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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Room

Creator’s Room: 아티스트 김희원의 작업실

Editor: 정윤주
, Photographer: 이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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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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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 김희원입니다.

국내에서 제품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리빙 &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셨습니다. 다양한 전공을 거쳐 사진으로까지 작업이 이어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밀라노의 도무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밀라노시에서 주최한 공모전 ‘Coloriamo il Mondo’에서 1등을 했어요. 이를 계기로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가 이끄는 ‘아틀리에 멘디니Atelier Mendini’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필기구부터 가구, 조각상, 건축물까지, 모든 게 전부 멘디니의 유토피아 디자인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튜디오 전체가 당시 여든이 넘으셨던 멘디니의 작은 우주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그렇다면 나의 언어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디자인을 계속하기보다는 개인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 맞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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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오랜 취미였던 사진을 계속 찍고 있었고, 그 방식과 결과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진과 영상으로 작업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 후 전 세계의 대표적인 아트페어를 가면서 차근차근 목표를 정했어요. 1년 후, 3년 후, 그리고 10년 후에는 어떤 작가가 되어 있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준비 단계를 밟아 나갔습니다. 작가 초창기에 만났던 로산나 오를란디 갤러리Rossana Orlandi Gallery와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굉장한 계획형 인간이시군요.

‘파워 J’라고 말할 수 있어요. (웃음)

누군가에게는 멘디니와 함께 일하는 게 꿈일 수도 있는데,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아틀리에 멘디니에 들어갔더니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저에게 다 이룬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모두가 동경하는 스튜디오에서 일하니 소위 엘리트 코스의 삶이라고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인생의 성공이라고 느끼진 않았어요. 그랬다면 멘디니 스튜디오에 더 오래 머물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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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멘디니(우), 그의 동업자이자 동생인 프란체스코 멘디니(좌)와 함께 찍은 사진

그 후 프랑스 파리에 머물면서 ‹누군가의 창문(Someone’s Window)› 시리즈도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2011년부터 파리에 거주했어요. 지금도 1년에 네 번 정도는 파리에 길고 짧게 머물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창문›은 2009년 밀라노 시절에 시작했어요. 창문 속에 그 너머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 같은 거장 디자이너의 아틀리에를 찾아,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시점을 관찰하게 된 거죠. 파리에서는 그간 궁금했던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집과 작업실을 방문해 그들의 공간을 촬영했습니다. 그 후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핀 율Finn Juhl,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생가 또는 그의 작업이나 역사와 관련이 있는 장소에서 창문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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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의 집에서 찍은 사진. 올해로 3년째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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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의 집에서 찍은 사진. 올해로 3년째 촬영 중이다.

창문을 촬영하는 작업은 대략 어떻게 진행되나요?

비단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뿐 아니라 저의 모든 작업은 비슷한 과정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인물에 관심을 두게 되면 그의 역사와 생활 방식, 취미, 즐겨 찾았던 공간까지 다양한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 그의 흔적과 역사를 따라가 봅니다. 초나 샹들리에가 피사체가 된다면 해당 시대와 제조 과정, 당시의 생활상과 식습관,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죠. 그래서 하나의 작업을 할 때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특히 르코르뷔지에는 파리에 머물 때부터 지금까지 15년이 넘도록 그의 건축물을 탐방하고 있습니다. 인도 찬디가르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 있는 그의 집과 건축물은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한 인물의 족적을 밟아가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겠네요.

한 번에 전부 방문하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해외 일정이 있을 때마다 지금 관심 있는 사람이 설계한 건축물이나 머물렀던 집이 근처에 있으면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 번 갔던 곳을 여러 번 다시 가기도 하고요.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제 기분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으니, 그런 차이를 느끼기 위해서 웬만하면 느린 템포로 그 장소와 도시에 최대한 오래 머뭅니다. 촬영할 때도 공간의 주인이었던 인물의 눈높이를 감안하며 되도록 그의 시선과 가까운 위치에서 바라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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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흥미를 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한 번 탐구를 시작하면 오랫동안 이어지는 편인데요. 근간에 호기심이 들기 시작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예요. 독일 베를린의 신국립미술관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의 시그램 빌딩이나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 위치한 크라운 홀도 가보면서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두 사람의 작업을 동시대적으로 비교 해보고 있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설계한 마지막 주택인 하우스 렘케Haus Lemke에서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베를린 북동부 쪽에 자리 잡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공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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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s Window (Haus Lemke)›, 2019, C-Print on Diasec, 156 × 260 cm, Edition N. 5/6 AP. 201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젼시에 출품했다.

