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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of Seoul

피스오브서울: 김사월 ‹디폴트›

Writer: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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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피스의 주인공은 올해로 솔로 데뷔 10년을 맞이한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우는 뜨겁고 눅눅한 감정에 끈질기게 부딪히고 관찰하면서 매 순간을 디스코그래피로 성실하게 채우던 그가 얼마 전 네 번째 정규 앨범 ‹디폴트›를 내놓았습니다. 낙관도, 비관도, 긍정도, 부정도 없는 디폴트 상태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노래하는 음악가 김사월의 이야기를 피스오브서울에서 확인해 보세요.

‘나를 아껴줘 아니 그냥 내버려둬’에서 ‘사랑 없는 세상이 디폴트’까지 10년이 걸렸다. 농담으로라도 짧지 않은 그 세월이 유독 짧게 느껴지는 건, 매시간을 밀도 높게 채워온 김사월의 공이다. 네 장의 정규 앨범, 두 장의 라이브 앨범, 몇 장의 EP와 몇 장의 싱글. 빈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히 쌓인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보고 있으면 음악가는 음악으로 세상과 교류하는 존재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그토록 성실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우는 뜨겁고 눅눅한 감정에 끈질기게 부딪히고 관찰해 온 그가 이번에 닿은 곳은 낙관도, 비관도, 긍정도, 부정도 없는 ‘디폴트default’ 상태다. 두 눈을 꾹 감고 포맷 버튼을 누른 후 나타나는 새하얀 화면처럼 원점으로 돌아온 그는 그렇게 노래하는 게 자신의 숙명이라는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노래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을 거란 믿음에 마음이 든든하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네 번째 정규 앨범 ‹디폴트DEFAULT›를 가지고 돌아온 김사월과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글 말미에 인터뷰어가 작성한 김사월의 정규 4집 소개글 전문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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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정규 4집 ‹디폴트› 커버

얼마 전 ‘사월쇼’를 마쳤어요.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일단, 전 아직 쇼를 마치지 못했고요. 아직도 사월쇼를 하는 중인 것 같아요. (웃음) 실감이 안 나요.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무척 오랫동안 준비했거든요. 엄청나게 만끽한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냥 그 기분과 장소에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둘째 날 보러 갔어요, 공연이 열린 성수아트홀을 비롯해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정말 만족도가 높은 공연이었어요. 특히 이번 사월쇼는 앨범 수록곡을 순서대로 들려주는 형식을 택했는데요, 기획 배경이 있을까요.

제가 사월쇼를 만들게 된 건 김사월이라는 음악가를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활동을 계속하면서 평소에 하지 않던 시도를 재미있게 도전해 보는 쇼로 자리 잡았고요. 작년에는 10주년을 맞아 음악과 결혼도 했죠. 그런데 사월쇼를 10번 정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공연에서 앨범을 제대로 홍보한 적이 없더라고요. 제가 보통 가을에 앨범을 내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정규 4집을 낼 즈음에 고민이 들었어요. ‘하던 대로 가을에 발표할까? 아니면 봄에 내서 사월쇼까지 같이 가볼까?’ 결국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이번이 벌써 4집이니까 저도 스스로 전력을 다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또 그런 노골적인 홍보가 잘 어울리는 앨범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대놓고 사랑받고 싶어, 갈구하는 앨범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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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김사월 쇼: 디폴트› 포스터

라임부터 좋네요. 4집과 사월쇼. (웃음) 개인적으로 앨범 쇼케이스처럼 공연을 구성한 게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앵콜 ‘젊은 여자’를 밴드 멤버들과 둘러앉아 부르는 아이디어와 거기에 마지막 곡 ‘접속’이 이어지면서 자아낸 감상이 무척 특별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사흘 동안 공연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공연의 모든 장치가 행복하고 특별했어요. 김사월 밴드, 브라스, 코러스, 댄서, 3일간의 의상, 조명, 무대 장치들… 그렇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기실에 앉아 있던 출연자들 모습이에요. 다들 긴장감과 설렘 등의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더 장난치고, 떠들며 노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걸 보면 저는 안심해요. 저 사람들 믿고 그냥 하면 되겠다, 생각하죠. 이렇게 행복한 현장이 어디 있을까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 날 앵콜 곡 ‘접속’에서 관객분들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주셔서 관객석이 반짝거렸거든요. 제가 공연 중 객석 플래시와 함께한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런 풍경은 함께 하나 되는 노래에나 어울릴 텐데, 제 노래 중에 해당하는 곡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무척 작고 외로운 노래인 ‘접속’을 부르며 객석 플래시를 본 건 정말 충격이자 큰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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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이 벌써 정규 4집이에요. 감회가 궁금합니다.

