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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증상앤더시티-손절의 시대

Writer: 김지혜
[Essay]증상앤더시티 3_1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시작이 MBTI였는지, 연예 상담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자존감’, ‘가스라이팅’, ‘경계 설정’ 같은 심리학 언어는 어느새 일상의 문장이 되었죠. 나를 지키고, 나를 중심에 두려는 흐름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단의 언어를 너무 쉽게 빌려 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관계의 균열을 대화로 풀기보다 ‘유해함’이라는 이름표를 먼저 붙여버리면서요. 무해한 것만이 내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허가증처럼, 안전함으로 무장하려는 방어 기술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유무해의 언어로 관계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택이 있습니다. ‘정리’.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이 변해도 사람 사이 관계를 끝맺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연인과 이별, 친구와 소원함, 직장 동료와 미묘한 거리두기까지…. 카톡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를 두고 반응 이모지 하나에 예의가 있네 없네를 따지는 시대니까요. 김지혜 박사는 이번 에세이에서 ‘관계 디톡스’를 다시 정의합니다. 버려내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적 마인드를 재구성하고, 건강한 연결이 다시 작동하도록 설정값을 조정하는 과정으로요. 내가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쉽게 정리당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떠올려 보자고 말합니다. ‘혼자여도 괜찮아’를 다짐하며 조용한 손절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 선택의 이면을 한 번쯤 들여다볼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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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CALLE, View of the exhibition

“Take Care of Yourself (French Pavilion of the 52nd Venice Biennale)”, Venice Biennale (Italy), 2007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 Miami ; Arndt & Partner, Berlin / Zurich ; Koyanagi, Tokyo ; Gallery Paula Cooper, NY, Photograph : Florian Kleinenfenn / Aia Production

증상앤더시티

증상앤더시티는 ‘도시’ 속 우리가 겪는 ‘증상’을 분석한다기보다 증상 속 우리의 향유가 얽혀 있는 틈새를 비추며, 나만의 예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생을 직조해 내는 고유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다. 아티스트· 아트세러피스트로정체화하는 저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상을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라는 반사경을 통해 비스듬히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으로서 도시가 개인의 증상을 형성하는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내포한다.

“도시의 증상이면서, 도시가 증상이다.”

치아시드, 레몬수, 아침의 애사비 워터 한 잔까지, 푸드 디톡스는 체내에 축적된 독소를 빼내 배출을 촉진하는 대체의학 요법이다. 디톡스 다이어트는 의학적 효능과 관련한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새해맞이 피트니스센터 등록처럼 새로운 시작과 결심을 표현하는 의례에 가까워졌다. 애사비 이전에도 클렌즈 주스, 레몬즙, 효소, 녹즙의 유행은 늘 있어 왔다.

비워내고 정화하며 나를 돌본다는 트렌드는 최근 내 몸 내부만 아니라 관계에도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확장되었고, 관계 디톡스는 자기계발과 자기돌봄을 위한 관리의 일부로 여겨진다. 에너지 뱀파이어,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톡식toxic한 관계 패턴은 나를 위한 가용에너지도 부족한 세태에 독성 그 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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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장 샤를 부슈가 악성 나르시시스트 사례에 관해 쓴 책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의 표지. 원제는 『Les pervers narcissiques나르시시스트형 변태』이다.

이는 심리학이나 상담실에서 쓰이던 언어(therapy-speak)인, 경계 설정(바운더리), 가스라이팅,
트리거 등이 일상의 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흐름을 반영하기도 한다. 나를 이용하고 착취하
려는 사람들,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깁’만 뜯기는 관계를 가시화해 나를 지키고 중심에 두고자 하
는 경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과 감정을 더욱 정교하게 호명하면서 제
대로 인식하고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되었지만, 때로는 이 같은 진단의 언어가 오남용되고, 손쉬운
병리화와 라벨링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손절은 원래 주식이 더 떨어지기 전 손해를 막기 위해 매도한다는 주식 투자의 은어 ‘손절매’가 인
간관계로까지 확장된 신조어로, 관계에서 감정적이나 시간적 손해가 발생한다면 그 관계를 끊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에서 매몰비용은 이미 지불해 어떤 선택으로도 회수가 불가능하므로 합리
적 의사결정에서 고려해서는 안 되는 비용이다. 여기에 매몰되면 여태껏 해 온 게 아깝다는 식의
감정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흐려지므로 매몰비용의 논리에서 벗어나 내 감정자본의 투자를 끊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손절이 된다.

