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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of Seoul

피스오브서울: 브로콜리너마저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Writer: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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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of Seoul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열 번째 피스의 주인공은 5년여 만에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를 발표한 ‘브로콜리너마저’입니다. 올해 결성 20년 차를 맞는 그들은 지금 이 순간 더 많이 알려지는 것보다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묻어 있을지 고민하며 노래를 만들어요. 그래서인지 세대를 넘어, 요즘 10대에게도 와닿는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답니다. 앨범 제목대로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는 것들은 정말 힘이 세다고 믿는 브로콜리너마저. 순하고 착해 보이지만 절대 만만치 않은 그들의 유쾌한 티키타카와 노래에 대한 깊은 생각을 피스오브서울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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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나고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함께 가는 길, 덕원이 말했다. “말 같은 말이 드문 세상이라 저희 음악이 주목받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밴드 말마따나 ‘이 미친 세상’에 몇 안 되는 믿을만한 구석으로 내일모레면 활동 20년 차를 앞둔 프론트맨의 발언치고는 너무 겸손한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 삶 어딘가에 잠시 품었던 온기로 다가와 이제는 삶의 매 순간을 잘라 그 단면을 들려주는 밴드가 된 ‘브로콜리너마저’의 인기 비결이 고작 ‘말 같은 말’이라니. 겸손도 유분수였다.

 

그 자리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바로 항변했지만, 인터뷰를 정리하고 나니 어쩌면 덕원의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2024년 12월 3일 이후의 일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는 EP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후 3년 3개월, ‹속물들› 이후 5년 5개월 만에 발표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정규 앨범이다. 발매 간격으로만 보자면 꽤 오랜만이지만, 브로콜리너마저의 최근 활동을 보면 ‘그렇게 오랜만인가?’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단독에서 기획까지 각종 공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지런히 대중과 소통해 온 이들의 시계는 꾸준히 불리는 노래를 오래 부르고 싶다는 그 바람만큼이나 굳세게 움직였다.

 

공연을 통해 간간이 선보여온 노래를 고르고 솎은 앨범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과 그렇게 도착한 지금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기분 좋은 확신을 뿌리로 삼는다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라는, 스스로이자 시대에 건네는 말로 운을 띄우는 앨범은 ‘요즘 애들’이나 ‘풍등’ 같은 곡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다가도 ‘다정한 말’이나 ‘영원한 사랑’처럼 이들다운 보편성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정성껏 어루만진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 가진 힘과 저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앨범은 오랫동안 기타 세션을 담당해 온 동혁을 정식 멤버로 들인 후 발매하는 첫 앨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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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컬리너마저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앨범 커버

꽤 오랜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이에요. 지금까지 반응은 어땠나요.

덕원: 좋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은 항상 있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좀 남달라요. 저희는 꾸준히 작업해 온 팀이잖아요. 반응이 좋았던 앨범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엔 새삼스럽게 좋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브로콜리너마저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은 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만들어가는 입장에서는 이를 충족하는지 의심도 자주 들고 확신이 없어질 때도 많은데, 이번 앨범은 그런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한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특히 이번 앨범 좋다는 말을 해주시는 분들의 말에서 기분 좋은 흥분을 많이 느껴서 좋아요.

사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꽤 오랜만에 이렇게 인터뷰도 따로 요청하게 되었답니다. 뭐랄까, 이번 앨범을 들으며 함께 세월을 걸어온 밴드에게서 느껴지는 일종의 동지애를 감지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딱 알맞을 때 만난 앨범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잔디: 감사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고무적인 게, 요즘 저희 음악을 새로 듣고 좋아해 주시는 10대나 학생 팬분들이 꽤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확 체감이 될 정도예요. ‘입시 끝나면 공연가겠다’ 같은 반응도 특정 한 두 분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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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혹시 ‘팔찌 아저씨’…? (웃음)

