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혜 작가는 작업 스튜디오 ‘파도의 거품들’을 운영하며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과 두 손으로 빚어낸 도자기를 선보이고 있어요.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비정형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칭적이지 않고 매끈하지도 않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어떤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유를 갈망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동질화되어가는 과정을 거부하는 듯한 미감은 그러므로 김성혜 작가만의 고유한 성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가의 태도와 생각에 대해선 아래 아티클에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짓는 김성혜입니다. ‘영원히 생생하게, 파도의 거품들’이란 슬로건 아래 작업 스튜디오 ‘파도의 거품들’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십 대 시절 홈스쿨링을 했어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주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만들게 됐어요. 무료한 마음에 블로그를 만들어 낙서에 가까운 드로잉, 정성껏 꾸민 다이어리, 평소 하는 생각, 외로움, 기쁨 등을 매일 하나씩 포스팅했던 일이 자연스레 이어져 지금과 같은 창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실은 어릴 적부터 사는 동네의 낡은 상가 건물 2층에 있어요. 세로로 긴 형태의 작은 창 네 개가 나란히 나 있고, 창 가득 플라타너스가 보이는 곳입니다. 작업실을 마련할 당시,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게 0순위 바람이었는데, 실제로 이뤄졌어요. 울퉁불퉁한 벽이 곤란했지만, 솜씨 좋은 친구가 맞춤으로 나무 선반을 지어주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평면 작품 두 점을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지난 세대, 20세기 여성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박래현 화백, 자신의 와이어 조각을 배경으로 무릎 꿇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루스 아사와, 작품을 껴안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루이스 부르주아, 슈팅 페인팅을 위해 사격하는 니키 드 생팔의 모습처럼 작가가 자기 작품과 함께 있는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며 용기와 힘을 얻어요.
작업을 시작할 때 주축이 되는 키워드를 설정하고 이를 단순하게 감각하며 이어 나갑니다. 마인드맵과 비슷한데요. 명확함에서 시작해 흐릿하고 퍼져있는 영역으로 걸어 나가는 식이랍니다.
김성혜 작가 개인전 «Symphony» 전시 전경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 선보인 개인전 «Symphony»를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악기를 연상시키는 검고 붉은 도자기와 페인팅을 작업해 그 모음을 선보이는 전시였어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흙 작업, 그림 작업을 하는 작업자의 모션이 서로 닮았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언제나 제가 설정한 세계로 끌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전시 «Symphony»를 예를 들어 이야기해볼게요. 관현악 합주를 위한 소나타를 뜻하는 심포니는 ‘다양한 소리가 동시에 울린다’라는 어원을 가진 단어인데요. 검은 무대, 그림을 그리듯 연주하는 연주자와 윤기 나는 검은 악기, 날카롭게 휘두르는 지휘봉과 손, 계단 아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관객의 눈 등 심포니의 요소를 상상했어요. 작품들이 동시에 내는 소리가 기이할지라도 완전한 화음으로 들려오기를 바랐죠. 전시장은 독특한 흑경 전시대를 설치한 공간이었어요. 천장에 유리를 설치해 전시대를 비추는 구조인데, 작품들이 비친 모습에서 음표가 있는 악보를 연상할 수 있도록 배치하려고 노력했죠.
흑경 전시대 위 천장에 설치한 유리에 비친 모습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근 작업을 포함해 작업을 완료하고 나면 직접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지점에서 만족하곤 해요. 늘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느낌을 그리워해서인지 신체로 직접 물성을 느끼는 경험을 중시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불만족한 부분은 작업에 임할 때 즉흥성에 맡기는 경향이 크다 보니 테크닉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거예요. 더 고민하고, 더 계획했다면 지금보다 견고하고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하고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부터 붉은색에 매료되었어요. 전반적으로 색채로 무드를 잡아가는 성향의 작업을 하는 편이라 이렇게 특정 컬러를 좋아하고 온 마음을 바치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그 컬러가 현재의 저를 반영하고 있는 느낌도 들고요. 붉은색을 매력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나 물건을 자주 검색하고 있는데요. 곁에도 두고 싶네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없는 곳에서, 없는 것을 짓고 있는 기분으로 작업한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요. 원초적인 외로움을 뜻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작업을 대할 때 이런 도피성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삶을 살아가며 세상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왔고, 그 힘으로 나아져 왔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보호받고, 보호하는 존재라는 인지가 있기에 작업에 임할 때는 자유로울 수 있고, 강할 수 있고, 홀로 있을 수 있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쥐고 있던 것을 탁 놓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잠도 많이 자고요. 그러다 보면 극복의 결정적 순간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느 순간 다시 무언가를 하고 있답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물가 상승,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자재 수입 중단 등으로 재료 수급에 부담이 생긴 점이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입니다. 또 최근에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큰 액션으로 몸집이 큰 작업을 해내고 싶을 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분합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아주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제가 임하는 작업에 대해서 치열해지고 싶습니다. 동시에 눈에 보이는 층위를 잣대로 삼아 누군가의, 혹은 자신의 치열함을 하대하거나 멋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고 서 있기. 그리고 계속하기, 계속하기, 계속하기!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꾸준한 창작자, 고요한 저력이 있는 창작자, 아름다움을 다룰 줄 아는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Artist
김성혜는 분명히 만져지지만 없다고 치부하는 공간 혹은 감정을 사냥해 간다. 시간(때)으로 인한 즉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페인팅과 세라믹을 주요 매체로 다루며, 작업 스튜디오 ‘파도의 거품들(Foams of Wave)’을 운영 중이다. 최근 개인전 «Symphony»(2022, 스몰글라스 오브제)를 열었고, «눈을 오래 마주 보아야 합니다»(2020, 온수공간), 비주얼 사운드 팀 몸 셋의 «Meta-Serenade»(2019, 킵인터치서울)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다양한 작가 및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