영상 작업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계시죠.

영상은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요. 사진으로 피사체의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한다면, 영상은 한자리에서 긴 시간 동안 피사체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업실 1층에는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전시 «가면무도회»에 참여한 작품이 있는데요. 샹들리에의 초에 불을 켜는 시작부터 전부 타들어 가는 마지막까지 영상으로 촬영했어요. 65인치 LED 디스플레이에서 4K 해상도로 4시간 35분 35초 동안 돌아가는 영상이라, 총용량이 7TB쯤 됩니다. 영상은 LED를 비롯해 각종 기기의 변천사에 따라 퀄리티가 확연히 달라져요.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화질과 기종의 카메라가 출시되면서 사진에 변화가 생겼던 것처럼요. 영상 작업은 그 변화의 폭이 빠르고 뚜렷한지라, 작업에 임할 때마다 차이를 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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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s Chandelier›, 2021,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4K, 컬러, 65인치 LED 디스플레이, 목제 액자, 4시간 45분 35초

작가님이 생각하는 대표작이나 프로젝트를 꼽아주시겠어요?

‹누군가의 창문(Someone’s Window)›, ‹누군가의 시선(Someone’s perspective)›, ‹누군가의 초(Someone’s Candle)›, ‹누군가의 샹들리에(Someone’s Chandelier)› 시리즈를 비롯해 ‹흔적(Trace)›, ‹초상화(Portrait)›, ‹하늘(Sky)›, ‹반사(Reflection)›, ‹의자(Chair)› 등 다양한 작업이 있고, 지금도 새로운 시리즈를 탐구하며 작업 중입니다. 그 중 여러 측면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면, ‹누군가의 창문› 시리즈 중 밀라노 현대 미술관(GAM)의 창문을 포착한 작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GAM은 18세기 초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1세와 그의 아내 조세핀 황후가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기도 한데요.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 사진 설치작가로 초청받은 계기가 된 작품이라 제게도 의미가 깊습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의 궁궐을 찍은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 창덕궁 후원에서 왕의 시선으로 창 너머를 바라본 작품은 촬영 당시의 계절과 풍경이 고스란히 떠올라 남다른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도 슬라이드 필름을 이용한 조명, 조각상의 그림자 등의 시리즈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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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s Window (Napoléon Bonaparte)›, 2011, Archival pigment print, face-mounted to Diasec, 225 × 15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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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s Window (Napoléon Bonaparte)›, 2011, Archival pigment print, face-mounted to Diasec, 225 × 150 cm

‹Someone’s Window (Changdeokgung Palace Secret garden)›, 2020, 한지에 C-Print, 158.5 × 220.5 cm, Edition N. 3/3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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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성수동 작업실은 언제부터 사용하셨나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수동이 지금처럼 번화하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여러 멤버와 함께 사용하다가, 지금은 저희 팀과 이승재 사진가가 쓰고 있어요. 1층은 쇼룸 개념으로 활용하고, 실질적인 작업실은 2층입니다.

2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거실은 누군가의 집처럼 아늑합니다.

