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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왜 걸핏하면 ‹무제›일까?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현대미술 설명서’라는 연재 글을 시작한 박재용 작가의 두 번째 글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미술관의 수많은 작품에 붙여진 제목에 대한 의문이에요. 특히 ‘무제’라는 작품 제목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거나 해석해야 할까요? 안 그래도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들에 제목도 없으니 참 난감할 때가 많아요. 이에 대해 박재용 작가는 서양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 작품 ‘제목’이 언제부터 붙여지기 시작했고 또 현대미술에서 ‘무제’라는 제목은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지를 재밌게 설명해줘요. 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좀 더 진지한 미술애호가가 되려는 과정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한 가지가 있다. 뻔뻔하게도 제목이 없다는 뜻의 ‘무제(無題)’를 제목이라며 붙여 놓은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생각해보라. 무제는 그럼 제목이 아니란 말인가? 세상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 검색할 수 있도록 애쓰는 (우리는 이를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라고 부른다) 21세기 사고방식으로 볼 때, 무제라는 제목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일단 제대로 검색하기가 어렵다. 요컨대 구글 검색 창에서 무제를 입력하고 이미지 검색 결과를 살펴보자. 가장 먼저 나오는 결과 값은 바로 아래와 같다.

G-DRAGON, ‹Untitled›, 2014년

미술 작품에는 원래 제목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미술 작품에 제목이 붙기 시작한 걸까? 지금 우리는 미술 작품에 (심지어 그것이 무제라 할지언정) 제목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아주 오랫동안 제목 없이도 제 몫을 다했다. 이를테면 귀족이나 왕족을 그린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궁전 한켠에 걸려 있는 왕의 거대한 초상화에 굳이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어느 귀족 부인의 초상화가 저택 복도에 걸린다고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좀 더 시계를 과거로 돌리면, 동굴 벽화에도 제목은 필요 없었다. 그때는 «비애티튜드»같은 웹진이나 미술관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미술가라는 직업조차 없었으니 심지어 ‘미술’도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무제›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주문으로 그린 모나리자 델 조콘도의 초상), 1503~06년(추정연도)

얼굴 인식 기능이나 검색 엔진을 장착한 휴대전화는커녕 사진도 발명되지 않았고 인쇄술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 조각이나 회화로 묘사할 수 있었던(혹은 묘사해야 한다고 여긴) 주제가 매우 한정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5세기 중반, 넘쳐나는 돈을 바탕으로 예술가에게 어떤 작품을 의뢰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메디치 가문의 수장,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는 조반니 바티스타 아드리아니Giovanni Battista Adriani라는 학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아드리아니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주제를 다루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아뢰옵니다. (⋯)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주제는 작품이 안겨주는 만족감이 덜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장식(=미술품을 가리킴)’을 진열하는 까닭은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 주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 어떤 주제를 이미 다른 예술가가 그렸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주제를 더 자주, 더 능숙하게 표현할수록 더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장면만 골라서 주구장창 그렸던 이유인 셈이다. 이처럼 ‘누가 봐도 무슨 장면인지 아는’ 이미지를 묘사하는 건 서양에만 해당하지 않는 듯하다. 조선시대 화가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인왕산과 금강산을 그렸을까? 아마 조선 어딘가에 있는 야산을 그리면 대체 이게 어딘지 설명하기 난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하종, ‹무제› (화집 『해산도첩』에 수록된 구룡연), 1816년(추정연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세를 떨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Meisje met de parel)›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는 데는 거의 30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이 그림은 페르메이르가 창작한 지 4년 뒤인 1669년 판매되었는데, 당시 작품에 첨부한 설명(혹은 제목)은 이랬다. ‘앤티크 의상을 입은 초상, 매우 예술적.’ 6년 뒤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터번을 쓴 소녀’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붙어 있었고, ‘동양풍 터번을 쓴 소녀’, ‘이국적인 옷을 입은 소녀’, ‘신비한 표정을 짓는 소녀’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작품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건 1995년쯤이다. 물론, 2003년 영국에서 처음 개봉한 영화 ‹Girl with a Pearl Earring›을 2004년 한국으로 수입하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타이틀을 짓는 바람에 ‘귀고리’와 ‘귀걸이’라는 두 가지 버전의 한국어 제목이 탄생해버렸지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무제› (수건처럼 보이는 것을 머리에 두르고 멋진 귀걸이를 한 백인 여성), 1665년