지금 발매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요. 발매 직전 인터뷰를 하면서 앨범의 구조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엄청 열심히 대답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어떤 앨범이고, 앨범을 내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드는지 제대로 대답해서 잘 남기고 싶었어요. 그렇게 인터뷰를 쭉 한 뒤 지금에야 비로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바로 전혀 실감이 안 나고 ‘이제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어떡하지’인가요. (웃음)

이제 뭐 하지, 다음 작업은 뭐 하지, 이번 엉엉콘에서는 뭐 하지… 내년 사월 쇼는…’ 같은 생각입니다. 음악가가 늘 꾸준히 활동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약간 그런 리듬이 생겨버려서 부담도 돼요. 그러나 다음 것을 해야 하므로 덜 쳐지고, 어쩔 수 없이 힘을 낸다는 점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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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차근차근 여유롭게 준비한 앨범이라 그런지 사월 님에게 남다른 작업이었다고 들었어요.

막상 대답하려고 하니까 좀 쑥스러운데요, 보통 오랜 기간 준비했다고 하면 최소 5년, 7년,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저는 이번에 한 3, 4년 가져봤습니다. (웃음) 제가 지금까지 정규 앨범을 낼 때마다 제작 기간이 너무 짧았어요. 만든다는 게 결국 다 비용과 연관이 되어 있잖아요. 제가 앨범 제작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돈도 벌고 삶을 살아야 하는데,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긴 거죠. 첫 앨범이었던 ‹수잔›은 거의 일주일 만에 모든 보컬 녹음을 다 했어요. 다른 앨범도 거의 그랬고요. 물론 앨범 구성과 기획은 차근차근 준비하지만, 실제 레코딩에 들어가면 ‘이게 다 돈이다!’라고 생각하며 엄청나게 집중해서 완료하는 편이에요. 그에 비하면, 이번 앨범은 정말 여유로웠어요. 구상은 2022년쯤부터 했는데요. ‘이런 걸 만들어 볼까?’ 생각을 구체화한 후 이듬해 녹음을 시작했죠. 밴드 녹음은 2023년 여름에 집중적으로 했고요, 보컬 녹음은 반년 정도 잡고 천천히 녹음했어요. 하루에 한 곡쯤 녹음하고, 한 2주 있다가 또 한 곡 녹음하고요. 원래 다 그럴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거든요.

거의 차력 수준의 녹음 스케줄이네요. 집중도가 장난 아닐 것 같아요.

자체 제작을 하는 음악가는 다들 그럴 거예요.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써야 합니다. (웃음)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에서는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경험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언제 이렇게 해보나?’ 싶더라고요. 아직 젊고, 에너지가 있고, 그래서 제작비로 모아둔 돈을 다 써도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렇게 했어요. 오만하지만 이 시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결의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인’을 한 앨범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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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유롭고 길게 해보니까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웃음) 정말 좋고, 계속 계속 작업하고 싶은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앨범을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이 작업을 하는 이 기분이 너무 좋다’라는 쪽으로 생각이 흐르니 앨범에서 정 떼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매일매일 가다듬고 예뻐하면서 지내다가 이 애틋한 돌봄을 이제 그만하고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더라고요. 이별이 다가오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는데요. 아이가 있는 제 친구들이 말하길, 아이가 처음 유치원 갈 때, 작은 가방을 메고 잡고 있던 손을 탁 놓으면서 “갔다 올게!”하고 유치원 버스나 횡단보도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기분이 그렇게 묘하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그런 거랑 비슷한 거 아니었을까 싶네요.

발매 당일 구글 드라이브가 아니라 멜론에서 제 음악이 나올 때 느낀 기분이 바로 그거 같아요. ‘음원 유출된 거 아닌가? 쟤가 왜 저기에 있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지금 작은 책가방이 눈앞에 보이는 느낌이 드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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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많은 애정을 담아 만든 곡들로 구성한 앨범이라는 의미일 테죠. 가장 오랫동안 보듬은 곡은 무엇인가요?

