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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재밌으면 됐지, 안 그래?

Writer: 순이지
header, 순이지soon.e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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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순이지 작가는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재밌으면 됐지!”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가 모두 다른 세상에서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재미를 작업에 최대한 녹여내려고 노력해요. 너무 진지한 건 재미없으니까요. 그런데 작품을 보면 농담을 가장한 채 삶의 부정적인 면모가 돌출돼요. 어색할 만큼 천진하게 표현한 씁쓸한 현실은 일종의 코미디로 보이곤 하죠. 이를 통해 삶의 비극성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외면하던 삶의 부정성을 회복하는 게 작가의 의도랍니다. 자기 작업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설렁설렁함에서 남보다 예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믿는 순이지 작가. 평생 농담 따먹기 하다가 죽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01, 순이지soon.easy, fragile-happiness

‹Fragile Happiness›, 2023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그림도 그리고, 조형물도 만들고, 이런저런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soon.easy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 만화 『드래곤볼Dragon Ball』을 보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만화가를 꿈꿨지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어찌저찌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어린 시절 그리고 싶던 만화와 대학 시절 배운 순수미술이 뒤섞이며 지금 같은 작업 양식이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02, 순이지soon.easy, 폭력은-어디서-오고-어디로-가는가

‹폭력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2021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1년 조금 넘게 마포구에 위치한 작업실을 쓰고 있어요. 11명 정도의 작가들과 공유 중입니다. 제 자리에는 책상 두 개를 ‘ㄱ’ 자로 붙여서 대부분의 페인팅과 디지털 작업을 소화하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사 모은 피규어와 기념품도 진열해 뒀는데요. 오래 앉아있어도 덜 지칠 수 있도록 나름 꾸며놓았답니다. (웃음)

03, 순이지soon.easy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영감의 원천을 특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일상 모든 것이 영감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고로 영감을 포착하는 예리한 감각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04, 순이지soon.easy, 사람들은-솔직한-걸-싫어해
05, 순이지soon.easy, dogs-allowed

‹사람들은 솔직한 걸 싫어해›, 2022 (좌)


‹Dogs allowed›, 2023 (우)

‹사람들은 솔직한 걸 싫어해›, 2022 (상)


‹Dogs allowed›, 2023 (하)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먼저 머릿속에 담아둬요. 그리고 삶에서 해당 주제를 표현하기 적합한 소재를 찾아서 매칭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대체로 축약하자면 이런 순서에 따라 작업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Bargain›은 ‘세상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게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전부 다 돈으로 돌아간다’라는 주제를 품고 있어요. 대개 우정, 추억, 사랑 같은 달달한 대상은 돈 주고도 못 산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실상 돈 없어도 가질 수 있는 것에 이런 타이틀을 붙여놓고 주머니 가벼운 사람끼리 자기 위로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이런 대상에 떡하니 저렴한 가격표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이를 표현하는 소재로는 여행길에서 사 온 트레이딩 카드를 활용했고요. 단돈 1달러 짜리 트레이딩 카드 말이죠.

06, 순이지soon.easy, bargain

‹Bargain›, 2023

‹SUGAR CANDY MOUNTAIN #8›은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의 큰 화면에 몰아넣는 ‹SUGAR CANDY MOUNTAIN›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업이에요. 전시에 맞춰 큰 사이즈로 제작한지라, 작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답니다. 굉장히 다양한 내용을 담았는데요. 길거리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삼아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Pokémon GO’를 소재로 매칭하거나, 물질만능주의라는 주제에 맞춰 아마존 배달 기사를 매칭한 그림 등이 복작복작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07, 순이지soon.easy, sugar-candy-mountain

‹SUGAR CANDY MOUNTAIN #7›, 2022

08, 순이지soon.easy, sugar-candy-mountain

‹SUGAR CANDY MOUNTAIN #8›, 2023

09, 순이지soon.easy, sugar-candy-mountain

‹SUGAR CANDY MOUNTAIN #8›, 2023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농담’과 ‘부정성’이에요. 저는 제가 남을 웃기는 것과 남이 절 웃기는 것 모두 좋아하는데요. 제가 만든 창작물도 다른 이를 웃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볼 때는 웃기는데 의미를 알고 나서 씁쓸해지든 혹은 처음부터 영 불쾌하다 끝에 찝찝한 웃음이 남든 관객이 제 작업을 보고 한 번 웃었으면 좋겠어요.

