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밈은 때를 가리지 않고 탄생합니다. 태어난 이유조차 다양합니다. 그중 흑역사가 밈이 되는 경우, 당사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래서 더 탐닉하게 되는 일명 ‘길티 플레저 밈’을 아시나요? 가수 비의 ‘깡’을 예로 든다면 이해가 빠를까요! 얼마 전에는 어반자카파 멤버 조현아의 신곡 ‘줄게’의 음방 무대가 엄청난(?) 화제를 모으면서 뉴진스 컴백 영상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길티 플레저 밈의 백미는 댓글 놀이입니다. 누가 더 맛깔난 표현으로 ‘좋아요’를 많이 받는지 경쟁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다가 당사자가 해당 밈을 긍정하면 그때부터 대중은 새로운 영웅의 과거를 캐며 열광하게 됩니다. 운이 좋다면 재발견과 구원, 부활의 기회까지 선사하죠. 불행에서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티 플레저 밈의 역설에 대해 ‘밈 원정대’를 연재하는 김경수 님이 탁월한 견해를 보내왔습니다. 다들 이 흥미로운 아티클을 놓치지 마세요!
최근 나는 ‘줄며’들었다. 조현아의 신곡 ‘줄게’에 중독되었다는 말이다. 하루에 한 번씩 ‘줄게’를 듣지 않으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다. 카페에서 ‘줄게’가 나오면 몸이 절로 반응하며 안 들은 날에는 후렴구가 머리에 빙빙 맴돈다. ‘줄게’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생각지 못한 일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날은 지난 7월 5일이었다. 그날 오후 KBS 뮤직뱅크의 ‘줄게’ 무대는 방영 직후 소셜미디어에서 ‘깡’의 명성을 이을 전설적인(?) 무대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줄게’ 무대 영상과 이에 대한 조롱 섞인 댓글 반응을 정리한 게시물로 소셜미디어가 쫙 도배됐다. 호기심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영상을 틀었다. ‘깡’이 유행할 때 1일 5깡을 했으며 아직도 ‘깡’을 흥얼거리는 덕후라 더욱 궁금했다.
정작 ‘줄게’ 영상을 트니 안타까움이 컸다. 컨디션 난조가 화면 너머로 느껴졌다. (이 무대를 할 당시 몸이 아팠다고 한다.) 안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일이 버거워 보였다. 이런 무대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시선 처리마저 내내 어색했다. 음정도 불안했고, 가사까지 실수했다. 거친 노래와 불안한 음정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라이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조현아가 속한 그룹인 어반자카파Urban Zakapa 노래를 즐겨 들은 데다, 심심할 때마다 유튜브 채널 ‘조현아의 목요일 밤’을 봐온 터라 더욱더 마음이 심란했다.
섬네일에서부터 피부로 와닿는 은은한 광기. 아이돌 같은 엔딩 포즈를 준비했으나 부릅뜬 눈이 왜인지 부담스럽다. 이 영상의 컬트적인 인기에 가장 큰 보탬이 된 것이 영상의 섬네일이라고 생각한다.
네티즌의 조롱거리가 된 부분은 노래와 ‘헤메코’였다. 특히 “나는 돈보다 꽃이 좋더라”로 시작하는, 아직 인류에게 이른 감성의 가사가 낡은 멜로디로 어우러진 노래와 분홍빛 꽃잎이 가득하게 그려진 의상 등이 집중포화를 당했다. 나도 처음 영상을 접했을 때 당혹스러웠다. “우주를 떠돌게”라는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정신이 잠깐 안드로메다에 다녀온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줄게’가 아니라 평범한 노래를 부르면서 저런 무대를 했더라면 마음껏 응원했을 터다. ‘줄게’ 무대는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래서일까. 무대의 미감과 더불어 굳이 이 노래에 그런 의상을 컨펌한 상황에 안타까움이 섞인 반응이 대다수다.
