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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계 사이의 엇모리: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Writer: 조주리
header_⟪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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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수동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트렌드의 첨병, 팝업의 천국이 요즘 성수동을 요약하는 단어일 거예요. 마하의 속도로 하루하루 변해가는 이런 성수동에서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성수역 지근거리에 위치한 우란문화재단입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우란답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독자적인 결을 유지해 왔어요. 전통 예술과 공예적 유산을 동시대 미술과 디자인, 제작 문화의 삼각 구조에 조심스레 올려두고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큐레이션하는 모습은 광폭한 빠름이 지배하는 성수동에서 보기 드문 넉넉한 템포로 방문객의 찬탄을 받았습니다. 이런 우란문화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이해 기획전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성수동의 속도감을 전통음악의 장단에 빗대어 바라보고, 이를 작가 7명이 각자 호흡으로 풀어낸 작품을 전시로 묶었는데요. 이를 통해 개인의 의미 있는 장단을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게 목표랍니다. 예술과 디자인을 넘나들며 큐레이터로 활약하는 조주리 님에게 이번 기념비적인 전시에 대한 리뷰를 부탁드렸어요. 지난 2020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전시에 기획자로 참여한지라 장소성에 대한 선지식이 탁월하고, 업계에서 글 잘 쓰고 맥락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분으로 소문이 나 있기에 리뷰어로 제격이었지요. 우란문화재단의 기획전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를 더욱더 흥미롭게 경험하는 포인트를 아티클에서 어서 확인해 보세요.

하루가 멀게 요란한 기세로 이 세계의 물신을 받잡는 온갖 파빌리온이 만들어지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의 성수다. 팝업pop-up이라는 단어 그대로 온갖 브랜드와 트렌드가 ‘툭 튀어나오는’ 견본시(見本市)이자 하입hype의 성지로 자리 잡은 성수를 걷노라면, 여기가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 비교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요즘은 성수가 ‘한국의 브루클린’이 아니라, 브루클린이 ‘미국의 성수’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지만.

다국적 무드의 카페, 레스토랑, 화려한 가게가 꽉 들어찬 대로와 대로, 모세혈관처럼 얽혀있는 작은 골목과 골목 사이로 파고 들어가 조금만 더 섬세히 살펴보면 이곳이 얼마나 복합적인 삶의 지층을 포함하는 장소인지 오감으로 가늠할 수 있다.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옛 공장 건물이 군데군데 남아있고, 피혁을 가공한 신발과 잡화를 제작하고 유통하던 ‘터’의 기운과 인력 및 물자가 드나드는 사운드가 공명한다. 

번쩍이는 빌딩 클러스터와 남다른 시세를 자랑하는 부티크 주거 시설이 지어지기 이전을 돌이켜보면, 이곳은 오랫동안 노동자계급, 즉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의 지대였고, 사회 초년병과 자취하는 학생이 몰려있던 거주지였다. 게다가, 서울 사대문 안 북촌이나 서촌에서 풍기는 고즈넉한 반가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산업화된 수공예의 본진이었다. 소가죽을 비롯한 동물의 피혁, 장식을 위한 다양한 부자재를 두루 다룰 수 있는 아티잔artisan 그룹이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시간의 서사와 공간의 증거로 가득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성수에서 팝업 행사가 아닌 오랜 기간 진득한 준비를 거쳐 내놓는 전시를 만나는 일은 다른 곳에서의 경험보다 갑절 이상으로 반갑다. 그 중심부에서 활동하는 우란문화재단은 현재 성수에서 가장 걸출한 문화예술 공간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성수동이라는 주변 상권, 전시라는 동종업계를 분주하게 만드는 광폭한 속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매해 빼놓지 않고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오랜 기간 전시를 열어두는 우란문화재단의 템포는 확실히 귀하다.

우란문화재단외관사진
우란문화재단외관사진2

동빙고동에서 지금의 성수역 부근으로 사옥을 옮긴 후 활발한 행보를 보인 우란문화재단은 꾸준한 기세와 밀도로 자체적인 전시 영역을 개발하고, 기획 문법을 창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전통 예술과 공예적 유산을 전시의 소재로 다루면서 프로덕션 방식 또한 여타의 기관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명확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독자성의 요체는 전통 공예와 장인에 대한 장기 연구에 기반한 학제적 방식의 큐레이팅과 다양한 매체를 병치하는 시청각적 양식에서 비롯된다고 느낀다. 

