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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Writer: 최소현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창작자로 살아온 지 25년이 넘은 멘털 관리의 고수, 최소현 네이버 디자인 & 마케팅 부문장에게도 멘털 관리는 언제나 의지를 잃지 않고 연습이 필요한 현재진행형 이슈입니다. 창작자가 유리 멘털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그는 말합니다. 유리 멘털이든, 강철 멘털이든 진짜 중요한 건 각자에게 필요한 맞춤형 멘털 관리라고요.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알맞은 수를 찾아내는 끈기는 필수입니다. 멘털 관리는 단지 혼란스러운 순간을 극복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일상과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믿는 최소현 부문장의 멘털 관리 꿀팁이 궁금하다면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얼마 전 강연 때문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간 김에 유동룡미술관을 방문했다. 유동룡은 우리에게 ‘이타미 준’으로 알려진 재일 한국인 건축가의 본명이다. 세 시간가량 머무르며 건축뿐 아니라 가구 디자인, 회화까지 넘나드는 그의 작업 세계를 보면서 도대체 이런 끊임없는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요인이 궁금해졌다. 일상을 살아내기에도 쉽지 않았을 시대에 말이다. (물론 지금도 어렵지만!)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20세기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지난 2020년 91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음악을 만들던 그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생각이 바로 곡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작곡을 시작하면 늘 괴로워요. 생각은 있지만 더 다듬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하고, 찾아내야 해요.”

신의 경지라 불리는 모리코네도 텅 빈 오선지를 마주하며 ‘백지(白紙)의 고독’과 싸웠다니! 술술 풀려도 혹은 풀리지 않아도 걱정이고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내야만 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고인에게 묻고 싶어진다. 디자이너든 뮤지션이든 꾸준히 좋은 작업을 하며 활동을 지속하는 창작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 마음의 흔들림을 감지하는 섬세함, 감정을 인정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각기 다른 작품만큼 각자의 삶이 다양하겠지만, ‘멘털을 챙기는 비법’은 대동소이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천은 너무도 어려운 동화 같은 이야기다.

유동룡미술관 전경 (좌)


엔니오 모리코네 다큐멘터리, © MOOUNT VIC FLICKS (우)

피로한 멘털은 창작자의 숙명?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로 살아온 지 벌써 25년이 훌쩍 넘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숙제 처리하듯 만들어 내는 데 급급했고, 연차가 쌓이면서 의미와 논리를 찾다 보니 시기마다 다른 고민이 몰아쳤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회사를 창업해 20년간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는 크리에이터인가, 관리자인가’라는 번뇌에 빠지곤 했는데, 경영자로서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창의력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여러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도 했다. ‘생각과 말, 글, 그림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현재 아주 큰 조직에서 여러 분야를 디렉팅하다 보니 이전과는 또 다른 정신적 에너지가 절실해졌다.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해결사가 되어야 하고, 크고 작은 수많은 일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새로운 영감을 자극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 그래서 매일 정신줄을 꼭 붙잡고 사느라 자면서도 이를 꽉 깨물고 주먹을 단단히 쥐게 된다.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예고 동창들을 만날 때면 ‘나와는 또 다른 힘듦이 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설득할 때 느끼는 피로도는 조금 덜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틀리다는 걸 깨닫는다. “내 방에 걸려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란다, 친구야…” 자기 정체성을 작품에 담는 일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 없이 어렵고, 청중에게 설명하는 부담 또한 크다고 고백한다.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는지에 따라 진심과 열정이 담긴 결과물의 질이 결정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창작자는 언제나 새로운 생각에 빠져 살아있는 감각을 총동원해 영감을 포착하느라 마음이 늘 바쁘다. 특히 요즘처럼 콘텐츠가 넘쳐나는 ‘감각의 과부하’ 시대에는 피곤함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보다 머리도, 마음도, 손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 멘털에도 피로가 빨리, 자주 찾아온다.

불편한 이분법: 유리 멘털 vs. 강철 멘털

우리의 멘털은 유전이나 기질, 몸 상태 등의 내적 변수와 주변 환경, 날씨, 주어진 과제, 만나는 사람, 받아들이는 정보 및 자극 등 외적 변수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개인의 경험과 생활 습관은 기본이고 수없이 다양한 변수가 결합하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멘털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없다. 종종 ‘강철 멘털’과 ‘유리 멘털’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의 멘털 상태를 설명하거나 분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강철 멘털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사건을 견디는 데 강한 내성을 보인다고 정의한다. 강철 멘털을 가진 성향은 스스로 꾸준히 발전하려는 의지를 기반으로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성장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멋진 존재로 인식된다. 반면, 유리 멘털은 부정적인 상황이나 스트레스에 직면할 때 쉽게 휘청이거나 부서지는 사람의 경향을 빗댄다. 주로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실패나 거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피하려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사람의 멘털은 강철 멘털과 유리 멘털처럼 단순히 하나의 특징으로 옭아맬 수 없다. 각각의 멘털은 개인적인 성격과 경험,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 순간을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진폭이 크다. 강철 멘털이 반드시 모든 상황에서 강한 것도 아니고, 유리 멘털이 늘 약자인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상황에 따라 유리 멘털도, 강철 멘털도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대응하며 자기 멘털 상태를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다. 세상에는 창작자의 멘털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창작자는 예민하기 때문에 유리멘털이라는 편견이다. 창작자는 작업에 깊게 몰입하는 과정에서 밀도 높은 감성과 창의성을 발휘한다. 때때로 감정적인 변화나 스트레스가 강하게 생길 수 있지만, 내 주변을 살펴보면 다들 자기 멘털의 변화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잘 알고 있고 오히려 이런 변화무쌍함을 창의적 발상에 활용하기도 한다. 멘털을 극적인 상태로 몰아붙였다가 평온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회복 탄력성이 꼭 필요한데 오랜 기간 창작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고유한 방법으로 꾸준하게 훈련한다는 사실!