잔디: ‘팔찌 아저씨’도 있고… (웃음) 요즘 밴드 음악을 새로 찾아 들으면서 저희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동혁: 얼마 전 춘천 공연 때에는 어떤 분이 반갑게 인사하시면서 “엄마랑 같이 듣다가 저도 팬 됐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잔디: 아, 저도 부산 공연 때 “팔찌 아저씨 영상 때문에 한 번 보고 싶어서 왔는데, 입덕했어요!” 하는 분이 계셨어요. (웃음)

소문의 ‘팔찌 아저씨’ 틱톡 영상

과연 팔찌 아저씨의 여파가… 덕원 님을 중심으로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열심히 만드는 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건 시류를 따라가려는 의무감의 발현인가요, 아니면 순수하게 즐거워서 하시는 건가요.

덕원: 솔직히 처음에는 제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마음에 시작했어요.

잔디: 그런데 하다 보니 누구보다도 즐기고 있고. (웃음)

덕원: 그겁니다. (웃음) 제가 원래 뭘 하든 간에 열심히 즐기면서 하려는 편인데, 재미가 없으면 금방 그만두는 스타일이거든요. 솔직히 요즘은 좀 즐기고 있습니다.

잔디: 조회수 잘 나온다고 엄청 좋아해요.

덕원: 아 그게, 얼마 전에 ‘해서웨이’랑 ‘보수동쿨러’에게 챌린지로 대결을 붙었거든요. 그 영상이 ‘좋아요’ 1000개가 넘으니까… 세상에 세상에 이거 너무 고무적이다. (웃음)

요즘 덕원 님의 주력 플랫폼은 틱톡인가요?

덕원: 보통 하나 만들어서 모든 플랫폼에 다 올리기 때문에 크게 중점을 두는 곳은 없는데요. 그래도 마음의 고향은 역시 X(舊 트위터)죠. (웃음)

격하게 공감합니다. (웃음) 생각해 보면 숏폼 콘텐츠도 그렇고, 브로콜리너마저는 의외로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소통이나 교류를 무척 중시하는 밴드 같아요. MD도 열심히 만드시고, 이번에는 앨범과 함께 만화책도 만드셨잖아요.

덕원: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도 가끔 집에 있는 CD나 LP를 볼 때 생각하는데요. 예전에는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 자체를 듣는 시간이 제일 길었어요. 딱히 할 것도 없고, 이동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에 음악이 유일한 위안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런 깊은 시간을 확실히 빼앗긴 것 같아요. 음악이 좋더라도 그것만 계속 돌려 듣는 게 아니라 다방면으로 음악을 즐기는 시대가 완전히 자리 잡았달까요. 결국 창작자로서 어떤 음악을 하는지 중요한 만큼, 그런 음악을 하는 ‘누군가’로서 계속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시대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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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 공식 프로필

그런 활동과 관련한 고민이나 아이디어 회의 등을 따로 하는 편인가요?

덕원: 저희가 그렇다고 따로 회의까지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얘기하고 기록해 놨다가 한 번에 갈무리해서 확 추진하는 편이랄까요. 멤버들 성격이 각자 달라서 정보 수집하는 사람, 하게 되면 바로 전화해 버리는 사람,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 등 조합이 잘 되어 있어요. 보통 제가 정보 수집 담당인데 진짜 별걸 다 보고 별 얘기를 다 해요. 되든 안 되든 다 던져요. 엄청 산만해요. 저도 알아요. 요즘은 그래도 나름 예전보다 1/20 정도로 줄여서 하는 중이죠.

잔디: 지금 동혁 씨가 1/20 대목에서 깜짝 놀라신 거 같은데. (웃음)

동혁: (웃음) 아니 아까 스스로 산만하다고 하셨잖아요. 처음엔 보통 “잠깐만 들어봐”하고 말을 시작하시거든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다음으로 넘어가고 다음, 다음 계속 넘어가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뭔가 발전이 되어 있더라고요. 신기해요.

덕원: 그러면 이제 잔디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받아서 전화를 넣어 버리죠.