우란문화재단은 그 건물부터 인상적이다. 물리적으로 꽤 큰 볼륨을 차지하며 범상치 않은 외관을 지닌 이 구조체는 남다른 예술적 위용을 가졌음에도 주변 공간과 내방객을 압도하지 않는다. 내부는 대체로 단정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외부인이 늘상 거치기 마련인 인포데스크도, 신원을 묻는 경비원도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어느 방향의 출입문을 거치든 예닐곱 발짝만 걸어 들어가면 전통 공예와 현대미술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시 공간의 초입으로 진입할 수 있고, 안쪽으로 다시 몇 발짝 더 내디디면 방문객 앞에 더 많은 것을 펼쳐낸다. 미려하고 고요하게 단장한 전시장을 조금 더 자세히 돌아보면 물질과 사물, 인간과 문명을 관통하는, 묵직하고도 까탈스러운 쟁점을 다룬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수집과 보존을 중시하는 전통 박물관의 실천 양식과 기획 및 창작을 조명하는 현대 미술관의 영역 사이에서 매번 다른 좌표를 점유하는 우란문화재단은 공예의 영역을 동시대 미술과 디자인, 제작 문화라는 삼각 구조에 조심스레 올려두는 이색적 전시를 배태했다. 오늘날 생동하는 시각문화 담론으로 확장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멀리서 관망하고 가까이서 톺아보는 일은 퍽 재미난 구경이다. 연구자이자 기획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으로서 말이다.

올해 재단 창립 10주년을 맞이해 전통 음악에서 사용한 악기와 리듬을 열쇠말 삼아 전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꼭 ‘우란다운’ 접근 방식이라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생각만큼 가시화하기 힘든 청각의 영역과 박자라는 감각을 어떻게 구현하고 종합했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정성스레 조명한 전통악기는 표층에서 가시화된 소재일 것이요, 심층에서 닿고자 한 점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악기를 만드는 이로 대변되는 진중한 삶의 박자, 나아가 음악의 작창 과정과 공연에서의 수행을 살피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박자가 아닐까 추정해 보았다. ‘악기의 부분과 전체, 제작자의 마음과 수행자의 몸, 개인과 공동체 간의 결속과 어긋남, 그 밀고 당김의 원동력을 추적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같은.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 전경

우란문화재단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 입구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가 열리는 우란문화재단 1층의 전시장, 우란1경을 방문해 기획의 글을 살펴보니 이런 의도가 눈에 들어왔다. “성수동의 속도감을 전통음악의 ‘장단’에 빗대어 바라보고, 그 특징을 각자 호흡으로 풀어낸 작가 7명의 작품을 통해 개인의 의미 있는 장단을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전시를 보기 전 지레 짐작한 향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심 반가웠는데, 성수라는 지명을 특정하고, 작가 개인의 관찰과 논평으로 전시의 발화 스펙트럼을 겸손하게 조정한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전통 음악의 요소로 현대 도시의 속도를 살펴보려는 교차적 시도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어긋남이었다. 과연 어떻게, 혹은 얼마만큼 가능한 일일까? 농업시대를 대변하는 민속 음악의 원초적 흥과 후기산업사회의 도심을 부유하는 사운드의 불협화음, 오래전 산업 영역으로 편입된 대중음악의 코드화된 ‘쪼’를 연결해 시대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무엇인가를 성찰하기란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 전경3

