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Creator’s Room

Creator's Room: 서윤정 회사 서윤정의 작업실

Editor: 정윤주
, Photographer: 박도현

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작가 서윤정입니다. 개인 레이블인 ‘서윤정 회사’를 운영하며 저만의 드로잉을 캔버스와 일상 사물에 녹여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시카고와 런던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셨어요.

순수 미술은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은 학문이에요. 게다가 제가 수학한 학교들은 모두 작업의 도구와 영역이 자유롭게 열린 곳이었어요. 전공은 정해져 있지만 페인팅, 그래픽, 조각 등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죠.

그런 자유로움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저는 이것저것 다 해보려는 타입이 아니어서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어요. 꾸준히 페인팅과 드로잉을 하며 그 속에 푹 빠져 지냈죠. 좋아하는 게 명확했고,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딴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Painting on Painting›, 2015, Acrylic on panel

시카고에서 런던으로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간다는 건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다만 어느 도시에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런던을 선택하게 됐고, 거기서 생활하며 삶에 대한 시야가 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시카고에서는 집과 학교만 오갔는데, 런던에서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많이 즐기고 경험했거든요.

순수 페인팅 작업을 하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아이템에 드로잉을 접목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캔버스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런던에서 여러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많이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 같아요. ‘내가 반드시 어떤 영역을 정하고 시작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Two boxes of painting›, 2018, Acrylic on panel

‘서윤정 회사’라는 브랜드 이름이 무척 독특한데요.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은 제 이름이 가장 잘 대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름 뒤에 회사를 붙인 이유는 사실 단순해요.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던 때라 회사라는 단어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웃음)

지금까지의 작업 중 대표작을 꼽아보면 어떨까요?

2016년 작업한 ‹수영장에서 그린 그림(Painting from Large Bath)›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런던에서 사용하던 작업실이 과거에 수영장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매우 높은 유리 천장에서 강한 빛이 쏟아지곤 했는데, 누군가 수영을 즐기던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죠. 같은 해에 완성한 ‹A Package›는 석사 졸업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작업이에요. 제게 주어진 공간 전체를 하나의 페인팅으로 만들고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그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작년에 작업한 ‹홈메이드 별장(Homemade Villa)›은 초록색의 테니스 코트와 핑크빛 타일의 수영장이 있는 공간을 상상하며 그렸어요.

‹수영장에서 그린 그림 (Painting from Large Bath)›, 2016, Acrylic on panel, 35 x 35cm

‹A Package›, 2016

‹홈메이드 별장 (Homemade Villa)›, 2022, Acrylic on canvas, 23 x 16cm

작업할 때 영감을 받거나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집에 대한 기억들이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은 물론이고 여행에서 머물렀던 공간이나 유학 시절 지내던 방과 근처 동네들까지 제게 오랫동안 깊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나만의 집을 구축했을 때,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업 요소로 집을 주목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외동인 데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어릴 적부터 혼자 집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어요. 그 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려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놀이를 개발했죠. 집도 꾸미고, 그림도 그리고, 나만의 작은 아지트도 설계하면서요. 그때부터 집은 제게 살아가는 곳, 그 이상의 창조적인 공간으로 다가왔어요.

지금까지 경험한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궁금해요.

런던에서 살았던 작은 플랏이 가장 많이 생각나요. 이스트 런던의 런던 필즈라는 동네에 있는 원 베드룸 플랏이었어요. 2층이었는데 큰 창으로 빛이 아주 예쁘게 스며드는 곳이었죠.

인터뷰 질문

이번 전시를 위해 포터블 하우스처럼 작은 집들을 만들고 있어요. 수영장도 있고, 정원도 있죠. 딸이 플레이모빌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작은 플레이모빌 하우스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지금 지내는 작업실은 언제 들어오셨어요?

2016년에 귀국하고 2017년 한 해 동안 한남동에 있는 작은 작업실을 사용했어요. 그 후에 이곳을 알게 됐죠. 1년 정도 공사한 후 2018년부터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원래 삼청동을 염두에 두었나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우연히 이곳을 추천받고 큰 기대 없이 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완전히 반해 버렸어요. 한 자리에 세 가지 양식이 모여 있는 집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대문에서부터 1940년대의 적산가옥, 한옥, 양옥의 순서로 지은 건물로 추정하고 있어요.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각가인 김정숙 선생님의 자택 겸 작업실이었다는 사실도 마음에 쏙 들었죠. 게다가 혼자서 가꿀 수 있을 만한 작은 정원이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공간마다 영역이 다르게 나뉘어 있어요.

