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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마돈나는 역사다

Writer: 김도훈
김도훈, 마돈나는 역사다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Madonna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1980년대부터 40년에 걸쳐 ‘팝의 여왕(Queen of Pop)’으로 군림한 마돈나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아티스트입니다. 앨범을 낼 때마다 서구 사회에 엄청난 이슈를 몰고 다니며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 되었죠. 요즘에는 어쩐지 연하남 킬러에다 성형 괴인이라는 키워드로 더 알려지는 것 같지만요. 올여름 자신의 마지막 월드 투어가 될지도 모르는 공연을 준비하다 세균 감염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며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는데요. «비애티튜드»의 귀한 필자인 김도훈 님은 “음악적 차도르를 둘러쓰고 있던 여성 가수가 주체적인 성적 표현의 자유를 누릴 기회를 홀로 연 역사적인 아티스트”라고 말하며 요즘 마돈나의 혁신적인 면모가 잊히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도훈 님이 몸소 워드를 켰습니다. 미친 꼰대력으로 가득한 시대에 혁명을 일으킨 마돈나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번 아티클을 놓치지 마세요.

김도훈, 마돈나는 역사다

‹Papa Don’t Preach› 커버

내가 처음 들었던 마돈나Madonna의 노래는 ‘Papa Don’t Preach’였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구입한 카세트테이프 중 하나가 마돈나의 3집 ‹True Blue›였다. 여러모로 팝의 역사를 바꿨다고 찬사받는 명반이다. 물론 그 시절에는 이게 명반이 될 지 몰랐다. 1집 ‹Madonna›가 나온 게 1983년, 2집 ‹Like A Virgin›은 이듬해인 1984년에 나왔다. ‹Like A Virgin›이 지나칠 정도로 성공을 거두며 한국에서도 그의 치렁치렁한 80년대 패션이 유행하긴 했지만, 마돈나는 여전히 의심을 받던 가수였다. 당대 라이벌로 손꼽히던 신디 로퍼Cyndi Lauper가 더 오래갈 거라는 예측은 모든 음악 잡지에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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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Madonna›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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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Like A Virgin› 앨범 커버

김도훈, 마돈나는 역사다

3집 ‹True Blue› 앨범 커버

팝이라는 게 그렇다. 지금에야 아바ABBA가 역사적인 뮤지션으로 평가받지만 1980년대 초중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달콤한 멜로디 팝을 만드는 스웨덴 그룹 정도로나 여겨졌다.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을 불러일으킨 도나 서머Donna Summer는 어떤가. 지금 ‘I Feel Love’는 시대를 뛰어넘은 미래의 사운드로 평가받지만 그 시절에 누가 그를 위대한 가수라고 했던가. 나는 아바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에 필적하는 그룹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말하는 게 불가능했다. 지금도 세상은 꼰대스럽지만 그 시절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의 팝에 대한 꼰대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하여간 ‹True Blue› 앨범을 사게 된 이유는 AFKN으로 본 ‘Papa Don’t Preach’ 뮤직비디오 덕분이었다. 아, 여기서 또 중늙은이 같은 소리를 해야겠다. 1980년대에는 김광한이 진행하던 ‹쇼 비디오자키› 외에는 한국에서 해외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볼 기회가 없었다. (그것도 사실 1980년대 후반부터다.) 다행히 주한미군 방송 AFKN이 MTV의 뮤직비디오를 종종 묶어서 방영했다. 나는 바깥에서 뛰어놀아야 ‘내 자식이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건강한 자유대한민국 아이로 잘 크고 있구나’라며 부모님을 편안하게 만들 나이에 집에 틀어박혀서 라디오를 듣거나 AFKN을 보곤 했다.

1981년 MTV가 시작된 이후, 음악의 중심은 라디오에서 TV로 슬그머니 옮겨갔다. 그러자 모든 뮤지션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Thriller’ 뮤직비디오는 당대의 어떤 문화적 현상이 됐다. 한국 가수들이 LG 트윈스 유광 잠바 같은 빨간 재킷을 입고 촌스러운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의 춤을 흉내 내곤 했다. 1980년대 한국 TV에서 가수나 코미디언이 흉내 내는 대상이라면, 이미 전 세계적인 가수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TV에서 한국 연예인이 따라 하던 가수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그리고 보이 조지Boy George였다. 모두 MTV 시대를 열어젖힌 가수들이다.

마돈나의 ‘Papa Don’t Preach’ 뮤직비디오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고 싶은 소녀가 아빠와 갈등을 겪다가 화해한다는, 꽤 건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음반을 구입한 시절의 내가 나름 혼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노래의 가사를 입수해 하나하나 번역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에 그 가사가 있다.

