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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tude

정영선-산도화山桃花

Writer: 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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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TUDE

창작의 업과 삶의 태도를 바라봅니다

‘깊은 태도.’ 이번 인터뷰의 제목이 될 뻔한 문장이었어요. 너무 정답 같아서, 바꾸기로 했습니다. 제목을 수십 가지 적어보고 인터뷰 사진을 번갈아 보다가 문득 박목월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정영선에게 시를 권했던 그 마음을 「산도화」를 읽으며 짐작해 보았어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상적인 세계를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내는 시선. 정영선의 태도와 어딘가 닮아 있었어요. 스스로의 입지를 앞세우기보단 풍경을 생각하며 대지를 어루만져 온, 구순을 바라보는 조경가와 작은 여자아이가 겹쳐 보였습니다. 정영선의 집이자 작업실인 이 곳은 그가 걸어온 시간의 무게만큼 고요하고 정갈했습니다. 어린 시절 곁에 두었던 책과 아버지의 집기들, 두루마리처럼 말린 도면과 형형색색 파스텔, 좋아하는 그림, 소소한 기록과 다짐이 적힌 메모들까지. 모든 것에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 듯 그의 시간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어요. 인터뷰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일이 아니다”였어요. 습관처럼 반복된 이 말은 단단한 직업윤리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렸습니다. 내 주변을 돌보고 아끼는 일, 기억과 약속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는 ‘나를 믿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내일을 돌봐 온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말보다 오래 남을 정영선의 태도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에서 전합니다.

[BA]섬네일
산도화

박목월

산은

구상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도화

박목월

산은

구상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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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집의 지도

집이자 작업실인 이곳은 물 많은 천이 흘러내리는 깊지 않은 계곡에 앉아 있습니다. 남쪽 산에서 내려오는 경사지가 천과 만나는 끝자락의 땅. 북쪽으로는 골짜기 맞은편 집이 듬성듬성 보였습니다. 오는 내내 인적이 드문 동네였고요.
이런 땅에 사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1941년생 조경가 정영선입니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우리가 마주하는 한국의 풍경은 그가 손대지 않은 곳을 찾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장면으로도 익숙한 선유도공원, 아산병원,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제주 오설록, 오래전의 경주·제주의 국가관광단지, 대화 중 처음 듣게 된 1970년대 공원묘지, 고속도로주변 경관까지, 모르고 들으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을 해 오셨더라고요.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고생했다고 상도 안 주더라”며 웃으셨지만, 그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경가로서 정영선의 업이 너무나 방대하기에 지난 인터뷰이인 배형민 교수도 선뜻 함께했습니다.

인터뷰는 설 연휴가 지난 직후 휴일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2월 23일 월요일 조경가 정영선의 집 거실에서 진행했습니다. 지붕이 제법 높은 중목구조. 가로로 긴 땅을 따라 본채를 길게 놓고, 뒤로는 본채가 해를 받을 수 있도록 폭을 좁힌 2층 별채가 남쪽 경사지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출입구에서 복도는 길게 뻗고,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집 전체를 덥혀요. 복도에 붙어 북쪽으로 부엌, 거실, 서재, 침실이 이어지는 구성. 단순하고, 살기 편한 집입니다. 게다가 시간의 켜를 무시할 수 없는지 세월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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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흔적만큼이나 많은 것은 손자의 흔적이었습니다. 복도와 거실 입구에는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과 어제 만들어 두고 간 미니어처 초밥집이 있었고요. 평상에는 할머니가 받은 엽서 중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 늘어놓았는데 마르크 샤갈 그림엽서도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고, 선생님은 손자가 지닌 ‘조경가의 감각’을 자랑하셨어요. 정작 장래 희망은 요리사라지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곧바로 ‘업’의 현실을 툭 던지듯 말씀하셨습니다.

정영선: 지운이 아비(정영선의 아들, 전완석 서안조경 대표)가 봐준 건데, 취미 활동이야. 조경은… 돈도 못 벌고, 너무 고달프고, 시도 때도 없고, 봄이라고 뭐 하나, 여름이라고 뭐 하나, 겨울에도 이리 힘드니 누가 해? 아무도 안 하지.