그리고 ‘줄게’는 곧장 인터넷 밈이 되었다. 네티즌의 웃긴 댓글과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음악 크리에이터의 활약 덕분이다. 비의 ‘깡’과 컬래버레이션을 기대한다는 댓글을 의식한 듯, ‘줄게’와 ‘깡을 리믹스한 ‘줄깡’이라는 영상이 제작되었다. 제프프는 황정민의 ‘줄게’를 제작했다. 계산기로 ‘줄게’를 커버하는 사람도 있었고, 백예린과 아이유의 목소리를 입힌 AI 커버도 벌써 여럿 생겼다. 이에 힘입어 ‘줄게’의 인기가 파죽지세로 치솟았다. 조현아는 ‘줄게’ 음방 출연을 두 차례 했다. 앞서 말한 7월 5일 음방 조회수는 현재 240만 회, 다음날 공개된 ‘쇼! 음악중심’ 음방 조회수는 152만 회를 달성했다. 농담이 아니라, 두 영상 모두 7월 13일 ‘쇼! 음악중심’에서 진행한 뉴진스의 복귀 무대 ‘Supernatural’의 조회수인 141만 회를 웃돈다. 최근 비(非) 아이돌 노래가 이만큼 화제가 된 경우는 비비의 ‘밤양갱’ 정도다.
‘줄게’와 ‘깡’을 리믹스했대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기대 이하다. 콘셉트는 훌륭하지만 아직 농익지는 않은 듯해서 아쉽다. J.E.B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과연 제프프다. 이 영상의 킬링 포인트는 황정민의 영화 대사 중 “사랑해”가 분명히 있을 법한데, 굳이 ‹수리남›의 “사탄 들렸어” 음성을 가져와서 “너를 사탄해”로 들리게 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의 정겨운 수제 곡이라는 베댓이 증명하듯이, 수제 곡의 아름다움은 이 억지스러운 순간에 등장한다.
‘줄게’의 인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보통 괴작이나 망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혼자 감상하면 왜인지 혼란스럽다. 나 혼자서만 괴롭힘을 당한 기분이 든다. 함께 충격을 나눌 만한 사람이 있으면 조금은 견딜 만하다. 동일한 경험을 겪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어서다. 게다가 지금은 예술을 소비하고 리뷰하는 행위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바로 업로드하는 세상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감식안마저 평가의 대상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어떤 작품을 망작이라고 쉽게 말했다간 예술을 모르는 예알못으로 보이기 쉽다. 이때 유명 평론가나 인플루언서가 먼저 작품을 혹평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대충 내 의견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생각과 말을 빌리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하는 장르의 밈을 ‘길티 플레저 밈Guilty pleasure meme’이라고 부르고 싶다. 보는 행위에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즐기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작품을 혹평하는 여론이 생기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모두가 망작이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나 하나쯤은 더 욕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군중 안에 있다는 마음으로 부담감을 더는 셈이다. 이때 아이러니하게 망작은 네티즌의 놀이터로 거듭난다. 어떠한 댓글을 달든지 작품의 흥행이나 재평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 덕분이다. 그때부터 망작의 리뷰란에서는 서로 누가 더 웃긴 댓글을 다는지 겨루는 놀이가 시작된다. 규칙은 간단하다. 어떻게 이 작품이 망했다는 말을 더욱더 맛깔나게 하는가, 타인에게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는가 여부다. 댓글 창의 놀이가 되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보통 콘텐츠와 함께 댓글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 재미의 포인트다. 전체 화면으로 보는 건 비매너다. 이런 망작은 ‘댓글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에 집단지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라면 더더욱 집단이 생기기 어려운 곳이다. ‘깡’ 댓글 창은 집단지성은 불가능할지라도 집단적인 유머는 가능하다는 몇 안 되는 증거일 것이다. 먼 훗날 인터넷 매체에 관한 박물관이 생긴다면 ‘깡’ 댓글 창은 사라지기 전에 아카이빙 되어서 전시할 만한 물성으로 박제되어야 한다. 나는 꾸러기 표정에 관련된 드립을 가장 좋아한다.