벽면에 배치한 자료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공했다.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우리는 전시에 풍덩 빠지기 전, ‘장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장단은 음의 길고 짧음이라는 표준적인 정의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전시에서 주목한 장단은 주로 장구와 북처럼 타악기 연주에서 강조되는데, 악곡에서 기본적인 리듬을 형성하는 요체다. 장단의 틀거리 안에서 선율 또한 존재하므로 전통음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장단은 서양의 박자 혹은 리듬의 개념으로 동일하게 번역할 수 없다. 일정한 리듬 꼴이긴 하지만, 동시에 강약 주기와 고유한 빠르기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장단이란, 물리적 빠르기를 규정하는 서구식 개념과는 달리 연주자의 신체적 몰입과 협연자와의 시간적인 조응, 환경적인 맥락을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재즈 연주자의 유연한 그루브groove 감각이나 스윙 연주에 담긴 박자의 탄성과 유사할 수도 있다. 더불어 농악, 판소리와 같은 전통 음악을 바라볼 땐 무대에 올리기 위해 탄생하지 않았다는 특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상적 노동과 놀이의 일부로 작동했던 지점을 전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빠르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흥적인 변주가 가능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임선빈 전시전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선빈 장인의 북 작업. ‹메구북(못북)›, 2015, 오동나무, 소가죽, 36.5 × 24 / ‹고쟁이북(소리북)›, 2021, 소나무, 소가죽, 황동못, 38 × 26.5 / ‹장단북›, 1961, 오동나무, 소가죽, 비호못, 59 × 50 / 임동국 장인과 공동 작업한 ‹메구북(사물북)›, 2015, 소나무에 카슈칠, 소가죽, 44 × 27 / ‹장단북›, 1961, 오동나무, 소가죽, 34 × 40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이런 특성을 감안하면, 전통적 모양새의 북과 장구는 일종의 제유(提喩)에 해당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결정한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는 장단 부호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 중 핵심은 둥글게도, 반듯하게도 아닌, ‘때로는’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적인 자기 판단과 집단적인 몰입이 동시에 일어나며 그 ‘때’가 정해지고, 북을 치는 이의 머리와 어깨, 팔, 손가락, 노래하는 이의 성대가 직관적으로 협응하며 비로소 그 ‘때가 일어나는 까닭이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김진곤 전시전경

다양한 장구를 전시한 모습. (왼쪽부터) 김진곤 장인 소유의 ‹농악쪽장구›, 1980년대, 미루나무, 오동나무, 32.5 × 33 × 54, 김진곤 장인이 작업한 ‹사물장구›, 2024, 오동나무, 소가죽, 28 × 29 × 51.5 / ‹무속장구›, 2005, 오동나무에 자개, 소가죽, 29 × 30.7 × 52 / ‹반주장구›, 2010, 물푸레나무, 28.5 × 29.7 × 57.5 / ‹장단장구›, 2024, 소나무, 29.5 × 31.5 × 54.3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작가군이 공간을 채우며 독특한 어울림을 만들어 낸다. 전통 장인과 동시대 미술가의 작업이 동일 선상에 서있고, 소장품과 커미션 작업이 한 프레임에 담기며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작품 간의 과감한 믹스매치가 부르는 전시의 시각성과 관람객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스토리텔링은 관람을 쉽지 않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만큼 다양한 감상과 해석을 낳는다.

가령,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전통 방식으로 수천, 수만 개의 장구와 북을 만들어 온 김진곤과 임선빈의 작업물을 전시장으로 옮겨와 좌대 위에 올리는 순간, 국악기는 연주자의 몸에 예속된 도구이기보다 그 자체로 독특한 조각적인 사물이자, 공간을 호령하는 토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질 좋은 가죽을 구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과 끊임없이 무두질을 반복하며 솜씨 좋게 가죽으로 북을 메우고 끈을 매다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전시 관람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구와 북 여럿이 도열한 모습은 마치 제의를 치르는 하나의 장면으로, 가죽에 배인 노동의 시간을 기념하는 미학적 사건으로 다가온다. 살가죽을 두드리는 진동과 공명이, 북을 만든 이의 숨은 리듬이 공기 사이로 회절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이동훈 전시전경