Papa don’t preach, I’m in trouble deep

Papa don’t preach, I’ve been losing sleep

But I made up my mind, I’m keeping my baby, oh

I’m gonna keep my baby, mmm

아빠 설교하지 마세요, 저는 곤경에 빠졌어요

아빠 설교하지 마세요, 저는 잠도 못 자요

하지만 마음을 정했어요, 아이를 지킬 거예요

전 아이를 낳을 거예요, 음음음

맙소사, ‘Papa Don’t Preach’는 혼전 임신을 한 어린 소녀가 절대 임신 중절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남자 친구와 가족을 이뤄 잘 살고 싶다고 아빠에게 부르짖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가사는 지금의 젊은 독자에게는 그다지 파격적인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다. 내 생각에 당신이 잘파Zalpha 세대라도 이 가사를 이해하는 순간, 노골적으로 솔직한 메시지에 어안이 벙벙해질 것이다. 1980년대 중반 학교에는 성교육이란 게 없었다. 나는 사춘기가 오지도 않은 초등학생 상태로 이 노래의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골똘히 연구했고, 마침내 납득했다. 임신이 무엇인지, 임신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게 됐다. 노래 하나가 태평양 건너 한 남자아이의 세계관을 확장시킨 것이다.

이 노래는 당대 미국에서도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대통령으로 집권하던 시기였다. 미국 역사상 정치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시대였다. 이 노래는 분명 성적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 10대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다층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학부모를 비롯한 미국 사회는 마돈나의 노래가 10대의 문란한 성생활을 조장한다고 지엽적으로 해석하며 적극적으로 비난해 댔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그 시절 한국 뉴스에서도 ‘Papa Don’t Preach’가 부른 미국 내 논쟁을 보도할 정도였다. 사실 그건 앞으로 마돈나가 당대 미국 사회에 던질 수많은 논란과 논쟁의 출발점일 뿐이었다. 같은 앨범에 있는, 역시 빌보드 1위 곡 ‘Open Your Heart’ 뮤직비디오도 난리가 났다. 스트립 클럽 댄서로 분한 마돈나가 어린 소년과 키스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아이유IU 노래 가사에서도 페도파일pedophile 혐의를 찾아낼 만큼 지나치게 부지런한 분들은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화가 나겠지만, 뭐,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True Blue› 앨범이 대성공을 거두자 마돈나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했다. 음악성 없이 이미지로만 승부하는 가수가 오래갈 리 없다고들 했다. 음악성이라니 맙소사. ‹True Blue›는 음악적으로도 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 중 하나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노래했듯 ‘까들은 뭘 해도 깐다(Haters gonna hate)’라는 명제는 여전하다. 어쨌든 다음 음반은 마돈나에게 중요했다. 상업적으로, 비평적으로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1990년대를 1년 앞둔 1989년, 마돈나의 새 앨범이 발매됐다. 첫 싱글은 앨범 제목과 같은 ‘Like A Prayer’였다. 세상이 뒤집어졌다. 흑인 성가대 코러스를 삽입한 이 노래는 마돈나 안티들의 입을 단숨에 닫게 만들 정도로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못해 듣는 순간 눈앞에 드라마가 펼쳐지는 명곡이었다. 요즘 음악 매체들이 마돈나의 명곡 순위를 꼽을 때 (누구나 아는 마돈나 노래인) ‘Vogue’와 함께 1위를 다투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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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Prayer› 앨범 커버

김도훈, 마돈나는 역사다

‹Vogue› 앨범 커버

그런데 세상은 좀 다른 방식으로도 뒤집어졌다. 마돈나는 종교적인 주제를 가진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몸 파는 뒷골목 여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가서 그는 흑인 예수 그리스도와 키스한다. 다시 말하지만, 1980년대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 배우와 흑인 배우가 키스하는 장면이 나와도 스캔들이 되던 시절이었다. 감히 딴따라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흑인으로 묘사하고 성적인 키스까지 한다고? 보수주의자가 마돈나를 향해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뮤직비디오는 당시 마돈나가 광고 모델을 맡은 펩시가 후일 광고로 활용하기 위해 제작 지원을 했는데, 막상 뮤직비디오가 방영되자 교황이 있는 바티칸시국마저 신성모독이라며 항의를 해댔다. 결국 펩시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광고 모델 계약을 취소했다. 심지어 월드 투어 후원도 취소해 버렸다. 이 광고는 올해 34년 만에 펩시에 의해 다시 공개됐다. 마돈나는 이를 기뻐하며 “이 광고를 통해 예술적 진실성과 타협을 거부하는 예술가로서 내 경력이 시작됐다. 마침내 나의 천재성을 깨닫게 해 준 펩시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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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hino Records