류근수: 이번 겨울은 엄청 추웠는데, 어떻게 보내셨어요?

정영선: 추웠다고? 우리 집은 안 추웠는데? 집이 따뜻해서 침실에서 자질 않아. 거실이나 (지금 인터뷰하는 이곳을 가리키며) 아무 데서나 자요.(웃음)

집을 이렇게 상세히 나눠 설명했지만, 정작 선생님은 ‘공간의 쓰임’을 구획하지 않습니다. 침실을 제외하면 ‘여긴 뭘 하는 곳’ 같은 구분이 흐릿했죠. 땅과 집, 실내와 실외의 경계만 있을 뿐 선생님은 땅 전체의 공간 곳곳을 골고루 두루두루 편하게 쓰고 계셨습니다. 일과 삶이 자연스럽게 혼재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정갈하고 아름다울 만큼 고요했습니다.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이건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셨어요. 삶이 일이 아닌 걸까요? 일이 일이 아닌 걸까요? 혼란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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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윈터가든과 마당

날이 허락하는 날, 조경가 정영선은 거실에서 바로 나갈 수 있는 북향 윈터가든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책상 위에는 색연필과 손으로 직접 그린 도면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올해 말 완료되는 태화강 국가정원 철새공원 작업이라고 합니다.

정영선: 이거는 내가 개인적으로 받아서 하는 일이야. 내가 혼자서 해. 마지막에 시공도면만 직원이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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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수: 하루에 일을 어떻게 시작하세요?

정영선: 제일 먼저 커피 마시고, 대충 청소하고, 그다음엔 밖에 나가고 싶으면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한꺼번에 다 못하니까, 오늘은 다리 앞에, 내일은 저 뒤에, 오며 가며 짬짬이 하는 거니까.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나는 저걸 일이라고 생각 안 했기 때문에,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 안 했기 때문에 다 일이지. 사실 갑자기 일이라 하니까 기가 꽉 차네. 저걸 일로 여기면 못 하지. 예를 들면 오늘 여기서 이만큼 풀 뽑을게, 하고 들어가서 뽑고, 이거 좀 이렇구나…뭐 이런 거지. 그게 무슨 일이야.

남쪽에서 천을 향해 내려오는 터라 집 앞뒤로 축대를 쌓아 땅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물길도 직접 만들었고요. 서안조경 사무실이 있는 서초동까지 여기서 매일 출근했고, 남편이 돌아가신 뒤에는 아예 이 집으로 삶의 중심을 옮겼습니다. 지금도 일이 있으면 차로 나가면 그만이라고, 힘들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함께 나간 뒷정원 한편에는 손자가 만진 꼬마정원이 있었습니다. 어질러져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냥 두셨습니다.

류근수: 조경이 3대째 이어지는 거 아닌가요?

정영선: 걔가 조경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재미로 하는데, 어린이 방송에도 나왔어(한사코 손을 휘젓습니다. 강조하며, 손자에게는 그저 취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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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서재

집에는 유달리 글과 책이 많았습니다. 작업 책상도 여럿인데, 도면은 식탁에서, 책은 서재와 거실 어느 자리에서나 펼쳐집니다. 전에는 유형별로 정리했지만 이제는 그러기도 어렵다고, 태연하게 웃으셨습니다.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주무실 때도 많은데, 소파에서 떨어진 적은 없다고 너스레를 떠셨습니다. 저 방에까지 자러 가기가 귀찮아서 그렇다고요.

1968년에 출판된 세로쓰기 책도 있었고, 제본이 해진 노천명·박목월·김소월 시집, 『독일인의 사랑(Deutsche Liebe)』. “옛날에 좋아하셨던 책”이라며 웃으셨습니다.

오래 앉는 자리로 보이는 책상에는 선생님의 다짐글 같은 메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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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그 옛날 책들 좀 봐. 이런 책 갖고 있는 건 아마 나밖에 없을 거야.

서재 한편에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글을 모아두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어릴 적 기억은 놀라울 정도로 세세했고, 물려받은 가구와 소품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정영선: 많아. 여기도 있고, 저 위에도 많이 있고. 도자기도 아버지가 사주신 거 있고, 아버지가 사신 골동품이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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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수: 그 많은 기억을… 글로 남기셔야 하지 않나요?