이동훈, ‹일곱 번째 감각›, 2022, 느릅나무에 아크릴릭, 가변설치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전시를 이루는 한 축이 악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관람의 여정에서 다양한 세대와 실천을 대변하는 조각, 회화, 도자, 텍스타일, 사운드, 퍼포먼스, 텍스트, 무빙 이미지 작업과 만나게 된다. 일례로, 조각가 이동훈이 K팝 아이돌의 군무 씬에서 포착한 모습을 표현한 ‹일곱 번째 감각›(2022)은 어떤가? 역동적인 댄스 대형에 따라 서있는 목조각은 특유의 뻣뻣함 때문에 오히려 대상으로부터 시선을 해방하는 역설적 상황을 낳는다. 칼군무의 오작동에서, 완성이 덜 된 것처럼 보이는 조각적 양감에서 누군가는 음악 본연의 유희와 표출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할 수도 있겠다. 혹은 주문에 걸린 듯 멈추어진 장면 앞에서 능동적으로 BGM과 안무(choreography)를 덧입힐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박지원 전시전경

박지원, ‹Dig in the Ground›, 2024, 점토에 유약 소성, 각 20 × 20 cm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악기의 탄성 있는 가죽과 대비되는 소재로 제작한 작품들의 질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예컨대, 박지원 작가에게 새로운 도자 작업을 청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보다 시적인 해석과 감각적인 포용이 필요하다. 말캉한 가죽처럼 부드러운 흙을 빚어 고온에서 소성한 세라믹이 경화되고 형태와 질감이 우연히 변성하는 과정에는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2%의 영역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물과 흙, 불, 사람의 손길을 더해 이루어지는 도자의 단단함과 그 속에 깃든 연약함의 구조를 직시하는 일은 때로 악기를 쥐고, 패고, 어루만지며 이루어내는 여러 질감의 공명을 이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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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 ‹굳은 비와 너절한 모터음›, 2024, 모터, 스테인리스 막대, 와이어, 스피커, 앰프, 콘크리트, 나무 각재, 시멘트, 우레탄, 철망 등, 85 × 90 × 156 cm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안과 밖으로 실재하는 소리가 들린다. 근방에서 수집한 사운드에 직접 연주한 장구 소리를 개입시킨 서민우의 작업까지 온 것이다. 스스로 구체 조각(concrete sculpture)이라 지칭하는 작업의 묘사는 꽤나 서사적인 구석이 있다. 사운드의 거친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잔여음 덕분인지 도시의 특정한 풍경이 연상된다. 작가는 타격음을 지속음으로, 긴장감을 유연함으로, 가락을 노래로 옮겨오고자 한다. 분명 비가(悲歌)로 들리던 사운드의 해석과 감각적인 수용은 얼마든지 새로고침 될 수 있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뭎,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입구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뭎,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뭎,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2024,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상) 1분55초, (하) 18분 25초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전통 악기를 모범 삼아 복각한 악기, 그와 동떨어져 보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악기 구실을 하는 대상의 조각적 번안과 변형 과정이 전시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와중에, 몸과 공간을 직접적으로 매개하며 제작한 뭎의 퍼포먼스 필름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은 상이한 접근을 보여준다. 공간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을 예비하고, 몸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중계하는 이들의 작업은 전시 공간에서 관객의 신체가 작품을 통해 겪는 동일시와 객관화의 거리감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뭎의 작업은 단일한 주제 의식에 수렴 또는 종합되기보다, 여러 방향으로 분산하며, 기획의 동일성으로부터 작은 틈을 내어 새로운 감각과 호흡을 자극한다. 관람객은 적극적인 퍼포머이자 수용자로서 작가가 구축한 이질적이고 무한한 공간과 상황에 균열을 내고 구멍을 찾으며 한 편의 공연을 공조한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태싯그룹, Morse ㅋung ㅋung

태싯그룹, ‹Morse ㅋung ㅋung›, 2019, 단채널 영상,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4분 12초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태싯그룹은 또 어떤가. ‹Morse ㅋung ㅋung›(2019)은 텍스트의 운동 감각과 리듬을 다룬 오디오 비주얼 작업이다. 과학적인 리드미컬함은 관람에 쾌(快)를 더해준다. 한글 창제 원리를 모스 부호의 장단에 대입한 작업은 약속된 체계에서 일말의 무질서와 탈주를 허용하는 장단의 변주를 떠올리게 한다. 기본 장단에서 연주자와 관람객이 하나 되어 이어졌다 떨어지듯, 쪼개지고 더해지는 박 속에 그들이 만든 새로운 소리는 하나의 유기체이자 생명체로서 한 편의 공연을 펼쳐낸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임선빈, 링북,