평소 고민과 후작업은 오래 하지만, 녹음은 편하게 금방 끝내는 스타일인데요. 이번에 ‘너의 친구’가 의외였어요. 드럼 세팅도 고민돼서 두 가지 버전으로 녹음했다가 하나를 골랐고요. 제 기준으로는 보컬도 바이브 좋게 한 번 쓱 녹음하면 끝나는 곡인데,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번 더 녹음한 기억이 나요. 저희끼리 “얘는 선공개도 아니고 타이틀도 아닌데 왜 두 번이나 녹음하냐?” 애정 어린 구박을 하기도 했어요. 오래 보듬은 곡이라면 ‘가을 장미’가 있겠네요, 일전에도 밝혔는데, 이 곡은 관악 편곡이 두려워서 제가 완성을 계속 미루고 미룬 곡이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1월에 결국 편곡을 끝내고 보컬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그날 마이크랑 제 상태가 너무 좋은 거예요. 전이랑 다른 마이크를 썼거든요.

혹시 그 마이크 모델을 여쭤봐도 될까요?

‘가을 장미’ 보컬은 노이만 U89를 썼어요. 워낙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마이크라서 이번 앨범에는 고려하지 않고 재미있는 다른 세팅을 시도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으로 녹음하는 곡이니 우연히 베이직한 마이크로 돌아온 건데, 그 표준적인 느낌에 감동한 것 같습니다. 말하고 보니 이 여정이 앨범 서사와도 비슷한데요?!

이렇게 또 큰 그림이 나오나요. (웃음) 앨범 제작을 마무리할 때 발견한 찰떡 마이크라니 아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디폴트’적인 마인드로는 ‘한 곡이라도 넣어서 다행이다’거든요. ‘물이 반이나 남았네’ 같은 거죠. 그게 ‘디폴트’에요. (웃음)

자연스럽게 앨범 ‹디폴트DEFAULT›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 앨범은 사월 님이 발표한 앨범 중 가장 긍정적이고 감정에 솔직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랑받고 싶어’라는 말을 대놓고 해버리잖아요.

맞아요. 어쩌면 제가 그렇게 발화한 첫 번째 시도일지도 모르겠어요. ‘이젠 절 좀 사랑해 주세요’라고 말한 게 처음인데, 앞으로 못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뻔뻔하게 다 말해버리자는 마음과 의미를 담은 것 같아요.

그게 앨범을 처음 듣고 제가 가장 놀란 부분이었어요. 정말 이렇게 매사 솔직하게 모든 감정을 다 직구로 던져 버리는 앨범이 있었나, 하는 거죠. 심지어 ‘그냥 버려 버리라’고 말하는 앨범 도입부마저도 그래요. 뭔가 거리낌 없이 다 질러버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디폴트’ 상태로 김사월이라는 사람과 감정을 하나하나 재건해 나가는 거죠. 마지막엔 느슨한 연대도 권유하고요.

저는 ‘다음 앨범 주제는 이걸로 해야지’ 생각하면서 앨범을 만드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러면 부담돼서 작업을 못할 것 같아요. 뭐랄까, ‘앨범은 내도 되고, 안 내도 되지만, 곡은 꼭 만든다’라는 느낌으로 계속 곡을 만들어 가다가 그렇게 모인 노래 중 좀 더 큰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넘버가 생기면 앨범을 구상하고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정규 앨범 제목도 지금까지 그냥 다 수록곡 제목을 땄어요. 그 노래에서 이 앨범이 시작됐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도, 당연히 노래 ‘디폴트’가 시작이었어요. ‘디폴트’를 만든 게 2022년 여름인데, 당시 상황이 제게 좀 강렬했던 것 같아요. 노래를 만들고 나니 이런 내용의 앨범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서서히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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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가 태어날 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나요?

음악과 음악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가치 절하를 받으면서 청자의 사랑과 배반을 겪기 마련이잖아요. 대중이 예전에 저를 좋아하셨어도, 지금은 아닐 수 있고요. 자연스러운 거지만, 좀 솔직하게 말하면 김사월이라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할수록 느끼는 캐릭터의 한계 때문에 답답하던 때였어요.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잘 된다는 건 또 다 뭐냐, 싶은 거죠.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무력감과 들끓는 마음 같은 게 있던 시기였어요.

