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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작가의 모든 것은 결국 작업에서 드러난다

Writer: 우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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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우정수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희곡을 상상해 봅니다. 그의 그림은 때론 부조리극, 때론 풍자극, 때론 블랙코미디가 돼요. 캔버스가 무대라면 그는 연출가, 그의 드로잉은 배우를 맡죠. 중앙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테두리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구조를 따르면서, 시점과 순서를 뒤바꿀 때 맺어지는 관계에서 즐거움을 느껴요. 회화는 신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에 작가의 움직임이 남습니다. 신체 근육의 쓰임부터 고민거리, 과감한 시도까지 작가의 축적된 시간이 나타나죠. 어쩌면 그의 작업에는 삶을 대하는 작가로서의 태도까지 비칠지도 몰라요. 언어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감각적으로 이해되는 것을 손끝 감각으로 풀어내는 그림에서 자신의 시간을 반추하고, 작은 요소를 선택할 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부르는 흥미와 아쉬움으로 그다음 작업을 꾸준히 시도하는 우정수 작가. 그림 그리기에 진심인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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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ble #24›, 2023, Pen on paper, 21 × 14.8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우정수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미대 진학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미술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어요. 당시 미대 입시는 똑같은 것을 잘 그리는 게 중요했거든요. 화실에서 다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면 표준화된 스타일을 요구했어요. 그러던 중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선생님에게 배웠는데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경험이 너무 즐거워서 결심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계속 나아갈 수 있겠다고 말이죠. 물론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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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My Voice», 두산갤러리, 2020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 작업실은 성북동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요. 인도가 넓은 편이고, 산책할 때 길 풍경이 아름답고 다양한 맛집이 있어서 즐겨 찾아요. 운 좋게 이곳을 계약해 3년 동안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볕이 잘 들어오고 창문도 크기 때문에 작업 중에도 막히거나 답답할 때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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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shing›, 2019, Acrylic on canvas, 116.8 × 91 cm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게 영감을 주는 것은 역설과 반어 속에 숨겨진 은유들입니다. 무의미한 것들, 아무 의미도 없는 기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의미를 갖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어요. 하지만 그 끝에 도달하면 결국 무의미함이 드러나곤 합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좋아합니다.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그 자체로 어떠한 의미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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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 for Tat›, 2019, Acrylic on canvas, 116.8 × 91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하나의 희곡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때론 부조리극, 때론 풍자극, 때론 블랙코미디가 되기도 하죠. 캔버스를 무대라고 가정하면 저는 연출가, 제 드로잉은 배우가 되겠네요. 때론 주인공이 모든 서사를 이끌 때도 있고, 반대로 주인공은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조연이 극을 이끌 때도 있습니다. 보통 중앙에서는 사건이 발생하고, 테두리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는데요. 이러한 구조 아래 그림을 완성해 가면서, 종종 그 안에서 시점과 순서를 뒤바꾸는 걸 즐깁니다. 중심과 주변이 변주하기도 하고요. 테두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중앙에서 마무리되거나, 테두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캔버스 밖을 상상하게 하면서 마무리되는 거죠. 이런 관계성을 탐구하며 작업하는 게 저의 즐거움입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언어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감각적으로 이해되는 것들은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손끝 감각에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산책자 노트›(2010-17)를 구성하는 펜 드로잉도 온전히 손끝 감각에서 탄생했어요. 완성작을 보며 제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는지 유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콘셉트를 구체화하며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작년부터 오랜만에 펜 드로잉을 다시 시작했는데요. 이를 어떻게 작품에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맡에 세 악마› 시리즈가 드로잉에서 부각되는 요소를 키우고 그 위에 파우스트Faust 서사라든가 중세 기적 이야기 등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했다면, ‹미스터 페인터› 시리즈는 대부분 선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중첩한 후 작가의 모습을 제일 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전자가 이야기 자체를 더욱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면, 후자는 선의 축적으로 추상성을 갖게 되면서 결국 이야기가 소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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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노트», 갤러리 룩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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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세 악마», 아트선재센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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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Painter #2›, 2024, Acrylic on canvas, 116.8 × 91 cm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드로잉입니다. 