1990년대에도 마돈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Like A Prayer› 앨범의 성공에 이어,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 ‘Vogue’를 발표했다. 직접 작곡한 노래였다. (당신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역사상 최고의 공연 중 하나로 꼽히는 ‘Vogue’ 무대를 꼭 보아야만 할 의무가 있다). 이어서 발매한 ‹Erotica›(1992)와 ‹Bedtime Stories›(1994) 앨범은 싱어송라이터로서 마돈나의 능력을 멋지게 펼쳐낸 음반들이었지만 1980년대와 90년대 초의 맹렬한 인기는 조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8년 그는 영국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작업한 명반 ‹Ray of Light›로 다시 정점에 올랐다. 마돈나는 당시 유행하는 조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완벽하게 새로운 이미지의 노래로 내놓는 놀라운 재능이 있다. 별명이 ‘재창조의 여왕(Queen of reinvention)’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물론 2010년대 이후 마돈나 앨범은 오랜 팬인 나로서도 나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을 따름이지만, 어쩌겠는가. 한 아티스트가 영원히 전성기만을 누리며 살 수는 없다. 재능은 발화된 순간부터 10년까지 가장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법이다.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마돈나의 전 생애를 읊을 생각은 없다. 그랬다가는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쓸데없이 긴 글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글을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쓰고 있는 걸까. 레이디 가가Lady GaGa와 비욘세Beyoncé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마돈나를 가리키며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책맞은 성형중독 기인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몹시 슬프기 때문이다. 또한 잠실종합운동장을 재개발하며 서울이 대규모 해외 공연을 유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돈나가 지금 전 세계를 돌며 지난 히트곡들을 다시 부르고 있는, 어쩌면 그의 마지막 투어가 될지도 모르는 ‘더 셀레브레이션 투어The Celebration Tour’를 볼 수 없다는 게 몹시 애석하기 때문이다.

김도훈, 마돈나는 역사다

© MADONNA

김도훈, 마돈나는 역사다

1984년과 1989년 사이의 마돈나를 겪지 않은 세대라면 이 글을 읽으며 ‘그래서? 이 여자가 한 건 그냥 섹스를 노래로, 뮤직비디오로 부르짖은 것뿐이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섹슈얼한 함의가 있는 모든 문화적 행위를 성적 대상화라는 협소한 단어에 밀어 넣고 있는 2020년대의 트렌드에도 딱히 어울리는 글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한 세대는 전 세대가 극복한 것을 이어받고, 그것을 다시 극복하며 새로운 시대를 연다. 전 세대의 마돈나는 한 마디로 음악적 차도르를 둘러쓰고 있던 여성 가수가 주체적인 성적 표현의 자유를 누릴 기회를 열었다. 정말이지 홀로 열었다. 그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비욘세와 리한나Rihanna와 레이디 가가와, 심지어 카디 비Cardi B가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마돈나는 지난 2016년 ‘빌보드 위민 인 뮤직Billboard Women In Music’에서 ‘올해의 여성(Woman of the Year)’에 선정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호구로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아, 내 말은, 여성 연예인이라는 말입니다. 노골적인 성차별과 여성 혐오, 끊임없는 학대에 맞서 지난 34년간 경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제 능력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가 제가 스스로를 성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대답했죠. 그럼,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성적이면 안 된다는 것인가요? 그건 개 같은 소리네요. 저는 다른 종류의 페미니스트입니다. 나쁜 페미니스트입니다.”

자, 마지막으로 당신이 보아야 할 무대는 1984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의 한 장면이다. 전년도인 1983년 데뷔 음반을 발표한 마돈나가 논쟁적인 첫 메가 히트곡 ‘Like A Virgin’를 부르고 있다. 그는 거대한 웨딩케이크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온 뒤 백댄서도 없이 홀로 무대에서 격렬하게 바닥을 구르며 “날 처녀처럼 느끼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이전의 여성 팝가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거침없는 태도로 열망을 표현한다. 이후 세상의 모든 여성 팝가수가 보이지 않는 차도르를 벗어 던지게 만든, 역사적인 순간이다. 1984년 보수적이기 그지없던 팝계의 스타들과 관중이 열정적으로 기립박수를 보내는 순간, 비로소 마돈나는 탄생했다. 팝의 역사는 바뀌었다. 그렇다. Bitch! 그녀는 마돈나다.

Writer

김도훈(@closer21)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다. 영화주간지 «씨네21» 기자, 남성지 «GEEK» 피처 디렉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프리랜스 글쟁이로 오만 가지 글을 쓰면서 유튜브 영화 채널 ‹무비건조›에 출연 중이다. 낯설고 비범한 스물 여섯 명을 탐구한 『낯선 사람』(2023)과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2019)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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