그런 배경에서 ’디폴트’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곡이 사뭇 다르게 들리기도 해요. ‘디폴트’를 가리켜 앨범에서 가장 급진적인 곡이라고 소개했는데, 어떤 측면에서의 급진일까요? 특히 두 개의 구조로 나누어 ‘보컬은 위에서 장악하고, 밴드는 아래에서 지옥처럼 들끓는 상황’이라는 구조 설명이 재밌었는데요. 이런 구조를 만든 계기도 궁금해요. 뭔가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 나오는 세계인 ‘Upside Down’ 같기도 하고요.

‘디폴트’의 벌스verse에서는 상처받기 싫으니까 기대를 낮추잖아요. 사랑 없는 게 디폴트니까 이 정도 사랑도 대단하고, 여기서 만족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스스로 뒤집고 부정하면서 지금은 사랑 없는 시간이 아니고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인 거야, 난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어, 외치는 후렴이 등장합니다.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제가 지향하는 가사의 톤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솔직해지는 일은 아무래도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부정적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멈춰 세우고 방향을 돌려버리는 장면은 제 음악에서 처음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사운드에 대해서는, ‘이제 부정에서 긍정으로 갑니다’가 아니라, ‘부정과 긍정, 그 무엇도 아닌 다른 애매하고 미묘한 감정들 모두 다 생생하게 느껴지며 폭발한다’가 ‘디폴트’답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출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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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표제곡이자 대표곡인 ‘디폴트’는 앨범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 트랙을 중심으로, 앞뒤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디폴트’를 어디에 놓을지 꽤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노래가 결국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제가 어디에 따로 두려고 해도 결국 노래가 자기 의지로 거기에 가려고 하더라고요. 이 노래 앞에 뭔가 굉장히 진행되어 있어야 ‘디폴트’가 제힘을 발휘하며 표제곡으로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디폴트’가 자기를 그렇게 다 터뜨린 후 찾아오는 낙차나 황량함 같은 것을 다른 곡들이 또 받아줘야 하겠구나, 싶었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흐름이 만들어지고 나니 아예 완전 반반 콘셉트로 데칼코마니 같은 앨범 구조를 더 강화하게 됐어요.

그렇게 허리에 중심을 두다 보면 앨범의 시작부에 생기는 부담감이 상당할 텐데요. 실제로 ‹디폴트›의 첫 곡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와 두 번째 곡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는 지금까지 김사월의 음악에서 가장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 곡들 아닐까 싶었습니다. 60~70년대 로큰롤 사운드를 바탕에 두고 있고, 제목도 운율이 맞아서 좀 쌍둥이 같기도 하고요.

사운드 측면에서는 이 앨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끔, 일종의 ‘어그로’를 끌고 싶었던 것 같아요. 1, 2번 트랙은 사운드에 대한 항의성 의견도 많이 들었어요. 좌/우 소리도 다르다 보니까 제발 중간에서 음악을 듣고 싶다고요. (웃음) 그런데 곡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노래와 앨범에 이입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생각할 때가 있어요. 1, 2번 트랙은 이미 자아와 멘털이 분열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곡이기에, 사운드 콘셉트를 지금처럼 확정해 버렸죠. 이제는 그런 반응을 조금 이해하기도 하지만요. (웃음) 그리고 서사에서도 1, 2번 곡들은 아예 한쪽으로 빼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앨범에서 가장 비관적인 기조가 많은 트랙이거든요. 그래서 내심 이 곡들을 빨리 처치해야 다음 곡과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겠다고 동물적으로 계산한 것 같아요.

저도 앨범을 듣고 직관적으로 느꼈어요. ‘아, 이건 우선 다 무너뜨리자는 계략이구나.’ (웃음)

자기를 엄청 외롭게 하는 비관을 계속 쌓아가다가 너무 높게 쌓아서 결국 자기 혼자 무너져 버린 거죠. 그렇게 다 무너지고 바닥을 치고 보니 비로소 주위가 보이고 내 곁에 사람들이 있었구나, 깨닫게 되는 과정이 ‹디폴트› 속에 있더라고요. 윤하 님이 앨범 소개 글에서 그 부분을 짚어주셔서 좋았어요.

맡겨주셔서 제가 더 기뻤습니다. 두 곡은 언제나 함께하는 김사월 밴드와 원테이크로 녹음했다고 들었어요. 원테이크 레코딩에 돌발 상황이 많은데, 수월했나요?