10, 순이지soon.easy, K-씀씀이

‹K-씀씀이›, 2021

11, 순이지soon.easy, cheeeze

‹Cheeeze›, 2022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앞서 설명한 ‹Bargain›과 ‹SUGAR CANDY MOUNTAIN #8›를 돌아보면, 우선 어떻게든 꾸역꾸역 화면에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저는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충분히 전한다고 느끼면, 굳이 빈 부분을 채워 넣지 않는 편인데요. 그러다 보면 가끔은 좀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 보는 걸 시도하고 있어요.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역시 제 그림 실력이네요. 농담하듯 조금 더 설렁설렁 그리고 싶은데요.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자꾸 표현이나 마감새에 얽매이는 모습이 통탄스러워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그 무엇이 되었든, 최대한 미루고 사는 스타일입니다.

12, 순이지soon.easy, Sorry-we're-closed

‹Sorry, we re closed›, 2022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딱히 없는 듯합니다. 평소 보던 것만 보고, 듣던 것만 들어서 고민이네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 입버릇 중 하나가 ‘재밌었으면 됐지’인데요. 작업할 때도 통용돼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는 모두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작업에 한해서 더욱더 제가 생각하는 재미만 녹여내려고 해요. 너무 진지한 건 재미 없으니까요.

13, 순이지soon.easy

«쉿!»(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3) 전시 전경

14, 순이지soon.easy

«쉿!»(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3) 전시 전경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직 슬럼프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슬럼프가 올 만큼 뭔가 많이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만약 슬럼프가 찾아온다면, ‘남들도 다 겪는 일이니, 유난 떨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15, 순이지soon.easy

«이세카이 오 오라»(유아트스페이스, 2022) 전시 전경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저의 미루는 습관과 무지몽매함 때문에 2년 치 세금 폭탄을 때려 맞았어요. 굉장한 골칫거리입니다. 세금에 대한 정확한 공부와 밀린 세금에 대한 처리를 지금도 미루고 있는 게 더 문제예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하는 작업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적어도 제게는요. 뭔가 설렁설렁한 부분을 많이 만들어 두면 어느 부분에서 남보다 훨씬 예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믿거든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음. 저만 알고 싶은걸요. (웃음)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예전에 동일한 질문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는데요. 답변하고 돌아서면 계속 까먹네요. 아무래도 진심으로 말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이제 솔직하게 한번 털어놔 본다면, 딱히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모습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평생 농담 따먹기 하다가 죽고 싶은 게 꿈이라면 꿈입니다!

16, 순이지soon.easy

Artist

soon.easy는 삶의 부정적인 면모를 음울한 유머 감각이 담긴 그림과 때때로 조악한 조형물로 풀어내는 작가다. 비극적인 내용과 대비되는 다채로운 색감의 일러스트레이션 형식을 이용해 내용과 형식의 충돌을 꾀한다. 어색할 만큼 천진하게 표현한 씁쓸한 현실은 일종의 코미디로 발현되는데, 이는 삶의 비극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자 외면하던 삶의 부정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개인전으로 «철거예정»(2023, 갤러리 ERD 부산), «그럴싸한 개소리»(2021, IDAHO), «지겨운 농담»(2018, Den – Night Flight Club), «LIFE IS A GIFT BUT NOT YOURS»(2016, 캉골컬처스페이스)를 열었고,  «쉿!»(2023,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Spring, Spring»(2023, Moosey Islington, 런던), «이세카이 오-오라»(2022, 유아트스페이스), «Figure»(2022, Subtitled NYC, 뉴욕), «넘어지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021, 교보 아트스페이스), «Boundary»(2021, 관훈갤러리) 등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나이키, 반스, 컨버스 등의 브랜드와도 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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