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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Room

Creator’s Room: 르씨지엠 구만재의 작업실

Editor: 정윤주
, Photographer: 이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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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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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겸 건축가 구만재입니다. 건축, 인테리어, 조명, 가구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스튜디오 ‘르씨지엠Le sixieme’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실내 건축을 공부하셨어요. 그 전에 경제학,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점이 눈에 띕니다.

원래 한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근데 해당 분야에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외삼촌이 영화를 공부하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방학 때 종종 놀러 가곤 했는데, 파리라는 도시가 꽤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공도 결정하지 않고 부모님께 파리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예전부터 취미로 하던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근데 막상 깊이 있게 배우기 시작하니까 사진도 제게 잘 맞는 영역이 아니었어요. 우연히 실내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이야기와 관심사가 제 취향에 딱 들어맞더군요. 그래서 전공을 다시 바꾸고, 지금까지 실내 건축을 탐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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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바꾸는 게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요.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편이신가요?

그때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바꾸는 걸 어렵지 않게 생각했어요. 젊었으니까 두려움 없이 모든 게 가능하기도 했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웃음)

스튜디오 이름을 르씨지엠으로 지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르씨지엠은 프랑스어로 ‘6구’라는 뜻이에요. 파리에서 다녔던 학교가 6구에 있었거든요. 졸업 후 귀국했을 때 지인이 병원 디자인을 의뢰했는데, 세금계산서 때문에 오랜 고민 없이 급하게 지어낸 이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6구를 오가던 때가 가장 빛나는 제 청춘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서 후회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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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씨지엠만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주는 몇 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희가 디자인하는 주거 공간은 크게 ‘씨지엠 메종Sixieme Maison’이라는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어요. 집마다 특정한 이름을 명명하기보다, 메종이라는 단어 뒤에 번지수를 더해서 프로젝트명으로 부르고, 각각의 공간이 자리한 환경이 다른 만큼 그에 맞는 방향과 역할을 매번 새롭게 고민해요. 최근 양평에 주택 여러 채를 연이어 설계하는 중인데, 지붕이 공간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루프 프로젝트Roof Project’라는 이름으로 풀고 있습니다. 형태가 두드러지지 않는 지붕, 여러 개가 겹친 지붕, 창호와 테라스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지붕 등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지붕을 설계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보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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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390 (Roof and R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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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12 (Calm Roof)

상업 공간 중에 한 곳을 꼽자면 성수동 LCDC 서울 4층에 자리 잡은 바bar, ‘포스트 스크립트Post Script’가 개인적으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에요. LCDC의 김재원 대표님이 떠올린 ‘추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는데요. 평상시 나누지 못한 단어를 마치 추신처럼 삶에 덧붙이자는 의미를 담은 ‘밤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낮보다 밤에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차분하고 흐릿하면서 어둑어둑한 느낌을 공간 속에 담아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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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LCDC 서울에 위치한 바 ‘포스트 스크립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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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스크립트’ 메인 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

르씨지엠에서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인 남극 기지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처음에는 자문역으로 시작했다가, 기지 설계까지 참여하게 되었죠. 남극에 직접 가서 그곳 환경에 맞는 공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보고 경험하는 자연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됐죠.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아직 진행 중인 일들이 있어서 자세한 내용이나 공간 형태를 소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네요. 남극에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을 직원들이 고맙게도 사진첩으로 만들어 줬는데, 추억으로 잘 간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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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재 소장이 촬영한 남극의 풍경

공간을 설계할 때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보통 건축가 하면 수많은 스케치와 도면을 그리며 공간을 정리할 거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에요.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에서 공간이 시작되고 마무리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너무도 추상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점점 그 실체가 명확해지면서 하나의 현실 공간으로 완성될 때 남다른 성취감을 느껴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디테일’인데요. 거대한 크기나 값비싼 자재가 아니라, 작고 섬세한 터치와 결이 공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로 사는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가끔 클라이언트분이 전화해서 “비 오는 날, 집안에서 창밖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니 참 좋습니다”라고 말할 때, 제 마음이 아주 즐거워요. 공간에 실제로 머무는 사람이 제가 디자인으로 의도한 바를 동일하게 느끼기가 사실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상황이 펼쳐질 때 무척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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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404B (Beyond Roof)

요즘 르씨지엠에서 진행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궁금합니다.