실제로 2층에는 온돌을 깔아서 쇼룸보다는 좀 더 안락한 느낌이 듭니다. 거실과 휴게실 개념으로 사용하는 공간에는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 디자인한 데이베드 ‘514 리폴로Refolo’와 라프 시몬스가 크바드라트와 협업한 블랭킷을 놓았습니다. 옆에 비치한 스툴은 페리앙의 ‘타부레 메리벨Tabouret Méribel’이고요. 스틸, 알루미늄, 나무, 유리 등 본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한 가구를 좋아해서 샬로트 페리앙의 디자인을 특별히 선호하는 편입니다. 10년 넘게 수집 중인 르코르뷔지에와 관련된 책을 데이베드 옆에 쌓아 두고,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앉아서 읽곤 합니다. 데이베드 뒤에 보이는 작품은 르코르뷔지에가 스위스에 만든 빌라 르 락Villa Le Lac에서 촬영했어요. 그가 부모님을 위해 지은 곳인데, 가로로 11m에 달하는 기다란 창밖으로 드넓고 한적한 레만호(湖)와 알프스의 풍광이 펼쳐지는 전망 좋은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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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가 1923~24년에 설계한 빌라 르 락의 모습. 레만호가 시야에 장대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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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가 1923~24년에 설계한 빌라 르 락의 모습. 레만호가 시야에 장대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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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 놓인 스피커와 오디오 시스템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것을 다시 구성해서 주셨어요, 입문용으로 아주 훌륭하다면서 이걸 물려주신 후, 아버지는 더 좋은 걸 마련하셨죠. (웃음) 영국 쿼드Quad의 ‘606 앰프’에다 양쪽 스피커로는 탄노이Tannoy를 배치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음악을 즐기는 취미를 갖고 계셔서, 어릴 때부터 집에 있던 스피커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흐르던 기억이 나요. “이 곡을 들을 때는 어떤 스피커로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음악과 오디오에 철학을 갖고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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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집은 분위기가 어땠나요?

아버지가 제가 태어나기 전인 1981년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시작하셔서, 집에는 항상 아버지 회사에서 만든 가구가 있었어요. 어머니도 도예를 하셔서 두 분의 취향이 집안에 가득 담겨 있었죠.

그런 유년 시절을 지낸 작가님이 지금 머무는 집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지네요.

제 집에는 최소한의 가구만 두고 지내요. 소파도 없었는데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까시나의 마라룽가 소파Maralunga sofa를 구입했어요.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부터 마라룽가를 디자인한 비코 마지스트레티를 좋아했거든요. 소재의 선택지가 많아서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는데… (웃음) 결국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블랙 가죽으로 선택했어요.

집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시나요?

일부러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았어요. 대신 드레스룸에 책 한 권, 거실과 침실에 또 한 권씩 이렇게 각기 다른 책을 두고 지내요. 방에 들어갈 때마다 틈틈이 한 챕터씩 무조건 읽으려고요. TV는 영상 작업을 위한 실험용으로 배치해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 데 사용하진 않아요. 요리는 건강한 재료로 간단하게 먹는 걸 즐기고요. 사실 1년 중 집에 머무는 기간이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집을 거창하게 꾸미는 게 큰 의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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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닌다고 하셨어요. 올해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매해 정해진 페어 일정과 의뢰받은 프로젝트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비슷한 듯 새로운 루트로 이동하긴 해요.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하루 만에 빠르게 둘러보는 성격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성격의 숙소에서 며칠씩 머물며 최대한 그곳을 두루 경험해 보는 편이죠. 처음 해외로 촬영하러 갔을 때는 차박도 하고 에어비앤비에서도 잤는데, 그래도 하루는 남은 비용을 투자해 도시에서 가장 좋은 방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그러면 해당 도시의 이미지가 아름답게 마무리되고 지금까지의 고생도 조금은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요.

우선 1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IT 페어 CES를 가고, 거기에서 LA,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포틀랜드, 시애틀까지 이동하면 2월이 돼요. 지난 2월 말에는 Nomad-Circle 아트페어에 작업을 내느라 스위스 생모리츠에 갔다 왔어요. 이제 올 3월 20일부터 23일까지는 밀라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인 MIA에 참가하고요. 2주 정도 프로젝트 미팅 건으로 파리에서 지낸 후 밀라노 가구 박람회가 열리는 4월에는 로산나 오를란디 갤러리에서 신작을 선보여요. 전시 후에는 내년과 내후년 전시 방향에 대해 의논합니다. 그리고 4월 중순에는 스페인으로 넘어가서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세르빌, 알람브라, 말라가와 더불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들려서 촬영을 마친 후 서울로 잠시 돌아와요.

이제 6월에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을 관람하고, 프랑스 남부 국경 지대의 로크브륀 카프 마르탱Roquebrune-Cap-Martin에 갈 예정입니다. 르코르뷔지에가 말년에 별장으로 썼던 4평짜리 오두막이 그곳에 있거든요. 그는 오두막 앞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다가 심장마비로 별세했는데요. 일정이 가능할 때는 그의 기일인 8월 27일에 맞춰서 그 시간대의 파도와 햇살을 찍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온답니다. 올해로 벌써 3년째 촬영을 위해 들르고 있어요.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건축가의 마지막 별장 같은 작은 집을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나의 별장은 어디인가? 별장이라고 하는 곳을 준비하고 사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쉬고 보상받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같은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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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말년의 걸작, 롱샹 성당 근처 벤치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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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말년의 걸작, 롱샹 성당 근처 벤치에서 찍은 사진

이제야 1년의 절반이 지났네요. 