동혁: 그러면 이제 전 옆에서 보다가 ‘아… 체력 관리하고 있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웃음)

덕원: 동혁 씨가 저희 중에 제일 꼼꼼해요. 성실하고. 매듭 담당이죠.

잔디: 오늘 이 자리에 없는 류지는 우리가 너무 나간다 싶으면 확실히 끝을 정해줘요. “이제 정리하고 집에 가야 돼!” 그게 진짜 중요하거든요. 만약 저랑 덕원 씨만 멤버였으면 아마 워커홀릭으로 둘 다 벌써 죽었을 거예요. (웃음)

덕원: 정리 안 된 상태로 폭주하다가 탈진된 상태로 발견이랄까요. (웃음) 저희 둘은 완전히 극P고 심지어 류지도 P인데, 이 팀의 유일한 J인 동혁 씨가 드디어 멤버가 되었습니다. 많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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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 공식 프로필

이렇게 우당탕탕 말씀해 주시는 것치고는, 일련의 결과물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느껴져요.

덕원: 만약 그렇게 느끼신다면 이유는 딱 하나, 저희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디자이너들과 거의 한 팀처럼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잔디: 20년간 함께해 주는 팀이 있어요. 많은 분이 접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외적인 만듦새를 모두 책임져 주세요. 저희 레거시도 다 알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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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실리카겔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과 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오래 꾸준히 다방면으로 잘하는 팀들은 확실히 이런 공통점이 있네요. 이번 앨범 수록곡들도 꾸준히 해온 작업의 결과물이잖아요. 꽤 많은 곡을 공연에서 미리 선보이기도 했고요.

잔디: 앨범을 발매하기 전부터 공연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건 저희에게 꽤 자주 있는 일이에요. 물론 지난 5월 공연은 거의 전곡을 들려드린 드문 경우이긴 했어요.

덕원: 그런 생각도 해요. 아까 인터뷰 시작쯤에 ‘알맞은 때’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도 이번 앨범은 노래 내용이나, 실제로 그걸 만들고 부르는 저희나, 아니면 요즘 세상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까, 이젠 옛날처럼 뭔가 좀 더 준비한 다음에 ‘짠’하고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완벽한 ‘때’를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걸 아니까요. 오히려 이걸 길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래서 발매 전에도 계속 선공개하고, 발매 후에도 계속 노래하면서 그 노래를 어떻게든 계속 부르고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만들어 놓고 놔두지 말자. 내가 계속 불러야 한다. 일종의 그런 태도가 이번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앨범을 만든 것 같아요. ‘딱 준비해서 짠’보다는 ‘계속 부른다’에 방점이 찍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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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굳어진 계기가 있을까요?

덕원: 한 때 ‘노래란 게 뭘까, 내가 뭘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음악을 계속 만든다는 게 뭘까. 가만히 보니까 어떤 노래는 계속 살아남고 어떤 노래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결국 더 많이 부르는 노래가 더 오래 살아남아요. 이번 앨범의 첫 곡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에도 그런 가사가 있어요. ‘내가 불러주는 만큼만 /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이름도 있죠’. 내가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안 불러줘요. 그럼, 반대로 내가 많이 부르는 노래는 결국 어떻게든 계속 이어지고 불린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주 직관적으로 내가 많이 부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어요. 이번 앨범도 발매 후에 어디에서나 계속 최대한 많이 부를 생각이에요.

잔디: 저희도 나름 활동 기간이 있다 보니까, 해볼 건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밴드가 ‘짠’ 해 봤자 별것 없더라고요. (웃음) 오히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로를 오픈 마인드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게 숏폼 콘텐츠든, 공연이나 행사가 됐든요. 얼마 전 팝업을 진행하면서 4집을 틀어놨더니 ‘어, 브로콜리너마저 4집 나왔네?’하고 그제야 아는 분도 많더라고요.

