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_오프닝](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_%EC%98%A4%ED%94%84%EB%8B%9D.jpg)
Review
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50년대 정릉의 밤공기, 덜 마른 유화 냄새, 서로의 그림을 두고 끝없이 이어지던 이야기들. 모던아트협회의 이름은 오래전 잊힌 듯 보였지만, 그 시절 예술가들의 우정과 숨결은 작품 속 어디엔가 미세하게 머물러 있었어요. 천경자는 훗날 “과거가 꿈이라면, 꿈이여 다시 한번!”이라고 회상했죠. 이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이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예술의 새로운 문을 열어젖히던 시간의 밀도를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그 ‘꿈’ 같았던 필연의 만남들을 다시 불러오는 전시예요. 전쟁 직후의 황량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밀어 올리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출발점을 만들어 낸 11명의 예술가. 그들이 남긴 흔적은 다시 한번 깊게 진동하고 있어요. 함께여서 충만했던 그 시대의 우정을 이소영 기자가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소개합니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2](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2.jpg)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 전시 포스터
‘모던아트협회’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모던아트협회는 1950년대 유영국, 박고석, 문신, 한묵, 천경자 등 중견 미술가 11명이 활동했던 협회입니다. 이들은 모두 일본 유학을 다녀온 30~40대 미술가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며 6회의 전시를 함께 했으나 급진적 성향의 여러 단체에 묻혀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1957년 모던아트협회 결성을 계기로 여러 현대미술 단체가 생겨 한국 미술계가 풍성해졌기에 협회의 활동을 다시 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전쟁과 가난을 겪으며 이들이 나눈 우정은 서로의 작품세계에 영감을 주어 각자의 화풍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지요. 2026년 3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20세기 모던 보이들의 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3](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3-scaled.jpg)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4](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4-scaled.jpg)
“봄이 와 흰 목련이 활짝, 화사한 정릉 마을의 박고석 씨 댁 뜰에서 한묵 씨의 도불 송별회가 있었다. 당시 모던아트 동인들은 박고석, 한묵, 김경, 이규상, 문신, 황염수, 임완규, 정규 씨 등 모두 아홉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각기 찬거리를 한 가지씩 지참하게 돼 있어 나는 불고기감을 지참했던 걸로 기억한다. 맨 나중에 정규 씨가 커다란 부세 한 마리를 들고 사립문을 웃는 얼굴로 들어선 게 참 인상적이었다. (중략) 모두가 진정 마음의 사치를 누릴 줄 아는 멋쟁이였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그룹전이라면 더러는 전시장에서 서로 좋은 자리에 자기 그림을 걸려고 전전긍긍하는 바보들의 행진 같은 야박스러운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국 최초로 결성한 그룹 모던아트 동인들은 모두가 초연한 자세여서 그런 부끄러운 일은 추호도 없었다. (후략)”
천경자 작가가 『동아일보』에 쓴 칼럼 ‘모던아트의 멋쟁이 동인들, 가난해도 순수했던 예술에의 열정’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따뜻한 친구들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천경자는 미술계 선배인 박고석, 한묵에게 “고석 형, 묵 형!” 하고 불렀으며, 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려왔던 오빠의 느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묵의 집은 천경자와 가까웠기에 천경자는 자주 찾아가서 가정사를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한묵은 덜 마른 유화가 꽉 찬 방에서 천경자의 하소연을 웃으며 듣고 있다가, 갑자기 작은 눈을 부릅뜨고 “그러다간 그림 못 그리고 만다!”라고 화난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고. 천경자가 박고석에게 편하게 사는 팔자가 되고 싶어 이름을 바꾸겠다고 하자 “만약 이름을 바꾸면 절교하겠소”라는 우정을 앞세운 설득을 받은 적도 있다. 이들은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1960년 한묵과 문신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고, 김경, 이규상, 정규가 생을 마감하면서 모던아트협회는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천경자는 “과거가 꿈이라면, 꿈이여 다시 한번!”이라며 이들을 그리워했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5](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5-scaled.jpg)
천경자, ‹전설›, 1962, 종이에 채색, 120×15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서울특별시
전시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에서는 모던아트협회 11명 작가의 작품 156점을 소개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58점, 이건희컬렉션 16점을 포함한다. 아직 미술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는 작가가 많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많게 되었다니 씁쓸하기도 한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두 3개 전시로 구성되는데, 1부 ‹살며, 그리며-모던아트협회 이전›에서는 작가들의 교류 출발점이었던 부산 시절의 삶과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모던아트협회는 부산 피란 시절, 판잣집(하코방) 아틀리에에서 교류했던 한묵과 박고석의 우정에서 비롯되었다. 박고석과 황염수는 평양 출신이라 친밀함을 느꼈을 것이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6](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6.jpg)
부산 피란 시절 삼총사였던 이중섭, 박고석, 한묵(왼쪽부터)의 1950년대 모습. 사진 현대화랑, 출처 중앙일보