정영선: 뭐 쓴다고 쓰면서 앉아 있지. 맨날 쓴다고 티만 내지 뭐. 출판하고 싶다는 데는 수십 군데지만 내가 안 하니까. 그러다 이번에 곧 나오는 게 있는 것 같아.

정영선: 기억이라는 거는 다 글로 다 남아 있어.

사실 글쓰기의 시작도 아버지 덕이었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국어 시간에 동요를 썼더니 선생님이 1등이라며 출판사에 내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쓰는 것마다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구가 피란 문인들이 모여든 문학의 도시였던 덕도 있었지요. 그 시절 시까지 묶어 곧 시집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긴 글 중에는 1950, 60년대 대학 시절,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의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여학생을 위한 기숙사가 없어서 여교수와 여학생들이 거처를 따로 마련해 직접 지어먹던 식사에 관한 일지도 있었는데요, 저희가 믿지 않자 최근 동창회에 기증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인터뷰 내내 귀를 의심하는 에피소드가 넘쳐났고, 저희의 상식으로는 미처 닿지 않은 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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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서재 속 인연들

서재 곳곳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였고요.

정영선: 토요일 오후 3시면 청와대에 모였어. 청와대 주변 지금 그 형태의 기본이 그때 다 나왔어. 은퇴 후 가실 봉화의 집에 가서 도면 보여드리면서 현장 설명하고…. 비싸면 안 된다고 얼마나 강조하시던지…. 그래서 물웅덩이 같은 건 대통령이 직접 다 만드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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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고 이건희 회장의 책을 가리키며) 나한테 제일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에요. 회장님이 집무실 문을 걸어 잠그셨어. 사람들이 회장님께 보고하러 들어갈 때 긴장해서 청심환을 먹고, 다들 쩔쩔맸었는데…. 나는 언제라도 들어가도 됐어. 말이 통한다고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가 통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 현대그룹도 마찬가지였어. 현대가는 진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산들 뭐, 고속도로변 뭐 할 것 없이 무지무지 많아. 다 언급을 못 하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분들, 참어른들… 어른들답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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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안조경이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로 참여한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熙園)’ 사진. 서안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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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서안조경이 기본계획,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로 참여한 ‘현대자동차 연수원’ 프로젝트. 사진. 서안조경

류근수: 그 당시 여성 조경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정영선: 클라이언트가 정말 중요해요. 내가 잘났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거 요만큼도 없어. 클라이언트가 잘해 주셔야 하고, 잘 지원해 줘야 되고, 이해해 줘야 되잖아요. 그런 면에서 나는 복을 많이 받았어요.

내일은 화성에 간다고 했습니다. 전시를 통해 ‘정영선의 조경’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누군가를 이번에는 선생님이 돕는 일이라고요. 저희는 그가 선생님께 도움을 받은 걸 거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돈만 받고 일하면 업자로만 남는다고… 관계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영선: (일정이 적힌 수첩을 뒤적이며) 이거는 내가 그냥 서비스해야 돼.

5장: 습지였던 땅

많은 훌륭하고 거대한 서사는 작은 우연에서 시작됩니다. 이 경우도 그랬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하던 자연석 전문가가 이곳에서 돌을 캐 왔고, 조경가 정영선에게 소개하고 싶다며 “같이 한번 구경 가자”라고 제안했습니다. 물 따라 걷다가 올라가 보니 그곳은 온통 물웅덩이였습니다.

정영선: 아, 좋다. 내가 습지 하나 연구하려고 그랬는데… 이거 사야겠다 하고, 들렀다 샀지.

정영선: 습지로 사놓고는 바빠가지고 들여다볼 시간이 없고, 회사에서 필요한 돌하고 풀만 가지고 가고 그랬는데, 애들 아버지가 너무 오래 아프고 병원에서 회복 불가능하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막 부랴부랴 시작한 거예요. 편찮으신 어른을 모시려고 급하게 여기다 집을 지었어요.

막 부랴부랴, 그냥. 이 집 설계가 내 설계예요. 흙 갖다 들어부어 가지고, 여기가 습지니까 집을 지을 수가 없으니까, 흙을 막 갖다 부으면서 설계하면서 동시에 공사하면서….