덕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알고리즘을 해킹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알고리즘과 마케팅, 바이럴은 수많은 사람을 모으지만 동시에 그만큼 소외시키잖아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전체 흐름을 조종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좌절하면서 가끔은 결국 내 영혼을 팔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결론을 찾았어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시간이더라고요. 내가 계속 노래를 하고 계속 음악을 내면 긴 시간 동안 존재하게 되잖아요. 그건 크기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의미로 남겠더라고요. 그 어떤 신박한 마케팅이나 뛰어난 바이럴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되었죠. 결국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길게 가져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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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는 다르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도 많네요. 저도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이런저런 유혹이 있었는데 결국 원래 생긴 대로, 속도 대로 가는 것밖엔 없다고 결론 내렸거든요. 덕분에 몇 년 전부터는 좀 편해졌어요.

덕원: 저희도 일종의 그런 사이클을 경험한 것 같아요. 이제는 초짜가 아니잖아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내가 한 일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겠다는, 최소한 이 길은 계속 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앨범에 5분, 6분 길이의 곡들이 많더라고요. 3분도 길다는 시대인데요. 물론 시류에 편승한 2분대 곡도 있긴 합니다만. (웃음) 개인적으로 울림이 컸던 곡들은 대부분 유행이나 길이를 신경 쓰지 않고 그 자체에 집중해서 만든 긴 곡이었어요.

덕원: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곡을 만들면서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 이 노래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알려질까?’보다는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묻어 있을까?’ 하는 마음이요.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음악의 본질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우선 ‘좋아요’ 1000개가 눌리면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좋으신 걸로. (웃음) 이번 앨범부터 동혁 님이 정식 멤버가 됐어요. 예전부터 공연에 쭉 함께했지만, 계약직과 정규직은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잖아요. 참여하는 마음이나 자세도 많이 달라졌나요?

동혁: 많이 다르죠. 많이 다릅니다. 기타를 치는 일은 같아도, 팀과 미래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돼요. 제 음악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름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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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번 앨범에서 ‘되고 싶었어요’, ‘윙’, ‘풍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바닥에서 저 높은 곳으로 쭉 상승하는 느낌 때문에 정말 좋았어요. 그런 풍경을 만드는 데 기타가 정말 큰 역할을 하더라고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꾸준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기타 리프가 거칠게 휘몰아치며 작렬하는 경우가 또 있었나 싶었습니다.

동혁: 말씀하시니까 저도 확실히 힘을 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하면서요. (웃음) 말씀하신 곡들은 기타가 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어요.

잔디: ‘윙’ 편곡할 때 합주하러 오면서 뭔가 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동혁: 라디오헤드Radiohead 2집이요. (웃음) 제가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데, 그날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계속 들었어요. 집에서 합주실까지 거리가 좀 멀거든요. 근데 그날따라 앨범이 평소보다 훨씬 깊게 들리더라고요. 합주하는 동안 확실히 자연스레 녹아들었을 거예요. 잘하고 싶었어요. 욕심이 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막상 녹음 당일, 녹음실에 가니까 합주했던 느낌이 안 나오는 거예요. 춘천에서 앨범을 녹음했는데, 거기 녹음 공간이 일반 부스보다 훨씬 크거든요. 그 안에 기타 장비랑 앰프 다 넣어놓고, 하다 하다 안돼서 “저기 죄송한데 불 좀 꺼주세요” 요청까지 하고. (웃음) 별짓 다 해서 녹음했던 기억이 있어요.

결과물에 만족하시나요?

동혁: 데모가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웃음)

앨범 얘기를 좀 더 해볼게요.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는 꽤 명확하게 구간이 나뉘어요. 6번 트랙 ‘CM’을 기점으로 앨범이 확실히 방향을 틀잖아요.