네. (웃음) 8월에는 휴가 겸 촬영을 가고, 9월에는 파리에 가요. 2013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벌써 10년이 넘도록 비슷한 일정으로 살고 있네요. 사이사이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다른 도시를 방문하기도 해요. 작년에는 6월에 도자기 회사와의 협업으로 프랑스 리모쥬에 갔고, 9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와이너리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한 달간 머물렀어요. 12월에는 일본 고베의 안경 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베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일을 통해 제 인생의 경험치와 관심사가 조금씩 바뀌게 되는 점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만약 작업실을 이동하게 된다면 어떤 곳이 될까요?

현재 작업실이 성수동 재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옮겨야 할 시기를 고민하고 있기는 해요. 서울 한복판에서 지내봤으니, 교외의 한적하고 넓은 장소도 좋을 것 같아요. 해외에는 프라이빗한 경비행장 같은 곳에서 작업실을 꾸리는 작가들이 있어요. 컬렉터들이 실제 비행기를 타고 작품을 보러 오기도 하죠. 조금 널찍한 작업실을 마련해서 저를 비롯해 함께 작업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상상해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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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할 때는 주로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시는 편인가요?

제가 브랜드 앰버서더이기도 하지만, (웃음) 라이카Leica 카메라의 조형 언어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다른 브랜드도 사용해 봤는데, 결국에는 라이카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라이카 M6, MP, SL2 같은 카메라는 휴대전화처럼 어디든 갖고 다니고요. 촬영할 때는 필름과 디지털, 그리고 판형 크기에 따라 상황에 맞는 카메라를 사용해요. 고사양의 렌즈나 조명, 고가의 영상 촬영 장비가 필요할 때는 전문 업체에서 대여하기도 하고요.

컴퓨터 뒤편으로 외장하드가 줄지어 있어요.

누군가는 노트나 메모 애플리케이션에 기록을 남기는데, 저에게는 외장하드가 기록이에요. 각각 다양한 용량의 외장하드를 사용하는데요. 마치 노트를 꽂은 것처럼 연도별로 줄을 세워 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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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옷이든 물건이든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몇 개씩 구입하는 편이에요. 주로 블랙 컬러의 옷을 입는데 시즌이 바뀌면 같은 아이템이더라도 색의 채도나 디테일이 묘하게 달라지더군요. 지금 입고 있는 르메르 조끼도 세 벌이나 갖고 있어요. 아이템도 가끔 같은 방식으로 구입합니다.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브라운의 블랙 탁상시계들을 책장 선반에 모아놨는데요. 시기에 따라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요. 미묘하게 변하는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제 모든 일정과 행보는 작업과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상이나 취향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가끔 부족하다고 느껴요.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중심을 잡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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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며 작업하시는 편인가요?

네, 주로 클래식을 들어요. 제가 음악을 듣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는 좋아하는 악보나 작곡가를 보고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해석하며 연주했는지 비교하는 거예요. 예브게니 코롤리오프Evgeni Koroliov와 백건우의 바흐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다가 그들의 연주 기법과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무척 흥미롭거든요. 그러다 가끔은 힙합도 듣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는 하우스나 테크노, 드럼 앤 베이스처럼 비트 있는 음악도 듣습니다.

힙합 이야기를 들으니 작업실 1층 입구에 세워져 있던 스케이트보드가 생각났어요.