몸과 마음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

후배 디자이너가 내게 묻는 단골 질문이 몇 가지 있다. 그중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시간 관리법과 멘털 관리법이다. 나라고 정답을 알겠느냐만, 살아가며 알게 된 몇 가지 팁은 있다. 하지만 이게 모두에게 유효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헤르미온느의 시계’ 같은 마법 장치를 사용한다면 여러 문제가 해결될까?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멘털 쪽으로 이야기를 좁혀보자. 건강한 멘털은 항상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이 아니다. 변화하는 자기감정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에 가깝다. 인생에 햇볕만 내리쬐면 따뜻할 것 같지만 실제 우리를 기다리는 건 사막이다. 각자가 대면하는 난해하고 난감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정에 대한 압박과 예상치 못한 문제가 피로감을 높이면 작업 효율이 낮아지고, 창의력도 점점 하락한다. 부정적인 피드백은 스트레스를 세 제곱, 네 제곱으로 증폭시키고, 결과물에 대한 불만족과 정체 구간에 끼여 옴짝달싹 못 하는 답답함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이 오면 답이 없다. 신선한 영감과 감각이 닫히면서 어떤 자극도 반사하고, 주변을 살피는 일조차 힘겨워지면 어느새 도망을 꿈꾸게 된다. 

웃프게도 나는 ‘나뭇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조상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지낸다고 확신하던 삶에 예상치 못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아마 2006년쯤이었을 거다. 그 시기를 견디면서 이런 게 ‘내 팔자’라고 마음 먹고, 극복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어느 날,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강박에 의한 불안’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원인을 파악했다고 다음 날 기적처럼 편안해지진 않았지만, 힘든 감정을 객관화하는 힘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멘붕 게이지가 올라가면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여러 방법을 시도하다 번뇌를 만드는 소란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정신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와 인공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고, 사람에게서 조금 멀어지고, 손을 쓰며 몸을 움직이는 시도는 디톡스 효과를 확실히 발휘한다. 술 한 잔, 물 한 잔 번갈아 마시면 조금 덜 취하듯, (비록 1:1은 어렵지만) 스트레스 상태와 반대 상황에 나 자신을 놓는 연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상의 손쓰기, 요리

일상의 손쓰기, 만들기

여기서 잠깐! 한 가지 방법이 항상 동일한 효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러 방법을 확보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매일 업무와 씨름하다 멘털에 통증이 오면 회사에 있는 로봇 충전 존에 잠시 서있는다. ‘오늘은 휴머노이드 빙의!’를 (속으로) 외치면서. 이 정도면 중증 아니냐고? 뭐라 놀려도 상관없다. 내가 편안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할 때는 글이라도 한 줄 쓰거나, 순간적으로 눈에 포착되는 이미지를 골라 SNS에 기록한다. 혼자 보는 일기와는 다르게 커다란 광장에 무언가 쏟아내는 카타르시스를 잠시 느낄 수 있다. 일상에서 Pause, 즉 잠시 멈춤을 통해 아주 잠시라도 편안함을 온전히 느끼며 에너지를 회복해야 할 때 요즘 가장 효과 만점이었던 방법은 ‘깊은 호흡’이다. 코로 길게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길게 내쉬며 ‘잠깐 먼 곳 바라보기’까지 시전하면 마치 온몸을 조이던 갑옷을 벗는 느낌이 찾아온다.

SNS에 업로드한 이미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일조차 스트레스다. 하지만 무작정 참으면 병난다. 숨구멍이 꼭 필요하니 빈 벽에라도 중얼중얼 털어놓자. 그래야 살 수 있다. 나는 종종 메일 계정 두 개를 활용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어떤 상황이야?’, ‘무엇이 너를 힘들게 하니?’ 등 몇 가지 질문을 메일로 날리며 대답해 본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 건강한 멘털 관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연습과 신체의 단련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서로 이어져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힘들다. 몸이 편안해야 멘털도 건강하고, 창작에 쏟을 에너지가 생긴다. (고백하건대, 나는 현재 몸을 제대로 단련하지 않아서 반성 중이다.)

항상 흔들리지 않는 강철 멘털이 정말 건강할까? 힘든 마음과 복잡한 생각을 숨기다가 터져 버리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멘털은 돌려막기가 불가능해서 그때그때 잘 회복해야 한다. 나는 애티튜드를 ‘안과 밖의 여러 자극과 경험에 대한 반응의 총체’라고 정의한다. 애티튜드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멘털을 관리하는 힘이 달라진다. 멘털 관리는 단지 혼란스러운 순간을 극복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일상과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특히 자기 이해와 자기 관리가 절실하다. 창작자는 종종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럴수록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를 모두 존중하며 자기에게 맞는 극복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코 의지를 잃지 말자.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용기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친절해지는 연습을 권한다. 이렇게 속삭이는 건 어떨까.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Writer

최소현은 현재 네이버에서 디자인 & 마케팅을 총괄하는 부문장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리챌 초기 멤버로 디자인 팀장을 지낸 후 2002년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 퍼셉션을 창업했다. 플레이스캠프제주 브랜드 경험 디자인 구축, 엘지유플러스 브랜드 정체성 재정립, 할리스커피의 BI 및 SI 리뉴얼 등을 진행한 퍼셉션은 작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생각, 말, 글, 그림의 연결자를 지향하는 그의 관심사는 잘 먹고 잘 살고 잘 죽는 것. 요즘 조직에서 장군과 이모 역할을 동시에 맡을 수 있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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