‘루프 프로젝트’로 연결되는 주택 설계는 계속하고 있고요. 국내 모 브랜드 직원을 위한 워케이션 스테이 공간을 제주도에 설계 중이에요. 제주도의 돌을 비롯한 지형지물을 충분히 이용할 계획인데요. 무꽃, 당근꽃, 유채꽃처럼 자연 그대로의 꽃과 식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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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언제부터 머무셨나요?

파리에서 귀국해 처음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쭉 사용했으니 이제 15년 정도 되었네요.

스튜디오 구조가 독특합니다. 지하인데 계단을 내려오면 공간이 펼쳐져요.

원래 공간의 용도는 주차장인데, 사무실로 사용 중이에요.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고, 채광도 좋아서 지내는 데 만족스러워요. 비 오는 날, 계단으로 비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는 일도 참 좋고요. 위층은 저희 부부가 살고 있어서 편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 직원들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요. (웃음) 스튜디오의 물건들도 처음부터 완벽하게 세팅한 게 아니라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천천히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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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사무실이 붙어 있으면 워라밸을 지키기 어렵지 않으신가요?

저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이 자기 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만든 거 아닐까, 생각해요. 결국 자기 삶과 일을 분명히 분리하고 싶으니, 일을 끝낸 다음에는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굳이 분리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퇴근 후에 집에 올라갔다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시 사무실로 내려가서 기록할 때도 있고요. 이런 과정이 빠르게 연결되는 게 감사할 뿐이죠. 저는 오히려 일과 삶을 분리하면 슬플 것 같아요. 일과 삶이 긴밀하게 연결된 상황이 좋고, 그래서 현재의 밸런스가 마음에 듭니다.

개인 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구조는 처음부터 계획하신 건가요?

처음에는 스튜디오 한쪽에 제 방이 작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안에만 있으니까 갇힌 기분이 들어서 전체적으로 오픈된 구조로 바꿨죠. 입구 쪽에는 책장과 대형 테이블을 놓아서 회의도 하고, 식사도 하고요. 다들 퇴근한 이후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궁금했던 책을 보거나, 지인과 함께 술 한잔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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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놓인 가구는 어떻게 선택하셨어요?

좋은 물건을 선택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게 제 철칙이에요. 아르네 야콥센의 ‘3300 시리즈’ 소파가 대표적이죠. 근데 좋은 물건이라고 비쌀 필요는 없어요. 제게 잘 맞고 편안한 물건이 좋은 물건이니까요. 그래서 더욱더 다양한 물건을 사용해 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 손에 잘 맞는 휴대전화, 머리가 아프지 않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수나 인센스, 기능이 편리하고 형태가 마음에 드는 전자제품 같은 거죠. 저는 그런 아이템을 발견하면 동나거나 단종되는 상황을 대비해 여러 개를 구비해요. 휴대전화 6개를 미리 구입한 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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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취향을 찾다 보니 기준 혹은 공통점이 있던가요?

저는 재료나 스타일, 디자인이 많이 섞이지 않고 단순한 것에 눈길이 가요. 그 언저리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고 끌리는 방향에 좀 더 깊게 파고드는 편입니다. 그러다 어떤 아이템이 최종적으로 제 마음에 들어오는 계기는 의외로 작은 배려나 디테일인 경우가 많아요. 가령, 디자인이 좋은 유리잔을 샀는데 잔 밑에 붙은 스티커가 단번에 싹 떨어질 때 있잖아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소비자를 배려했다고 생각해서 그 브랜드나 가게에 신뢰를 느끼게 돼요. 만든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물건도 좋아하고요.

시간이 흐르면 취향도 바뀌기 마련인데요.