살다 보면 생존을 위해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독이 되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나를 도구화하고,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자들과 단절하는 것은 절박하고 시
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자기보호이다. 하지만 나에게 유해한 사람과 손절한다는 건 의지와 용기만
가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꺼지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자체가 권력으로, 대다수는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우리는 두렵기에 솔직하지 못하고, 취약하기에 친절해질 수도
있다(물론 선후관계가 뒤집혀 친절함이 나약함으로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저 조용히 사라져 줄
뿐…. 그리고 때로는 안전 이별마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직장 상사가, 지도교수가, 더 나아가 가족이 유해하다고 쉽게 차단할 수 있을까? 내가? 감히? 손
절 행위에 따르는 사회적 보복이라는 후폭풍 하나만 감당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가정폭력
이나 데이트폭력은 말할 것도 없다. 범죄의 범주는 배제하더라도 연인관계 혹은 ‘썸’처럼 자발적
이고 평등하게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관계에서조차 더 사랑하고 더 관심 있는 이가 을이 되는 미
묘한 권력의 역학관계가 설정되곤 한다. 더 적게 원할 때 커지는 사랑의 권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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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권력 비대칭을 드러내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우리는 거의 모두 잠수 이별의 슬픔을 겪은 적이 있다. 오죽하면 프랑스 아티스트인 소피 칼
Sophie Calle이 메일로 통보받은 이별의 언어를 남들에게 해독해 달라고 요청하는 작업을 했을
까. 여기서 해독을 통한 해독detox은 일어났을까?
이별의 예술가(엄밀히 말하면 차이기의 예술가)로 불릴 만한 소피 칼은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Prenez soin de vous(Take Care of yourself)»에서 연인의 이별 통보 이메일의
마지막 문장인 “Take Care of Yourself”를 변호사, 언어학자, 정신과 의사, 교정가 등 ‘언어를 해석
하는’ 직업군의 여성 107명에게 해체하고 해부하게 한다. 사적인 이별 언어의 집단적 독해가 이루
어지며, 이별을 말하는 언어의 권력은 분산된다.

Take Care of Yourself 원문을 소개하고 있는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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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CALLE, View of the exhibition

“Take Care of Yourself (French Pavilion of the 52nd Venice Bienale)”, Venice Biennale (Italy), 2007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 Miami ; Arndt & Partner, Berlin / Zurich ; Koyanagi,
Tokyo ; Gallery Paula Cooper, NY, Photograph : Florian Kleinefenn / Aia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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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CALLE, View of the exhibition

“Take Care of Yourself (French Pavilion of the 52nd Venice Biennale)”, Venice Biennale (Italy), 2007
Courtesy Galerie Emmanuel Perrotin, Paris / Miami ; Arndt & Partner, Berlin / Zurich ; Koyanagi, Tokyo ; Gallery Paula Cooper, NY, Photograph : Florian Kleinenfenn / Aia Production

대중문화 속 최악의 이별로 회자되는 것 중 하나는 에세이의 제목으로 영감을 받기도 한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포스트잇 이별 통보이다. 포스트잇의 내용은 ‘미안하지만, 못 하겠어. 날
미워하지마’로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그야말로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손절의 초기
형태로서 이별 방식을 그렸다.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
탄하는 주인공에게 지금의 손절법은 얼마나 개념 없어 보일까. 자기가 먼저 이별을 고하려 했었다
고 분개하는 것은 사랑뿐 아니라 이별에도 권력이 비대칭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신
분석학자 제시카 벤저민Jessica Benjamin의 상호인정 관점에서 포스트잇이나 이메일로 통보받
는 이별은 한쪽은 행위하는 자(doer), 한쪽은 당하는 자(done to)가 되는 극단적 비대칭 구조로, 대
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별의 슬픔을 표현할 기회조차 소거하는 상호불인정이자 몰인정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통보받고 친구들에게 알리는 영상, 출처 HBO 유튜브

관계를 끝내는 방법에도 다양한 차원과 기술이 있다. 손절은 상대방이 종결을 인지하도록 하는,
이별의 윤리 등급이 있다면 톱티어에 가까운 방식일 것이다. 당하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게 잘 조
절된 손절은 관계의 예술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조용히 손절했다고 생각할 때 실
은 아무도 나의 손절을 몰랐던 거고, 우리 집에서나 좀 이슈가 됐을지 모를 일이다.

