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져 가는 색이 결국 하나의 장면으로 모이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설레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처럼 낯설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풍경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는 김연홍의 작업은 시간을 넘나드는 장면을 붙잡습니다. 캔버스에 맺히는 계절의 온도와 날씨의 결, 그날의 감각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아요. 그래서 몸을 유연하게, 생각은 부드럽게 가다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파도를 타는 것과 닮았다고 말하는 김연홍. 작업 앞에서도 그는 ‘’부드러움’’을 먼저 상상합니다.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낮추고 곡선을 만들어 갈 때 작품은 더 다채로워지고, 창작하는 마음은 더 담대해진다고 믿으니까요. 물속인 듯, 꿈속인 듯 온화하게 퍼져 있는 김연홍의 작업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Lingerin Silence›, 2025, 캔버스에 아크릴, 100×80.3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회화작업을 하고 있는 김연홍입니다. 저는 주로 온라인에서 수집한 풍경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작업합니다. 그 이미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인지,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풍경이 어떤 날씨처럼 느껴지는지, 어떤 계절의 감각을 불러오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풍경은 특정한 장소라기보다 제가 지나온 시간의 감각에 가까운 장면들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자신에게 궁금증이 많은 편이에요. 나는 이 부분의 어떤 면을 왜 좋아하는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고,왜 이렇게 행동했지 같은 질문들이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이 대부분이지만요. 회화 작업은 제가 몰랐던 제 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던 모습을 더 깊고 풍부하게 드러내 주기도 합니다. 그런 점이 흥미로워서 계속 창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Crossing Currents: First Glimpse›, 2025, 캔버스에 아크릴, 91×91cm
‹Lingering Reflections›, 2025, 캔버스에 아크릴, 80×100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울 중구에서 작업 공간을 사용한 지 4년이 되어가요. 주변에 맛집도 많고 재료를 살 곳도 많아서 마음에 들어요. 교통이 괜찮은 곳에 위치해서 친구들도 자주 놀러와 줘서 좋고요! 작업 공간은 현재 동료 작가와 둘이서 사용 중이고, 하얗고 빛이 잘 드는 아담한 공간입니다. 쉴 때도 놀 때도 작업실에 있을 정도로 저에게 아늑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에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종종 색을 쓰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어떤 색상에 꽂히면, 그 색을 작업에 꼭 사용해 보고 싶어져요. 지나가다 본 포스터의 일부 색일 수도 있고, 작업실 옆자리에 둔 오브제나 컬러북, 물감대에 놓인 물감튜브에서 오기도 합니다. 작품의 완성보다 전시 공간을 먼저 알게 되는 경우에는 그 공간에 어떤 색을 두고 싶은지에서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우선 다양한 종류의 많은 이미지를 보는 편이에요. 눈이 이미지를 뱉어낼 정도로 본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봐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가 생기고, 그런 이미지는 따로 모아둡니다. 모인 이미지를 다시 들여다보며 내가 어떤 지점에 끌리고 있는지, 공통적인 감각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요즘의 취향을 스스로 인식하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그 감각은 제가 좋아하는 텍스트나 영화와 비슷한 결을 띠고 있더라고요. 표현하고 싶은 방향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수채 드로잉을 먼저 진행하고 그중 일부를 다시 선별해 캔버스로 옮깁니다. 모으고 선별하고, 다시 모으고 선별하는 과정의 반복이네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개인전에서 대형 사이즈의 회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수집한 하나의 풍경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작업했다면, 이번에는 강이나 바다처럼 물이 중심이 되는 여러 이미지를 겹치고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하나의 화면을 구성했어요. 이미지의 투명도와 채도를 조절해 물결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도록 편집한 뒤 그 이미지를 다시 회화로 옮겼습니다. 중앙 물결의 흐름이 단절되는 현상을 피하고 싶어 여러 캔버스로 나누는 대신 하나의 큰 캔버스로 작업해 봤습니다.
«Paper Street», COSO, 2025
‹Run on the Paper Street›, 2025, 캔버스에 아크릴, 227×486.3cm
«Paper Street», COSO, 2025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화면적으로는 얇은 표면이지만 깊이감이 느껴지고, 가벼워 보이지만 무게감이 실려 있고, 자유로운 터치인데 제자리에 있고, 심플한데 화려한… 그런 화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풍경을 추상적으로 옮긴 듯 보이지만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공간에 주목했습니다. 화면 속 풍경이 하나의 장소로 고정되기 보다는 임시적인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파편적으로 만든 이미지니까 언제든지 파편화될 것 같은 장소 이미지처럼요.