이번에는 큰 녹음실에 가벽을 세운 후, 드럼 연주자가 아이패드로 메트로놈을 보면서 연주하고 그걸 들으면서 악기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형태로 진행했어요. 녹음한 테이크 중 좋았던 것을 고르고, 그 위에 제 보컬과 코러스를 쌓아서 완성했죠. 노래를 진행하는 중에는 메트로놈이 일정하지 않고, 서로의 호흡에서 오는 미묘한 텐션과 그루브가 다르기 때문에 그 테이크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는 걸 새삼 경험했습니다. 라이브를 위해 합주를 하면서 우리가 매번 다른 테이크를 연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다시금 느꼈고요. 아무튼, 모든 게 다 한 번뿐이라는 거죠.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는 선공개 곡이었는데, 뮤직비디오도 색달랐어요. 영화 ‹수면의 과학›에 등장하는 ‘If you rescue me’도 생각나고요. 앨범의 전반적인 비주얼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버려요’ 뮤직비디오의 인형 탈 아이디어는 감독님께 제가 따로 부탁드렸어요. 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가고 싶었고, ‘버려요’라고 말하지만 절대 버리고 싶지 않게끔 사랑스러워 보였으면 했어요. 예전에 비틀스가 그런 모티프의 의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대담하고 불균형한 느낌이 좋아서 오마주하고 싶었습니다. ‹수면의 과학›의 유명한 신도 거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유추해 봅니다. 앨범 비주얼에는 한 인물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어요. 젠더리스한, 극도로 페미닌한, 인형 탈을 쓴, 교복을 입고 얼굴에 멍이 든,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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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극대화한 느낌으로 찍은 사진도 독특했어요.

처음에는 흰 배경에 서 있는 사람, 비틀스 초창기 앨범을 연상시키는 셔츠와 타이 차림 같은 걸 시도하고 싶었어요. 패티 스미스의 ‹Horses› 앨범 커버처럼 명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비주얼 전문가들과 이런 모티프를 상의하다가 헤어 스타일을 아주 파격적으로 선택해 버렸어요. 그러고 나니 전반적 콘셉트가 좋은 의미로, 극단적으로 잡힌 것 같아요. 남성용 정장 같은 걸 입은 반항적인 여성 사람 같은 커버가 되었는데요. 저는 이 분열감이 이번 앨범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과하게 페미닌한 콘셉트도 있어요. 페미닌한 특성은 제가 가진 스펙트럼 중에서 스스로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요소예요. 하트 하트 세상에서 사랑스럽게 꾸민 심드렁한 여자랄까요. 한 앨범에서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시도할 수 있어서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함께해주신 전문가분들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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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님은 자신과 결이 맞는 좋은 협업자를 잘 찾는다고 생각해요. 협업자에 관한 자신만의 기준이 궁금해요.

인스타그램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지만, 현재로서는 좋은 작업자를 찾고 연락하기에 가장 쉬운 플랫폼이기도 해요. 아티스트 계정을 팔로잉하며 저와 함께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용기 내어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이분들이 원래 잘하시던 걸 제가 최대한 잘 받을 수 있게끔 상황과 콘셉트를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편입니다.

다시 앨범으로 돌아와 볼게요.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이 ‘나쁜 사람’과 ‘디폴트’로 총 두 곡인데, 특별한 선정 이유가 있나요?

‘디폴트’는 이번 앨범을 기획하는 계기를 주었기에 당연히 타이틀이 되었고요. 앨범 구조상 중요한 노래들은 선공개로 발매하며 이미 제시했기 때문에 더블 타이틀은 듣는 사람이 편하게 소화하고 앨범에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노래로 구성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쁜 사람’을 선택하게 됐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앨범은 ‘디폴트’라는 곡을 기준 삼아 ‘새로운 김사월’과 ‘익숙한 김사월’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한 느낌이에요. 앨범에 대한 주위 반응은 어떤가요?

무척이나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건 저의 대표적인 음악적 화법 중 하나인데요. 아예 앨범 구조까지 극단적으로 짜놓으니까 약간 개운하더라고요. 저를 잘 나타내는 구조인 것 같아요. 청자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서 주변에서 앨범을 들었다고 하면 ‘무슨 곡이 제일 좋디?’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편이에요. 흥미롭게도, 반응이 반으로 갈렸어요. 전반부가 좋다는 분도 있고, 저를 오래 지켜본 분들은 후반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게 이번 앨범의 좋은 점이었어요. 최근에 느낀 건데, 의외로 ‘독약’파가 좀 있더라고요. ‘독약’이 퀄리티가 좀 좋게 나온 트랙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밴드 멤버들은 전원 ‘가을 장미’가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해당 곡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다는 게 웃음 포인트에요.

