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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덩크 로우를 사고야 말았다

Writer: 김도훈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이번 글에서 김도훈 작가는 최근에 많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나이키 덩크에 대해 말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신어서 이제는 일종의 국민 운동화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버티며 그 유행에 편승하지 않는 건 쉽지 않아요. 김도훈 작가가 어떠한 내적인 갈등을 겪으며 결국엔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었는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나이키Nike를 샀다. ‘덩크 로우Dunk Low’다. 할로윈 모델이다.

나는 나이키를 살 생각이 없었다. 덩크 로우는 더더욱 살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나이키 덩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딱히 인기 있는 운동화는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모두가 『슬램덩크Slam Dunk』를 읽었다. 주인공 강백호가 가게 주인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에어 조던은 모두가 신고 싶어 하는 신발이었다. 농구 좀 한다는 친구들은 모두 ‘에어 조던Air Jordan’을 신었다. 농구를 못하는 친구들도 에어 조던을 신었다. ‘덩크 하이Dunk High’ 모델은 가격도 에어 조던보다 저렴하고 디자인도 심플하니 예뻤다. 하지만 나는 지금 199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대의 미적 기준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뭔가 주렁주렁 달리고 색이 화려해야 비로소 예쁜 것이었다. 물론 그 시대의 패션이 요즘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딱히 걱정은 없다. 그때와 똑같은 패션은 아니다. 새로운 세대가 재해석한 패션이다.

‹슬램 덩크›는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스포츠 만화이며, 한국에선 1992년 도서출판 대원이 «주간 소년챔프»를 통해 연재를 개시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해당 장면에서 농구 ‘풋내기’ 강백호는 나이키 덩크를 처음으로 구매하고 있다.

지금 덩크 로우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불타오르는 운동화일 것이다. 모두가 나이키 홈페이지에서 ‘더 드로우THE DRAW’를 기다린다. 사실 덩크 로우에 빠지기 전까지는 대체 왜 운동화 따위를 드로우, 그러니까 추첨 방식으로 구매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일가친척은 물론 친구들 계정까지 모조리 빌려서 응모한다고 했다. 대상은 언제나 덩크 로우였다. 그러다 보니 이젠 덩크 로우 모델의 거의 모든 나이키 운동화는 드로우 형태가 아니면 구입이 애초에 불가능해졌다. 드로우에 실패한 당신은 ‘크림Kream’ 같은 리셀 애플리케이션, ‘프루츠Fruits’ 같은 빈티지 거래 애플리케이션, 혹은 번개장터에 암약한 리셀러가 두 배 혹은 십수 배 이상의 가격을 올려붙인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8월 12일 명동에 나이키 서울이 재오픈하는 기념으로 나이키에서 진행했던 드로우. 보통의 경우엔 드로우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사이즈 선택하고 응모하는 방식이었다면, 해당 드로우는 색다른 참여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나이키와 미국에서 가장 핫한 랩퍼 트래비스 스캇이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여 2021년 8월 13일에 발매했던 프라그먼트 레트로 로우 모델은 발매가가 18만 9천원이었다. 현재는 크림(Kream)에서 200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나는 리셀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리셀러가 패션 산업에 이바지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해외 빈티지 사이트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라프 시몬스Raf Simons 리셀러에게 경의를 갖고 있다. 그들은 세상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 라프 시몬스의 초창기 걸작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종의 큐레이터이자 갤러리스트다. 나는 십여 년 전 베를린의 한 빈티지 컬렉터에게 라프 시몬스의 전설적인 2002년 ‘버지니아 크리퍼Virginia Creeper’ 시즌 후디Hoody를 70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지금 이 후디는 상태에 따라 500만 원대에 팔린다. 물론 나는 팔 생각이 없다. 살이 쪄서 소매가 잘 들어가지 않지만 죽을 때까지 그 후디는 내 옷장에 있을 것이다. 그건 패션인 동시에 아트다. 그러니 나는 패션에 대한 사랑으로 옛 컬렉션을 수집하고 나누는 리셀러를 꽤 아끼는 편이다.

김도훈 작가가 빈티지 컬렉터로부터 구매한 라프 시몬스의 전설적인 2002년 버지니아 크리퍼(Virginia Creeper) 시즌 후디. © archived.co

문제는 메뚜기 같은 한철 리셀러다. 샤넬 매장 앞에 밤새 도사리고 있다가 매장 문이 열리는 순간 칼 루이스Carl Lewis처럼 뛰어서, 아 잠깐. 표현을 정정하겠다. 1988 서울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금메달리스트인 칼 루이스는 나처럼 나이 든 X세대의 우상이라 누군지 모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니, 문장을 다시 쓰자. 샤넬 매장 앞에 밤새 도사리고 있다가 매장 문이 열리는 순간 우사인 볼트Usain Bolt처럼 뛰어 들어가 되팔만한 물건을 모조리 사서 나오는 리셀러는 패션을 좋아하고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냥 되팔이다. 리셀러라는 다소 근사하게 들릴 수 있는 영어 단어를 붙이기에는 좀 아깝다. 어쨌든 그들 역시 이 글에서는 리셀러라고 부르겠다. 

