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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만약 히딩크가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다면?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미술관의 수장은 단연 관장입니다. 관장은 미술관의 모든 것을 살피고 책임집니다. 단순히 전시뿐만이 아니죠. 거대 기관을 운영하는 일부터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술관의 입지를 높이고, 미술관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까지 관장의 역량은 미술관의 흥망을 결정짓거든요. 해외에도 관장 역할을 잘하는 사람은 여러 미술관의 러브콜을 받으며 관장이 곧 직업인 경우가 흔할 정도니까요. 그만큼 관장 일을 잘하는 게 힘들다는 뜻이겠죠. 현대미술 설명서를 연재하는 박재용 님은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중심인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끄는 관장으로 거스 히딩크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 이유도 꽤나 구체적인데요. 자세한 까닭에 대해 아티클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참!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든 흥미로운 이미지도 놓치지 마세요. 무려 30달러를 쓰셨다고…

미술관에 들를 때 우리가 종종 깜빡하거나, 굳이 생각하지 않는 이슈가 있다.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다. 눈 앞에 펼쳐진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 건물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쾌적하게 운영되도록 힘쓰는 사람은 누군지 등의 사안을 망각하는 게 다반사다. 특히 하나의 작품이나 전시를 떠나, 미술관 전체를 대표해 큰 방향성을 결정하고, 미술관을 대변하는 사람이 대체 누군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주인공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술관을 이끄는 수장인 관장(director)이다.

여기서 돌발 퀴즈 하나.

Q. 지금 여러분이 사는 도시에 있는 대표적인 미술관의 관장이 누구인지, 숫자 셋을 외칠 동안 떠올릴 수 있나요? 가령 이렇게 말이죠. “OOO 미술관 OOO 관장!”

만약 누구든 곧장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필자에게 연락해 주기 바란다.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 쿠폰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까지 도박(?)을 하는 이유는 매우 높은 확률로 미술관장 이름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면, 검색창에 ‘서울시립미술관 신임 관장’을, 대전에 산다면 ‘대전시립미술관 신임 관장’을, 혹은 그저 ‘미술관 신임 관장’을 검색해 보라. 당신이 미술인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싶은 이름들을 보게 될 거다. 이미지 검색을 한다면, 성별은 대체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좀 더 많고 나이대는 적어도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가상 이미지.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역동적인 대화 중 인터뷰 스틸. 한국인 현대미술관 관장이 말하고 있다. 자신감 있는 모습.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화려한 색상의 꼼데가르송 의상. 50대 중반.

국립현대미술관에 새로운 관장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의 시립미술관에서도 새로운 관장들이 임기를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미술관장 소식에 특화된 메신저 그룹이 있다면 채용 공고가 활발하게 공유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누가 어느 미술관의 관장인들, 그게 (미술인 혹은 관객인) 나랑 무슨 상관일까?”

그렇다면 이번엔 ‘미술관 관장’, ‘논란’을 검색창에 넣어보자. 미술관이 단지 작품과 전시를 감상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면, 검색 결과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꽤나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이런 단어들이다. 알박기, 갑질, 성희롱, 코드 인사, 이력 논란, 공모 백지화, 정치 검열, 관장 전용 화장실, 전문성 논란, 특정 학교 출신 등… 이 단어들만 놓고 보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에서) 미술관 관장은 경력이 충분하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서로 정치적 암투를 벌이는 한국식 권력 투쟁의 경기장 같은 것인가?”

그도 그럴 것이, 한국어 검색 결과만 놓고 보면 미술관 관장을 둘러싼 논란은 안타깝게도 한국 정치인을 둘러싼 일부 논란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미술관 관장’, ‘비전’을 함께 검색하면 심증은 곧 확증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미술관 관장이 딱히 비전이라고 제시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검색 결과에 대한 페이지를 여러 쪽 넘길수록, 예로부터 한국에서 미술관장으로 일한 사람들은 미술관을 ‘열린’ 장소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수없이 남겼다는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랄까.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가상 이미지.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부패한 한국 현대미술관 관장이 단정하지 않은 정장을 입고 어려운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답변 중이다. 넥타이는 느슨하고 머리도 단정하지 않다. 그는 연단 뒤에서 말하고 있고,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깜빡이며 그를 비춘다. 이 사진은 신문에 실릴 저널리즘 스타일로 촬영되었다.

물론, 검색 결과를 이리저리 좁혀 보면 미술계에서 수십 년 활약하고 관장이 된 분 중 ‘열린 미술관’ 타령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고무적인 사실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서울시립미술관의 김홍희 관장(2011-2016)과 백지숙 관장(2019-2022)은 각각 ‘포스트 뮤지엄’과 ‘네트워크 미술관’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꽤나 노력한 예다. 덕분에 서울시립미술관은 2010년대를 거치며 좀 더 다양해지고 넓어졌다. 미술관이 다루는 전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물리적인 공간까지. 10여 년에 걸친 이들의 노력은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에 남아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장 취임 이전인 2000년대와 그 이후를 비교해 보시라.