그래서 제일 좋아하시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좋아!’ (웃음) 사실 저도 ‘가을 장미’를 가장 좋아해요. 곡 시작부에서 가을 낙엽이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 심장도 같이 타는 느낌이랄까요. 앨범 발매 전 라이브에서 선보일 때도 인기가 많았던 곡이라고 들었어요.

그런가요. 제 체감은 라이브에서 인기가 많았기보다는, 저만 좋아하는 곡에 가까웠던 것 같은걸요. 앨범을 위해 편곡하면서 이 곡이 좀 더 좋아져 버렸어요. 아끼는 만큼 편곡에 대한 부담과 기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곡이기도 했는데, 녹음 단계에서 클라리넷이나 플루트 연주가 잘 정리되니까 마음이 보람차더라고요. ‘가을 장미’는 저에게도 여러모로 마음에 많이 남는 곡이에요.

앨범 감상을 찾아보면, ‘가을 장미’가 마지막 곡인 줄 알았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게 끝인가?’ 싶은 순간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과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이 등장하죠. 어떻게 보면 앨범의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전반부 곡들처럼 쌍둥이 같기도 하고, 동시에 이 곡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감정을 전하기도 해요.

두 노래를 비슷한 시기에 만든 건 아니에요. 그냥 제 삶에서 산발적으로 나온 노래들인데, 만들어 놓고 보니까 얘네도 붙여 놓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자, 보세요.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 그리고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이잖아요. 이 두 곡을 어떻게 떼요. (웃음) 그렇게 서로 자석처럼 붙은 곡들이기도 하고, 1, 2번 트랙처럼 서로 못하는 얘기를 대신 도와주는 트랙이기도 해요. ‘더 나은 일이 있어!’ 같은 희망찬 얘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내일은 오고 삶도 계속된다는 걸 알려주는, 그런 곡들이에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인지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월 님이 쓴 작가 노트가 떠올라요. “낙관과 비관을 내려놓은 상태”,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이상적인 디폴트 상태로 언급했으니까요.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나요?

그런 마음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작가 노트를 쓰긴 했는데요. 앨범을 만들고 나면 그때의 문제의식에 대한 나름의 결론과 완전히 다른 시각이 제게 들어오는 것 같아요. 어쩌면 드디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저에게 더 이상 중차대한 이슈가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깨끗한 마음을 기다리며 살겠다는 삶의 방향은 지금도 비슷하지만, 사실 인간은 낙관과 비관을 내려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요즘 제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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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가운데 ‘칼’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어요. 선공개 곡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김사월의 관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트랙이 아니었나 싶어서요. 언제, 어떻게 작업한 곡인가요?

2021년 초 재미로 사주를 봤는데요. 제 성질이 칼이라는 거예요. 나무나 물처럼 누군가와 화합하는 느낌이 아니라, 척 보기에도 차갑고 무서운 칼이 저를 나타낸다는 사실 자체에 약간 충격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내 성질로 다른 사람을 지킬 수는 없을까?’ 다양한 생각이 이어지면서 만들게 된 곡이에요. 제 성질을 받아들이려는 시도이기도 한 거죠. 관능이라 표현해 주셔서 쑥스럽지만, 숨과 비음으로 만드는 보컬의 결이 저의 시그너처 같은 톤이라고 생각합니다. 섬세한 보컬을 쌓아가는 장면의 매력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세밀하게 표현할 때 저 또한 쾌감을 느끼고요. 칼은 날카로운 특성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많이 달라지는데요. 이번에는 소재가 주는 아찔함에 초점을 맞췄어요.

‘못 우는데’와 ‘호수’도 앨범 중반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곡들입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두 곡이 더 좋아졌다는 반응을 많더군요. 저도 공연 뒤에 무심결에 ‘못 우는데’를 계속 흥얼대고 있더라고요. 두 노래에 대한 애정이나 후일담도 조금 나눠주세요.

‘못 우는데’는 대신 울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호수’는 내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 대한 불신과 승복을 담은 노래입니다. 후반부는 제가 주력으로 해오던 포크 색깔이라 더 부담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연주자로서 둔탁한 부분이 많아서 보컬이나 가사를 더 세밀하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할 때마다 능숙하지 않은 예쁨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못 우는데’와 ‘호수’는 ‘이런 색깔을 가진 음악이 어쩌면 너무나 나답구나. 그래서 이대로도 좋구나’ 하고 자신을 비로소 믿게 되는 작업이기도 했어요.

