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연재되는 현대 시각 예술계에 대한 박재용의 리포트! 두 달에 걸쳐 다룰 리포트의 주제는 AI 예술입니다. 우리는 AI가 소설도 쓰고, 음악도 작곡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과연 AI가 예술가를 대체할 날이 올까요? 이번 리포트는 AI가 어느 정도까지 인간을 대체하여 이미지와 시각 예술계를 침범하고 있는지 다뤄봤어요. AI의 역사부터 재미있게 설명하는 아티클을 놓치지 마세요.
2021년 8월,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AI 데이’ 행사를 통해 사람처럼 생긴 AI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다. 2023년 말에 생산되어 시제품을 선보일 ‘옵티머스’는 172센티미터의 키에 60킬로그램 정도의 몸무게로, 최대 시속 8킬로미터로 이동하며 20킬로그램의 짐을 들 수 있(게 될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가 공언한 대로 이 로봇이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인류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AI 데이’ 행사 당일 무대에 등장한 것은 최첨단 로봇이 아니었다. 자율적으로 가동되며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옵티머스’ 로봇은 아직 시제품도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무대에는 흰색 쫄쫄이를 입고 로봇 탈을 쓴 댄스 전문가가 올랐다.
최첨단 합금으로 만들어진 AI 로봇 대신 살짝 핏이 어긋나서 주름이 진 쫄쫄이를 입은 댄서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현장의 관객과 인터넷 생중계 시청자들 모두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쫄쫄이 로봇 댄서의 화려한 춤사위는 관객들의 환호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현장의 환호는 가끔 너무 긴장했을 때 나오는 웃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모두가 실패할 거라고 비웃었던 로켓 재활용(스페이스 엑스)과 배터리로 움직이는 자동차(테슬라)를 성공시켰고, 위성을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스타링크)마저 결국 만들어내고 만 인물이다. 그런 일론 머스크가 확신에 차 있으니, 어색한 춤사위와는 별개로 어떻게든 곧 실현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여겼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 일반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출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실현될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날이 온다면 AI 예술가가 우리를 대체하는 것 또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AI 예술가가 어떻게 인간을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선 AI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숫자와 이름, 연도를 살피는 데 취미가 없다면 곧장 이어지는 단락은 건너 뛰어도 좋다.
짧은 역사: 시적인 과학에서 생성적 사전학습 변환기 3(GPT-3)까지
1842년: 최초의 컴퓨터와 프로그램
영국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찰스 배비지가 설계한 ‘해석기관’을 통해 실행할 알고리즘의 설계를 도왔다. 장치를 고안한 배비지는 자신의 발명품이 복잡한 계산을 해석하는 용도로 쓰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불리우는 러브레이스는 기계를 통해 숫자 계산을 넘어 시를 쓰는 것과 같은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러브레이스는 이것을 ‘시적인 과학(poetic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찰스 배비지가 고안한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1842)
1921년: 상상 속 로봇의 탄생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가 한 해 앞서 대본을 쓴 연극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 1921년 1월 2일 체코의 흐라데츠크랄로베에서 초연되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로봇’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했다. 사람처럼 생겼고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계인 ‘로봇’이라는 개념은 상상만으로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차페크의 연극은 2년 동안 3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한국에서는 춘원 이광수가 1923년 ‘로봇’을 ‘인조인’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했으며, 1925년에는 박영희가 차페크의 연극을 ‹인조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잡지 «개벽»에 실었다. 한편, ‘로봇’의 어원인 체코어 단어 ‘robota’는 ‘노예 상태’나 ‘강제 노동’을 뜻한다.
