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Visual Portfolio

논리와 즉흥의 대화가 오갈 때

Writer: 배윤환
[VP]배윤환_1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배윤환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도처에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불현듯 찾아오거나 마음속에 줄곧 간직하던 무언가부터 우리 시대의 뉴스와 전 지구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익숙하고 낯선 것들은 머릿속에서 충돌하며 이미지와 내러티브로 구조화됩니다. 이때 작가와 빈 화면 사이에 논리와 즉흥의 대화가 오갑니다. 이처럼 이성과 감성이 순환하고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로움과 역동성이 작품에 녹아날 수 있답니다. 그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때때로 변칙이 진행되고 설사 괴작이 탄생하더라도 종국에는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믿으며 작업에 임하려고 노력합니다. 너무 덥거나 습하지도 않은 지금의 계절처럼 평온과 평정의 지점에 위치한 미래를 상상하는 배윤환 작가의 이야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VP]배윤환_2

‹Chuckle Cracking Sea Ice 4›, 2022, Paint on canvas, 45.5 × 27.5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그림과 영상 작업을 병행하는 배윤환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졸업 후 여러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요. ‘내가 미술을 꾸준히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첫걸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VP]배윤환_3

‹Blue Resonance›, 2023, Oil, acrylic on canvas, 162.2 × 130.3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은 제주현대미술관 레지던시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층고가 역대 작업실 중 가장 높고, 주변이 한적해서 조용합니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각종 나무 사이로 찌르레기와 까치가 노는 걸 구경하면 좋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불현듯 찾아오는 것, 마음속에 줄곧 간직하던 것이 작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시대의 뉴스, 전 지구적 이슈, 머릿속에서 익숙하고 낯선 것들이 계속 충돌하며 다시금 잠재의식으로 파생돼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즉흥과 계획이 서로 뒤엉키다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서서히 구조화합니다. 하지만 그 순서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제 작업이 하나의 경향에 치우치지 않는 게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릴 때면 저와 화면 사이에 논리와 즉흥의 대화가 오갑니다. 모든 이성과 감성이 순환하고 서로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로움과 역동성이 작품에 부여됩니다.

[VP]배윤환_4

‹Sunbathing on the Ice›, 2021, Oil on canvas, 112 × 145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VP]배윤환_5

‹What does taming mean?›, 2022, Acrylic on canvas, 97 × 162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은 특정한 방향을 주장하기보다, 중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입니다. 지난 2022년 갤러리바톤에서 개인전을 준비할 즈음, 작업 관점을 개인에서 인류로 확대하는 계기가 있었어요. 이후 세계 공통의 사회적, 환경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다양한 컬러가 작품에 사용됐고요. 앞서 중의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작품에서 해석의 다양성이 열리도록 의도한 바도 있는데요. 더불어 이를 통해 타인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종용하기보다, 해학적 특성을 토대로 현상을 고찰하도록 도우면서 회화적 순수성과 즐거움을 공존시키고 싶기 때문이에요.

[VP]배윤환_6
[VP]배윤환_7

«What? In My Back Yard?!» 전시 전경, 갤러리바톤, 2022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What? In My Back Yard?!» 관련 인터뷰 영상

‹24/7 Arctic Mart is Closing Soon!›, 2022, Oil, acrylic on canvas, 80 × 117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올해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에서 첫선을 보인 ‹Bittersweet Road›(2025)는 각자만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지우는 잉크를 구하기 위해 신비한 오징어를 잡으러 가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밤바다에 떠 있는 배의 환한 불빛과 대조되는 푸른 어둠 속에서 설사 신비의 잉크를 찾더라도 저마다의 문제를 지울 수 있을지 여부는 아무도 모르지요. 제 작업의 뿌리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에 어떤 매체가 적합한지 생각하고, 그 매체로 회화, 드로잉, 때로는 영상을 선택하죠. 호기심을 지닌 채 조사하고 구축한 이야기를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작업으로 구현하고 나면, 이를 마주할 관객 또한 그런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시 존재한답니다.

[VP]배윤환_10

‹Bittersweet Road›, 2025. Acrylic on canvas, 130.3 × 162.2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지난 2월 막을 내린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는 가장 최근에 작업한 영상 작품 3시에 추는 춤(2024)을 전시했습니다. 직접 제작한 인형들이 등장해 정지 상태에서 오브제를 연결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에요.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반복하는 정형적인 서사를 지닌 듯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연과 변칙으로 전개되는 비선형의 소설과도 같다고 말하는 작업입니다. 변칙은 크게 불행과 행복으로 변주된다고 믿는데요.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인 두더지 곁을 맴돌며 계속 구르는 돌덩이로 은유했습니다. 정형적인 행동을 하는 동시에, 생득적인 본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두더지를 통해서는 창작의 현장이 타성에 젖고 관성화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이런 모든 게 현재 제 삶에 있어 오후 3시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에 추는 춤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윤환 에러 수정