앨범 트랙 리스트를 쭉 보다 보면 1, 2번 트랙과 11, 12번 트랙이 앨범을 안정적으로 감싸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탄탄한 구조를 갖춘 느낌인데요.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김사월이 담긴 앨범이라고 느꼈습니다. 앨범 발매 한 달이 지난 후, ‹디폴트›의 김사월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게 되는지 궁금해요.

이번 앨범 이후로 저라는 사람도, 음악도 좀 더 단단해지고 긍정적인 시대를 향해 가고 싶었어요. 아직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확답하긴 힘들지만, 지금으로서는 저의 수많은 감정과 관점 중 ‹디폴트›의 자리가 생겨났을 뿐이지 여기서 긍정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요즘은 이전보다 더 어두운 감정도 많이 느끼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굳이 도약해야 하는 것도, 이제 철들었다고 증명하기 위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저는 천국과 지옥 같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모두 느끼고 그 자체를 긍정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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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특히 정규 앨범이라는 건 사월 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방식 중 가장 저답고도 고상할 수 있는 것, 제일 잘하고 싶은 것입니다.

올해로 데뷔 10년이 되었어요. 10년 전 상상하던 김사월과 지금의 김사월은 무엇이 같고 또 다른가요?

10년 전과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점이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표면적으로는 변화가 많은 것 같아요. 생계 활동이 되면서 성격도 조금 사회적으로 바뀌었고,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면서 책임감도 느낍니다. 청자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 드리고 싶은 부담감도 느끼고요. 그런데 표면적인 건 내일이라도 당장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인 것, 즉 ‘이걸 왜 하는가?’에 대한 마음을 등대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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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번 ‘피스오브서울’은 ‘현대카드 BONUS TRACK’에서 인터뷰어와 김사월이 진행한 대담 내용을 일부 수록했다.

* 김사월 정규 4집 ‹디폴트›: 김사월의 새로운 화학식

포기하면 편하다는 건 맨 처음 누가 말했을까. 과연 포기하면 편하다. 까짓거 없었던 걸로 치면 후련하다. 집착하고, 매달리고, 엉엉 꼴사납게 우는 내 자신을 싫어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나를 속여 쟁취한 가짜 평화를 조용히 바라보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포기하면 무너진다. 어딘가는 반드시 무너진다. 만약 그 아수라장 속에서 운 좋게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그다음은 무너진 잔해 옆에 새로운 탑을 쌓는 순서다. 일찌감치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버린 그 누군가도 분명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을 것이다.

김사월의 네 번째 앨범 ‹디폴트›는 그렇게 모든 걸 무너뜨렸다 다시 쌓아 올리는 행위에 골몰하는 앨범이다. 무너지는 것이 다채로운 만큼 새로 세워지는 것도 다채롭다. 대상은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한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포크송을 부르는 김사월, 불온하고 처연한 노랫말을 쓰는 김사월, 세상이 지겹다는 표정으로 절대적인 존재를 구하는 김사월,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부러 꾹 누르는 김사월,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지치지 않는 메아리처럼 노래하는 김사월. 그 수많은 김사월은 ‹디폴트› 안에서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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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파편의 흔적은 앨범의 시작부터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디폴트›의 첫 곡이자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한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버려요’는 스타일과 작법에 있어 기존 김사월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는 강력한 암시다. 김사월과 자주 호흡을 맞춰온 연주자 이시문(기타), 전솔기(베이스), 전수영(드럼)과 함께 작업한 곡들은 6, 70년대 밴드 음악을 향한 오마주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원테이크로 진행된 레코딩과 믹싱마저 그렇다. 마치 한 곡 같은 두 곡이 흐르는 내내 왼쪽에서만 모노로 들려오던 김사월의 목소리는 두 번째 곡 ‘외로워말아요 눈물을닦아요’의 후반 합창 부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풀 스테레오의 영역에 접어든다.