덕원: 원래는 ‘CM’을 마지막 곡으로 하고 싶었어요. 적어도 이 앨범을 택한 분들은 쭉 머물면서 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 로고송 같은 걸 넣어서 첫 트랙부터 다시 새롭게 앨범을 듣는 경험을 조성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앨범을 완성하고 나니, 가운데에서 정리를 해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앨범을 구성할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첫 곡과 마지막 곳인데요. 어떤 곡을 마지막에 넣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영원한 사랑’으로 고르고 보니, 앨범을 EQ 그래프의 V자 곡선처럼 만들고 싶어졌어요. 처음과 마지막의 메시지에 특히 집중하도록요. 덕분에 평소 브로콜리너마저 앨범을 접했던 분들은 좀 생소한 구성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보통 앨범 후반에 힘을 많이 줬거든요. 이번에는 앞부분과 뒷부분의 힘이 거의 동일합니다.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4집 ‘CM’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온 분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밴드로서 노련해진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말씀하신 구성도 그렇지만 앨범에 담긴 정서의 흐름, 앨범에서 느껴지는 상승과 하강의 조화 등이 무척 뭉클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다가오거든요. 역시 잘하는 사람들이고 여전히 잘하는구나, 싶었어요. 편곡은 함께하지만 작사·작곡은 주로 덕원 님이 맡으시는데요. 이번 앨범에서 가장 공을 들인 곡이 궁금해요.

덕원: 비교적 오래 마음에 품었던 곡은 ‘윙’과 ‘풍등’이었어요. 오랫동안 굴린 마음을 담았다고 해야 할까요. ‘되고 싶었어요’를 첫 번째 곡으로 넣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그러면 3집과 유사할 것 같았어요. 사실 제가 3집에 대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5년이 지난 지금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때 너무 섣부르게 자아 성찰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나이도 아직 어린데 말이죠. 심지어 ‘속물들’은 2011년에 만든 곡이거든요.

오히려 그때라서 만들 수 있는 노래 아니었을까요. (웃음)

덕원: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생각하면 ‘아이고 네가 무슨…’ 같은 느낌인데. (웃음) 그땐 제가 스스로 너무 과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2집 마무리하고 3집 준비하던 즈음이었는데, 친구들과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같은 얘기를 하던 사람이 이렇게 음악으로 돈을 벌고 직장도 없이 먹고 살고 있다는 게 뭔가 되게 부정적으로 느껴졌어요. 어렸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까 저는 세상 돌아가는 거에 비하면 너무나도 검소하고 소박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웃음) 그런 생각에 골몰하며 고민하고 흘려보낸 시간이 지금도 가끔 아쉬워요.

 

좀 딴 얘기지만, 그래서 이제 막 데뷔하거나 활동하는 친구들한테 요즘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자기를 너무 돌아보지 말고, 아무 때나 반성하지 말라”에요. 웃기게도, 착한 애들이 제일 반성해요. 얼마 전에 알게 된 신인 친구의 앨범을 듣고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첫 곡이 ‘자화상’이에요. 세상 제일 착하고 뭐 하나 잘못한 거 없이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 첫 EP를 자기반성으로 시작하는 게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반성하고 싶으면 앨범 끝 곡에서나 하라고 했어요. (웃음) 그런데 저도 말만 이렇지, ‘되고 싶었어요’ 같은 곡은 구조적으로 그런 생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노래 아닌가 싶어요.

잔디: 그래서 중간에 저는 심지어 빼자고도 했어요.

덕원: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와 ‘요즘 애들’ 두 곡 덕분에 결국 앨범에 실을 수 있었어요. 두 곡으로 살짝 힘을 빼니까 좋더라고요. ‘윙’으로 가기 위한 계단 역할을 하기에도 딱 좋고. 그래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를 만들었을 때 엄청나게 안심했어요. 첫 곡은 이걸로 하면 되겠다. 합격!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4집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덕원 님 목소리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곡을 시작하는 거 자체가 치트키죠.

덕원: 그 곡은 저희가 정말 힘을 하나도 안 썼어요.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 모든 파트를 살짝 내려놓고 작업한 노래거든요. 그렇게 사뿐하게 첫 곡을 놓고 나니까 그 이후로는 앨범이 잘 풀렸어요. ‘요즘 애들’도 의미 있는 곡이죠. 작년 초, ‘영원한 사랑’과 함께 앨범 작업 완전 후반부에 만들었어요.