덩크 로우는 리셀러가 아니면 이제 거의 살 수 없는 운동화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대체 왜 조던도 아니고 에어 포스Air Force도 아닌 덩크 로우인가? 덩크 로우는 사실 농구 선수보다 스케이트 보더에게 인기 있는 운동화였다. 이미 농구 선수들은 더욱 진화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나이키 농구화를 신었다. 덩크 로우는 이를테면 보급형 농구화였다. 딱히 놀라운 테크놀로지가 숨은 것도 아니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10만 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밑창이 딱딱해서 착화감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다. 덩크 로우는 오히려 튼튼하고 저렴한 신발을 선호하는 스케이트 보더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스케이트 보딩이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선정되자 나이키는 그걸 엄청난 상업적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대적인 마케팅이 시작됐다. 나이키는 당대의 힙합 스타에게 덩크 로우를 신겼다. 오프화이트Off-White와의 컬래버레이션은 특히 효과가 좋았다. 일부러 생산량을 제한해 ‘드로우’ 형태로 발매하는 마케팅도 그즈음 시작됐다. 중저가 운동화였던 덩크 로우는 갑자기 모두가 원하는 힙한 상품이 됐다. 

2016년 IOC에서 2020 도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야구, 가라테, 클라이밍, 서핑과 함께 스케이트보딩을 추가했고, 스케이트보딩 경기는 일본 도쿄도 아리아케 어반 스포츠 파크에서 2021년 7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 열렸다. © Hiroko Masuike/The New York Times

물론 그게 ‘왜 덩크 로우인가?’를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나이키가 아무리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다고 해도 제품 자체의 매력이 없다면 마케팅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덩크 로우의 가장 큰 매력은 간결하고 범용성이 높으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컬러웨이(같은 형태의 제품에 여러 종류의 색상을 배색하는 것)가 가능한 디자인이다. 덩크 로우는 레고에 가깝다. 조각조각 땃따따 맘에 들게 다시 조립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디자인이다. 당신이 만약 나이키 디자이너라면 죽을 때까지 새로운 덩크 로우를 끊임없이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덩크 로우는 오프화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와 진행한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시즌마다 내놓는다. 가장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었던 건 미국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스Ben & Jerry’s와 내놓은 컬래버레이션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그 제품을 보는 순간 “이건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이용하며 모든 이익의 7.5%를 성소수자 인권, 인종차별, 성차별 등을 다루는 자선 재단에 기부하는 밴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아주 아끼기 때문이다. 꼭 정치적 행동주의 때문에 이 회사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는 다양한 재료를 아낌없이 투하한 밴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의 공격적인 단맛을 좋아한다. 그야말로 미국의 맛이다. 이 회사의 최고 걸작은 역시 ‘체리 가르시아Cherry Garcia’ 맛인데, 만약 편의점에 있다면 절대 지나치지 말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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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작가가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나이키 SB x 벤앤제리스 협업 덩크 로우 ‘청키 덩키’는 2020년 5월에 발매되었다. © hypebeast.kr

다시 신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젖소를 모티브로 한 나이키와 밴앤제리스의 컬래버레이션 모델은 꽤 아름답다. 하지만 초기 드로우를 놓친 나는 더는 이 모델을 살 수 없다. 이미 리셀 가격에 150만 원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운동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150만 원? 무리다. 나의 신발 쇼핑 상한선은 50만 원이다. 그것도 비싸다고? 내 절반의 나이에 이미 발렌시아가 스니커즈를 샀다가 당근마켓에 올려놓고 팔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절대 덩크 로우를 리셀러가 원하는 가격으로 구매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퀄리티도 그리 좋지 않은 나이키 운동화를 거품을 끼얹은 가격으로 사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행하는 건 신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티던 친구는 결국 당근마켓으로 ‘범고래’를 샀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심플하게 만든 덩크 로우 범고래 모델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신어서 이제는 일종의 국민 운동화가 되어버렸다. 당신이 오늘 홍대에 놀러 나간다면 범고래를 신은 사람을 최소 30명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다들 신고 다니니까 오히려 신기 편한 것도 있어.” 나 역시 굴복했다. 얼마 전 나는 “역시 이래서 리셀러는 양심이 없어”라고 칭얼거리며 크림 앱을 돌아보다 어쩔 도리 없이 덩크 로우 핼러윈 한정판 모델을 구입하고 말았다. 오렌지색과 검은색 갑피의 조화가 끝내주게 아름다운 그 모델의 가격은 25만 원 정도였다. 이건 시작이지 끝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제 리셀 앱과 중고 시장에 오가며 리셀러가 황당한 가격을 덧붙인 온갖 덩크 로우 모델을 찾아 헤매기 시작할 것이다. 

나이키와 점프맨(Jumpman)에서 비롯된 나이키 덩크에 대한 열기는 쉽사리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핼러윈 덩크 로우를 배송받자마자 구매할 때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됐다. 이 모델의 밑창은 야광이었다. 빛을 일정 시간 받으면 마치 “내가 가는 곳이 모두 핼러윈!”이라고 외치기라도 하듯이 밝게 빛나는 야광이었다. 만약 당신이 주말 이태원 소방서 근처에서 머리를 빡빡 민 나이 쉰에 가까운 남자가 염치도 모른 채 야광 발바닥을 빛내며 거리를 쓸고 다니는 꼴을 본다면 그건 분명히 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여러분! 저 나이에 덩크 로우 한정판이나 모으는 저 철없는 중년을 보시오!”라고 외쳐도 좋다. 나는 당신의 즉결심판을 달게 수용할 것이다.

Writer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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