‹3시에 추는 춤(A Dance at 3 O’clock)›, 2024, 단채널 영상, 13분 22초, Edition of 5 + 1AP,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 송은, 2024 © 사진: 송은 제공

[VP]배윤환_12
[VP]배윤환_13

‹3시에 추는 춤(A Dance at 3 O’clock)› 스틸 이미지, 2024, 단채널 영상, 13분 22초, Edition of 5 + 1AP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매체나 재료를 작업에 활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부분 이야기와 상상력이었어요. 최근에는 추상적인 형태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존에 유지하던 이야기와 상상력의 중요성에 반하는 것일 텐데요. 동시에 그만큼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간간히 그런 작업을 시도해 보려고 해요.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가끔은 작업할 때 착각에 빠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착각에 빠지지 않으면, 완성의 단계까지 도달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결과물에 도착하면 그 착각이 거의 모두 불만족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지만요.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이나 기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따라잡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Print

‹Don’t Know Where It’s Going to Bounce›, 2023, Acrylic on basketball, ø24.3 cm * 5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VP]배윤환_15

‹Freeze well please›, 2023, Ice sculpture, freezer, 100 × 57 × 51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듣고, 또 그림을 마주하고, 가벼운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최근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레지던시에서 보내며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여유가 되면 근처의 오름이나 해변에 가서 아내와 반려견 탄탄이와 산책을 자주 하려고 해요. 갤러리바톤과 10년 가까이 함께하며 각종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데요. 지난 3월에는 아트 바젤 홍콩에 참가했고, 주홍콩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단체전은 오는 5월 말까지 계속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정신적으로 고요하면서 강한 사람이 되는 것.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제 삶의 큰 화두로 여기며 살고 있어요.

[VP]배윤환_16

‹Sleepless Night In the Hotel Owl›, 2022, Acrylic on canvas, 150 × 150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VP]배윤환_17

‹The Thrill is Gone›, 2022, Acrylic on canvas, 162 × 390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스스로 제 작업을 포트폴리오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기존에 작업하던 흐름이나 형식 또는 지금 하고자 하는 작업이 변칙에 접어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크게 재단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려고 해요. 작업은 현실과 상황에 따라 기존의 길을 벗어날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괴작이나 이상한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있지만, 종국에는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제 생각과 물리적 활동을 통해 세상에 나온 진실한 작업은 표면적으로 양상이 달라 보이더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사람으로서 깨닫고 쌓아온 견식과 작가로서 체득한 지식과 기법이 점차 어우러지며 보이지 않는 망을 구성하고, 또 자연스럽게 시각적 구조와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VP]배윤환_18

‹What A Pleasant Surprise!›, 2022. Acrylic, acrylic pen, acrylic spray on canvas, 150 × 450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는 생각보다 오히려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아요.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즐거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니까요. 그래서 극복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잠시 바람을 쐬거나 세수를 하는 등 생각과 느낌을 환기하는 행동을 취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 이어 나갈 뿐입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유난히 덥고 길었던 지난해 여름을 보내면서 인류의 끝이라는 주제를 두고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불분명한 미래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황을 두고, 선잠을 자고 설치는 사람의 모습으로 은유하거나, 파편과도 같은 뗏목을 타고 새로운 상황을 찾아 떠나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작업하며 자연스레 환경적인 영향을 받은 터라, 동물 등 다른 생명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일련의 시도도 있었고요. 무언가를 원하고, 무언가에 이끌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게 일상인 현실 도처에는 생각할 주제와 문제가 정말 많아요.

[VP]배윤환_19

‹Floating Pillow›, 2024. Oil, acrylic on canvas, 60.6 × 90.9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VP]배윤환_20

‹Green Bear›, 2024. Oil, acrylic on canvas, 130.3 × 162.2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얽매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본인의 작업을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최소 10년 이상 작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똑같이 이야기할 것 같아요. 이래도 저래도 자신을 믿고, 꾸준히 부딪치고,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VP]배윤환_21

‹좋은 일이 계속 생겨라(Knock on wood)›, 2024. Oil, acrylic on canvas, 91 × 116 cm © 사진: 갤러리바톤 제공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흥미로운 작업이 많았던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너무 덥거나 습하지도 않은 지금의 계절처럼 평온과 평정의 지점에 위치한 미래를 상상합니다.

[VP]배윤환_22

Artist

배윤환은 평면 회화, 비디오, 설치, 그라피티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자신의 미적 세계관을 촘촘히 구축해 왔다. 밀레니엄 이후 한국 구상미술의 행보와 고유한 양상을 구축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작가 중 한 명으로 풍부한 레퍼런스를 수집해 고유의 스토리텔링을 만든다. 최근 인류 공통의 사회적, 환경적 이슈에 대한 회화적 발현에 주요한 관심을 두고,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 당면한 전 지구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구체화하는 중이다. 갤러리바톤, 챕터투, 두산갤러리 뉴욕, 스페이스몸미술관, 인사미술공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송은 등 국내 미술 기관에서 개최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

결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