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창의적인 회사는 어디일까요?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곳 중 하나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아닐까 합니다. 우아한형제들의 크리에이티브를 이끄는 한명수 CCO는 업계에서 말랑말랑한 사고를 하기로 유명해요. 재치 있고, 유연하며, 유머러스한 크리에이티브는 우아한형제들의 톤앤매너에 큰 영향을 미쳤죠. 그런 대단한(!) 분이 «비애티튜드»에 한 편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감각과 기술, 센스와 스킬이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 앞에서 나누는 대화인데요. 그 자체로 즐거운 만담이면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우화 느낌이 솔솔 납니다. 오직 «비애티튜드»에서만 접할 수 있는 영감 넘치는 텍스트!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감각(센)’과 ‘기술(스)’이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센 : 덥죠, 그쵸? 예전에 우리 자주 만나고 친했는데 요즘은 잘 못 만나네요. 아이스크림 이거 1+1인데 제가 살게요.
스 : 고마워요. (봉지를 뜯어서 표면에 묻은 얼음 알갱이를 찬찬히 혀로 떨어뜨리며)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아직도 바쁘게 지내요. 쉼 없이 저를 필요로 하는 온갖 전문직 인간들이 자격증 딴다고, 시험 점수 올린다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저를 찾거든요. 예술 카테고리라고 하나요? 문화 콘텐츠로 먹고사는 계통에서도 저를 온갖 커리큘럼으로 잘라 재포장해서는 온라인에서 강좌로 팔고 사느라 아주 바쁘답니다.
센 : 좋으시겠어요. 늘 인기가 많아서. (전혀 부럽지 않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듯 약간 부럽다는 윙크)
스 : 회사에서도 스킬업해야 승진한대나 뭐라나, 웬만한 말발 좋은 강사들이 ‘뽀갠다 시리즈’로 섬네일 이쁘게 해서 별의별 강좌들을 게시판에 올려놓으니 늘 인기죠. 허허.
센 : 좋으시겠어요~~ (한 번 더 존경스러운 투로)
스 : 돈벌이가 되어서 좋긴 하죠. 어떤 영역이든 초급일 때는 스킬 셋을 장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취급을 당할 테니,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기꺼이 돈과 에너지를 투자하니까요. 센스 님 당신은… 음… 그런데 찾으려고 하면 잘 안 보이는데 어디 계신 거예요?
센 : 늘 당신 곁에 있긴 해요. (또 반대쪽 눈으로 윙크하며)
스 : 아, 맞아. 계시긴 한데 눈에 진짜 안 띄긴 하더라고요. 당신은 초급반 인간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고 상급반 인간에게 좀 거론이 되는 그런 상태인가요?
센 : 초급, 중급, 상급이란 표현이 좀 거슬리네요. (그래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느긋하고 상냥하게) 당신, 스킬 님께서는 항상 경쟁, 성공, 평가에 길들여져 있으니까 뭐든 순서대로 ‘나래비’ 세우는 게 익숙할 거라 충분히 이해돼요. (나라비ならび 발음도 틀리게 내뱉으면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저는 모든 인간 안쪽에 고스란히 깊게 담겨있는 터라 저를 일깨우지 않으면 굳이 바깥으로 나오진 않는 편이죠.
스 : (박수치며) 그렇군요! ‘감각이 좋다’라는 말이 ‘기술이 좋다’라는 말보다는 훨씬 근사한 것 같아요. 우리가 옷 잘 입거나 이쁜 거 잘 골라낼 때 ‘감각 죽이는데~’ 라는 말을 쓰는데 그럴 때 당신은 기분이 좋은 거죠?