임선빈, ‹링북›, 2020, 소나무, 소가죽, 200 × 300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이따금씩 전시에서 다루는 소재는 대주제로 가기 위한 방아쇠(trigger)이거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터뜨리기 전에 안전하게 깔아놓는 맥거핀MacGuffin일 때가 잦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단순히 음악에 관한 전시도, 악기를 소개하는 자리도 아니다. 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이란 측면에서 기관이 지향하는 방향과 지금의 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도를 응축한 결과물이다. 즉, 소재이자 주제이고, 트리거이자 맥거핀이며, 기관의 아이덴티티 강화를 위해 기존의 기호 체계를 ‘당겨오는’ 당김음(syncopation)의 과정이자, 아직은 이해받지 못할 일부분에 대해서는 멈칫 주저하면서도 결국 재빨리 ‘밀고 나가는’ 엇모리이기도 한 것이다.

우란문화재단 윈도우갤러리

(좌) 김진곤, ‹별신굿장구›, 2024, 오동나무, 개가죽, 22.5 × 24 × 47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우) 임선빈, ‹메구북(과정)›, 2022, 소나무, 소가죽, 55 × 36.5 © 우란문화재단, 촬영: 언리얼스튜디오

전시장 문을 나서니 생동하는 봄날의 거리와 마주한다. 우란문화재단 건물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지는 내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읽고, 이해하려고 애쓰던 머리와 몸통, 팔다리가 기민하게 이어지지 않고 붕 뜬 느낌에 사로잡힌다. 의식하는 순간 내딛는 걸음걸음이 어쩐지 이상한 장단이다. 그러나 장단 맞추기란 일단 장단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 아니던가? 실제 우리 삶에는 그 어떤 정해진 악보도, 따라야 할 무보도 없다. 세계 곳곳을 보면 불협화음과 엇박자투성이다. 공동체와 개인, 중심과 주변부, 그리고 세계와 나…

이번 전시가 만일 세계를 구성하는 오만 가지 것의 ‘장:단’에 대한 예민함을 심어주려 했다면 내게는 일말의 성공을 거뒀을 테다. 만일 이런 판단이 일렀다면 조금은 뭉개면서, 의도가 지연되고 있다면 빨리 당도하기를 기다리며,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높낮이가, 내일의 모양새가 꼭 그랬으면 좋겠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Exhibition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기간: 2024.03.13 – 2024.06.02

11시~19시 (일요일 및 공휴일 휴관, 단 6월 2일은 제외)

참여 작가: 김진곤, 뭎, 박지원, 서민우, 이동훈, 임선빈, 태싯그룹

Place

우란1경: 서울 성동구 연무장7길 11 우란문화재단 1층

Writer

조주리(@jurimillercho)는 현대미술 분야에서 기획자로 활동하며, 하나의 전시가 다음 전시로 이행하는 시간 속에서 개인의 연구와 비평 활동을 양분 삼아 공공의 기획과 작품 생산으로 연결되는 일을 제안하고 주도해 왔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성격의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하거나 독립적인 조직 형태로 기관과 협업하며 주로 큐레이토리얼의 방법적 확장과 변주, 예술적 지식 생산에 관한 실험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기획자로 활동하는 시기와 맞물려 런던 시티대학교에서 문화 정책 및 경영학을,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역사문화학을 공부했다. 현재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획한 전시로는 «원피스»(111cm, 2023), «고고학»(스페이스 중학 외, 2023), «나의 잠»(문화역서울 284, 2022), «Triple rings; 복각본들, 어제 글피로부터»(문화역서울 284, 2021), «홈, 커밍»(아름지기, 2021), «기획전»(문화비축기지, 2020), «루트 메탈리카»(을지아트센터, 2020), «화이트랩소디»(우란문화재단, 2020), «끈질기게 끈질긴»(d/p, 2019),«베틀,배틀»(토탈미술관, 2018), «동백꽃 밀푀유»(아르코미술관, 2016-2017), «리서치,리:리서치»(탈영역우정국, 2016), «2의 공화국»(아르코미술관, 2013)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국제교류전과 학술 행사, 레지던시 운영,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서울시의 공공미술 기획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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