제 취향은 한번 정해지면 꽤 확고하게 유지되는 편이라서, 그 마음을 믿고 행동해요. 기능과 디자인 외에도 선호하는 커피나 음식의 맛도 정해져 있어서, 좋아하는 식당이 생기면 꾸준히 가는 편이죠. 제 취향에 대한 충성심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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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는 나무 수납장은 이곳에서 거의 유일한 빈티지 가구처럼 보여요.

사실 개인적으로 빈티지 가구를 썩 좋아하지 않아요. 새 제품을 사서 오래 사용하는 걸 선호하죠. 근데 이건 우연히 봤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사게 됐어요. 가장 최근에 구입한 가구예요. ‘매직 박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겉모습은 심플하지만 내부는 다양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구획이 나눠져 있어요. 보자마자 술 창고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웃음) 제가 좋아하는 인센스도 보관하고요.

술 옆에 자리한 향은 어떤 아이템인가요?

일본 훈옥당(薫玉堂)의 인센스를 즐겨 사용해요. 특히 백단 향을 좋아하고요. 우디 향이 나는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페이퍼 인센스도 선호하죠. 인위적인 향보다, 흙과 나무 같은 자연적인 향에 끌리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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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용하는 작업 도구를 알려주시겠어요?

건축가 하면 연필과 옐로 페이퍼를 가장 많이 사용할 것 같지만, 저는 노트를 주로 씁니다. 영국 브랜드 스마이슨Smythson의 노트인데요. 제가 애용하는 정사각형 노트는 손에 잡히는 느낌과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도 마음에 들고, 노트 겉표지에 각기 다르게 쓰인 재치 있는 문구를 보는 맛도 있어요. 현재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제품이라서 이것도 잔뜩 쟁여놨는데요. (웃음) 이제 5개 정도 남아 있어서 슬슬 대체품을 고민 중이에요. 필기구로는 몽블랑 만년필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어요. 잉크 색상은 브라운과 레드 중간 정도의 가넷 컬러를 씁니다.

노트에는 무엇을 기록하세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라면 뭐든지 자유롭게 풀어내요. 프로젝트와 관련한 얘기도 쓰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필사도 하고, 그날의 기록이나 일기를 남기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고양이 수염이 빠져서 그걸 테이프로 붙여 놓기도 했어요. 스케치보다는 문장과 단어를 더 많이 적어놓는 편이죠. 과거의 노트를 통해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이런 노트가 10권 넘게 쌓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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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관심 가는 도구가 있나요?

일본 교토에 다양한 용도의 도구를 파는 가게들이 모인 거리가 있어요. 곳곳마다 다양한 도구를 보는 재미, 쓰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중 한 곳에서 기모노 먼지를 터는 작고 가벼운 붓을 샀어요. 저는 이걸로 키보드도 청소하고, 가구의 작은 먼지들도 터는데, 이런 세세한 쓰임새를 갖춘 도구가 세상에 많다는 사실이 참 신기해요. 앞으로도 더 많은 도구를 탐구하고 싶습니다.

회의 공간 쪽 책장에 책이 한가득이네요.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이나 스튜디오 초창기 때에는 건축과 인테리어 책을 정말 많이 구입해서 읽었어요. 요즘은 오히려 공간과 관련 없는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특히 다양한 비주얼의 요리책을 보며 상상력과 위안을 얻는데요. 잘 기획하고 차린 요리는 정말 하나의 예술 같아요. 텍스트 위주의 책도 선호하는데 요즘 『베네치아의 겨울빛』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러시아의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가 한 달간 겨울철 베네치아를 방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여름의 열기가 사라진 겨울의 차분한 베네치아와 그곳의 건축물, 골목길, 음식, 사람에 대한 단상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일단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알베르 까뮈의 에세이집 『결혼·여름』은 작가가 명성을 얻기 전인 유년기와 청년기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청춘과 젊음, 뜨겁고 싱그러운 순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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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취미 부자’이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무언가를 시작하면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편인데요. 한때 전공했던 사진은 여전히 취미로 찍고 있어요. 라이카의 디지털카메라를 오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비도 처음에 하나씩 사면서 마음에 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더 이상 바꾸거나 더하지 않아요. 새로운 버전이 나와도 동요하지 않는 편이죠. 회의 공간에 있는 오디오 시스템도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 하루 종일 고정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 튼튼하게 세팅한 이후로 새로운 업그레이드를 더 욕심내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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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꾸준한 흥미를 보이는 활동이 있을까요?