1923년 런던 세인트 마틴 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제2막의 한 장면
1940년대: 전쟁과 컴퓨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 벌어진 독일군과 연합군의 암호 해독 경쟁은 오늘날 머신러닝의 기초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연합군은 작전명 ‘울트라’를 조직해 독일군을 비롯한 적군의 암호화된 통신을 해독해냈고, 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이 작전에서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엔지니어 토마스 플라워스 등이 두각을 드러냈다. 훗날 제작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은 앨런 튜링의 삶을 주로 다뤘지만, 인류 최초로 대규모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전자식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개발한 사람은 플라워스였다. (이러한 사실은 영국 정부가 반 세기가 지난 2000년에 이르러서야 기밀 해제한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한편 앨런 튜링은 1950년에 지능적 기계와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다.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통해서였는데,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 중인 ‘콜로서스 마크 2’ 컴퓨터 (1943)
1950년대: AI의 발명
1950년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이, 로봇』을 출간했다. 10년간 쓴 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은 지능이 있는 로봇들과 인간들이 공존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묘사했다. 1956년,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알려진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인지과학자 존 매카시가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열린 학회에서 ‘인공지능(AI)’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했다. 록펠러 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아 두 달간 열린 이 학회는 ‘지능이 있는 기계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년 뒤인 1958년, 매카시는 후에 ‘인공지능 언어’로 알려지게 된 컴퓨터 언어 LISP를 발명했다. 1957년에는 미국의 신경생물학자 프랭크 로젠블랫이 인간 두뇌의 사고 과정을 흉내내는 최초의 컴퓨터용 신경망을 설계했다.
전자 인간 ‘쉐이키’(1966-1972)
1960년대: ‘머신러닝’과 ‘전자 인간’
IBM의 직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아서 새뮤얼은 1959년 ‘머신러닝’이라는 단어를 창안했고, 스스로 규칙을 익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체커 게임(체스판을 사용하는 간단한 장기 놀이)을 스스로 익히고 연습해 미국 체커 순위 4위의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MIT 인공지능 연구소의 조지프 와이젠바움은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자연 언어 처리 프로그램인 ‘엘리자ELIZA’를 개발했다. ‘엘리자’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통신망을 통해 이 프로그램과 채팅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한편, 스탠포드 연구소는 ‘세계 최초의 전자 인간’인 ‘쉐이키Shakey’를 선보였다. 50년 뒤인 2008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월-E› 주인공의 먼 조상쯤 되어 보이는 ‘쉐이키’는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통신하며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스스로 경로를 설정할 수 있었으며, 초보적인 영어를 구사하며 인간과 소통했다. ‘쉐이키’가 만들어질 즈음인 1968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의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려 인간을 살해하는 AI 컴퓨터 HAL 9000이 등장한다. (HAL 9000은 미국영화협회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영화사 최악의 악당’에서 당당히 13위를 차지했다.)
왼쪽에서부터 1982년 백남준이 연출한 ‘사고’에 휘말린 그의 1964년 작품 ‹Robot K-456›, 와세다 대학교에서 1970년에서 1984년에 걸쳐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WABOT (제1호기), 198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포스터.
197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AI의 겨울
AI에 대한 기초적 연구는 진일보했지만, AI를 통해 사람들이 오랫동안 상상해온 것 같은 고차원적인 추론이나 창조를 해내는 건 녹록지 않았다.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계산 능력을 지닌 컴퓨터가 필요했고, 그만큼 강력한 컴퓨터는 그때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각국 정부와 거대 기업들은 AI 연구를 위한 자금 지원에 흥미를 잃었고, 그 결과 AI 연구는 이른바 ‘AI의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술가와 공학자들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갱신되었다. 백남준은 이미 1964년에 (무선 조종장치를 통해) 걸어다니는 ‹Robot K-456›을 만들었고, 1982년에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던 이 ‘로봇’을 거리로 데리고 나와 자동차 사고를 연출했다. 비슷한 시기인 1984년엔 도쿄 와세다 대학의 연구진이 수년간에 걸친 보행 로봇 ‘WABOT’의 개발을 마무리했고, 같은 해 전 세계의 극장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미래에서 날아온 AI 로봇을 연기하는 영화 ‹터미네이터›가 개봉되었다. 일본 정부는 1982년 ‘신세대 컴퓨터 기술 개발기구’를 발족해 10년간 4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3,000억)의 연구 자금을 투입해 AI 개발을 지원했다.