잔디: 이게 또 이렇게 산뜻하게 나오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웃음)

‘요즘 애들’은 저에겐 민간인 사찰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곡이에요. 제 어린 시절이 그대로 녹아 있어요. 제가 쌈싸페 2회 자원봉사로 음악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이리카페에 앉아 맞은 편에 흰 맥북 두고 향뮤직에서 산 CD 들으면서 리뷰 작성하던 사람이란 말이죠. (웃음)

잔디: 이 곡을 정말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앨범 나올 때쯤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했는데, 가사 속 ‘무한도전’을 ‘헬로루키’로 바꾸니까 그렇게들 좋아하시고. (웃음)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4집 ‘요즘 애들’

앨범에서 가장 상큼한 곡이잖아요.

덕원: 편곡이 참 잘됐어요.

잔디: 전 덕원 씨가 기타로 처음 이 곡을 우리 앞에서 불렀을 때가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 음울함과 꼰대스러움을 잊을 수가 없어서, “이 노래… 실어야 돼?” 했죠. (웃음)

덕원: 데모 반응이 진짜 안 좋았어요. 노래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제 목소리로 ‘요즘 애들 보면 재밌어’, ‘광화문에 혼자서 영활 보러 갔던’ 이런 가사를 부르니까 좀… (웃음) 전 사실 이 노래를 만화 ‹영심이› 주제가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핵심 리프가 안 나오다가 잔디가 이리저리 건반을 치던 중에 주요 멜로디가 딱 나오길래, 그걸 낚아채 발전시켰죠. 인트로 멜로디 끝나면 “영심아~” 외쳐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잔디: 편곡하면서 그 ‹영심이› 노래도 같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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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앨범 후반부 이야기도 해볼까요. 앞서 ‘CM’을 기점으로 앨범의 전환을 이야기했는데요. ‘세탁혁명’처럼 래퍼가 피처링한 곡도 있지만 후반부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브로콜리너마저의 맛으로 느껴졌어요.

덕원: 전반부에서 ‘요즘 애들’이 담당하는 역할을 후반부에서 ‘세탁혁명’이 해주죠. 저희 노래를 모아보면 업 템포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세탁혁명’으로 전환을 한 번 주고, 그 뒤에 빈티지하면서도 신나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붙인 후 뒤로 갈수록 점점 진하게 늘리려고 했어요.

잔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싱글이랑 앨범 편곡이 꽤 다른데요, 앨범 버전은 동혁 씨가 아이디어를 많이 줬어요. 싱글 때는 어쿠스틱 중심으로 진짜 ‘알던 맛’이었죠.

덕원: 중간중간 들어가는 추임새는 류지 역할이 컸어요. 이게 딱 류지 스타일 유머거든요. 센스 있게 치고 들어가는 데 재주가 있어요. 좀 아쉬운 건, 시키면 잘 안돼요. 우연히 나와요.

동혁: 이 곡의 ‘우!’ 파트를 덕원 씨가 되게 좋아하는데, 여기서 의견이 좀 갈렸어요. 덕원 씨는 계속 어떻게든 넣고 싶어 하고 저희는 다 빼고 싶어서…

잔디: 아니야. 난 빼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어. (웃음)

덕원: 아, 근데 제가 진짜 할 말이 많아요. 사실 저희 밴드가 옛날부터 뭘 되게 막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적이 거의 없는 팀이거든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편이고요. 그런데 이런 게 하나도 없으면 너무 깔끔하게 덜어진 상태로만 결과물이 나오니까, 저도 억지로 열심히 의견을 내보는 거예요. 팀의 발전을 위해서.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4집 ‘세탁혁명’(feat. 최엘비)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4집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앨범 버전

정말이죠? 지금 아무도 동의를 못 하시는 거 같은 느낌은 제 기분 탓이죠? (웃음) 그러면 덕원 님 한풀이 한 번 가시죠. 이번 앨범에서 덕원 님이 의욕적으로 낸 의견이 통과되어 빛난 곡을 꼽아본다면요.