중학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낼 때 스케이트보드를 배워서 학교 친구들과 자주 탔어요. 지금도 가끔 타고 있고요. 작업실과 차, 집에 한 개씩 두고서, 날이 좋고 일정이 맞을 때마다 타고 있습니다. 뚝섬한강공원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파크에 나갈 때마다 거기 있는 스케이트보더들이 저보다 많이 어려서, 이제는 타기가 조금 쑥스럽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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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워낙 다양한 도시에 머무르고 여행하다 보니 뭐든 잘 먹는 편이에요. 국내에서는 요즘 젊은 사람이 좋아하는 트렌디한 장소보다 노포에 가요. 충무로에 사진을 출력하러 갈 때면 필동면옥을 가는 게 저만의 코스처럼 되어 있고요. 충무로에 50년이 넘은 사랑방 칼국수에서 닭백숙을 먹는 것도 좋아해요. 오래된 시장도 자주 가고요. 연세 있으신 할머님이나 이모님들이 해주시는 시장 음식은 뭐든 맛있거든요. 대신 미슐랭 스타급의 파인다이닝에 갈 때는 마음 먹고 까다롭게 맛보고 즐겨요. 커틀러리부터 재료, 플레이팅, 레스토랑에 걸린 예술 작품까지 유심히 살핍니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작가님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어디인가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김병진 셰프님이 이끌던 가온Gaon을 좋아했어요. 외국 지인이 한국을 방문하면 우래옥, 비채나BICENA, 밍글스Mingles, 그리고 조승현 셰프님의 레스토랑 산SAN을 가는 편이고요. 이탈리아 레스토랑 중에서는 이흥주 셰프님의 시칠리SICILI를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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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주변으로 두 개의 책장과 스틸 랙이 놓여 있습니다.

책상은 샬로트 페리앙의 디자인이고, 그 옆에는 비트라에서 나온 장 프루베Jean prouvé의 ‘스탠더드 체어Standard Chair’를 옆에 놓았어요. 책상 위에는 리차드 쉐퍼Richard Sapper가 디자인한 아르테미데Artemide의 ‘티지오Tizio’ 램프가 놓여 있고요. 책장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것과 새롭게 주문 제작한 게 함께 있는데요. 칸마다 아트페어와 관련된 여러 책과 도록, 각종 소장품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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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작은 은식기에서 시선을 떼기 힘드네요.

제 작업이 모두 시간과 연관되다 보니, 문득 은식기에 관심이 갔어요. 은식기는 시간이 흐르고 공기와 접촉하면서 자연스럽게 표면에 산화 작용이 일어나는데요. 그 색감과 변화를 관찰하곤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은잔에 이름을 새겨서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은잔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과 이국의 특별한 기념 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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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하고 클래식한 아이템 사이에서 레고와 미니 자동차, 베어 브릭 스피커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어릴 때부터 프라모델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레고도 그와 비슷한 흐름으로 좋아하게 됐고요. 요즘은 아키텍처 라인으로 출시하는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Edith Farnsworth House’ 조립을 즐깁니다. 이런 것도 그들을 더욱더 이해하기 위한 작은 단계 중 하나죠. 미니 자동차는 모두 제 드림카인 ‘포르쉐 911’과 관련된 제품이에요. 언젠가는 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작업을 위한 소비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베어 브릭 스피커는 지금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위해서 경험해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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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1층 쇼룸을 다시금 둘러볼게요. 입구 쪽에 앤티크 촛대들이 놓여 있고, 한쪽에는 샹들리에도 걸려 있습니다. 모두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소재인가요?

소재로 쓰거나, 영감을 받기 위한 오브제죠. 플리마켓에서 하나씩 하나씩 수집했고 대부분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물건이에요. 가격과 세공 면에서 모두 천차만별이죠. 촛대도 시대와 삶의 방식에 따라 형태와 소재가 달라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촛대와 샹들리에에 꽂는 초도 역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구입해요. 샹들리에에 대해 더욱 깊게 알고 싶은 마음에, 밀라노에서 앤티크 가구와 샹들리에를 판매하는 전문 숍인 ‘안티키타 산 마르코Anticitá San Marco’의 주인에게 한 달간 가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 그때 샹들리에의 형태와 시대, 조립하는 법에 대해서 배운 덕분에 이제 현지에서 구입한 샹들리에가 한국으로 들어오면 제가 직접 조립할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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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룸 중앙에는 토끼 귀를 닮은 의자 세 점이 있네요. 그 크기도 각각 다릅니다.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와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가 함께하는 SANAA가 일본의 가구 브랜드 ‘마루니Maruni’에서 주관한 ‘넥스트 마루니Next Maruni’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예요. SANAA가 나오시마섬에 만든 파빌리온에 갔다가 이 의자를 봤는데, 형태가 너무 귀엽더라고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나오시마섬에 다시 방문했답니다. 이런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의자 세 점을 소장하게 됐습니다. 서울에서는 에이후스A/HUS에서 구입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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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테이블 위에 체스판이 놓여 있어요.