IBM이 개발한 슈퍼 컴퓨터 ‘딥 블루’와의 체스 대결에서 기권하고 무대를 떠나는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1997년 2월)
1990년대 후반부터: 어쩌면 인간보다 더 나은 AI
인류 멸망을 재촉하는 영화 속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AI는 어땠을까? IBM의 연구진이 십 년 넘게 개발해 세상에 선보인 슈퍼 컴퓨터 ‘딥블루’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의 체스 대결은 한 동안 뜸했던 AI 연구에 다시 불을 지폈다. 컴퓨터와 인간 챔피언 간의 대결은 1996년과 1997년, 약 이 년여에 걸쳐 펼쳐졌고, 인간과 기계가 각각 1차전과 2차전의 승리를 나눠 가졌다.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자리잡은 최고의 광경은 2차전 마지막 대국에서 벌어졌다. 카스파로프는 컴퓨터가 두는 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고, 관중과 해설자가 당황하는 사이에 기권을 선언하고 황급히 무대를 벗어났다. (2012년 출간된 네이트 실버의 저서 『신호와 소음』에 실린 ‘딥블루’ 개발자 인터뷰에 따르면, 인류를 대표하는 체스 챔피언을 당황하게 한 ‘신의 한 수’는 AI의 계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 무작위로 발생한 ‘버그’의 결과물이었다.) 한편, 1995년에는 당시 리처드 월러스가 자연어 처리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챗봇 ‘A.L.I.C.E(Artificial Linguistic Internet Computer Entity, 인공 언어 인터넷 컴퓨터 개체)’를 공개했다. ‘A.L.I.C.E’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최초의 챗봇 ‘엘리자’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는데, 2013년 개봉한 영화 ‹허her›의 감독 스파이크 존스는 ‘A.L.I.C.E’에서 영화를 위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늘까지: 손 안에 든 컴퓨터, 생활 속 로봇들, 딥러닝과 빅데이터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으로 남한 전역이 축구 열기에 휩싸였던 2002년, 미국에서는 인류 최초의 로봇 청소기인 ‘iRobot’이 출시되었다. 로봇 청소기가 활용한 기술은 1960년대 말에 만들어졌던 ‘전자인간 쉐이키’보다 더 간단했지만, 국가 지원금이 없으면 만들지 못할 만큼 비쌌던 기술은 홈쇼핑에서 팔려나갈 만큼 저렴해졌다. 2005년에는 미국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가 주최한 자율주행차 대회에서 스탠포드 대학교 AI 연구소가 출품한 자동차 ‘스탠리’가 약 200킬로미터 구간의 모하비 사막을 사고 없이 자율 주행으로 횡단했고, 2006년에는 컴퓨터 과학자 제프리 힌튼이 ‘딥러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자율주행차 ‘스탠리’의 머신비전을 보여주는 유튜브 클립
2007년 미국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이 더 널리 퍼져나갔다. 2008년에는 아이폰용 구글맵 애플리케이션이 음성 인식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1년 뒤에는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캘리포니아 산악지대의 도로에서 시험 주행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0년, 애플은 AI를 활용한 음성 인식 비서 ‘시리Siri’를 출시했다. 다시 1년 뒤인 2011년, IBM이 개발한 AI ‘왓슨’은 미국의 대중적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해 인간 우승 후보 두 명을 제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AI의 겨울’이 아니라 ‘AI의 여름’이 왔다는 이야기가 속속 들리기 시작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ATLAS’
이제 AI는 맹렬히 인간을 추격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15년에는 과학자 스티븐 호킹과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3,000여 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AI로 구동되는 자율형 무인 살상무기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다음 해인 2016년에는 인간 바둑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놓은 수 가운데 일부는 인간의 바둑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경기 해설자들은 입을 모아 알파고의 바둑이 “아름답다”고 평했다.
