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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 MMCA 과천관

Writer: 전종현
, Photographer: 박도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갔다. 마지막 발길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다. 날씨는 좋았고, 기대감은 커졌다. 순수예술과 건축, 디자인은 서로의 방법론을 차용하며 경계를 허물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미술관을 장악하는 주체는 정해져 있다. 클라이언트 잡을 기반으로 자신의 창작관을 조금씩 확장하는 건축과 디자인은 창작 동력이 온전히 창작자 개인에 쏠려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술관 무대에 진입하기까지 수많은 반대와 색안경을 견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명실공히 국내를 대표하는 신진 예술가의 등용문인 «젊은 모색»이 2021년 40주년 특별전을 치른 후 첫 번째 여는 전시의 주인공으로 건축, 디자인 장르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을 환대했다는 점은 가슴 떨리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 2전시실, 중앙홀에 배치한 13명(팀)의 작업을 꼼꼼히 살펴보니 2시간 남짓이 흘렀다. 전시를 보는 내내 주화입마에 걸릴까봐 마인드 컨트롤이 필수였다. 분노와 짜증, 안타까움과 후회가 복잡하게 얽혀 온몸의 혈관을 답답하게 누르는 느낌은 전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섹션에 박아놓은 설명, 실견하는 작품, 오디오 가이드와 브로슈어로 획득한 정보가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계속 끊어지는 상태에 대한 일종의 신체적인 자동 반사였다. 전시 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질문의 답을 끝끝내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과연 이 전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젊은 모색»의 장점 중 하나가 독립성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21년이나 2010년대 열린 «젊은 모색» 전시를 보면 이름이 아주 깔끔하다.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젊은 모색’이다. 즉 공통된 주제로 창작자를 몰아세우기보다 자기가 천착하는 바에 대해 다양한 작업으로 소신을 보여주는 자유로움을 보장한다. 이는 신진 예술가의 등용문으로 기능하는 핵심 지점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미술관에 대한 주석’이란 부제를 붙이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주제이자 소재로 정해놓았다. 그들에게 특정 주제를 던지고 커미션 워크를 요청하는 방식은 «젊은 모색»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태도와 큰 거리감이 있다. 젊은 작가의 개성과 신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은 작가에게 모든 걸 위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참여자는 최상이 아닌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게 미덕인 건축, 디자인 필드에서 비범한 성취를 보여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정 주제와 소재를 제시하고 조형적인 해석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행위는 그들이 지금껏 이룩한 합리적인 톨레랑스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즉,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뜻이다.

요목조목 따져보자. 만일 건축, 디자인 쪽 창작자가 지닌 해석의 다양성을 손쉽게 끌어내고 싶어서 미술관을 선택한 거라면, 소재가 잘못됐다. 수많은 미술관 중에 왜 하필이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인가? 위치와 조형 요소, 구조가 명확하게 가시화된 미술관을 위해 주석을 달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존재하는가? 전시 기획 방향이 그렇기에 따라야 한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정 필요한 기획이었으면 «과천관을 위한 주석»이란 전시로 따로 진행하면 될 일이다. «젊은 모색»이란 타이틀 아래 “전시 제목의 ‘젊은’만큼 ‘모색’에도 집중한다”는 기획의 글은 난센스다. 실상 과천관을 모색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석을 다는 대상이 굉장히 편협하다. 관념적 대상으로서의 미술관을 살짝 다루는 듯싶다가도 결국 주인공은 과천관 및 전시가 열리는 1, 2 전시실이며, 과천관에 대한 정보를 폭넓게 해석하는 것 같으면서 실상은 1, 2 전시실에 머문다. 1, 2 전시실이 작업 대부분의 요람이 되어야 하는 정당성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전시실에 기둥이 많다는 이유로 떠오른 기둥의 존재가 작가 세 명이 천착할 가치를 지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1, 2 전시실에서 열렸던 200개의 전시 중 36개밖에 남지 않은 도면 ‘아카이브’ ― 아카이브라고 부를 수 없는 비루한 자료 ― 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행위가 정말 전시에 대한 주석을 다는 작업인지 헷갈린다. 과천관에서 열린 주요 전시 포스터를 해체해 재구성한 작업의 밑바탕은 왜 1, 2전시실 전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지, 과거 열린 전시의 평면도와 투시도를 재활용했다는 설치 작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왜 과천관의 평면도와 투시도만 나타나고, 전시 도면이라고는 이번 «젊은 모색» 하나만 출현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작가의 작업실과 과천관까지의 이동 경로와 풍경, 경계를 다룬 작업을 보면서 정작 작업실 위치가 어딘지 몰라 전혀 몰입되지 않는 게 나 혼자뿐인지, 미술관과 관객이 관계 맺는 지형지물을 상상한다면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과천관의 공간을 그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이유에 답답함을 느끼는 게 이상한 일인지 정녕 모르겠다.

나를 더욱 예민하게 만드는 지점은 여러 텍스트와 작품 제목, 작품 설명에서 보이는 일종의 선민의식이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제도 공간”이라고 과천관을 정의하는가 하면, 과천관의 물리적인 특징과 공간의 리듬을 종교에서 나타나는 의례적 특성으로 격상시켜 특정 공간을 예배당으로 치환하거나, 미술관의 버려진 계단으로 접근하는 길을 제단으로 명명하며 “신성한 기운”을 운운한다. 이미 동시대적 흐름에서 소멸해 버린 미술관의 권위와 신비감을 좀비처럼 되살리는 자기 위안적 흑마법은 모두를 과거로 퇴행시킨다. «젊은 모색»이란 ‘젊은’ 전시가 과천관을 신성시하는 제물로 바쳐지는 광경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이쯤 되면 작가들은 얼떨결에 어용 전시에 부역하는 피해자이자, 동시에 관객을 우롱하는 타의적 공범과 다름없다. 

개인적으로 건축과 디자인을 사랑하고 이쪽에서 활약하는 창작자를 존중하지만, 이번 «젊은 모색»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작업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 실망스럽다. 주석을 달려면 원문이 필요하고, 이때 원문은 그 무엇보다 명확하고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이 달아놓은 주석은 뿌리를 이루는 원문부터 마구 흔들거린다. 영점 조절 없이 쏘는 총처럼 불안하고, 초점이 계속 바뀌어 어지러움을 선사한다. 거의 정신 분열적인 결과다. 전시실 출구 쪽에 비치한 관객이 메모를 남기는 섹션에는 ‘어렵다’, ‘지루하다’, ‘알 수 없다’란 말이 자주 보였다. 이런 말이 21세기 전시에서 가장 기피한다는 사실은 다들 알 것이다. 재미있지만 어려운 전시는 존재해도, 어려워서 재미있는 전시는 없다. 이런 이해 불가능이 심오한 철학적 세계를 탐구하는 데 드는 심적, 지적인 무게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작업과 이를 둘러싼 여러 레토릭 ― 심지어 이마저 혼자 논다! ― 의 향연 때문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둥을 가리지 않고 가벽을 최소화한 덕분에 전체 풍광이 훤히 보이는 매력적인 씬으로 만족하기엔 우리 시간의 가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년 «젊은 모색»은 올해와는 다른 의미로 파격적이고 놀라움으로 가득 차길 기대해 본다.

Exhibition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기간: 2023. 04. 27 – 2023. 09. 10

Place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Admission

성인: 2000원

대학생, 예술인 패스: 무료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이다. 주로 렌즈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를 제작하며,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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