최근 작업에서 만족스러웠던 점과 불만족스러웠던 점이 궁금합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특별히 만족스럽다거나 불만족스럽다고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지점은 많지 않았어요. 작업을 하면서 예상보다 잘되었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고, 계획처럼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지나간 느낌이에요. 최근 작업이 이전 작업과 앞으로 진행될 작업 사이에 꼭 필요했던 지점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평가하겠다는 마음이 안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맞이하는결›, 2025, 캔버스에 아크릴, 162×162cm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일어나면 간단하게 집을 정리한 뒤 바로 작업실로 향합니다. 커피를 마시려고 작업실에 빨리 가고 싶어서요. 도착하면 전날 미뤄두었던 부분을 정리하고, 메일을 확인하거나 일정을 정리한 뒤 작업할 이미지를 구상합니다. 전시 일정이 가까워지면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작업을 시작하도록 코딩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생각할 틈을 주면 작업 시작을 미루게 되는 편이라 우선 물부터 떠오고 물감을 짜는 식으로 몸을 먼저 움직입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생각과 몸의 유연함에 관심이 있어요. 제 회화가 제스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몸이 유연해져서 가동성이 넓어지면 화면에서 보이는 움직임도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집니다. 몸이 느슨해질수록 생각도 함께 유연해지고, 그 과정에서 평정심도 왠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다는 기대가 있어요.
‹Aftertouch›, 2025, 캔버스에 아크릴, 27.3×27.3cm
‹Aftertouch drift›, 2025, 캔버스에 아크릴, 27×35cm
‹Soft Gestures›, 2025, 캔버스에 아크릴, 31.8×31.8 cm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일상에서 고민거리가 생기면 짧은 시간 안에 담백한 결론을 내리거나 고민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 태도가 작업에서도 우연성을 받아들이거나 망설임 없이 붓터치를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아직 이렇다 할 슬럼프가 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기분이 처질 것 같은 날에는 ‘이 기분 지금 바로 바꾸자!’ 하는 생각으로 스위치를 바꾸듯 작업 환경을 재정렬하거나 제 자신한테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예쁜 옷도 입혀 주고, 씻을 때 온갖 루틴을 이용해 향기 나는 사람으로 뽀송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럼 기분이 나아져 있어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작업과 경제적인 일을 병행하면서 시간과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인 것 같아요. 늘 유동적으로 파도를 타는 느낌이지만, 그 안에서 또 적응해 나가야겠지요.
저는 창작자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듯한 창작물이 좋아요. 창작자에게 자기 의심은 뗄 수 없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느껴요. 또 늘 새로운 것을 제시하되 그 제안이 탁월했는지는 외부에 맡기고 스스로는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는 태도?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저는 좋은 전시를 직접 많이 보러 다녔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도 전시 전경이나 작품을 너무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전시장에 가서 실제로 작품 설치를 경험하고 작품의 표면을 마주하는 일이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주변에 전시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지인을 두는 것이 팁입니다.
‹가벼운 유영1›, 2024, 캔버스에 아크릴, 91×91cm
‹가벼운 유영2›, 2024, 캔버스에 아크릴, 91×91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늘 작업을 즐겁게 이어가는 것 같고, 저만의 느낌을 지닌 작업을 꾸준히 만들어 가는 창작자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랑: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따스한 시간을 소중히 아끼고
작업: 스스로 신기하고 재밌는 지점을 늘 탐구하고 있으며
건강: 사랑과 작업을 잘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Artist
김연홍(@yeonkoi)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페인터다. 온라인에서 수집한 풍경 이미지와 일상에서 마주한 계절과 색, 감각을 엮어 서로 다른 시간과 분위기가 공존하는 새로운 풍경을 회화로 구축해 왔다. 특정한 장소의 재현보다는 여러 출처의 이미지와 감각이 중첩되며 생성되는 시간적 상태에 주목한다. 개인전으로는 «Paper Street»(COSO, 2025)와 «Tail on Tail»(상업화랑, 2024)을 열었으며, «Summer Hashtag #Summersnow»(신세계갤러리 대구, 2025), «유영하는 감각»(오브제후드, 2025), «NEXT-UP»(온수공간/화인페이퍼, 2024) 등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5년 경기문화재단 아트경기 선정작가, 2024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 ONSO ART 신진작가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