고스팅Ghosting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하는 이에게는 손절, 당하는 이에
게는 잠수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차단, 언팔, 번호 삭제로 어느 순간 연락을 끊고, 끊었다는 통보
를 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 단절이다. 연인관계에만 한정되지 않고, 친구나 동료, 가족관계에서
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응답은 남기지만, 내용은 의미 없는 ‘ᄒᄒ’, ‘그렇구나…’또는 이모티콘
으로 최소한으로 반응하는 것이 소프트 고스팅soft ghosting이다.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착시라기
보다는 무시이다. 갑작스러운 단절이 부담되는 경우 좀 더 자연스러운 조용한 손절이 이루어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늦게 대답하고, 만남은 미루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관계가 멀어지길 기다
리는 방식인 소프트 패딩soft fading이다. 바쁜 게 미덕이고, 직접적인 거절 표현을 꺼리는 한국 사
회에서 누가 먼저 끊었는지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 단절 형태에 가깝다. 그래
서인지 갈등 없이 손절하는 방법, 조용한 손절법 노하우가 공유되기도 한다.

아무리 해도 손절할 수 없거나 온갖 방식을 동원해 손절한다 해도 관계의 피로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인간관계에서 집착을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쿨한 일일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이미 깨어진 관계를 붙들고 실은 내가 먼저 손절한 거라고, 정신 승리라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위
안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 언어로 이별을 말할 때 비로소 마무리되는 관계가 있다.
이별을 통보하거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설명 자체가 감정노동이 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이루
어지는 관계를 익숙하게 여기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고스팅이나 조용한 손절이 좀 더 자
연스러울 수도 있다. 클릭 한 번으로 관계를 맺거나 정리하고, AI 친구가 딸깍 한 번으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데, 굳이 안 맞는 누군가와 만나 에너지를 소진하고 때로는 상처까지 주고받을
필요는 없다. 갈등은 함께 대화하며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무언가가 된다. 물론
문제를 피하는 것이 해결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애초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
면서 최소한의 손실을 도모하는 것이다.
다만 온라인의 많은 맥락이 생략된 방식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면 언어적 표현보다 상황, 관계,
눈치가 소통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맥락 사회인 한국의 눈치게임에서는 비극을 초래할 위
험이 있다. 내가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쉽게 정리당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이는 관계의 불안정성을 낳고, 어떤 관계도 느슨하게 만든다(느슨한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편
안함과 구원은 별개로 말이다).

관계 디톡스는 유해하고 문제적인 관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
하는 과정, 상대를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과정의 의미를 소거하고 주변에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피상적 관계들만 남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관계는 애초에 불편한 것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편함을 견디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노
력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관계 디톡스가 관계 맺기와 유지하기의 회피는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필요하다.
75년간의 행복 연구를 진행한 로버트 왈딩거Robert J. Waldinger는 “좋은 관계가 우리를 더 행복
하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좋은 관계란 갈등이 없고 감정 소모가 없는 편안한
관계가 아니라 갈등과 노력을 통과한 뒤에도 남아 있는 관계다. 관계는 힘들기에 가치가 있고, 그
힘듦을 감당할 때 관계는 우리를 살린다.

브레네 브라운의 테드 톡: 취약성의 힘

인간은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우리는 관계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유명한 취약성 연구에서 취약성을 인정하고 내면의 연결되고 싶은 기대와 욕망을 받아
들일 때 충만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인간의 충만감은 통제되어 안전할 때가 아니라 취
약성을 감수한 연결을 통해 얻는 것이라고 말이다. 관계 디톡스의 디톡스를 비워내는 것만이 아니
라 관계적 마인드를 재구성하고, 좋은 관계가 다시 작동하기 위한 설정값을 조정하는 과정으로 재
정의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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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지혜 박사는 아티스트이자 미술치료사로, ‘아트애즈테라피(artastherapy.kr)’를 운영하며 예술
치료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 정신분석, 심리학, 미술치료의 관점을 교차하고, 창작과
치유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최근 연구 주제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다문화 사회정의 미술치료와 반응작업 미술치료가 있다.
앞으로 미술과 음악, 문학, 무용동작 등을 통합하는 예술치료를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미술, 전시, 교육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자 한다. 저서로는 『치유로서의 미술』(글로벌콘텐츠,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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