저쪽 방에 있다가 여기 나와서 이쪽에 계시다가 이리 나와 식사하시고, 전부 원룸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고 한 설계였는데, 근데 못 들어오고 가셨잖아. 딱 거의 다 돼 가는데 돌아가셨어요.

들어와 보지도 못하고 가셨어요. 기가 안 차대…(한동안 말이 없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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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수: 목조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정영선: 내 월급, 그동안 모아놓은 돈, 집까지 다 정리하고 빈손 들고 여기 온 게 이거야. 목조로 하겠다는 게 기본 생각이었는데, 거래처가 자재를 가지고 있어서 싸기도 했어. 집 짓는 사람도 건축가가 아니라 조경가가 맡았고요.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마음은 급하고… 그러다 보니 집이 이렇게 됐지 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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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 정영선은 서울아산병원 신관 조경 설계를 맡으면서, 오랜 기간 입원했던 남편을 떠올리며 환자·보호자들이 마음껏 울고 쉴 수 있는 울창한 나무 그늘을 만들고자 했다. 사진. 아산병원

6장: 경산의 바위와 아버지의 꽃

류근수: 조경가가 되신 출발점은 어디였나요?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은 서울대 농과대학, 환경대학원, 박목월의 시심, 기독교의 신앙심이 바탕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는 의외로 할아버지의 농원에서 시작됩니다.

정영선: 경산에 농원이 있었어요. 내가 조경가가 된 가장 기본적인 발단은 우리 할아버지가 가꾸신 칠암농원이에요. 집채만 한 바위가 7개 있는 과수원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생활하시는 바깥채와 할머니가 머무시는 안채가 기역자 모양으로 놓여 있고, 집보다 더 높은 바위가 7개 있어서 칠암농원이라고 불렀죠. 광산에서 내려오는 물길 따라 언덕으로 내려가는 과수원이 있고, 사과가 맛있기로 유명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것 같아요. 용산 과일시장에서 우연히 ‘칠암농원 사과’를 발견하고 어릴 적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버지는 그 농원 계단 옆, 바위 앞에 한두 송이씩 백합을 심으셨어요. 대구에서 퇴근길에 한 톨, 한 포기, 한 송이, 한 그루씩 사다가 계단을 다 올라 앞마당을 만나는 자리에는 무궁화를 가장 좋은 자리에 하나 놓았습니다.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정영선: 아버지는 꽃 가꾸는 게 밥보다 중요한 사람이어서 두부 열 모 값으로 나무 하나, 꽃 하나 사 오니 맨날 엄마하고 부딪치고…. 이사를 여러 번 다녔어도 아버지는 가는 데마다 정원을 만드셨어요. 학교에 계실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학생들 시키면 선생님이 공부 외 다른 일을 시키는 게 어려우니 내가 물을 지고 갔어요. 지금처럼 수돗물이 아니라 우물에서 펌프질해서 퍼 올려 이고 지고 날라야 하는데, 이 작은 체구로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들어. 계성학교 남학생들이 “정 선생 딸 물 지고 간다”라며 막 박수를 치고…, 말도 마세요. 웃지 못하게 살았어. 아버지가 뭘 심으면 옆에서 같이 심고, 아버지 몰래 내가 뭔가 더 갖다 심어 놓고….
류근수 : 지금 손자가 할머니하고 그렇게 하는 게 선생님과 아버님의 관계랑 같네요.
정영선 : 그런가? 꿈보다 해몽이 좋네.

학교에 들어갈 때 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책상을 만들어 주셨어요. 마당 앞에 옥잠화를 심었는데, 이 꽃이 필 때면 내가 학교에 간다고… 아버지가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를 그런 식으로 가르쳤어요. 지금도 옥잠화를 제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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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학교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수원 농과대학에 입학해 처음 캠퍼스를 밟던 날, 눈앞에 펼쳐진 건 채소밭뿐이었습니다. 나무도 꽃도 없는 벌판. 참을 수 없어 교수실로 찾아갔습니다.

정영선: 농학과라면 화훼도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채소만 가르치는 학교가 어딨어요? 조교한테 따졌더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할게요, 내가 할게요. 그래서 다 떠맡아가 한 거야. 대학교 1학년 때 그 넓은 데 다니면서 꽃 모종 사다 오고, 그렇게 해서 농대 만드는 게 나야.