센 : 아뇨. 그건 감각의 영역에서 아주 째깐한 일부 끄트머리를 얘기하는 것 같고요, 진짜 감각의 의미는 이럴 때 드러나죠. 뭔가의 압도적인 흐름이나 유행이 있을 때 그것을 따르지 않고 거스르는 힘을 보면서 ‘얘는 감각이 탁월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듯싶어요. 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왜 꼭 이렇게만 해야 하지? 재미없게?!’라고 질문할 때도 꽤 빛이 나죠. 인간들이 저를 키우려고 해도 특별한 양육법이나 매뉴얼이 없는 이유이기도 한데, 외부에서 양껏 밀어 넣어 학습한 ‘기술’을 굳이 다 쓰지 않으려 하는 여유? 반항! 의심…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스 : Aㅏ…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외부에서 인간 내부로 들어가는 게 저의 속성인걸? (들켰다는 민망함으로 배시시 웃으면서)
센 : (풋 – 웃으며) 걍 보면 보이잖아여. 당신은 늘 인간 바깥에 있드만…
스 : 그래도 인간 안에 한 번 들어가 잘 박히면 제법 그럴싸하게 움직여요! (남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는데 센스는 너무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게 겸연쩍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귀엽게 웅변하듯)
센 : 법조계, 과학계, 글 쓰는 분야, 스포츠, 문화예술 할 것 없이 다 외부의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여 기량을 닦잖아요. 인간들 자기 안에는 원래 ‘기술’이란 것이 없으니까요. (두 팔을 벌리며 하늘을 보며)
스 : ‘감각’은 그럼 외부로부터 배워 익히는 게 아닌 건가여?
센 :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 (살짝 뜸을 들이며) 내부에 숨어있는 편이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려워요. 제가 쫌 까다롭고 신비로운 영역이라… (살짝 우쭐대는 표정으로)
스 : 저희 둘이 처음에는 가까이 붙어 있었잖아요. 센스 님~ (오래전 빙하기 이전 시대를 상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인간들이 처음 이 땅에 태어나서는 저희 둘을 구분도 안 되게 막 버무려 사용해 줘서 센스 님도 킬킬 웃고 저도 많이 웃고 그랬는데요. 인간 어린이들이 젓가락질 기술을 배울 때도 기어코 자기 멋대로 해보려고 막 그릇 채 입을 대면서 경이로운 다툼을 하잖아요. 엄마 인간들은 기어코 어른들의 세상을 (뭐가 좋다고) 물려주려고 손가락 위치와 각도를 가르치고 애쓰면서요.
센 : (유명한 신생대 빙하기 말고 중시생대 풍골라 빙하기를 굳이 떠올리며) 그러게요. 후후. 가만히 냅둬도 자신만의 방식을 어떡하든 찾아낼 수 있는 감각이 모두에게 다 숨어있는데 그걸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세상이 망하지도 않거니와 약간 쪽팔린 게 다인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요. 저한테는 누가 막 강요하면 저는 스으을쩍 사라지는 편이에요. 억지스러우면 저는 말라죽거든요.
스 : 그쵸. 그런 것 같아요. 어느덧 어느 순간 저희 둘은 자주 못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인간들은 저희 둘을 같이 불러내는 일이 귀찮은 것 같더라고요. 제가 항상 더 인기가 많잖아요. (어쩔 수 없다는 한쪽 눈썹 찡긋거리는 표정과 어깻짓을 하며)
센 : 가성비의 풍조 때문인 걸까요. 인간들의 욕망이 뾰족한 삼각형 피라미드 모양 같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위계가 없는, (진정 풍성함과 온전함의 상징인) 두루뭉술 써클 원형 모양이 쿠사마 야요이의 똥그라미로 그냥 막 사치품에 처발라지니까 나도 내가 뭘 하나 싶으면서 헛헛해져요. (똥그라미의 ‘똥’자에 유난히 힘줘 발음하며) 그 ‘똥’그라미도 사실 복제된 표면 기술이잖아요. 저는 결국 ‘똥’그라미 모양에 현혹되지 않는 인간들에게만 뜸하게 필요한 존재인가 봐요. (허공에 동그라미를 천천히 그려보며)
스 : 크~ 인간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서 자기 인생에서 십 수년간 저를 막 닳고 닳도록 쓰다가 어느 순간 저 때문에 큰 기회와 문제 앞에서 막힐 때면 미안해지기도 해요. 날 너무 믿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도 안 들리나 봐요. (불쌍한 인간들을 애처로워하는 표정으로)
센 : 근데 아이스크림 너무 빨리 드시는 거 아니에요? 스킬 님? 합성 착향료인 액상과당은 설탕보다 저렴하고 당도는 6배나 높아 체내 흡수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고요. 너무 많이 드시면 간에서 분해한 과당이 지방산으로 전환되어 지방간이 위험해지는뎅…
