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Essay

밈 원정대: 와그작와그작 밈 먹는 사회

Writer: 김경수
header_두바이초콜릿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요즘 ‘두바이 초콜릿’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오직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두바이 초콜릿을 대체하는 각종 홈 레서피recipe가 소셜미디어를 장악하고, 심지어 어떤 편의점에서 내놓은 야매 두바이 초콜릿은 지금까지 80만 개 이상 팔렸다고 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제부턴가 특정 음식이 뉴스를 도배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음식이 우리의 혼을 쏙 빼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가요. «비애티튜드»에 ‘밈 원정대’를 연재하는 밈 연구자 김경수 님은 이런 현상이 단순한 식도락 열풍이 아니라, 인터넷 밈이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지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해요. 특정 제품의 품절이 초래하는 사람들의 욕구, 웨이팅, 대체 레서피 발명, 그리고 온갖 것과 결합한 혼종의 탄생까지 말이죠.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인터넷 밈을 먹는 사회를 살고 있다고요. 허니버터칩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와그작와그작 밈 먹는 사회에 대한 경수 님의 날카로운 분석을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마리아베헤라

이제야 먹었다. 사실 ‘이제야’보다 ‘드디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석 달 가까이 맹위를 떨치는 ‘두바이 초콜릿’ 열풍에 드디어 합류했다. 이왕 먹는 김에 소셜미디어를 뒤져 유명한 곳을 찾아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수에 성공했다. 과연 두바이 초콜릿의 맛은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았다. 초콜릿 단맛이 입에서 채 가시기 전에 찐득한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Kadayif가 혀로 밀려들며 고소함이 더해졌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었다. 식감 또한 소셜미디어 속 먹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바사삭 소리가 날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맛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의 몫으로 남겨두고, 두바이 초콜릿을 시식한 이유는 따로 있다. 두바이 초콜릿은 내게 음식이라기보다, 먹을 수 있는 인터넷 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두바이 초콜릿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의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온갖 음식은 확실히 인터넷 밈과 결을 함께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인터넷 밈을 먹는 사회를 살고 있다.

직접 먹은 두바이 초콜릿

소셜미디어를 뒤적거린 곳에서 세 시간 가까이 줄 서서 구한 두바이 초콜릿. 팝업스토어에서 팔았는데 워낙 웨이팅이 길어서 뉴스에까지 떴다. 대기 번호표를 받는 과정부터 세세히 기록하고 싶을 정도로 먹기가 고되었다. 

작년 12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두바이 초콜릿의 원본은 두바이 신생 초콜릿 회사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FIX Dessert Chocolatier’에서 출시한 ‘픽스 히어로즈FIX Heroes’ 시리즈 중 하나인 ‘Cant Get Knafeh of It’이다. 쿠나파Knafeh는 밀가루를 미세한 면 형태로 뽑아내어 기름에 볶은 바삭하고 고소한 식감의 카다이프에 크림이나 꿀을 함께 버무려 팬케이크 형태로 담거나, 취향에 따라 치즈와 견과류를 뿌려 먹는 아랍 전통 음식이다. 특유의 흐물거림 때문에 접시와 숟가락이 없으면 먹기 불편하지만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는 피스타치오 크림과 범벅이 된 카다이프를 녹색 필링으로 구현하며 그야말로 킬링 포인트를 만들었다.

픽스 쇼콜라티에

몇 주 사이 당근에 평균 가격 7만원 상당으로 올라오는 소문의 찐 두바이 초콜릿. 높은 가격에 입이 벌어지지만, 매번 팔리는 게 신기할 따름. ‘장인, 더’에서 파는 한과가 하나에 2만원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양반인가 싶기도 하다. 탐스러운 비주얼이 가히 일품이다. 

쿠나파

아랍 전통 디저트 쿠나파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요리한다. 두바이 초콜릿에 응용한 쿠나파는 튀르키예식으로, 쿠나파에 피스타치오를 넣어 요리하는 게 특징이다. 