왜 ‘깡’과 ‘줄게’의 댓글 창은 놀이에 적합할까. ‘줄게’에 달린 댓글 중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있었다. 이 노래는 “웃기려 하지 않아서 오히려 웃긴다”라는 말이었다.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유행을 노리고 만든 노래가 가득한 상황에서 한번쯤 고민할 만한 부분이다. ‘홍박사님을 아세요?’, ‘마라탕후루’, ‘잘자요 아가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단 전개부터 평범한 인간의 의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선배에게 마라탕과 탕후루를 함께 사달라고 조르다가 “그럼 제가 선배 맘에 탕탕 후루후루”라고 급발진하며 춤을 추는 모습은 의식의 흐름을 보는 듯하다. 벌스verse는 오직 챌린지에 쓰이는 중독적인 후렴구와 이상한 콘셉트, 누구든 따라 할 수 있는 안무를 유행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고 버려진다. 마치 인공위성의 발사체를 보는 듯하다. 유행을 만드는 데에는 더없이 효과적 전략이더라도 중독적인 후렴구만 반복돼 금방 질리는 한계도 있다. 이처럼 중독성과 유행을 저격하는 틱톡용 노래는 가짜 광기라 생각한다. 유행을 노리지 않아도 유행이 생기는 ‘줄게’나 ‘깡’이 진짜 광기에 가깝다.
조현아와 비는 음악에 진심으로 임한다. 앨범에 수록한 곡인 만큼 음방에 나올 때도 안무와 무대 구성, 의상 등을 체계적으로 구성한다. 다만 흔히들 이야기하듯 트렌드에 어긋난 기획을 할 때가 문제다. 본인은 한없이 진지한데 관객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가 생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웃음을 부자연스럽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이의 경직성을 교정하려는 징벌로 보았다. 물론 둘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4분 가까이 이어지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예기치 못한 웃음 포인트를 수없이 만들어 내며 컬트적인 인기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누구는 노래의 1분 17초쯤, 누구는 3분 20초쯤에서 웃음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웃었던 지점에서 타인 또한 웃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하지만, 타인이 웃기다고 알려준 포인트를 발견하고 따라 웃기도 한다. 두 눈이 번뜩 뜨일 정도로 창의적인 댓글은 깊은 감탄을 준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노래를 놀리다가 결국에는 노래에 중독된다. 어느덧 댓글 창에는 중독된 네티즌이 길티 플레저를 고백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나처럼 줄며든 사람이 모이기에는 댓글 창만 한 곳이 없다.
솔직히 가혹하다 생각하지만, 왜인지 저들의 드립력이 부럽기는 하다.
인터넷 밈은 떡밥이 있어야 확장된다. 여고생의 ‘깡’ 챌린지에서 시작된 ‘깡’ 유행은 금방 시드는 듯했다. “꾸러기 표정을 지었는가?” 등의 여러 문답으로 ‘깡’을 판별하는 놀이의 재미 또한 옅어지는 중이었다. ‘깡’에 중독된 후 더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대중이 비의 디스코그래피를 마구 헤집기 시작하며 그 판이 커졌다. 잇따라 ‘차에 타봐’, ‘슈퍼맨’, ‘어디가요 오빠’ 등 아직 인류에게 이른 명곡(?)이 발굴되었다. 해당 곡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깡’을 보고 왔다는 댓글이 인증처럼 남겨졌다. ‘차에 타봐’는 ‘깡’과 달리 여자 친구에게 접근한 남자를 때리겠다고 협박하는 가사다. 영상이 하필이면 스페인 자막이라 “이 음악은 J-POP입니다” 등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슈퍼맨’은 유행할 당시에는 비의 심연(?)이라 불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사와 낯선 가성 창법이 놀림거리가 되었다. ‘깡’ 하나도 버거운 와중에 ‘슈퍼맨’은 심화 과정이라 불릴 정도로 이상했다. 불에 기름을 붓듯 ‘레인이펙트’ 3화에서 비가 ‘La Song’과 ‘어디 가요 오빠’, ‘차에 타봐’(어떻게 이 세 곡이 한 앨범에 다 있을 수 있을까.)를 모니터링하는 영상이 발굴되자 비에게 나르시시즘 이미지가 더해졌다. 반대로 가수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면서 가수의 레전드 라이브를 되돌아보는 행렬도 이어진다. 조현아가 발라드를 라이브로 부르는 영상에는 ‘줄게’를 보고 왔다는 인증이 달려 있다. 한 가수의 디스코그래피와 삶이 대중에게 재발견되는 셈이다.