덕원: 갑자기 질문받으니까 또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의견은 엄청 냈어요. 예를 들어 ‘매일 새롭게’ 같은 경우에는 후주를 완전히 댄스 팝 풍 신스로 넣어보자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약간 변형되면서 연주로 ‘플레이어블playable’하게 풀게 됐어요. 전반적으로 코러스도 엄청 만들어서 보냈는데 거의 검열 당했죠. 한 1/8 정도 남은 거 같아요. 말할수록 뭐 제대로 통과된 게 없네요? (웃음) 그래도 저희 팀워크가 괜찮은 게, 제가 혼자 다 하는 고집스러운 스타일이면 컷 당하는 게 기분 나쁠 수도 있잖아요. 다행히 제가 포기가 빨라요. 멤버들이 “아닌 거 같아”하면 “그래. 아닌 거 같지?”하고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다 같이 만들어가는 거니까.

잔디: 저희는 이제 이런 과정이 습관화되어서 자연스러워요.

덕원: 우선 밥 먹고 오는 게 중요해요. ‘아, 이거 넣어야 하는데’ 계속 생각하다가도 밥 먹고 들어오면 ‘그래, 멤버들 말대로 하자’로 되더라고요. 사람은 역시 밥을 먹고 와야 해. (웃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브로콜리너마저라는 밴드 색이 음악의 고유한 색을 만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주연이고 싶다고 아우성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뚜렷이 빛나는 조연으로 견고하게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면이 특히나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듣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그런 맥락 아닐까 싶어요. 우리 모두 세상의 주연은 아니지만 각자의 삶에서는 분명히 주연이잖아요. 세상의 주연이 아니라 내 삶의 주연으로 사는 성실한 사람의 단단한 목소리를 듣는 경험은 정말 귀하니까요.

잔디: 너무나도 좋은 말씀 감사해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팬분들도 성향이 비슷해요. 다들 조용하고, 댓글도 딱히 안 달고. (웃음) 그래서 가끔 누가 우릴 좋아하는 건가 궁금할 때가 있는데, 또 공연장에 가보면 항상 그 자리에 다들 있어 주시더라고요. 저희 음악을 조용히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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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치고는 앨범에 팬분들 떼창이 꽤 많이 들어가잖아요. 이번 앨범에도 ‘윙’, ‘영원한 사랑’ 두 곡이 해당되죠. 혹시 ‘함께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시나요?

잔디: 그러네요. ‘다섯시 반’도 그렇고, 과거에도 몇 번 경험이 더 있어요.

덕원: 완전 좋아하죠. 제가 2001년에 이승환 7집에 들어갈 노래를 녹음한 적이 있어요. ‘동지’라는 팬송이었는데, 대학생 때였어요. 마이크가 설치돼 있고, 작곡을 맡은 황성제 씨가 앞에 나와 어떻게 하라고 막 설명해 주는데 고양감이 엄청난 거예요. 집에 돌아올 때 7집 데모 CD도 선물로 받았고요. 그때 좋았던 기억을 오랫동안 마음에 막연히 품고 있다가 제 음악을 하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거죠.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저희 노래는 사실 대단히 멋지거나 멋있는 사람이 부르는 게 아니라, 듣고 마음에 두었다가 그 사람 입에서 흘러나올 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현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따뜻해 지네요. 노래에 대한 멤버분들의 깊은 사유와 마음도 느껴지는 것 같고요. 혹시 앨범에서 더 얘기하고 싶은 노래가 있을까요?

덕원: ‘너를 업고’를 꼽고 싶어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지금에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 담긴 노래라고 생각해요.