제조사는 틱톡에서 활동하는 유명 디저트 리뷰 인플루언서들과 초콜릿 먹방 영상을 만드는 바이럴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그중 마리아 베헤라Maria Vehera의 쿠나파 초콜릿 먹방이 수천만 뷰를 달성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자극적인 리액션, ASMR이 연상되는 카다이프 부서지는 아사삭 소리가 틱톡 유저의 눈과 귀를 자극하자 이윽고 쿠나파 초콜릿을 먹는 챌린지가 광풍처럼 불었다. 해당 초콜릿은 두바이 초콜릿이라 불리며 물량이 나올 때마다 두바이 현지에서 1분 만에 동나는 대란이 일어났다. 해외에 판매하지 않는 내수 전용 상품이라 애가 타버린 유튜버 중에는 이 초콜릿 하나 먹으려고 두바이로 날아가는 경우까지 생겼다. 만수르가 도와줘도 구하기 힘든 몸이 된 원조 초콜릿 대신,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야매 두바이 초콜릿 레서피recipe가 전 세계에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mariavehera257 @fixdessertchocolatier WOW, JUST WOW!!! Can’t explain how good these are! When a chocolate, a dessert and a piece of art meet this is what you get! 🍫 "Can't Get Knafeh of it," "Mind Your Own Busicoff," and "Crazy Over Caramel." Order on Instagram Chatfood or Deliveroo and let me know what’s your FIX? Instagram : fixdessertchocolatier #asmr #foodsounds #dubai #dubaidessert ♬ оригинальный звук - mariavehera257

평소 틱톡을 무시(?)하던 내게 제대로 한 방 먹인 먹방의 주인공. 마리아 베헤라가 두바이 초콜릿을 먹는 리액션은 사운드와 표정까지 모든 게 영화적이다.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과정까지 먹방이라고 생각하던 내게 틱톡 먹방은 먹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기승전결이 사라진 방송인 먹방 중에서도 틱톡 먹방의 원초적인 감각은 굉장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도 두바이 초콜릿 열풍이 불었다. 석 달 전 즈음부터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로 두바이 초콜릿을 직접 만드는 쿡방이 온갖 소셜미디어를 도배했다. 얼마 뒤 여러 카페에서 너도나도 수제 두바이 초콜릿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바이 초콜릿에서 파생한 디저트가 쏟아져 나왔다. 먼저 쿠키에다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바른 카다이프를 올려 구운 두바이 초콜릿 쿠키가 출현했다. 여기에 푸딩, 까넬레Canelé, 피낭시에Financier, 슈 등 온갖 디저트 이름 앞에 두바이 초콜릿이 더해졌다.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만 들어가면 어떤 음식이든 두바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혼종이라 부를 만한 괴상한 조합도 쏟아졌다. 지난주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는 두바이 초콜릿 전에 유행한 크루키Crookie에 두바이 초콜릿을 더한 ‘두바이 초콜릿 크루키’를 보았다. 빠른 품절 탓에 먹어보진 못했지만, 존재감만으로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뇌절도 예술’이란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과연 뚱카롱, 마라탕처럼 쭉 인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흥미롭기는 매한가지다.

이번 글을 쓰는 과정에서 발견한 유튜브 채널. 두바이 초콜릿으로 찹쌀떡을 만들어 먹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한데, 김밥까지 만드는 모습에서 계정주의 아득한 창조 정신을 느꼈다. 이외에도 대왕 감자튀김 등 온갖 이상한 군것질거리를 만드는 게 솔직히 마음에 든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이상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자매품으로, 불닭볶음면으로 위스키를 담그는 ‘술 익는 집’도 있다.

두바이-초콜릿-푸딩

먹어보고 싶지만, 아직 용기가 안 나는 품목. 집 근처에 있다는 데 눈 감고 한번 시도할지 고민 중이다.

두바이 초콜릿맛 쿠키
두바이찹쌀떡

(좌) 모 편의점에서 나온 두바이 초콜릿 유사품에 혹평이 쏟아지며 수많은 네티즌이 이 제품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편의점에는 재고가 있다는데, 가보면 항상 동나있다.

(우) 이번 글을 쓰면서 온갖 두바이 초콜릿 음식을 시도해 본 입장에서, 좀 괜찮았던 품목. 찹쌀떡의 쫀득함과 카다이프의 바삭함이 한데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맛을 낸다.

