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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뉴진스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Writer: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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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김도훈 작가는 K팝 아티스트 뉴진스를 좋아하는 ‘뉴저씨’입니다. 뉴진스에 대한 에세이를 의뢰했을 때 엄청나게 즐거워하던 그의 반응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러나 마감 기한이 되자 그는 말했습니다. “망했어요…이건 중년 아저씨의 징글징글한 이야기예요. 다시 쓸게요.” 정말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면 일이 꼬여버리는 창작자의 답답함이 한껏 전해졌지요. 그리고 다시 힘들게 쓴 원고가 도착했답니다. 그의 많은 고민이 담긴 뉴진스 글을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 ADOR

멍청한 생각이었다. ‘뉴진스NewJeans’에 대해서 글을 쓰겠다는 생각 말이다. 사실 나는 뉴진스에 대한 기나긴 글을 이미 썼다. 그 글은 결코 어느 매체에도 정식으로 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도저히 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뭐냐고? 모든 게 문제였다. 일단 40대 중반 남성이 10대로 구성된 걸그룹에 대해서 독자가 중간중간 헛구역질을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런 건 그냥 무리다. 가능하지 않다. 이미 이 글을 보러 들어온 독자 중 몇몇은 ‘얼마나 징그러운 글을 썼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 ‘뉴점마’, ‘뉴저씨’는 레이더 아래에서 조용히 활동해야 한다. 내가 듣기로는 그것이 지금 40대 이상 뉴진스 팬에 대한 뉴진스 팬의 공통적인 마음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기가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쓰면 언제나 헛발질이 나온다. 이건 내가 기자로 20여 년 일하면서 터득한 명제다. 세상 최고의 글쟁이도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쩐지 최고의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물론 반대 사례도 많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소리다. 하여간 그 명제는 세상 최고의 글쟁이에 포함될 수가 없는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영화잡지 «씨네21»에서 일하던 시절, 배우에 관한 글을 많이도 썼다. 눈앞에서 지면을 박박 찢어 불태우는 행동으로 광활한 웹에서 글을 삭제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불태우고 싶은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글이다. 너무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면 체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면 체하는 글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 글을 써야만 한다. 뉴진스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몇 주를 잡아먹었으니 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다. 그러니 결국 나는 처음 뉴진스를 들었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겨우 반년 만에 이룬 놀라운 ‘업적’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글을 썼다. 그렇다. 업적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여기에는 어울린다. 조선시대였다면 임금이 작위와 쌀가마니를 내렸을 공신들이다. 음악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음악평론가보다 나은 글은 쓸 수 없다. K팝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아, 이 문장에서 몇몇 독자들은 읽기를 중단하고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팬아저, 뉴진스

신서유기6 © tvN

나는 아이돌 덕질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밝히는 고백이다. 물론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은 많다. 이등병 시절 군대 내무반 TV로 처음 보고 개안한 ‘I’m Your Girl’ 시절의 S.E.S, ‘So Hot’ 시절의 원더걸스, ‘소원을 말해봐’ 시절의 소녀시대, “노래가 좋은데 왜 히트를 하지 못하는 건가!”라고 외치게 만들던 데뷔 첫 3년의 인피니트, ‘핑크 테이프’ 시절쯤의 f(x), ‘러시안 룰렛’ 시절쯤의 레드벨벳 등등. 아마 이쯤에서 눈치채신 분도 계실 것이다. 내가 한 건 덕질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래가 좋았던 것이다. 그 시기의 콘셉트를 좋아했거나, 혹은 모두가 좋아하니 결국 따라 좋아하게 되었다. 덕질을 위해서는 오랜 가열이 필요하다. 첫눈에 반한 아이돌은 없었다.

뉴진스가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유튜브에 네 편의 뮤직비디오를 집어던진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그걸 몇 시간이나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로웠다. 물론 그들의 등장이 얼마나 새로웠는지를 이야기하는 글도 이미 당신은 수십 편은 족히 봤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새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기분을 자주 갖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어떤 새로운 것이 등장해도 트집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는, 다소 못되고 뒤틀린 심성의 인간이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잘 고쳐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토록이나 쓸모없는 ‘영화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나 보다.

NewJeans (뉴진스) ‘Hype Boy’ Official MV (Intro)

그렇다면 내가 대중문화에서 ‘이건 정말 새롭다’고 생각한 순간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어느 정도 문학이라는 걸 읽고, 음악이라는 걸 듣고, 영화라는 걸 보는 나이가 된 이후, 내가 동시대 문화 중 처음으로 새롭다고 느낀 존재는 아마도 가수 이상은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가요톱10›을 항상 보던 엄마 덕분에 동시대에 인기 있는 음악은 다 보고, 들으며 컸다. 이선희도 좋았고 윤시내도 멋졌다. 그러나 ‘19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MBC 강변가요제에서 이상은이 ‘담다디’를 부르는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그는 달랐다. 새로웠다. 세련된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런 게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해진 안무를 기반으로 무대마다 매번 새롭게 춤을 췄다. 껑충한 키로 무대를 쓸고 다니면서 관중, 혹은 시청자와 호흡했다. 당대 한국에는 거의 모든 형태의 가수가 있었지만, 록스타는 없었다. 이상은은 록스타였다.