작년에는 전시 일정을 잡지 않고 작업의 전반적인 부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드로잉이 제 작업의 근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드로잉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며 회화로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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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세 악마 #7›, 2024, Acrylic on canvas, 160 × 16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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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세 악마 #4›, 2024, Acrylic, fabric collage on canvas, 261 × 194 cm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매 순간 제가 재미있고 궁금한 작업을 추구해요. 그림 내부의 작은 요소가 그림 전체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며 작업합니다. 이런 미세한 변화를 고려해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되면,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흥미와 아쉬움은 그다음 작업을 하는 동기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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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세 악마», 아트선재센터, 2024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오전에는 운동하고, 점심시간에는 와이프와 함께 식사하며 커피를 즐깁니다. 오후 1시쯤 작업실에 출근해 밤 9시~10시쯤 퇴근합니다. 그리고 와이프와 놀다가 하루를 마감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휴일 없이 작업만 하는 일상을 즐겼습니다. 하루 종일 작업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작년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스트레스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그림 같은 전통 매체는 신체를 사용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작품에 작가의 움직임이 기록됩니다. ‘이 부분은 어깨 근육까지 사용했겠네’, ‘여기는 세밀하게 손목도 고정하고 칠했겠구나’ 같은 신체 근육의 쓰임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고민하는 모습, 과감하게 진행하는 모습 등이 보이는 등 하나의 그림에서 작가의 축적된 시간이 나타납니다. 그럴 때 얼핏 ‘작가’라는 사람의 모습까지 비치기도 하죠. 제 작업에도 얼핏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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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저주뿐›, 2010, Pen on paper, 21 × 14.8 cm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그냥 버티면서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기간이 길어지면 너무 속상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그리다 보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보통 은둔자처럼 조용하고 정돈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는데요. 최근 작업실 이사 준비와 개인전 오픈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작업 공간도 어수선해지고 있어요. 저에게는 일상적인 루틴과 정리된 환경이 무척 중요하거든요. 작업실에 있는 물건들도 최대한 원래 위치를 지키는 걸 선호합니다. 최근 이 두 가지가 어질러지니 마음이 혼란스럽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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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Our Yesterdays›, 2019, Acrylic on canvas, 116.8 × 91 cm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무엇이든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는 것, 자신과 자신의 작업을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작가는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눈앞에 있는 것에 흔들리지 말고, 길고 큰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꾸준히 준비해 가는 게 좋아요. 작가의 모든 것은 결국 작업에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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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agonist #3›, 2023, Acrylic, fabric collage on canvas, 160 × 160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작가보다는 작업이 기억됐으면 합니다. 사람으로는 그냥 꾸준히 열심히 산 사람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사 좀 그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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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omnia #9›, 2023, Acrylic, fabric collage on canvas, 160 × 160 cm

Artist

우정수(@jeongsu_woo)는 다양한 시대의 삽화와 신화, 서사극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넘나들며 채집한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화면을 재구성한다. 작가는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 이미지의 이면을 주제로 거침없고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과 판화 기법을 혼용한 특유의 드로잉을 기반으로 냉소적이지만 유머러스하게 오늘의 세계를 그려낸다.

주요 개인전으로 «머리맡에 세 악마»(아트선재센터, 2024), «Where Is My Voice»(두산갤러리, 2020), «Tit for Tat»(두산갤러리 뉴욕, 2020), «Calm the Storm»(금호미술관, 2018), «책의 무덤»(OCI 미술관, 2016) 등을 열었고,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제주비엔날레, 2022), «젊은 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21),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일민미술관, 2021), «강박²»(서울시립미술관, 2019), «현대 회화의 모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19), «상상된 경계들»(광주비엔날레, 2018)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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