(상) 두바이 초콜릿 쿠키

(하) 두바이 찹쌀떡

지금까지 나타난 두바이 초콜릿의 유행 패턴은 인터넷 밈이 탄생하고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패턴과 매우 비슷하다. 나는 이를 두고 음식이 인터넷 밈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라고 본다. ‘어떻게 0과 1로 구성된 비트에 불과한 인터넷 밈과 보고, 먹고, 만질 수 있는 음식이 똑같냐?’라고 의문을 던지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인터넷 밈이 생기는 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예능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만화든 기존 콘텐츠를 가지고 특정 유저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짤방과 움짤로 가져다 쓰는 합성 소스로 가공한다. 합성 소스가 널리 퍼지면 이를 기반으로 일정한 규칙이 통용되는 세계관이 생긴다. 여기에서 다양한 유저가 각자의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해 합성 소스를 재창조하는 행위가 바로 인터넷 밈이다.

마라탕후루

이 MV만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마라탕과 탕후루를 사달라다가 왜 갑자기 총을 쏘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즐기는 콘텐츠라는 생각. 아무말대잔치와 의식의 흐름의 도착지가 여기일까, 싶은 마음도 든다. “잠에 들지 않으면 우리는 춤을 춘다”던 다나카도 힘들었는데…

두바이 초콜릿을 비롯해 약과, 탕후루, 마카롱, 마라탕 등 한국의 소셜미디어를 한바탕 휩쓴 음식은 어떨까? 급격하게 유행하기 전에는 누구나 아주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지만, 한번 화제가 되자 수많은 사람이 궁금증을 못 이겨 이를 사 먹기 위해 몰리기 시작했다. 품귀 현상이 생기면 우후죽순 그 빈틈을 노려 레서피를 모방하는 사례가 생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원조를 대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레서피에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는 괴식(怪食)이 탄생했다. 이쯤이면 대세 맛집과의 유사성은 더 이상 큰 흥미를 주지 못한다. 어떤 음식과 결합해 얼마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지, 얼마나 탐스러운 비주얼을 지니는지, 얼마나 미친 맛인지 여부가 판단 기준으로 떠오른다. 이를 요약하는 ‘자극성’은 바로 밈의 척도이기도 하다.

이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퍼졌을 때 모두가 손사래를 친 기억이 있다. 한국식 디저트인 뚱카롱에 탕후루까지 끼우면 이야말로 진정한 한과가 아닐까?

여러 개의 탕후루를 세트로 묶어 판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오마카세라니!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인터넷 밈에 가깝다고 종종 생각하는데, 이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며 음식이 인터넷 밈으로 진화하는 물꼬를 튼 선례를 꼽는다면 단연 허니버터칩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전에도 대왕 카스텔라, 벌집 아이스크림, 꼬꼬면, 커피번 등 특정 시기마다 유행하는 음식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허니버터칩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가령 대왕 카스텔라가 유행할 때는 뉴스에 나오고, 체인점이 늘어나는 정도였다. 대왕 카스텔라를 다른 디저트와 창의적으로 뒤섞는 괴식은 보기 드물었다. 벌집 아이스크림, 커피번도 마찬가지다. 대왕 카스텔라에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리를 더한 ‘두바이 카스텔라’ 같은 괴식 만들기는 그때만 하더라도 “음식으로 장난치지 말랬지!” 잔소리와 함께 등짝을 후드려 맞아도 싼 일이었다. 요즘처럼 하다 하다 이런 것까지 만드냐고 웃어넘기지 않았다. 탕후루로 오마카세를 차리는 일이란 당최 상상하기 힘들었다.