제목이 필요한 이유

여기서 잠시. 우리가 아는 ‘뮤지엄에서 보는 미술’이 대체 언제부터 존재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학자는 오늘날의 뮤지엄이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날 자주 찾아가는 형태의 뮤지엄은 귀족의 저택이나 왕실의 궁전 벽에 빽빽하게 걸어두던 미술품을 ‘시민’에게 되돌려 주고 이를 ‘공개적으로 전시’한 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일어난 사건 중 하나가 왕실의 보물 창고와 같았던 루브르 궁전의 문을 1793년 대중에게 열어젖힌 것이다. 곧, 우리가 아는 ‘루브르 뮤지엄’의 탄생 비화다.

이렇게 미술품을 감상하는 대상을 일반 대중으로 확대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택이나 궁전을 가득 채우던 회화나 조각을 한곳에 모아 놓으니 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 그때까지 그림이나 조각은 대체로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주제’를 그려왔다지만, 그런 설명이 필요 없던 대상은 주로 긴 글을 읽는 데 문제없던 ‘보편적인’ (특권층 남성)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 ‘미술’ 취급을 받게 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또 관리하기 위해서는 제목이 필요했다. 어떤 경우엔 자연스럽게 작품을 가리키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저택에 별다른 제목 없이 걸려 있어야 했을 모나리자 델 조콘도의 초상화가 뮤지엄에 전시하는 ‘미술’로 변하면서 ‘모나리자Mona Lisa’라는 별명이 붙은 것처럼.

그런데 제목의 필요성은 뮤지엄이라는 공적 미술 감상 장소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조금씩 축적되고 있었다. 16세기에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앤티크 수집 열풍이 불었고, 독일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와 같은 예술가가 판화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면서 귀족이나 왕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활발히 영업 중인 세계 최초의 미술품 전문 경매 회사 크리스티Christie’s의 역사는 무려 1766년 런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사회에서 시민의 감상 대상인 ‘미술’로 제대로 기능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 시장에서 ‘상품’으로 판매되기 위해서라도 제목은 꼭 필요했던 것이다!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첫 본사 모습

그런데 왜 무제는 이렇게나 많을까

사실 우리가 마주치는 수많은 무제 작품은 주로 20세기 중반과 그 이후에 나타났다. 무제라고 하면 마치 제목이 없는 것 같지만, 영어로는 ‘Untitled’이니 ‘제목이 없다’기 보다는 ‘제목을 (일부러) 붙이지 않은’ 작품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미술관, 학계, 미술 시장 등이 확장하며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가는 미술계에 어떻게든 균열을 일으키고 싶었던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무제라는 제목을 붙여 뮤지엄 실무자에게 편두통을 안기기도 했고,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처럼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라며 꿋꿋이 무제를 남발한 경우도 있었다. 작품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상품으로 판매할 때나 도움 되는 제목 따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랄까.

프랭크 스텔라, ‹Untitled›, 1936년

그렇지만 작품 제목을 무제라고 붙이더라도 결국 어딘가에는 그것이 제목으로 기록되는 법. 혹은, 작가 의도와는 관계 없이 이런저런 애칭이나 별명이 붙기도 한다. 작품 제목이 무제 범벅인 경우로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역시 프랭크 스텔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데, 그의 작품을 검색 엔진에서 찾아보거나 작품이 실린 도록을 보면 ‹무제(주황, 빨강, 노랑)›처럼 무제 옆에 괄호를 치고 작품의 주된 색상을 덧붙인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지하에 있는 로스코가 두 눈을 번쩍 뜰 일이지만, 사실 이런 제목 변경은 로스코 사망 후 많은 전시가 열리고 도록 등이 만들어지면서 큐레이터, 연구자, 갤러리스트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이쯤 되면 ‹무제›가 과연 정말 ‘무제’인지 헷갈리는 것도 당연하다. 외려 무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 것 아닐까. 실제 ‘제목이 없다’는 뜻의 무제를 아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유명한 사진 연작 ‹무제 필름 스틸›은 의도적으로 ‘무제’라는 단어를 활용한다. 영화 스틸 컷이 연상되는 흑백 사진 연작을 통해 할리우드 영화에서 어떻게 여성을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제목 없는 작품이나 다름없는)로 취급하는지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다.