© 서울시립미술관 웹사이트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의 윤범모 관장(2019-2023)은 ‘이웃집 같은 미술관’을 비전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연 지난 4년간 이웃처럼 좀 더 친근한 미술관으로 다가오게 되었을까? 종종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린다면 약 30초간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며 각자의 결론을 내려보길 바란다. 결론에 대한 커피챗 요청도 환영한다.

여기서 잠깐. 한국에서 미술관장을 지내는 사람이 ‘열린 미술관’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어른의 사정’도 짧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전에 다시 간단한 5지선다형 퀴즈를 내도록 하겠다. 이번 퀴즈에는 별도의 상품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Q.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관장 글렌 로리Glenn Lowry는 언제 관장으로 취임했을까?
A. ① 2023년 ② 2019년 ③ 1983년 ④ 1995년 ⑤ 2008년

정답은 바로 4번, 바로 1995년이다. 보통 3년 정도에 머무르는 한국 국공립미술관장 임기를 생각하면, 거의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이다. 비단 MoMA뿐 아니라 영국 테이트 미술관,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등 전 세계 많은 미술관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다란 임기를 제시한다. 아무리 수십 년의 경력을 쌓은 전문가라 한들, 한번 시작하면 길게는 십 년 넘게 몸 바칠 수 있는 일을 맡는 것과 일단 3년 일한 후 어떻게 될지 미래를 알 수 없는 일에 임할 때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열린 미술관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은 나름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좋은 미술 전시는 몇 주, 몇 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 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전 세계 많은 미술관은 내년 계획이 아니라 3~5년 치 전시를 미리 준비하면서 일한다. (뉴욕현대미술관의 ‘전시’ 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2023년 10월을 기준으로 2025년 1월에 끝나는 전시 일정까지 업데이트가 돼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글렌 로리 관장 © MoMA 웹사이트

하지만 꼭 한국에 있는 미술관장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건 아니다. 불과 얼마 전인 올해 8월 말,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을 이끄는 하르트비히 피셔Hartwig Fischer 관장이 갑작스레 사임하는 일이 생겼다. 지난 2016년 4월부터 피셔는 비영국인 출신으로는 150년 만에 관장으로 일했는데, 30년 넘게 근무하던 한 큐레이터가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후 19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보물을 야무지게 훔쳐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4억 달러가량의 도난품을 회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이미 지난 7월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을 발표하고 후임 관장 인선이 끝나는 내년 7월까지 박물관을 이끌기로 이사회의 결정을 거친 터였다. 관장직에서 내려온다고 밝히면 최대한 빠르게 새로운 관장을 뽑고 주어진 임기를 채 마치기 전에 얼른 그만두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흥미로운 광경이다. 관장을 맡은 사람은 그만둘 때까지 자기 일을 계속하고, 이와 동시에 후임 관장을 뽑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가상 이미지.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영화 같은 장면. 대영박물관 수석 큐레이터가 박물관 수장고에서 기원전 10세기 유물을 훔친다. 수장고에는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고 고대의 다양한 유물이 담긴 수많은 선반이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40대 백인 남성으로, 청바지에 재킷을 입었다. 또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수상한 모습이다.

다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미술관장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말을 바꿔 생각하면, 미술관장을 뽑아야 하는 입장도 상황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거다. 미술관장을 맡을 만한 경력과 나이를 갖춘 사람 중 누군가를 관장으로 선임할 때 어떤 식으로든 그를 제외한 다른 이를 화나지 않게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40년 전에) S대를 졸업한 사람이 관장이 되면, (40년 전에) H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화를 내고, 남성을 뽑으면 여성이, 여성을 뽑으면 남성이, 이쪽을 뽑으면 저쪽이, 저쪽을 뽑으면 이쪽이 화낼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마법을 부려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무후무한 획기적인 시도를 감행한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장 채용 공고를 국내를 넘어 국외로까지 내보낸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지지부진하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2 FIFA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처럼 한국 미술계에 나타날 누군가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채용 비리를 저지른 탓에 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으며 사퇴했고, 누가 다음 관장이 될지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가상 이미지.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인터뷰 사진. 한국의 현대미술관장인 유명한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 그는 미소를 짓고 자신감이 넘친다. 손에는 축구 트로피를 들고 있다.