3년 전부터 도예를 배우고 있어요. 주말마다 양재동에 있는 선생님 공방에 가서 흙을 잔뜩 만지고 옵니다. 보통 사람들이 건축이라고 하면 건축가가 모든 걸 주도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클라이언트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부분이 더 커요. 작업의 설계자로 제 이름이 붙지만, 100% 온전히 제 것은 아닌 셈이죠. 오롯이 혼자 무언가를 만들고 싶던 차에 우연히 도예를 시작했는데 참 재미있더라고요. 손으로 재료를 만지는 작업이 건축과는 또 다른 감각이라서 흥미롭기도 하고요. 평소에도 여러 감각 중 촉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에요. 어떤 집이 좋냐는 질문에 “맨발로 걸었을 때 좋은 집”이라고 답하거든요. 특정 바닥재를 말하는 건 아니고, 발이 닿을 때 부들부들, 포근포근, 까슬까슬 같은 감촉과 감각을 느끼는 게 좋아요. 그래서 흙을 만지는 도예가 더욱더 끌리는 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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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입한 취향 저격 아이템이 궁금합니다.

교토에 갈 때마다 꾸준히 방문하는 가게가 있어요. 대장장이 장인 어르신이 직접 주물을 두드려서 작은 기물을 만드시는데, 거기서 가위를 하나 샀죠. 가위에 남아 있는 디테일을 보면 어르신이 그걸 두드리며 만드는 장면이 떠올라서 왠지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실 이 가위는 모양새가 투박하고, 사용하는 데 그리 편하지도 않지만, 소중하게 만드는 과정 덕분에 새로운 가치가 다시금 더해졌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편한 게 좋은 건 아니잖아요. 때때로 좀 불편해도 결과물이나 과정이 아름답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래 앉아 있기에 불편한 의자라도 디자인과 히스토리가 마음에 든다면 내 공간에 가까이 놓을 수 있는 거죠.

회의 테이블 위에 주제와 공통점을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놓여 있어요. 특별히 간택 받은 물건인가요?

아무래도 요즘 좀 더 주의 깊게 보고 싶은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하나둘 놓아두게 돼요. 광물처럼 보이는 사물은 일본 유리 작가의 작품인데요. 유리 공장 기계를 오랜만에 청소할 때 나오는 유리 잔류물을 적당한 덩어리로 자른 거라고 해요. 표면의 질감이 흥미로운 접시는 김혜정 작가의 작품이고요.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형상의 유리 공예는 김준용 작가의 작품이에요. 모두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자연적인 소재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최소한으로 가공한 오브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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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테이블 주변으로 몇 개의 구조적인 조명도 눈에 띕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스탠드는 아르떼미데Artemide의 ‘티지오Tizio 35 ’ 램프에요. 앵글이 상하좌우 360도 회전하고 아래 받침대 또한 회전할 수 있어서, 섬세하게 방향과 조도를 조절할 수 있죠. 이 램프를 사용하다 보면 디자인을 맡은 리처드 새퍼Richard Sapper가 사용자의 상황과 다양한 쓰임새를 얼마나 고민했는지 상상이 돼요.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램프라고나 할까요. 디자인은 물론이고 기능 또한 매우 탁월해서 사용할수록 매력덩어리입니다. 테이블 위에 있는 또 다른 램프는 플로스Flos의 ‘타치아Taccia’ 램프에요. 카스틸리오니Castiglioni 형제의 디자인은 1958년에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죠. 특히 위쪽으로 빛을 보내는 업라이트가 반구형의 아크릴 유리 디퓨저를 통과해 공간을 더욱 밝고 부드럽게 보이도록 하는데요. 대부분의 조명이 빛의 형태를 만들어 내지만, 이 램프는 그림자의 형태를 만들어서 매우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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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들어보니, 완벽하게 세팅해서 고정된 것보다, 사용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바꿀 수 있는 가변적인 조명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조명의 메타포metaphor’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빛을 내는 기본 역할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와 수시로 교감하고 자연스레 움직이며 빛의 감도를 바꾸고 새로운 명암을 만드는 조명은 정말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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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좋아하는 브랜드 혹은 디자이너가 있나요?