‘이런 건 어떠냐’며 넌지시 청한 날 것의 밴드 사운드는 앨범 한 가운데 위치한 표제곡 ‘디폴트’까지 이어진다. 경쾌한 터치의 징글쟁글 연주와 푸근한 코러스 위로 관계, 추억, 사랑을 풀어내는 김사월 특유의 노랫말이 아린 뒷맛을 남긴다. 가만히 듣다가 어설픈 위로로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여섯 번째 곡 ‘디폴트’가 등장한다. ‘사랑이 없는 게 디폴트인 세상’에서 ‘사랑받고 싶다’는 외침을 무모하게 반복하는 애달픈 갈구.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들판에 울려 퍼지는 간절한 새벽기도처럼 처연하게 시작한 노래는 몰아치는 후주와 함께 결국 가슴 깊은 곳 숨겨왔던 마음을 터뜨린다. 절대적인 것을 넘어 ‘엄마가 나를 낳았듯’이 존재론적인 사랑’을, 그냥도 아니고 무려 ‘다 가지고 싶’다고. 무심코 슬퍼질 정도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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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다면 한 번쯤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랑을 향한 날 것의 열망을 드러낸 김사월은 일곱 번째 곡 ‘칼’부터 앨범의 방향을 천천히 튼다. 굳이 서두르지도, 안달 내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붕괴한 자리를 뿌옇게 채운 연기 속에서 ‘널 슬프게 하는, 널 힘들게 하는 세상을 베어 버리겠다’는 뜨겁고 서늘한 다짐이 나쁜 주문에라도 걸린 것처럼 반복된다. ‘못 우는데’, ‘호수’, ‘가을 장미’까지 이어지는 앨범의 중후반은, 아마 당신이 김사월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가장 쉽게 떠올릴 법한 김사월 식 포크의 결을 가진 노래들이다. 그렇기에 그 안의 목소리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나 대신 울어주는 누군가, 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호수, 지금은 시들어도 매해 피어날 것임을 아는 장미. 익숙한 얼굴로 이야기를 전하는 노래의 표정에 몇 번의 무너짐과 몇 번의 재건을 겪었는지 모를 묘한 표정이 어려 있다. 섣불리 짐작할 순 없지만, 전과 다르다는 느낌만은 분명하다. 남은 것들 가운데 제일 따뜻하고 고운 것을 하나하나 모아 만든 이야기의 등을 클라리넷과 플루트, 신시사이저가 조심스레 토닥인다.

이즈음에서 마무리되었을 법도 한 ‹디폴트›의 이야기는 에필로그를 조금 더 남긴다. ‘가을 장미’에서 타닥이던 불꽃 소리가 소멸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거였구나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오르락내리락 얕은 숨을 쉬던 가슴팍이 결심했다는 듯 큰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부르는 건 건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밤’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곡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통신’이다. 같은 물질이면서도 온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는 눈과 비가 섞여 버리는 밤, 피아(彼我)를 구별하기 어려운 두 존재가 온 세상을 축축이 적시는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아침이 올 거라는 김사월로부터의 전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메시지다.

김사월이 ‹디폴트›에서 부르는 디폴트는 그가 경험한 이전의 어떤 디폴트와도 다르다. 한 번 포기한 사람이 다시 품는 희망은, 모든 걸 잃어 본 사람이 다시 쌓아 올린 디폴트는, 겉보기엔 같을지언정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화학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모조리 무너뜨린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이의 지난한 시간을 생각한다. 무엇보다 거센 힘이다. 의지다. 그러므로 언젠가 또다시 무너져도 이제는 상관없다. 기대를, 희망을, 사랑을 한 번 포기했던 곳에서 김사월이 다가올 아침을 꿋꿋이 노래한다. 무너진 김사월, 녹아버린 김사월, 다시 쌓은 김사월이 모두 여기 있다. 김사월의 화학식이 새로 쓰였다. 글: 김윤하

Artist

김사월(@april_sour)은 포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다. 2012년부터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2014년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로 처음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 ‹수잔›으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히 비평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그의 음악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 2년 연속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로맨스›(2018), ‹헤븐›(2020) 등의 정규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는 한편, ‹7102›(2017), ‹1202›(2022) 등 정규작에 준하는 볼륨의 라이브 앨범을 정기적으로 선보이며 팬덤을 단단히 다졌다. 단편선과 선원들, 브로콜리 너마저, 신해경, 에픽하이, RM 등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음악가와 협업하면서 자체 브랜드 공연 ‘사월쇼’, ‘엉엉콘’을 통해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과 완성도 높은 무대를 지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2023년 TVING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K-POP GENERATION›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현재 «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IN» «채널예스»에 칼럼을 연재하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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