아버지에게서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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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다시 봄, 집으로

인터뷰를 마칠 무렵,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겨울 마당은 아무래도 삭막합니다. 선생님이 아낀다는 은빛의 자작나무도, 산수유도, 이름을 잊은 자생 나무도 잠들어 있는 듯했습니다. 풍경 너머, 이웃집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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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지금 오늘은 너무 삭막하네. 꽃 피고 나면 완전히 달라져요. 봄에 놀러 오세요. 일하러 오지 말고.

올해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봄이 오면 나무를 가져다 건너편 비닐하우스를 가릴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배에게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고요.

정영선: 우리나라는 산천 자체가 워낙 아름다워요. 산도 나무도 그냥 두면 안 돼요. 돌보고 가꾸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주변을 보세요. 비닐하우스가 들어차고 필지는 힘없이 쪼개져서 땅의 기운을 다 죽여놨잖아요. 나무도 풀도 심고 나서 끝이 아닌데… 돈을 주고 왜 저러나 싶어 가슴이 아파요.

겨울 마당은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봄을 보고 있었습니다. 심을 나무, 가릴 자리, 달라질 풍경. 조경가에게 봄은 약속이 아니라 계획이니까요.
4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려던 참에 선생님께 컨디션은 괜찮으신지, 탈진하시는 건 아닌지 농담 차 여쭸습니다.

정영선: 말도 안 돼. 일단은 건강하고 봐야 돼. 어느 분야든지 자기가 건강한 상태에서 일을 하고, 하다가 안 하려면 시작하지를 말아야지. 그렇잖아.

류근수: 비결이 있으세요?

정영선: 잘 먹고 잘 사는 거지. 열심히 운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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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를 오래 살펴온 배형민 교수가 물었습니다. 건축가 중심의 관행 속에서 드러내지 못한 일이 많았을 거라고 짐작하며 말이죠. 이토록 많은 일을 하며 스트레스도 컸을 텐데, 그걸 어떻게 넘겼는지 모두가 궁금했습니다.

정영선: 내가 진짜 찔찔 울 정도로 스트레스 받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가끔 가다가 현장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가 있기는 있지만, 스스로 잘 극복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 안 하고 살기로 스스로 약속했으니까. 내가 일할 때 그게 힘들어 보이면 큰일이지….

정영선: (정원에서 배웅하며) 일하러 오지 말고 놀러 와요. 봄이 오면 나무를 바로바로 가지고 올 거야. 뭐 심을 거냐고? 기대하세요.

땅에 묻은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자연을 돌보아 온 사람은 압니다. 내년 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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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1941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정영선은 한국 1세대 조경가이자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조경가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1기로 한국 조경 설계 분야의 기반을 만들어 왔다. 예술의전당, 선유도공원, 광화문광장,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서울식물원, 서울아산병원 등 도시의 주요 장소를 설계하며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삶이 만나는 공간을 만들어 왔다. 조경계 최고 권위상인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하며 한국 조경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조경설계 서안

서안은 정영선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1987년부터 도시 공원과 공공 공간, 정원 설계까지 다양한 조경 작업을 해 왔다. ‘서안(瑞安)’이라는 이름에는 편안하고 상서로운 터를 만든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땅과 장소의 성격을 읽는 설계를 바탕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는 전완석 대표가 이끌고 있다.

대화의 순간

“이른 봄소풍 같았던 양평에서의 찰나를 가공하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이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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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r 류근수

건축가로 정영선의 소개로 조성룡도시건축사사무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선유도공원, SOMA미술관, 의재미술관 작업에서 서안과 협업했고, 훗날 포르투에서 알바루 시자가설계한 아모레퍼시픽 R&D센터 사업에서 참여하며 서안과 다시 협업한 인연이 있다.

Photographer 이근영

사진가로 사진과 글, 영상을 통해 쉽게 말해지지 않는 마음을 기록하고, 이야기로 남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작은 순간도 다정하게 바라보고, 그 너머의 의미에 귀 기울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수면의 고양이』, 『우리, 헤어질 줄 몰랐지』를 쓰고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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