적산가옥은 쇼룸으로 사용 중이고, 한옥은 부엌, 양옥 쪽은 서재와 작업실이에요. 아무래도 작업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죠. 하루 종일 작업 공간에만 있다가 집에 가는 날도 있어요. 그림도 그리고, 좋아하는 아트북을 읽으며 음악을 듣다 보면 시간이 금세 간답니다. 이전에 살던 집이 아파트라서 제게는 이곳이 세컨드 하우스나 주말 주택처럼 또 다른 삶을 영위하는 곳이기도 했어요. 여기에 들어서면 마치 휴가 온 것 같았죠.

정원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가끔 가지치기와 잡초 뽑기를 하는데 그 외에는 사실상 방치에 가깝죠. (웃음) 그런데 자연 그대로 가만히 놔둘 때가 가장 예쁘더라고요. 원래부터 존재하던 수령 30년 정도의 감나무를 제외하고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체리나무 등은 전부 새로 심었어요. 과실이 잘 열리지는 않지만 모두 튼튼하게 자라고 있어요. 작업하다 뜻대로 잘되지 않는 순간에는 가지치기 같은 단순노동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곤 해요. 최근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집을 옮겼는데요. 이곳에서 정원을 경험한 게 꽤나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의 가구 및 소품이 공간을 채우고 있어요. 선택 기준이 궁금합니다.

저만의 기준은 없어요. 필요할 때마다,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구입했어요. 처음 작업실을 시작할 당시에는 거의 텅 빈 상태였고, 하나둘씩 채우다 보니 5년이 흘렀네요. 서양 빈티지 가구와 한국 고가구, 현대 가구가 모두 한데 섞이게 됐어요. 부엌에 있는 싱크대와 서재의 책상은 목공소에서 제작한 후 그 위에 직접 타일을 붙였어요. 책상 앞에 놓인 오렌지색 임스 체어는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빈티지 가구라서 특히 기억에 남아요.

작업실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집을 옮긴 후로 작업실과 멀어졌어요. 오가는 시간이 길어져서 이곳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네요. 원래 여기 도착하면 정원도 돌보고, 커피도 마시면서 작업했는데, 이제는 급한 작업부터 서둘러서 하고 부리나케 귀가해요.

페인팅을 작업할 때 주로 어떤 도구를 사용하시나요?

붓은 확실히 비싼 게 제값을 하는 것 같아요. (웃음) 독일의 다빈치Davinci 붓을 가장 많이 써요. 런던에서 산 게 잔뜩 남아있어서 아직도 그걸 사용하고 있어요. 아크릴 물감으로는 독일제인 슈밍케Schmincke와 미국제 골든Golden을 주로 씁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인사동 미로 화방에 가요. 요즘에는 아크릴 물감보다 수성 물감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묽은 농도의 물감을 반복해서 바르는 작업을 많이 하거든요. 안료에 바인더를 섞고 마치 염색하는 것처럼 캔버스에 얇게 덧입히며 스며들게 하는 거죠.

일반 물감과 안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료가 물감보다 훨씬 선명해요. 칠할수록 그 색의 느낌이 분명하게 다가오죠. 물감을 쓰면서 물로 농도 조절을 할 수 있지만, 안료와 바인더의 비율을 조절하며 사용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져요.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물감과는 다른 크레파스와 색연필의 매력도 알게 됐어요. 페인팅은 작업실에서만 하고 집에서는 고체 재료를 사용해 작업하는데요. 색연필은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고, 크레파스는 그릴수록 칠의 표면이 뭉그러지거나 특유의 텍스처가 살아나는 게 마음에 들어요.

자신만의 특별한 도구나 작업 과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부분 기성품으로 나온 캔버스를 구입하지만, 저는 페인팅에 필요한 캔버스를 직접 만들어요. 기성품에는 미리 제소를 발라 놔서 안료가 천에 스며들지 않거든요. 직접 만들 경우에도 보통 건 태커Gun Tacker로 캔버스를 틀에 고정하는데, 저는 망치와 작은 못을 사용해요. 외국에서 바닥 카펫을 시공할 때 사용하는 못인데요. 시카고에서 공부할 때 학생들은 자기가 쓸 캔버스를 직접 다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때 습득한 방법입니다. 패브릭은 화방에서 파는 캔버스 천이나 광목을 두루 사용해요.