하필이면 영어와 스페인어로 번역되어서 수치심을 자아낸다. 최소 몇억 명은 이 부끄러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공식 영상이 아니라 이 영상이 유명해졌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어쨌든 스페인 사람이 안 듣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게 애국심인 것일까?
댓글 중 가장 웃긴 것은 작곡가를 지적하는 것이다. 왜 아무도 뭐라고 안 했냐는 이 밈의 공식 같은 거 같다.
이때 가수는 흥미로운 기로에 선다. 자신에 대한 밈을 인정하느냐 여부다. ‘깡’이 유행할 때 비는 방송에 직접 나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깡’을 들으려면 최소 1일 3깡은 하라는 능청스러운 말로 위기를 돌파했다. 이때 대중은 비의 태도에 환호했다. 본인에 대한 조롱이 가득한 인터넷 밈을 즐기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드러내서다. 이런 유머러스한 반응은 네티즌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조현아도 어반자카파와 함께한 방송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악플을 읽으면서 “‘줄게’를 부르긴 할 건데… 네일 색은 맞추어서 부를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리고 “너무 다양하고 재밌는 댓글이 많고 관심이 많은 게 느껴져서 속상한 마음보다는 두근대는 마음이 더 크다”라고 어반자카파의 홍보를 한 셈이라는 반응을 드러냈다. 이러한 원영적 사고가 네티즌의 호감을 샀다. 예전에는 이런 영상이 흑역사로 박제되었다. 당사자 앞에서 흑역사를 언급하며 괴롭히는 게 예능 프로그램의 클리셰였다. 지금은 다르다. 영웅 서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인에게 뜻하지 않게 생겨난 인터넷 밈을 인정하는 것은 영웅 서사의 첫 단계인 ‘소명의 수락’에 가깝다. 인터넷 밈을 인정하는 순간, 가수는 영웅으로 변하고 대중은 이러한 모습에 열광하는 셈이다. 조회수를 모으려는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고 누군가는 냉소할 테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인터넷 밈은 누구에게나 부활의 기회를 준다. 인터넷 밈으로 부활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가수 김장훈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그는 기부 천사와 독도지킴이 이미지로 유명했다. 타고난 퍼포먼스와 음색으로 어엿한 중견 가수로 불리던 그는 2010년대 후반부터 밈이 되었다. 성대결절로 목 관리에 실패해 괴성을 질러대는, “천 년에 한 번 나와야 하는” 퇴물 가수로 놀림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로운 고음으로 샤우팅을 지르는 그의 창법은 닭 창법, 감전 창법 등으로 불렸다. 처음엔 다들 비웃었지만, 옛날 김장훈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하나둘 발굴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빠져든 네티즌은 옛날의 김장훈을 재평가하며 지금의 김장훈을 ‘숲튽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야민정음으로 표기한 단어가 마치 한자처럼 보인다.)
숲튽훈 창법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창법’ 모음 열풍 때문이다. 전인권의 꼬털 뽑기 창법, 준케이의 염소 창법 등 가수의 컨디션 난조나 창법을 놀리는 모음집 안에 김장훈이 들어가 있어서다. 이와 대비되어서 권인하는 천둥 호랑이 창법이라는 명칭 때문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숲튽훈의 진가를 느끼고 싶다면 ‘아리랑’과 ‘고속도로 로망스’ 무대 강추다.