예술가 만 레이Man Ray가 만든 너도밤나무 체스 세트인데요.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재단(Fondation Beyeler)에서 구입했어요. 체스라는 동일한 오브제를 다른 작가는 어떻게 해석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거든요. 제가 구입한 첫 체스판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관련이 있어요. 그의 생가에서 ‹누군가의 창문›을 작업하는 와중에 생전의 마그리트가 체스를 즐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유가족에게 그가 어떤 디자인의 체스판을 사용했고, 어떤 가게에서 구입했는지 등을 물어보고, 이에 따른 대답을 토대로 구입했답니다. 그의 작업과 일상까지 접근해 보면서 최대한 그 창문을 통해 바라봤던 시선에 진정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거죠. 가끔 작업실을 지나갈 때 만 레이의 마음으로 체스 말을 움직여 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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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깅이라는 말이 유행하지 않을 때부터 디깅과 알고리즘에 충실한 삶을 사셨네요.

저에게는 그게 가장 즐거운 작업 방식인 것 같아요. 

안쪽에는 다이닝 테이블에 필적하는 크기의 테이블이 있습니다.

핀 율이 디자인한 테이블이에요. 넓고 탄탄해서 여기에서 회의나 미팅을 하곤 합니다. 칼한센앤선Carl Hansen & Søn에서 출시한 한스 베그너Hans Wegner의 ‘CH24 체어’, 핀 율의 ‘리딩 체어Reading Chair’, 톤Ton의 체어 등 비슷한 소재와 감도를 지닌 의자로 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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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브랜드와 협업하는 작업은 대부분 대외비라서 출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만든 이미지를 기반으로 파생하는 여러 형태의 오브제를 제작해 보려고 해요. 2층에 있는 카펫에 이어 도자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창조한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워요. 작품의 경우, 새로운 것보다는 계속하던 걸 잘 해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테이에이치STAY H’가 이번 ‘크리에이터스룸’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에 관해 얘기해 볼게요. 인터뷰이가 자신의 공간과 어울리는 아이템을 한 점 고르면 선물로 드리는 방식이죠.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셨나요?

아르테미데의 ‘톨로메오Tolomeo’ 스탠드 램프를 선택했습니다. 알루미늄과 스틸 재질은 톨로메오 시리즈 중 가장 클래식한 버전이죠.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와 지안카를로 파시나Giancarlo Fassina가 디자인한 톨로메오는 이탈리아 어부가 그물을 고정하는 데 사용했던 오래된 낚시 밧줄 시스템인 ‘트라부치Trabucchi’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미켈레 데 루키가 멘디니와 친분이 깊어서 스튜디오에 자주 놀러 오시곤 했어요. 위대한 디자이너를 가까이에서 본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척 설레었던 기억 덕분인지, 그가 디자인한 톨로메오를 소유하는 것은 저에게 더욱더 특별한 일이 됐어요. 현재 작업실에 이미 스탠드와 핀자 클립 등 톨로메오 세 점을 놓았지만, 좋아하는 아이템을 여럿 소유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톨로메오 스탠드를 어디에 놓고 사용하실 계획인가요?

우선 기존의 톨로메오 램프가 놓여 있는 2층 작업실에 4개를 함께 두고 사용해 보려고 해요. 이동성이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에, 작업실 어디서든 특유의 모습으로 빛을 발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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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김희원(@kimheewon_he1)은 홍익대학교에서 제품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을, 밀라노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인테리어와 리빙 디자인을 공부한 후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현재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 누군가의 시선이 담긴 풍경을 포착하고, 초와 샹들리에를 매개체로 시간을 표현하는 시리즈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www.kimheewon.com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온라인 매거진 «디퍼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도 역임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커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엘르 데코 코리아»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현재는 프리랜스 에디터 겸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

Photographer

이우정(@iopppic)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수년간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거쳤다. 현재 «보그 코리아», «엘르 코리아», «GQ 코리아», «하퍼스 바자 코리아» 등 다양한 매체와 협업하며 앨범, 광고 등 커머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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