스 : 꼭 저 같죠. 그쵸. 흐흐. 빠르고 효과 만점인~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센스 님의 아이스크림을 부럽게 바라보며)
센 : (끄덕이며) 당신을 쓰면 쓸수록, 반복할수록, 기량이 좋아진다는 착각이 들잖아요. 속도도 빨라지고 실수도 안 하게 되면서요. 게다가 주위의 칭찬까지 들으면 숙련된 인간들은 대부분 그 상태로 쭈욱 가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가만히 그 인간 안에서 놀면서 쉬고 있고 말이죠. (심심하고 따분한 한숨을 크게 쉬며 눈물 한 방울을 흘리는)
스 : 얼마 전 저를 오랫동안 믿고 살아왔던 성실하고 착한 중년의 IT전문가가 문득 자신이 쓸모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는 멋쩍어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저 때문에 나름 먹고 살았을 텐데 환경이 바뀌고 주위의 기대치가 바뀌면서 ‘감각’…그러니까 센스 님 당신을 꺼내야 하는데 막 찾아도 안 나오니까 먹먹해하더라고요. 좀 나와주시지 그러셨어요? 숨어 계시기만 하구~~ (얄밉다는 듯이)
센 : 그러게요. 저도 알아요. 그 순간을요. (일부러 숨어있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살살 치며) 저를 찾긴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좀 자라거나 힘이 생겼어야 튀어 나가지 한 번도 써주지 않았으면서 갑자기 부르면 어떻게 나가요? 맨날 그 인간은 편리함만 따지고, 효율성을 체크하고, 예전 하던 대로만 하고… 남에게 훈수는 잘 두지만 자신한테는 너그럽던데요…
스 : 그렇긴 하겠네요. 당신도 나름의 근육이 있을 테니 평상시 근력이 붙어있어야 뿌슝 움직이는 거잖아요. (자기 팔 근육을 자랑스레 살짝 만져보며)
센 : 편리하게 살려고만 하니까 그랬으리라 해요. 그런데 편리하게 살려고 한다는 사실조차 자기 스스로 모르는 게 이미 ‘감각이 없다’는 증거겠지요. 후후.
스 : 저의 또 다른 이름이 ‘편리함’인뎅. ㅋㅋ
센 : ‘익숙함’ 아니었어여?
스 : (센스의 입술에 손을 대며) 쉿, 조용히~ 당신 이름을 저도 까발릴 거에여…
센 : (해볼 테면 해보라는 표정으로) 저는 딱히 규정된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 텐데요…
스 : (급 포기하며 말랑말랑한 표정으로) 냐아핳~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센 : (온화하게) 늘 곁에 있다니까요.
스 : (헤어지기 싫은 표정으로) 저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속 깊은 곳에서 당신을 계속 자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온라인 클래스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으시잖아요.
센 : 저의 근육이 붙어서 잘 활성화된 인간을 함께 벗하면 좀 도움이 되지요. (‘벗’이란 말에 크게 호흡을 불어넣으며) 그런 인간을 가까이서 보면 뭔가 작은 일을 하더라도 남다르게 할 거거든요. 템플릿 같은 걸 하나도 안 쓰는 거 보면 딱 느낌이 오잖아요. (템플릿 요청하는 사람들을 안스러이 여기며) 겉모양보다 그 인간의 이유를 궁금해하면 어느 정도 감각이 자라날 계기가 생길 거예요.
스 : 근데 그런 사람과 어떻게 가까워져요? 만나주지도 않잖아요. 센스 있는 사람은 센스 있는 사람끼리만 뭔가 주고받던데…
센 : (뭔가 들켰다는 듯이 얼굴이 발그래지며) 그게.. 그것이… 노력과… 의…지로…
스 : ‘노력’과 ‘의지’는 스킬 분야에서 애용하는 말인뎅…
센 : ‘매력’과 ‘의자’라고 하죠 뭐 그럼… (어물쩍 지갑을 꺼낸다)
스 : (지갑 여는 걸 보자마자) 저 의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어도 돼요?
Writer
한명수는 우아한형제들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다. 배달의민족 본연의 서비스는 물론, 다양한 한글 서체 개발에서 조직 문화 개선까지 다각도로 참여하며 회사와 사회에 유쾌함과 즐거움을 불어넣는 중이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내 최초 억대 연봉 디자이너로 꼽히며, 싸이월드 서비스 디자인을 맡은 대한민국 웹 디자이너 1세대이기도 하다. 업계에서 괴짜로 유명한 그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생존했다. MBC ‹무한도전› ‘면접의 신’ 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여러 미디어에 등장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놓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