브로콜리너마저 정규 4집 ‘너를 업고’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를’ 같은 익숙한 가사도 등장하죠. 덕분에 브로콜리너마저의 멀티버스 같기도 해요.

덕원: 사실 저희가 그런 곡들이 꽤 많아요. 개인적으로 원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후대에 나오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보통 한 번 발표한 노래는 창작자의 손을 떠나 대중의 품으로 간다고 하는데요. 전 거기에 한 마디를 보태고 싶어요. 노래를 부른 사람의 행보 또한 그를 통해 이미 세상에 나온 노래에 새로운 맥락을 더해준다고요. 무대 위에서, 무대 아래에서, 나의 노래 속에서, 노래 밖에서 계속 불리면서 노래에 새로운 생명이 계속 얹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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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노래’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하시는구나, 싶네요.

덕원: 저희 첫 앨범이 ‹보편적인 노래›였잖아요. 노래에 대한 노래. 저는 항상 듣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곡을 써요. 근데 이게 흔히 생각하는 거랑 미묘하게 다른데요.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얘기나 노래를 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다만 말과 음을 엮어 곡을 완성한 후 세상에 보내는 모든 순간마다 듣는 이의 시선을 의식해요. 지금 다들 어떻게 듣고 있을까, 늘 생각하면서요. 전 가사를 작업할 때도 늘 그런 방식으로 노래를 봐요. 우선 초벌로 써놓은 후 정리가 될 때쯤 문장 하나하나에 토를 달아요. 듣는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까 아마 세상에서 제일 비판적인 비평이겠죠. 예를 들어 ‘사랑하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야’라는 문장이 있다면 ‘정말 죽을 거야?’ 같은 식으로 반문하는 거예요.

 

내용에 대한 거의 모든 답도 미리 만들어 놔요. 이번 앨범에 ‘되고 싶었어요’ 같은 곡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에 가장 좋은 주제인데요. 하지만 여러분, 전 이미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다 마련해 놨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노래에 비교적 센 표현이 많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이미 제 안에서 정리가 끝났으니 확신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순하고 착해 보이지만 절대 만만치 않은 브로콜리너마저의 가사와 노래의 근원을 찾은 것 같네요. 이제 인터뷰도 마무리할까 싶은데요. 그렇게 걸러진 말 중에서도 이번 앨범에서는 ‘그럼에도’라는 표현이 그렇게 제 마음에 걸렸어요. 앨범 전체의 정서를 관통하는 단어라고 생각했고요. ‘되고 싶었어요’에도, 영원한 사랑’에도 나오잖아요.

잔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덕원: 우리는 실패할 거고, 어떤 시간은 끝나죠.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럼에도’ 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앨범이 맞아요. ‘그럼에도’ 하는 것들은 정말 힘이 세거든요. 그게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살아있게 하기도 해요.

잔디: ‘그럼에도’라는 단어를 말하려면, 그전에 자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줄 아는 상태여야 하잖아요.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하고요. 단순한 객기로 ‘그럼에도 하겠어!’라기보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수용하고 그 후에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에요. ‘그럼에도’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음악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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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브로콜리너마저(@band_broccoliyoutoo)는 덕원(베이스, 보컬), 잔디(키보드, 보컬), 동혁(기타), 류지(드럼, 보컬)로 구성된 4인조 밴드다. 2005년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에서 만난 덕원과 잔디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2007년 발표한 EP ‹앵콜요청금지›로 혜성처럼 등장한 뒤, 2008년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부터 모던록을 기반 삼은 인디 가요계의 흔들리지 않은 기둥이자 대표적인 이름으로 20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사색적인 가사와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악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받는 등 음악적인 평가가 높다. 2020년 이후 3인조로 활동했지만 이후 밴드의 모든 공연과 앨범 작업 일부에 세션으로 참여한 동혁을 정식 멤버로 영입하며 다시 4인조 체제로 돌아왔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2023년 TVING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K-POP GENERATION›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현재 «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IN» «채널예스»에 칼럼을 연재하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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