벌꿀 아이스크림

개인적으로 솔직히 그리운 음식. 벌집을 씹어먹을 때의 끈적함 때문에 충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허니버터칩을 기점으로 한국 식문화의 패러다임이 뒤집혔다. 2014년 8월에 출시해 그해 10월부터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킨 허니버터칩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한국에 소셜미디어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 시기와 딱 맞아떨어진다. 인터넷 밈이 디씨인사이드의 하위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일부로 편입되는 전환점의 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튼 허니버터칩은 사실상 홍보를 거의 안 했는데도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으며 품귀 현상을 일으켰다. 허니버터칩을 파는 인근 편의점의 재고 현황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겨우 구해서 먹었다는 인증샷이 쉴 새 없이 올라오다 결국 제조사의 공장 라인이 멈추는 대란까지 발생했다. 생산 중단이 두 달 가까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허니버터칩 대신 허니버터 소스를 바른 온갖 음식을 만들어냈다. 허니버터 닭강정, 허니버터 아몬드 등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허니버터 소스를 바르면 무엇이든 허니버터스러운 것이 되었다. 심지어 음식이 아니라도 부드러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니버터를 더했다. 허니버터빌이라는 분양 광고와 허니버터팝이라는 앨범까지 나왔으니, 이쯤이면 허니버터의 맛보다 허니버터를 먹었다는 인증샷을 남기려는 욕망으로 허니버터를 그토록 찾은 것 같다. 과감히 말하면, 우리는 허니버터칩 유행 이후로 허니버터칩이 아닌 허니버터라는 기호와 여기서 탄생한 인터넷 밈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허니버터칩

나는 이 과자가 유행하기 전날에 먹었다. 함께 과자를 맛본 어머니가 그다음 날 다시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킬 정도였는데, 그날로 끝이었다. 이후 반년 가까이 먹을 수 없었다.

허니버터 아몬드

밈-푸드 중 처음으로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허니버터아몬드도 평범한 아몬드에 어떤 소스를 얹는다는 레서피를 기반으로 온갖 음식을 만든다는 점에서 밈을 모방하고 있다.

허니버터칩 뉴스

도시 괴담 같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두바이 초콜릿 쿠키를 당근했더니 편의점 직원이 등장했다는 썰이 가끔 올라온다. 이런 비양심적인 행동이 음식을 인터넷 밈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허니버터빌
허니버터팝

보자마자 한숨이 푹 나왔다. 마치 MZ 유행어를 따라 쓴 광고 카피나 칼럼을 보는 듯하달까. 누군가 한 번쯤 허니버터칩을 정치판에 가져다 쓰지 않았을까 싶어 검색해 보니 정말 정치적 선언에 허니버터칩을 인용한 이가 있었다.

이후 소셜미디어가 고도화되면서 음식은 간편하게 인터넷 밈으로 전환됐다. 작년 약과의 유행을 보라. 약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찍부터 유명했던 의정부 ‘장인, 더’(舊 장인한과)의 파지 약과에 갑작스레 관심이 쏠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품절 대란이 터지고, 약과 입고일을 기다리는 일명 ‘약켓팅’이 일상화되면서, 중고 거래 사이트에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매물이 올라오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여러 언론 보도도 이런 현상에 동조했다. 당시 유행하던 흑임자 맛과 더불어 약과에 대한 관심이 MZ 세대의 문화 현상이라는 뉴스를 찍어냈기 때문이다. 점점 ‘장인, 더’의 약과를 사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해지자,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다른 약과를 먹거나 대체품을 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고, 결국 온갖 약과 디저트가 난립하고, 개성주악이라는 비슷한 디저트까지 소환됐다. 소문의 파지 약과를 먹지 못한 헛헛함이 되려 약과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행의 중심에 선 제품을 먹지 못해 온갖 파생품이 생겼다는 점에서 허니버터칩, 약과, 그리고 두바이 초콜릿은 동일 선상에 있다.

장인 더 파지약과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당근에는 꾸준히 올라오고 금방 팔리는 품목. 혹여나 독자 중에 이번 에세이가 마음에 든 사람이 있다면 파지 약과를 선물해 주시길. 저는 약과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마냥 긍정할 만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 ‹기생충›(2019) 속 기택(송광호 분)과 근세(박명훈 분) 가족이 대왕 카스텔라 가게를 차렸다가 쫄딱 망해서, 한쪽은 쿰쿰한 반지하로, 다른 한쪽은 비밀의 지하실로 숨어든 경우를 보라. 유행이 끝난 후의 후폭풍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누가 칼 들고 가게 차리라고 협박했음?”이라는 반응이 대다수니까. 진짜 문제는 허니버터칩부터 시작해 불닭볶음면, 뚱카롱, 마라탕, 탕후루, 흑당, 크로키, 두바이 초콜릿까지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음식이 죄다 달짝지근하거나 맵거나 열량이 높다는 점이다. 도파민이 올라가듯, 혈당 지수도 폭발하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마라탕을 먹다가 위염에 걸린 경험담이 인터넷에 수두룩하다. 탕후루와 관련한 게시물마다 당뇨가 걱정된다는 댓글도 흔히 볼 수 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이런 음식은 대체 왜 미친 듯이 유행하는 걸까? 아마도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소셜미디어가 혈당지수와 열량을 매력적으로 시각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생충-근세

개인적으로 기생충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대왕 카스텔라 하나로 한국의 유행 패턴과 그 희생자를 포착할 수 있는 감독은 봉준호뿐일 것이다.

