컨대, 미술가 조혜진의 ‹이주하는 서체›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이주민들의 손 글씨를 토대로 만든 한글 서체를 배포하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활자 꼴의 형태가 누군가에게는 위계로 작용할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작업이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서체와 해당 서체가 만들어진 과정 및 그 일부를 출력해 벽면에 배치한 작업을 타이포잔치에서 마주하는 일은 현대미술 전시에서 동일한 작업을 마주쳤을 때와 확연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는 다섯 명의 이주민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의 꼴과 획을 부조 형태로 확대해 바닥에 배치하고, ‹다섯 개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선보인다. 그간 조혜진의 작품은 주로 소외된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현대미술 전시에서 만날 수 있었다.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에서 그의 작업은 활자 꼴의 이면에 대한 코멘트로 재배치된다.

조혜진, ‹이주하는 서체›, ‹다섯 개의 바다› © 글림워커스

글자와 소리의 틈과 사이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에서 현대미술 전시에서 만났던 작가 혹은 작품을 다시 만난다면, 앞서 언급한 두 작품처럼 관점을 살짝 비틀어서 바라보기를 권한다. 타이포그래피가 주인공인 이번 전시가 계속 어디선가 마주친 적 있는 현대미술 전시처럼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포그래피, 글자, 혹은 문자를 중심으로 만든 전시가 왜 미술 전시처럼 보이는 걸까?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기획팀이 제안하는 전시의 방향에 따르면, 전시는 문자와 소리에 집중하면서 타이포그래피를 경유하여 서로 다른 감각을 ‘교차’하고 ‘차이’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잘 맞아떨어지는 화음보다 불협화음에 가깝고, 꽉 짜인 틀보다는 즉흥적 호흡을 따르는 쪽에 가깝다.

양위차오, ‹칠판 스크리보폰› © 글림워커스

우리에게 고정된 틀을 잠시 벗어나 틈과 사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권하는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에서 현대미술 전시의 기시감을 느낀다면, 그건 단지 전시장에 놓인 작업물들이 미술작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만은 아닐 테다. 실제로 이 전시가 말하는 바는 많은 현대미술 전시에서 접하는 것과 그리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를 보고서 그리 머지않은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진행 중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까지 함께 관람하길 권한다. (타이포잔치와는 조금 다르게) ‘지도’를 열쇳말 삼은 본격 현대미술 전시인 올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탈영토적’ 사유를 강조하는데, 그중에는 (마치 올해 타이포잔치처럼) ‘말’과 ‘소리’를 다룬 부분들이 있다. 두 전시를 함께 보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점을 천천히 음미해 보아도 좋겠다.

이수지, ‹콤포지션› © 글림워커스

요코야마 유이치, ‹광장› © 글림워커스

전시장을 떠나기 전에

때때로 ‘글자들의 잔치’라고 불리는 타이포잔치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활자 혹은 글자의 배열을 뜻하는 타이포그래피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가 아닐지라도 실은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 눈 앞에 펼쳐진 글자들의 배열 또한 타이포그래피의 하나다. 전시장을 떠나기 전에, 문화역서울284 1층과 2층에 배치한 작품으로 이뤄진 전시 전체를 어떤 문장이나 글자, 단어의 배열을 보고 듣는 것처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더불어 이 건물이 우리에게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라는 말을 건네고 있다면, 어떤 종류의 말인지도 상상해 보자.

(정답을 제안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나는 이 전시가 고막을 두드리는 시끄러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귓가에 들리는 대사가 없는 무용처럼 말한다고 느낀다. 전시장에 들린다면, 공간에 놓인 가벽과 구조물을 유심히 살펴보길 권한다. 모든 구조물은 건물 벽에 기대어 서 있거나, 구멍을 뚫어 고정하는 대신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 물리적으로 무엇 하나 고정되지 않고 기대고 붙잡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인데, 이런 태도는 전시 전반을 꿰뚫고 있다. 결국 이번 전시는 무엇 하나 고정되지 않고 조금씩 틈을 내어 벌어져 있다. 전시의 모든 것이 따옴표를 두른 잠정적인 대상이 되면서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슬라브와 타타르, ‹사랑의 편지 1, 2, 3, 8, 9번› © 글림워커스

그러니 타이포잔치 전시에 방문한다면 의미에 대한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전시가 건네는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모든 것에 정답을 내놓아야 하는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새 혹은 사이에 놓인 이 공간은 애석하게도 아주 짧은 기간 일시적으로 존재하고 사라진다. 타이포잔치 2023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는 10월 14일까지 존재할 예정이다. 그리고 2년 뒤인 2025년에야 다른 이야기와 함께 돌아올 테다. 그러니 따옴표 사이의 것들을 보려는 이는 너무 늦기 전에 들리길 권한다. 

에릭 티머시 칼슨, ‹ETC×본 이베어: 10년간의 예술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 글림워커스

Exhibition

타이포잔치 2023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따옴표 열고 따옴표 닫고»

기간: 2023. 09. 19 – 2023. 10. 14

참여작가: 강문식, 김뉘연·전용완, 내트 파이퍼, 럭키 드래건스, 마니따 송쓰음, 머티 인도 고전 총서, 문정주, 박고은, 박철희, 새로운 질서 그 후, 소피 두알라, 손영은, 슬라브와 타타르, 신도시, 신동혁, 아스트리트 제메, 야노 케이지, 양위차오, 양으뜸, 에릭 티머시 칼슨, 에즈키엘 아키노, 오케이오케이 서비스, 요쎄 필, 요코야마 유이치, 이동언, 이수성, 이수지, 이윤정, 이정명, 이한범, ㅈㅈㅈㅈ 제롬 엘리스, 조혜진, 조효준, 크리스 로, 크사베리 키르클레프스키, 타이거 딩선, 티슈오피스, 헤르디마스 앙가라, 『그래픽』 50호 (가나다 순)

Place

문화역서울284: 서울 중구 통일로 1

Writer

박재용은 주로 한국 서울에서 활동하는 필자, 통·번역가, 큐레이터다. 장서광으로, 동시대 미술과 이론 서가인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리서치 밴드 NHRB(@nhrb.space)에서 허영균과 함께 프론트맨으로 활동하고, 정성은, 김수지와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인 ‘서촌코미디클럽’(@westvilalgecomedyclub)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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