신디 셔먼, ‹무제 필름 스틸 #21›, 1978년

제목을 ‹무제›로 붙이긴 했지만, 완전히 무제로 두기에는 아쉬워 괄호와 함께 힌트를 던지는 무제 작품도 있다.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 어떤 식으로든 접했을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 ‹무제(총기로 인한 사망)›, 1990년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 ‹무제(완벽한 연인)›, 1987~90년

곤살레스 토레스의 ‹무제›를 보면 이것이 과연 정말 무제인지 의심스럽다. 그의 ‹무제› 작품은 괄호 속 내용을 통해 이미 할 말을 다 하고 있지 않던가? 곤살레스 토레스가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계속 무제와 괄호 속 내용을 결합해 제목을 붙였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무제(내용)’ 형식의 제목을 통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한 건 아닐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 본다.

결국 무제는 ‘제목 없음’이 아닌 것일까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어 조금 미안하지만, 결론적으론 그렇다. 무제는 ‘제목 없음’이 아니다. 비슷한 모습의 작품을 아주 많이 만들다 보니 편의상 무제로 표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무제는 특정한 제목을 붙이기엔 할 말이 너무 많거나, 외려 제목을 무제로 남겨둔 채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해석을 요청하는 목적을 가졌다고 보는 편이 낫다. 물론 작품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어야 뮤지엄에서 작품을 등록하고 관리하기에 편하며, 미술 시장에서 판매하기도 용이하겠지만,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 입장에서 거기까지 고려할 필요는 굳이 없으니까. 또한 유명한 무제 작품에는 아티스트가 뭐라든 사람들이 알아서 별명을 지어주지 않나. (다시 한번 지하에 계신 마크 로스코에게 심심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바다.) 어떤 면에서 무제야말로 아티스트가 자기 작품에 붙일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제목일지도 모른다. 마치, “맛으로만 승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요리사가 내놓은 음식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니 걸핏하면 ‹무제›라는 작품을 보더라도 작가에게 화를 내거나 그의 직무 태만 혐의를 의심하지는 말자. 무제를 제목 삼은 작품은 보다 따스한 관심이 필요한 친구다. 대체 뭘 보여주고 싶어서 제목까지 없앤 건지 생각하며, 작품을 더 자세히 뜯어보도록 하자. 휴대전화로 퍼뜩 검색을 할 수 있다면 작가의 이름과 무제를 함께 검색해서 그의 작업 대부분이 혹시 ‹무제›는 아닌지, 내 눈앞에 놓인 ‹무제›가 예외적인 경우(따라서 더 짙은 의도가 담긴)는 아닌지도 판단해보자. 시간을 좀 더 낼 수 있다면, MoMA, Tat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소장품 검색 페이지에서 ‘Untitled’ 혹은 ‘무제’를 입력해보길 권한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무제›가 존재하며, 작품에 무제를 붙이는 방법에도 분명 유행이 있을 테니까.

* 이번 글에 등장한 작품 중 1700년 이전에 등장해 여러 가지 제목이 존재하는 작품은 임의로 제목을 ‹무제›로 변경했습니다.
** ‘현대미술 설명서’에서 다뤘으면 하는 의문점이 있다면, 비애티튜드 편집진(edit@beattitude.kr) 혹은 http://jaeyongpark.net/updates/inquiry_를 통해 의견 부탁드립니다.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NHRB(@NHRB.space)의 공동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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