대만 카스테라

그립다. 먹고 싶어도 이제는 파는 곳도 없고, 같이 먹을 사람도 없다.

실제 인스타그램에 리뷰 계정을 자처하는 곳의 피드를 보면 음식점 홍보를 위해 찍은 바이럴 영상이 가득하다. (모두 다른 식당을 리뷰하는 듯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취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를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영상에 등장하는 음식은 항상 서너 명이 먹을 분량에 그릇이 모자랄 만큼 산더미 같은 비주얼을 선보인다. 소고기든, 마라탕이든 음식에 잘잘 흐르는 윤기도 빼놓을 수 없다. 디저트라고 다를까. 온갖 달디단 것이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푸드 포르노’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내가 두바이 초콜릿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애써 못 본 척하려고 노력했던 까닭도 실은 감각적인 자극이 극한에 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셜미디어에 퍼졌던 음식이 시각적인 자극에 집중했다면, 두바이 초콜릿은 청각까지 자극하며 온몸을 휘어잡는다. 두바이 초콜릿을 한입 깨무는 순간은 영화적 효과를 자아낸다. 과장이 아니다. 바사삭 소리가 들리는 순간, 탕후루보다 위험하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두바이 초콜릿에 중독되는 순간, 빠르게 망가지는 내 몸이 떠올랐다.

최근 가장 즐겨 보는 뉴미디어 방송이다. PD가 온갖 먹거리를 소재로 탐사보도와 먹방을 결합했는데, 보고 있으면 시간이 훅 간다. 아니나 다를까 두바이 초콜릿을 먼저 다룬 곳 중 하나다.

음식이 인터넷 밈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면 항상 마음이 복잡하다. 한국인 특유의 피로감과 이어져 있어서다. 한국은 과로와 번아웃의 나라다. 밖에서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 다른 무엇을 할 만한 여유가 사라진다. 여행과 자기 계발, 다양한 취미를 통해 적당한 자극과 보람을 누리고 싶어도 체력과 심적 여유가 부족하고, 실질적으로 느끼는 보상 또한 기대치를 채우지 못할 때가 많으며 심지어 곧바로 충족되지도 않는다. 이런 세상의 빈틈을 노리는 게 바로 음식이다. 수천 칼로리에 달하는 달달하고 기름진 음식은 감각적인 쾌락을 즉시 제공한다. 이런 관점에서 온갖 이색적인 음식에 대한 탐닉은 도파민이 곧장 차오르는 인터넷 밈과 별 다를 바 없다. 인스타그램에 올려 ‘좋아요’를 받으며 만족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유행하는 거 다 모아봄

최근에 출간한 책 제목을 빌리면 ‘한국은 혼종의 나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인면조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인간의 얼굴을 지닌 새 같은 괴상망측한 것을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그러나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깨졌다. 프랑스가 혼종의 미학을 끝까지 드러내고야 말았다.

노동으로 가득한 일상을 힘겹게 견디는 사람 중 원하는 대로 삶을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완고한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려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두바이 초콜릿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상술에 속았다고 비난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싶다.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잠시나마 모든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일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를 증명하는 의식의 발로라면, 두바이 초콜릿처럼 소셜미디어를 휘젓고 다니는 음식은 권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수단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Writer

김경수(@vivre_wasavie)는 영화평론가이자 인터넷 밈meme 연구자다. 학부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제를 모은 졸업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은 지난 6월 동명의 단행본으로 발행됐다. 영화와 인터넷 밈을 동시에 연구하는데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현재 «코아르»에 영화 비평, «여성동아»에 인터넷 밈 비평을 연재하고, «씨네21»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FIPRESCI) 한국 지부 정회원이자 인문학 스탠드업 코미디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