몇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020년 6월에는 인공지능 연구기관인 오픈AI가 ‘GPT-3(생성적 사전학습 변환기 3)’을 발표했다. GPT-3는 인터넷상에 올라온 (인간의 기준에서는 몇 백 년 동안 읽어도 다 읽지 못할 만한 양의) 텍스트를 재료 삼아 언어를 학습했고, 그 결과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지고 마치 인간이 쓴 것같은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몇몇 언론이 GPT-3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철학적 명제를 제안하거나 맥락에 따라 슬쩍 거짓말을 늘어놓기도 하며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알파고를 개발해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딥마인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 ‘알파폴드’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자, 100년여에 걸친 컴퓨터와 로봇, AI의 발전과 변천에 관한 간략한 역사 정리는 여기까지다. AI 혹은 지능적 기계에 대한 상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며, 최근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관련 기술 역시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가 짧지 않다. 2023년 즈음엔 일론 머스크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AI 로봇과 함께 무대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AI가 만들어내는 진짜 같은 가짜들
혹시 당신이 예술가나 디자이너, 음악가처럼 창조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의 ‘옵티머스’ AI 로봇이 그림을 그리거나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음악을 작곡할 수는 없을 거라고. 이런 생각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옵티머스는 기껏해야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인간을 따라 걸어 다니는 정도의 ‘지겨운’ 일을 수행할 것이고, 그런 간단한 일을 하는데에도 엄청난 컴퓨터 자원이 소모된다. 실제로 이세돌과 대국을 펼친 알파고가 소모한 전기는 인간의 두뇌가 소모하는 에너지의 50,000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
세상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 고양이, 말, 미술 작품, 카나리아까지… 모두 실체가 없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믿을 수 없다고? 각 이미지 아래에 적힌 “this…notexist.com”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꽤나 사실적인 사람이나 고양이 이미지를 무한히 새로고침 할 수 있다. 새로고침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실제로 본 듯한 얼굴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진짜 같지만 사실은 가짜인 것들 말이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처럼 좀 더 개선된 알고리즘을 활용한 AI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공 친구, 인공 친구 다른 그늘, 다른 그늘의 것 우린 어렸어, 우린 영원했어 인공 친구, 인공 친구
아, 잘 지내, 난, 난 나는 평균 이하의 지능으로 충분히 고양될 수 있어
이것이 화폐지능이지 이것이 가치 인텔리전스라고 말해줘 육체, 기계 인공 심장 녹다, 식사, 식사, 식사, 노예
이봐, 난 신성한 지능을 가졌어 이봐, 난 신성한 지능을 가졌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누구를 만나야 할지.
자아비대증에 걸린 아마추어 래퍼가 쓴 것 같은 이 가사는 theselyricsdonotexist.com 웹사이트에서 ‘artificial friend’를 키워드로 ‘랩’ 장르의 가사를 ‘중립적’ 분위기로 생성한 결과물을 AI 기반의 구글 번역을 통해 한글로 옮긴 것이다. 이 가사에 음악처럼 들리는 사운드를 조합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AI 작곡’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미 꽤 많은 웹사이트가 AI 작곡가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AI 작곡가에게 비트 메이킹을 맡기고, AI 번역가에게 번역과 낭독을 맡기고, AI 프로듀서에게 비트와 랩의 믹싱을 맡겨보았다. 비트에는 조금 슬픈 느낌을 담아 달라고 요청했고, 맛깔난 사운드 믹싱을 부탁했다. 아래의 재생 버튼을 눌러 결과물을 들어보도록 하자.
박재용 필자가 이 글을 위해 AI로 작사작곡한 음원 ‹인공친구›
그런데 이것을 과연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AI를 활용하는 몇 가지 서비스를 조합한 이 결과물은 분명 우리의 삶에서 1분 30초 동안 사운드 공백을 메워주었다. 하지만 이건 음악이 아니라 ‘음악처럼 들리는 사운드’, ‘공백을 채우기 위한 대체물’에 불과하다. 물론 이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창조적 판단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인공 친구’라는 키워드를 선택했고 비트 메이킹과 믹싱의 분위기를 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그 이유는 앞서 소개한 사람, 고양이, 말, 미술작품, 카나리아의 이미지가 진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이미 세상 어딘가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진짜 같은 가짜’에 불과하다.