[1988] 이상은 – 담다디

영화평론가라서 영화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이건 진짜 새롭다’고 느꼈다는 말만 하고 일단 넘어가 보자. 아무튼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이상은의 등장만큼 내 모든 감각이 열렬하게 환호했던 순간은 그 이후로 잘 없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에 열광했지만 이미 그 시절 나는 팝 음악, 특히 힙합과 록을 진득하게 듣기 시작한 이후였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레퍼런스로 삼은 곡을 어느 정도 많이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 좋아하던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곡을 얼마 전 아트페어에서 와장창 박살이 난 제프 쿤스Jeff Koons의 ‹풍선개›처럼 쪼갠 후 이어 붙인 노래로 잠시 인기를 얻었다가 사라진 양준일의 뜬금없는 복권을 내가 마음껏 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뭐, 인기를 얻어서 새로운 삶을 갖게 된 건 축하드린다. 여하튼, 나는 ‘담다디’ 이후 이상은의 모든 것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규형 감독이 ‘담다디’의 인기를 어떻게든 이용해보려고 외국까지 이상은을 데려가서 찍었으나, 정작 주연인 이상은조차 대체 무슨 연기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괴작 ‹굿모닝! 대통령›을 극장에서 볼 정도였다. 당시 인기 있던 보리 탄산음료의 양대 산맥은 일화의 ‘맥콜’과 해태의 ‘보리텐’이었다. 전자의 모델은 ‘당대의 오빠’였던 조용필, 후자는 이상은이었다. 나는 보리텐만 마셨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다. 이상은은 록스타인 동시에 아이돌이었다. 아이돌 산업이 생기기 전에 등장한 자생적인 아이돌이었다. 이상은의 명곡 ‘언젠가는’(1993)은 알고 보니 장엄한 아이돌 은퇴곡이었고, 1995년 발표한 6집 ‹공무도하가›는 음악적 자각이면서 과거에 대한 반항이었다. 당시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는 아이돌 은퇴를 선언하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젊은 결기로 넘쳤다. 아이돌로서 관리하고, 관리당하는 삶과 음악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이후 옛 시절을 두고 ‘트라우마’라고까지 말했으니까.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능청맞게 예능에서 연기도 곧잘 했던 그는 서태지가 재편한 1990년대 음악계에서도 분명 멋지게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떠났다. 나의 덕질도 몇 년 뒤 끝이 났다. 가수 마돈나Madonna의 앨범 ‹Music›까지만 덕질을 한 것과 비슷한 이유다.

[1993] 이상은 – 언젠가는

[1993] 이상은 – 언젠가는

[1996] 이상은 – 공무도하가

나는 왜 뉴진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상은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을까. 뉴진스는 이상은 이후 내게 처음으로 ‘새롭다’는 감각을 전해준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글은 동시에 이상은이 한국의 첫 번째 아이돌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뉴진스의 새로움은 도무지 2020년대 아이돌 노래라고 생각할 수 없는, 알고 보니 솜씨 있는 인디 프로듀서가 만들어낸 노래의 새로움일 것이다. 합을 맞추는 K팝 특유의 안무보다 약간 느슨해 보이는, 그러나 힙합 댄스의 기본기가 없으면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안무의 새로움일 것이다. 무대에 입고 나온 옷을 그대로 일상에서 입어도 무리가 없는 스타일의 새로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애티튜드의 새로움일 것이다. 스스로 무대를 즐기며 정해진 전담 표정 없이 관중이나 유튜브 시청자와 호흡하는 애티튜드 말이다. 그렇게 아주 약간씩 새로운 조각들을 짜 맞추자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이 나왔다. 나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에게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정말 천운이 따랐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원래 성공한 사람의 대부분은 운이 좋다. 다들 기가 막히게 좋다.

[2022 MAMA] © Mnet

아, 이런 글을 쓰면 분명 당신은 다른 그룹도 그만한 호흡은 다 한다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맞다. 그들도 한다. 분명히 한다. 나는 장원영의 윙크만큼 지금 K팝에서 가장 압도적인 ‘호흡’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뉴진스는 지금 K팝에 새로운 호흡법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훗날 K팝 역사에서 4세대 걸그룹 챕터는 뉴진스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현재 뉴진스의 경쟁 걸그룹과 올해 대형 기획사가 내놓을 신인 걸그룹에 대하여 엄청난 흥분으로 기대 중이다. 분명 그들도 뭔가 새로움을 보여줘야 할 테고, 각각 다른 방식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근데 이상은도 가요계에 새로운 호흡법을 남기기는 했냐고? 나는 이상은이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를 떼고 (그놈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좌절하고, 실패하거나 성공한 많은 뮤지션―의 아이돌일 거라고 확신한다. 이상은은 분명히 새로운 첫 아이돌이었다. 나는 이 문장에 위화감을 느낄 당신에게 유튜브에서 ‘그대 떠난 후’라는 곡의 퍼포먼스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분명 내 말에 동의하게 될 거다. 어쨌든 뉴진스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건 결국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 글이 증거다.

[1990] 이상은 – 그대 떠난후

뉴진스, newjeans, ditto, 디토, 김도훈, essay

Writer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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