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요즘 여러 기업에서 각광받는 존재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영향력이 커질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예술계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독일에서 활동하는 추수 작가는 AI 음악회사를 위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를 만들면서 동시에 예술에서 목소리를 내는 버추얼 액티비스트의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아름다운 20대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빡빡머리의 알쏭달쏭한 모습으로 활동하는 에이미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에이미’와 관련된 작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공지능 음악회사 엔터아츠가 버추얼 인플루언서 작곡가 ‘에이미’를 만들어달라는 연락을 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반복되는 사이보그의 이미지, 여성, 20대, 대중의 미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문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근 몇 년간 디지털 세계의 정체성에 대해 몰두하던 제 머릿속에서, 에이미가 계속 서성거렸어요. 그러다 대중음악 신과 현대예술 신에 동시에 존재하며 다른 이야기를 하는 에이미의 다중 콘셉트가 떠올랐습니다. 화자를 만들어 미술관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흔하지만 메타버스 세계관에서 영향력 있고 마케팅으로 알려진 인물이 본인 이야기를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 오자, 비로소 에이미는 제 딸이 되었습니다. 대중음악 신에서 일하는 에이미를 만드는 대신, 미술관에서 목소리를 내는 에이미에 대한 권리를 요청했을 때 엔터아츠 측은 예상을 뛰어넘는 반색을 해주셨어요. 그때 많은 힘을 얻었어요. 그렇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랑받을 스테레오 타입의 빡빡머리의 버츄얼 액티비스트 에이미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터뷰에서 말하는 ‹사이보그 선언문›은 버추얼 액티비스트 에이미의 이야기인 시작 비디오 다섯 편 중 하나입니다.
도나 J. 해러웨이가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문」의 텍스트와 제목을 인용해 작업하셨는데요. 어떤 연결고리를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에게 이원론의 미궁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암시할 수 있다. (···) 나는 여신보다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에 인간 중심주의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 이분법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혼종인 사이보그의 이미지를 위와 같이 제시합니다. 여기서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자 괴물인 키메라입니다. 이른바 정상성에서 밀려난 존재죠.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사이보그―버추얼 존재―들과 가장 긴밀하게 정신적 유대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몸을 옭아맸던 영원한 사슬을 끊어냈을까요? 해러웨이가 꿈꾸었던 탈-신체의 희망으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을까요? 가상 공간이라는 어마어마한 기회의 장을 무시하고, 물리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수많은 차별을 그저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씁쓸한 감정과 시선으로,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에이미―의 입을 통해 재발화하는 ‹사이보그 선언문›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에 삽입한 사운드를 시각 요소와 조응할 때 유의하신 점도 말씀해주시겠어요?
저는 주로 영어와 독일어로 작업하지만, ‹사이보그 선언문› 속 에이미는 한국어로 말합니다. 해러웨이가 탈피하고자 한 이분법적 체계에서는 남성-백인이 인간의 기준이며 이성애-가부장제가 보편의 위치를 점합니다. 그래서 제3세계의 여성 혹은 퀴어를 중요하게 다루죠. 이런 맥락에서 에이미가 미술관의 보편적인 언어인 영어로 말한다면,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전달하는 미디어가 상응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특히 창작자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경우라면 더욱더 말이죠. 그래서 에이미는 한국어로 선언하고, 3D 애니메이션 페이스 트래킹도 이에 맞게 만들어졌습니다.
창작자로서 기본적으로 지니는 태도나 관점이 궁금합니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오, 나는 미친 듯 살고싶다」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대지 위의 모든 것은 죽어 가리라—어머니도, 젊음도,
아내는 변하고, 친구는 떠나가리라.
그러나 그대는 다른 달콤함을 배워라,
차가운 북극을 응시하면서.
그대의 돛배를 가져와, 멀리 떨어진 북극을 항해하라,
얼음으로 된 벽들 속에서—그리고 조용히 잊어라,
그곳에서, 사랑하고 파멸하고 싸웠던 일들……
정열로 가득 찼던 옛 고향 땅을 잊어라.
저에게는 예술이 돛대입니다. 무섭도록 시린 북극을 향해, 제 몸과 함께 바람에 맞서주는 유일한 존재가 예술이라 믿고 항해합니다.
창작자로서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내가 아직도 작업을 하며 살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 무한히 감동합니다. 그러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아요.
한국에서 창작자로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평과 예의없음을 구분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곤혹스러워요. 작가, 큐레이터, 관객과도 작업의 밑바닥까지 헤집어 진흙탕을 만드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로 예의를 지키는 문화는 존경하지만, 예술가의 성장에는 치명적입니다. 베는 듯한 크리틱이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지금 독일 베를린에 자리를 잡고 작업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곁에 있는 가까운 두 친구에게 제가 버티는 힘이 무엇인 것 같느냐 물어보니 ‘술’과 ‘야망’이라고 합니다. 맞는 것 같아요. 노하우는 없습니다. 24시간 예술을 하고, 생각하고, 얘기하고, 미워하고, 예술과 싸우며 치고 받고, 울고 불고,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요. 술에도 진 빚이 많습니다.
Artist
추수TZUSOO는 홍익대학교에서 판화와 예술학을 전공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예술조형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장학생으로, 루마니아의 엘렉트로푸테레 갤러리(2021), 독일 진델핑겐 시립미술관(2020), 벨기에 NIDRAJ(2020) 등에서 최근 4년간 6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리스 ‘TQAF 퀴어 페스티벌’(2021), 주독일한국대사관 문화부 갤러리 담담(2019), ‘이탈리아 볼차노 아카데미 비엔날레’(2018), , 한국 대구 봉산 문화회관(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초대됐다. 한국의 뮤지션 림킴, 릴체리, 트라이비, SAAY와 협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