전전협정 이후 부산에 머물던 한묵, 박고석,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은 서울로 올라갔다. 문신과 정점식은 각자의 고향 마산과 대구로 돌아갔지만, 1955년 서울 동화화랑에서 열린 정점식의 개인전을 계기로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 한번 화단의 동향과 서로가 추구하는 현대미술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1953년, 1955년 한묵과 박고석이 각각 서울 정릉으로 이사오면서 이곳은 밤새 미술 이야기를 하며 술 한잔을 곁들일 수 있는 이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유영국, 이규상, 황염수, 천경자도 근처에 거주하며 친밀하게 만났다. 김경은 협회에 합류한 후 이규상의 집에서 살며 우정을 나누었다. 박고석의 그림 ‘정릉 계곡’(1957년)은 예술가들이 모여 계곡의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펜 드로잉으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 한묵» 인터뷰 녹취록에 따르면, 한묵은 이미 20대 때부터 국전에는 그림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국전은 모두 구상이고, 정부에서 주도하는 관전이라 거부감을 느낀 것.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한 것은 1956년 10월인데, 1회 전람회는 그다음 해인 1957년 4월에 동화백화점에서 열었어요. (중략) 왜 모던아트란 이름을 붙여서 조직했느냐 하는 것은 그저 간단히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야전으로 모던아트협회를 만든 것이죠. (중략) 국전은 관전의 역할을 하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카데믹한 모임이죠. 그러니까 좀 더 자유롭고 대담하게 작품을 발표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활동을 하기를 바라는 데에서 만든 것이지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추상화가는 두 서너 명밖에 없었다고 한묵은 회상했다. 그중에서 홍익대에 강의 나오기 시작한 진보적인 유영국 작가에게 제안해서 모던아트협회를 조직하게 된 것. 그래서 1회 전시에는 한묵, 박고석, 황염수, 이규상, 유영국이 참여했다. 한묵의 회고에 따르면, 유영국과 이규상은 순수 추상 작가였다. 한묵 자신은 추상과 구상 반반 정도 되는 경향의 작품 활동을 했고, 박고석과 황염수는 전위적 정신을 지닌 작가라고 보았기에 동인이 되었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7](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7.jpeg)
«제1회 모던아트협회전» 전시 팸플릿, 1957, 미술연구센터 소장(이미지: 리움자료실 소장, 이구열 기증)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8](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8.jpg)
문신, ‹도시풍경›, 1959, 캔버스에 유화 물감, 39 × 55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9](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9.jpg)
박고석, ‹범일동 풍경›, 1951, 캔버스에 유화물감, 39.3×51.4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 기증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0](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0.jpg)
김경, ‹항아리와 소녀›, 1953, 캔버스에 유화 물감, 105 × 81 cm, 가나문화재단 소장
2부 ‹열린 연대-모던아트협회 1957-1960›에서는 6회의 공동 전시를 열었던 시기의 작품 71점을 만날 수 있다. 모던아트협회 작가들의 특징은 일단 모두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중견작가라는 점에 있다. 이효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유영국과 이규상은 일본 추상미술단체의 ≪자유미술가협회전≫과 귀국 후 ‘신사실파’에서 함께 활동하며 교류했으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부산 피란 시절이었다.
그리고 보다 깊숙이 들어가면, 이들은 모두 생활 속의 조형을 실천했다는 공통점을 꼽을 수 있다. 전쟁 직후의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이들은 일상과 자연을 추상의 언어로 변환시키고, 삶과 예술의 조화를 탐구했다. 이들은 특정 양식을 고집하지 않고,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는 포용과 개방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6회의 공동 전시는 일상과 자연을 추상으로 전환하는 실험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첫 전시를 연 1957년 4월 이후에 창작미술협회, 신조형파, 현대미술가협회 등이 생기며 한국 현대미술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극단적 변화를 부르짖었던 젊은 미술가 모임은 평론계의 편파적 호평을 받았고, 점잖게 전위적 추상을 실험했던 이들의 전시는 혹평을 받았다. 그래서 모던아트협회는 한동안 우리나라 미술계에게 잊어진 이름이 되었으나,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제3의 실험으로서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실제로 이들은 그룹 명칭을 정하면서 ‘제3미술’로 할지를 논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박고석이 1958년 발표한 글 ‹풍토성과 전통 문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서구 중심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작은 나라가 주목받기 위해서는 추상을 수용하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성 의도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앵포르멜과 구상 회화 사이의 가교가 되었으며, 현대미술의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단색화와 민중미술을 이끌어 낸 모던아트협회의 시대정신을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1](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1.jpg)
문신, ‹황혼›, 1954, 캔버스에 유화 물감, 28 × 57 cm, 임호건 소장

한묵, ‹흰그림›, 1954, 캔버스에 유화 물감, 72.5× 60.5 cm, 유족 소장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3](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3-scaled.jpg)
이규상, ‹작품 A›, 1960, 합판에 유화 물감, 155 × 90 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작품 중에 물고기 그림이 많다는 점이다. 생선은 가난한 현실 속에서 서민에게 가장 좋은 먹거리이자 작은 사치였고,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 모던아트협회 작가들에게 흥미로운 파사체였으리라. 한묵의 ‘어시장’(1956년), ‘화어’(1957년), ‘정물’(1958년), 유영국의 ‘물고기’(1956년), 정규의 ‘인물과 물고기’(1950년대), 문신의 ‘명태’(1957년), 김경의 ‘명태’(1959년) 등 대부분의 생선 그림이 협회 활동 당시 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4](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4-scaled.jpg)
유영국, ‹물고기›, 1956, 캔버스에 유화 물감, 48 × 38 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3부 ‹서로의 길-모던아트협회 1957-1960›은 협회가 해산된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선보인 작가들의 작품과 자료로 이루어진다. 유영국의 ‘새벽’(1966년), 한묵의 ‘무제’(1965년), 박고석의 ‘소’(1961년)는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라 더욱 시선이 간다.