당신이 대체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일론 머스크가 ‘옵티머스’ AI 로봇을 통해 실현하려는 꿈은 이미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그가 꿈꾸는 AI의 역할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모두가 더 가치 있고 창조적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래는 지금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실현될 것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며 인간인 척 채팅을 하고, 인간에 맞서 체스와 바둑을 두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고양이의 이미지를 매끄럽게 만들어내는 AI 알고리즘은 머스크가 꿈꾸는 미래를 향한 포석에 불과했다.
어쩌면 머스크의 꿈은 이미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 몇 가지 간단한 설정을 통해 음악(처럼 들리는 사운드)을 만들어주는 AI 서비스는 이미 유튜버나 영상 제작자의 비용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영상에 덧붙일 내레이션에 배경음악이 필요한데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진짜 음악’은 부담스럽다면? 창작의 고통을 겪는 인간 작곡가 대신 AI 작곡 알고리즘을 쓰면 된다. AI의 작곡 실력이 의심스러운가? 처음 세 곡까지는 맛보기로 무료 작곡하고, 마음에 든다면 월 정액제를 구독할 수 있다. 쇼핑몰에 쓸 광고 문구나 제품 설명이 필요한가? 카피라이터의 창조성을 요구하는 대신, 이미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AI 글쓰기 서비스를 활용하라. 제품을 홍보하는 긴 블로그 포스팅도 문제 없다. 사진을 합성할 때 항상 주의력을 요했던 ‘누끼 따기(배경 제거)’ 작업도 이제는 AI 덕분에 한 번의 클릭이면 된다.
혹시 지금 이 글을 2020년 이후에 출시된 M1 기반의 애플 기기로 읽고 있다면, 당신의 컴퓨터에는 AI 관련 알고리즘을 구동하거나 딥러닝에 활용할 수 있는 ‘뉴럴엔진’이 장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이제 별도의 장치를 추가하지 않고서도 텐서플로우와 같은 머신러닝 프로그램을 곧장 구동할 수 있다. (사실, 아이폰에는 2017년에 공개된 아이폰X 시절부터 이미 뉴럴엔진이 탑재되었다. 덕분에 아이폰은 우리가 무슨 텍스트를 입력할지 미리 예측하고, 사진첩 속 이미지에서 사람의 얼굴이나 고양이를 분간해낼 수 있다.) 단순히 연산 능력으로만 따지면 체스 챔피언인 카스파로프를 이긴 슈퍼 컴퓨터 ‘딥블루’보다 친구와 ‘페이스 스왑’을 하거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페이스 필터’를 적용할 수 있는 당신의 휴대 전화가 더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수십억 개의 인스타그램 포스트에서 한 사람만을 위한 스물다섯 개의 포스팅을 추려내는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을 설명하는 다이어그램
그렇다면 미술이나 디자인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각종 SNS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술 같아 보이는 것’, ‘디자인 같아 보이는 것’이 끊임 없이 업로드 되어 AI의 학습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미 이런 데이터를 활용한 캔바(canva.com)와 같은 서비스는 ‘AI 보조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AI를 활용하는 디자인 서비스들은 인간이라면 평생 살펴보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의 이미지를 학습한 뒤, 사용자에게 어떤 종류의 디자인이 필요할지 예측하고 선택지를 제안한다. 만약 당신의 작품이나 작업이 ‘진짜 같은 가짜’에 불과했거나 다른 사람의 창작물의 단순한 변주나 파생물에 불과했다면, 당신은 머지않아 AI에 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 좋게도 AI에게 대체되지 않는다면 AI에게 좀 더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그럴싸해 보내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 최적화된 AI로서는 차마 따라 올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되어야 하겠다. 물론, 방법을 찾아내는 건 각자의 몫이다.
마침 이러한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 ‹이안 쳉: 세계건설›(2022. 3. 2~7. 3)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고, 4월 말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가 개막할 예정이다. 다음 달의 리포트에서는 AI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당신이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을 운영하며, 공간 ‘영콤마영(@0_comma_0)’에서 문제해결가(solutions architect)를 맡고 있다. 전시기획자로 일하기도 하며, 다양한 글과 말을 번역, 통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