한때 구라마타 시로(倉俣史朗)와 디터 람스를 좋아했어요. 그들이 디자인한 가구와 물건에 관심이 참 많았는데요. 시간이 지나고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업이라고 전부 마음에 드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 후로는 작가 미상이나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라도 제 눈길이 가고, 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가장 좋다고 믿고 있어요.

오랫동안 수집하는 아이템이 있으시나요?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고서점을 찾아가는 편이에요. 식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식물 채집과 교본, 도감, 설명서 등 식물을 다룬 책을 찾아봅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고서점에서 산 식물도감은 1853년에 만들었다고 표기돼 있는데, 식물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채색했어요. 이 책으로 식물을 공부했던 누군가가 필기한 흔적도 있고요. 교토에서 산 책에는 일본의 꽃꽃이 방식인 이케바나의 종류를 하나씩 그림으로 설명했어요.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오래전 누군가가 관찰하고, 그리고, 엮어낸 과정이 떠올라서 기분이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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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작업실과 물건, 심지어 소장님의 옷과 안경까지, 크고 작은 어느 것 하나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느낌이 드네요.

저는 제가 쓰는 물건과 소장품, 읽는 책, 자주 가는 장소, 그리고 제가 하는 일과 제가 만든 공간이 모두 비슷한 색깔의 언어를 지녔으면 좋겠어요. 실제로는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 오직 일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거라면 조금 슬프기도 하고, 마음도 힘들 것 같거든요. 일도, 삶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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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테이에이치STAY H’가 크리에이터스룸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STAY H의 큐레이션 목록에서 인터뷰이가 자기 공간과 어울리는 아이템을 하나 고르면 선물을 드리고 있는데, 소장님은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셨나요?

헬싱키 디자인 스튜디오 칵시코Kaksiko가 디자인한 무토의 ‘리지Ridge’ 테라코타 화병입니다. 이탈리아어로 ‘테라terra’는 땅, ‘코타cotta’는 굽는다란 뜻으로, 테라코타는 구운 흙으로 만든 무언가를 말하는데요. 제가 자연적인 소재를 좋아해서 고민 없이 선택했습니다. 특히 테라코타는 물을 잘 흡수하는 소재인데 내부에 유약을 발라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 제가 만드는 그릇도 이렇게 겉은 그대로 두고 안쪽에만 유약을 바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 이 아이템을 어떻게 사용하실 생각인가요?

지금은 푸릇푸릇한 보리를 잔뜩 꽂아 놓았는데요. 마치 화병이 아니라 화분처럼, 보리가 자라나는 느낌이라 마음에 들어요. 계절마다 다른 자연물을 여기에 꽂고 오랫동안 바라보며 즐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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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의 ‘리지’ 테라코타 화병

Artist

구만재(@manjae.koo)는 디자인 스튜디오 르씨지엠(@le_sixieme_archive)을 운영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자연과 사물, 사람이 잘 연결되고 어우러지는 공간을 추구하며, 주거 공간 및 상업 공간 모두 동일한 접근 방식으로 탐구한다. www.sixieme.co.kr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커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온라인 매거진 «디퍼 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 겸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글을 기고한다. «엘르 데코 코리아»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이우정(@iopppic)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수년간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거쳤다. 현재 «보그 코리아», «엘르 코리아», «GQ 코리아», «하퍼스 바자 코리아» 등 다양한 매체와 협업하며 앨범, 광고 등 커머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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