한묵과 문신은 프랑스 유학을 통해 독자적 화풍 정립에 골몰했고, 장르를 초월한 종합예술을 지향했던 정규는 도자와 판화에도 두각을 나타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파리에는 한국 작가들보다 먼저 뿌리를 내린 중국과 일본 작가들이 성공 가도를 달렸고, 정상화, 이응노, 이성자, 김환기, 남관 등의 한국 화가가 있었다. 한묵과 문신은 파리에서도 가족과 같은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으며, 각자의 길을 개척했다.

파리에 도착하던 해인 1961년 봄 먼저 도불한 문신(가운데), 남관(뒷쪽)과 센강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묵 (앞쪽). 사진 갤러리현대, 출처 중앙일보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6](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6.jpg)
유영국, ‹새벽›, 1966,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2 × 130.5 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7](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7-scaled-e1765307649875.jpg)
박고석, ‹소›,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60.6×80.3 cm, 유족 소장
전시의 제목이 된 ‘조우(遭遇)’는 김경이 1960년에 그린 유화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김경은 이규상의 집에서 함께 살기도 했으며, 이규상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은 점차 추상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거친 질감을 강조하기 위해 짙은 색을 밑에 칠하고 밝은 색을 덧칠한 후 긁어내는 그리타주(grattage) 기법의 작품이다. 그가 부산 시절부터 즐겨 사용하던 동물의 형상을 변형한 화면 분할이 매력적이며,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조우’는 우연한 만남을 의미하는데, 이들 11명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음이 분명하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8](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8.jpg)
김경, ‹조우(遭遇)›, 1960, 캔버스에 유화 물감, 79 × 58.5 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19](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19.png)
이규상, ‹생태 11›,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63.5 × 50.5 cm, 개인 소장
2층 수장고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장미의 화가’로 알려진 황염수의 장미 연작과 꽃 그림 22점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휴식 같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황염수의 꽃 그림은 현대적 추상을 꿈꾸는 모던아트협회의 목표와 다른 구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미술사학자 강은아의 글 ‹추상을 향한 여정›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그림은 구상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나는 장미를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내 그림의 목적은 장미라는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장미가 내 마음속에 던지는 어떤 부딪힘이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20](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20.jpg)
황염수, ‹장미›,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 물감, 60.8 × 74 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황염수 작가는 대상의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대상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정서적 심리적 반응을 시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이며, 이것은 모던아트협회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에 일부 부정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던아트협회의 동인으로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 작가의 장미 작품은 유족이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대부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의 뒤편에는 과거 담배를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던 동부창고가 여러 채 있다. 한적한 겨울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동부창고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모던 예술가들의 우정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남루한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한 우정과 존경이 작품세계를 발화한 출발점이었다는 것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REVIEW]과거가 꿈이라면_21_클로징](https://magazine.beattitude.kr/wp-content/uploads/2025/12/REVIEW%EA%B3%BC%EA%B1%B0%EA%B0%80-%EA%BF%88%EC%9D%B4%EB%9D%BC%EB%A9%B4_21_%ED%81%B4%EB%A1%9C%EC%A7%95.jpg)
Artist
모던아트협회는 1957년 ‘현대 회화의 문제’를 기조로 결성되었다. 김경, 문신, 박고석, 한묵, 황염수, 유영국, 이규상, 임완규, 정규, 정점식, 천경자 등 11명이 4년간 6차례의 전시에 참여했다. 생활과 자연의 풍경을 추상적 언어로 변환하는 실험을 했고, 추상은 단순한 미술 양식이 아니라 삶과 정신을 통합하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단색화와 민중미술로 이어지며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Writer
이소영(@soyoung_lee_art)은 문화 기자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전통 혼례』의 저자이며, 『와인과 사람』,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미국에서 서바이벌하기』, 『나를 마케팅하고, 세계를 PR하라』, 『브로드웨이의 노래를 들어라』 등을 기획, 편집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개관 콘텐츠를 총괄했고,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한류여행안내서 Person:able SEOUL』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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