히딩크, 아니 외국인 관장 채용 공고 소식은 한국인 관장만으로도 골머리를 앓던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전반적인 반응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으로 외국인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 파면과 구속 이후 밝혀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검열 문제와 외국인 관장 선임이 연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즉, 이런 생각을 했던 거다. ‘혹시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 관장을 세워놓고, 정권의 입맛대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실제 무엇을 생각했든지 간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페인 출신의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Bartomeu Marí Ribas를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선임했다. 관장 선임에 즈음하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국선즈)’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마리 리바스에게 검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성명서는 의견을 밝히는 소리만 낸 채 반영되지 않았고, ‘미술계의 히딩크’는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3년간의 임기(2016~2018) 동안 맡은 일을 꽤나 잘 해내고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 미술관이 일하는 리듬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는 국제 미술계의 관행에 따라, 어떤 프로젝트는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실현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도 한번 해볼 만하다. ‘미술계의 히딩크’를 찾을 게 아니라, 아예 히딩크를 미술관장으로 임명하는 건 어떨까?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4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해외문화홍보원 웹사이트

나는 히딩크가 꽤나 괜찮은 관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2015년에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미술관을 이끄는 관장을 정하는 일은 그저 미술에 대한 지식이 많고 미술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장은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작품을 전시, 연구, 보존하는 미술관의 수장이다. 우리가 미술계라고 부르는 영역에 속한 큐레이터만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아니다. 전시장 바닥이 깨끗하게 유지되도록 매일 청소하는 사람부터 건물과 작품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설과 보안 관리자까지, 미술관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거대 조직과 다를 바 없다.

정말로, 히딩크 감독이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다면…어떨까? 그로 인해 미술관 분위기가, 미술관 전시가, 미술관에 대한 인상이, 미술관 위상이 바뀔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할 따름이다. 어느 미술관에서 관심 가는 전시를 보았다면 조금 귀찮겠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그곳에서 누가 일하는지, 미술관장은 누구이며 언제부터 일했는지, 과연 어떤 사람인지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내가 보는 전시가 열리는 곳의 관장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이슈일 테지만, 동시에 아주 무서운 태도일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야?”처럼.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가상 이미지.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거스 히딩크는 한국의 현대 미술관 관장이다. 전시장 안에서, 그는 손에 트로피를 들고 미소 짓는다.

거스 히딩크를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뽑아야 할 이유 7

  1. 그는 공정하다
  2. 히딩크는 한국 축구계에 만연한 ‘인맥 축구’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오직 그라운드에서 평가받는 ‘실전 축구’를 추구했다. 선후배 중심의 강력한 위계가 존재했던 축구계에서는 히딩크의 리더십에 크게 반발했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은 대성공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히딩크 리더십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1. 그는 전문가를 존중한다
  2. 히딩크는 성공한 감독이었지만, 가장 뛰어난 감독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 축구 대표팀을 월드컵 4강까지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전문가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익숙지 않은 미술계에 들어와 미술관장을 맡는다 하더라도, 그는 미술관 큐레이터뿐 아니라 운영을 담당하는 여러 전문가 의견에도 귀 기울일 게 분명하다.
  1. 그는 혁신을 추구한다
  2. 히딩크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실수에서 나온다. 실수하더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 반복하라.” 그리고 이런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골을 넣지 못하는 자를 책망하지 않는다. 다만 노 골이 두려워 슛을 날리지 않는 자를 책망한다.” 혁신을 추구하고, 실패한 시도를 방어해 주다니, 오늘날 미술관장에 꼭 필요한 미덕 아닐까.
  1. 그는 원칙과 규율을 중시한다
  2. 축구계에 존재하던 강력한 위계를 깨부순 히딩크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원칙과 규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신과 실패를 감싸 안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잊지 않는 사람이 미술관장이라면 어떨까.
  1. 그는 가치를 공유한다
    히딩크는 자신이 꿈꾸는 축구를 선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과 비전을 꾸렸고, 이 가치를 모두와 공유했다. 그가 관장에 취임한다면, 비전을 묻는 말에 ‘열린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얼버무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큐레이터를 비롯한 미술관의 다양한 구성원과 긴 대화를 나눈 후에야 비전을 제시하지 않을까.
  1. 그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2. 비록 (알고 보면 전 세계적으로 그리 넓지도 않은) 미술계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여러 나라에서 축구 감독으로 활약한 유명인 히딩크에게는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술관장이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며 미술관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히딩크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꿈꾸는 한국의 여느 미술인을 넘어설지 모른다.
  1. 그는 비미술인 출신의 첫 번째 관장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실 미술계에서 큐레이터로 일한 경력이 없는, 이른바 ‘비미술인’ 관장을 이미 선임한 전례가 있다. MIT 공학 박사 출신으로 기업 CEO를 지낸 후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맡았던 배순훈 관장(2009-2011)이다. 그가 관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인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상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왼쪽)과 이상희 국립과천과학관장출처 © 이코노미톡뉴스

Artist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리서치 밴드NHRB(@NHRB.space)의 프론트맨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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