이런 구도가 생기면서 김장훈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의 댓글 창마다 김장훈의 몸을 숲튽훈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 둘이 김장훈의 몸을 두고 결전을 벌이는 중이라는 밈이 생겼다. 여기에 숲튽훈을 모창하는 유튜버 ‘김장훈왕팬’의 영상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김장훈왕팬은 김장훈의 콘서트에 직접 가겠다는 인증을 올렸고 김장훈은 그와 함께 듀엣 무대를 펼쳤다. 이때 김장훈은 옛날 창법과 샤우팅 창법을 번갈아 사용하며 본인이 완전히 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샤우팅 창법을 하는 자아를 숲튽훈이라 불렀다. 이에 기반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보이숲코리아’와 ‘복면가숲’이라는 코너를 열기도 했고 심지어 김장훈과 숲튽훈의 창법을 9:1 비율로 섞는 콘서트를 여는 것은 물론 대놓고 ‘숲서트’를 개최해 팬(?)을 불러 모았다. 그는 이제 버튜버로 활동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솔직히 이 당시에 이 영상만을 기다렸다. 김장훈왕팬의 성량을 압도하는 김장훈의 성량을 보고 역시는 역시다 싶었다.
참가자 하나하나가 개성 있어서 솔직히 한 번에 보기가 힘들어서 나누어 보았다…
인터넷 밈은 비에게도, 조현아에게도 그런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조현아의 발라드 중 ‘바래진 기억에’ 라이브 영상에는 “줄게 보고 영혼다친사람들이 이렇게많다”라는 말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갔다. 조현아의 ‘줄게’ 무대를 본 후 과거 영상을 검색하다가 몰려든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증거다. 공교롭게도 조현아가 ‘줄게’를 발표한 올해는 어반자카파 데뷔 15주년이다. ‘줄게’ 발표 직전, 어반자카파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은 각각 22만, 52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해당 채널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어반자카파도 다시 함께 주목받은 것이다.
신곡 ‘줄게’ 덕분에(?) 조현아의 과거 무대들이 재조명 받고 있다. 댓글란에는 ‘줄게’를 듣고 충격을 받아 찾아왔다는 인증이 가득하다.
다만 길티 플레저 밈이 끼치는 피해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계에서는 ‹인랑› 등 재평가할 만한 작품도 망작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회복이 불가능하다. 영화는 음악과 달리 90분이 넘는 긴 시간을 들여야 하므로 악평이 달리는 순간 새로운 관객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또한 영화는 사람이 아니므로 인터넷 밈을 뛰어넘는 성장담을 만들 수 없다. ‹디워›, ‹제 7광구› 등은 망작을 애호하는 소수를 제외한 대중에게 재평가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음악계에서는 뮤지션의 파격적인 시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줄게’의 댓글에서 헤이즈의 ‘빙글빙글’을 비슷한 사례로 언급했는데, 둘 다 본인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택한 경우다. “하고 싶은 거 그만 해!”라는 밈이 뮤지션의 실험 정신을 위축시켜 본인에게 잘 어울리거나 지금까지 하던 것만 지속하게 한다면, 음악적 다양성은 사라지고 그의 새로운 면모를 마주할 기회 또한 없어질 수 있다.
영화 ‹7광구› 포스터
가수 헤이즈의 문제적 신곡이었던 ‘빙글빙글(Prod. R.Tee)’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길티 플레저 밈을 옹호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은 테크네techne로 불렸다. 이 단어는 예술과 기술을 아우르는 말이다. 예술에는 발상을 예술적인 표현으로 승화시키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장인처럼 본인의 장르를 연마해야 한다. 예술가는 태생부터 프로다움의 영역에 서 있던 셈이다. 그러니 본인의 잘못된 선택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건 당연하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더욱더 극심한 듯싶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가 예술가의 인생을 좌우하니까 말이다.
그룹 AKMU 멤버 이찬혁을 향한 댓글. ‘OO아, 하고 싶은 거 그만해’ 라는 표현 역시 밈으로 자리잡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이론서로 불리는 『시학』 25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시인이 선택[의 대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가령] 어떤 말이 두 오른발을 동시에 앞으로 내딛는 식으로 묘사했다면 그것은 [시 예술과 별개의 탐구 영역에 속하는] 각각의 [개별적] 기술과 연관된 잘못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예술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것보다 심각한 잘못이 아니라고 격려한다. 이는 비극적 주인공의 전형이기도 하다. 길티 플레저 밈은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에둘러 말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선택을 매섭게 질타하기보다는, 놀리기를 통해서 그 충격을 완화하고 나름의 위로를 창작자에게 주는 것이다. 누군가 그 의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비평’이라고 부르고 싶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지난 6월 동명의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