최근에 관심이 가는 재료가 있나요?

전시를 준비하며 한지를 보러 갔다가 동양화에 쓰이는 분채를 발견했는데, 색이 너무 곱고 예뻤어요. 서양 물감과는 다른 색의 세계를 본 것만 같았죠. 우선 몇 가지만 샀는데 사용해 보니 더욱더 마음에 들어서, 다른 색상도 전부 써보고 싶어졌어요.

서재에 아트북이 가득하네요. 소설이나 에세이도 보이고요. 평소 창작할 때 즐겨 보는 책이 있나요?

아트북 컬렉션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한두 권씩 모으며 완성해 가고 있어요. 특히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을 좋아해서 그의 책이 가장 많고,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책도 있죠. 아트북을 제외하면, 긴 호흡의 소설보다 시나 산문, 에세이 등을 좋아해요. 특히 사물이나 공간을 아름답게 묘사한 문장에서 작업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쓴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이라는 산문 시집 속 단편과 문장들을 특별히 좋아해요. 에릭 로메르Éric Rohmer와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가 연출한 영화들도 몇 번이고 다시 보고요. 여름이 오면 더욱더 생각나죠.

작업실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오브제는 무엇인가요?

서재에 놓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램프요. 사실 램프 보디와 갓은 제 짝이 아니에요. 보디는 어머니와 교토에 갔을 때 어느 빈티지 가게에서 구입했고 윌리엄 모리스 패브릭 갓은 영국에서 주문한 거예요. 보디에 갓을 얹어보니, 그림처럼 잘 어울리더라고요. 책상 위에 놓은 황동 램프도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예요. 런던 브로드웨이 마켓에 항상 예쁜 것만 가지고 나오시던 아저씨에게 구입한 물건인데요. 불을 켜면 표면이 너무 뜨겁고, 전구도 영국에서만 파는 제품이라 평소에는 불을 잘 켜지 않아요. 하지만 그냥 보기만 해도 런던에서의 추억과 그때 기분이 떠올라서 아끼고 있어요.

작업실에 추가하고 싶은 오브제가 있나요?

일본 디자이너 마키시 나미(真喜志奈美)가 만든 책장을 사서 점점 높게 쌓이는 아트북을 잘 정리하고 싶어요. 세로로 구획한 디자인이라 책들이 한눈에 잘 보일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서윤정 회사는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였는데요. 그 중 특별하게 여기는 아이템이 궁금해요.

평소에 스웨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 드로잉을 담은 스웨터를 꼭 제작하고 싶어서 무작정 이탈리아에서 캐시미어로 유명한 공장을 몇 군데 방문해 제작을 의뢰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 (웃음)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을 가질 수 있었어요. 제게는 의미가 큰 아이템이라서 계절과 상관없이 쇼룸에 걸어놓곤 해요.

평소 수집하는 오브제가 있나요? 서윤정의 컬렉션을 알려주세요.

예전에는 수집을 참 좋아했어요. 빈티지 그릇도 엄청나게 많이 모았죠. 그런데 서윤정 회사에서 커피잔, 티포트, 접시 등을 제작하며 사고 싶은 걸 직접 만들었고, 평생 쓸 물건을 이미 충분하게 다 만든 느낌이라 이제 물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웃음)

새로운 공간으로 작업실을 옮긴다면 그곳에서도 함께하고 싶은 오브제가 있을까요?

네덜란드 가구 디자이너 케이스 브라크만Cees Braakman의 수납장 겸 뷰로bureau가 쇼룸 쪽에 있는데, 책도 꽂고 책상도 겸할 수 있어서 공간이 바뀌어도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 하나의 아이템을 골라야 한다면 아마 그걸 선택할 것 같아요.

지금 머무는 작업실에 무척 만족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동안 여기에서 많은 영감과 위로를 받았어요. 공간과 구조를 생각하면 더없이 특별한 곳이지요. 작업을 위해서 좀 더 넓고 천장이 높은 스튜디오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요. 막상 떠나는 생각을 하면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네요. (웃음)

Artist

서윤정(@syjhoesa)은 시카고 예술대학교에서 학사, 골드스미스 런던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졸업 후 디자인 & 파인 아트 레이블 ‘서윤정 회사’를 운영하며 순수 미술 작업을 병행 중이다. IAH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코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온라인 매거진 «디퍼differ»의 디렉터 &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 겸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엘르 데코 코리아», «로피시엘 옴므»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