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민 작가의 작업은 느슨한 의미에서 마치 자화상 같습니다. 여러 도시, 다양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을 접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익숙한 틀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과 오해 및 선입견에 막히는 불편하고 복잡했던 개인적 경험이 작업에 자연스레 담기기 때문이에요. 질문에서 시작해 자료 리서치, 전문가 인터뷰, 현장 탐색뿐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기술까지 습득하며 머릿속 이론과 상상을 영상 및 퍼포먼스로 옮기는 그에게 물리적인 한계 혹은 제약은 오히려 작업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데요. 본연의 에너지를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불필요한 요소를 깎아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손수민 작가. 그렇기에 유머야말로 무척 중요하면서 동시에 어려운 가치라고 믿는 그의 이야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아이였어요. 제 작업은 느슨한 의미에서 마치 자화상 같다고 생각해요.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영향을 받아왔죠. 익숙한 틀 안에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 오해와 선입견에 막히는 불편하고 복잡한 경험이 작업으로 연결되었어요.
예전에 동료들과 함께 사용했던 학교 작업실은 층고가 높고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어요. 과거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로 사용된 건물인데, 그중 체육관이었던 공간을 스튜디오로 개조했죠. 가운데가 ‘ㅁ’자 형태로 트여 있어서, 마치 작은 광장 같았어요. 그 공용 공간에서는 늘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었답니다, 자기 스튜디오에서 각자 작업하다가도 자유롭게 참여하거나 구경할 수 있었죠. 게다가 어느 시간대에 가도 누군가는 늘 스튜디오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어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수다를 떨고 싶을 때는 높은 천장에 설치한 그네를 자주 타곤 했고요. 그런 환경을 다시 꾸리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뉴스를 읽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떤 말이나 행동이 기억에 남을 때가 있어요.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시간차를 두고 또 다른 사람에게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구조나 집단적 인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개인의 경험이 결코 개인의 일만은 아니죠.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대부분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봐요. 예를 들어, ‹In God We Trust›(2023)는 가상화폐와 관련한 사태를 지켜보며 가상 자산에 대한 믿음의 근원이 궁금해져서 시작한 영상 작업이에요.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폴리네시아의 야프Yap섬에서 화폐로 사용하는 ‘라이Rai’라는 거대한 돌을 알게 되었는데, 너무 크고 무거워서 움직일 수도 없는 돌이 화폐로 기능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결국, 모든 화폐,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신념과 가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죠.
작업에 필요한 기술은 직접 배우기도 하고, 적합한 협업자나 전문가를 찾아 함께 만들기도 해요. 머릿속의 이론과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물리적인 한계 혹은 제약은 작업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In God We Trust›는 제작비와 제작 기간의 한계를 고려해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와 사운드를 엮어 만들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연출된 연극이 아니라, 현실의 기록이어야 하는 이유를 더욱더 절감하게 됐어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영상 작업 ‹3개의 스마트폰, 22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는 신문에서 본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했어요.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시리아 난민의 모습이었는데요. 피난 여정 중에도 풍경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셀카를 올리고, 친구와 가족에게 연락하는 장면이 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라 인상적이었어요. 낯선 이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다뤄보고 싶어서, 그 사진을 재현하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함께 스튜디오를 쓰던 동료들에게 스마트폰, 충전기, 멀티탭을 빌려서 촬영했는데요.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단체로 보내고 촬영을 마칠 때까지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그 짧은 과정 자체가 사진 속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개의 스마트폰, 22개의 충전기와 4개의 콘센트›, 2024,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지난 2월 말에 끝난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보인 ‹뮤직박스› 시리즈는 스튜디오 근처 만물상에서 발견한 작은 뮤직박스에서 시작됐어요. 초기 프로토타입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뮤직박스를 모더니즘, 합리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의 높은 천장에 설치하고, 공간과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연주하는 퍼포먼스로 진행했습니다. 한때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제게 있어, 음악은 노동과 헌신으로 기억되는 무거운 존재예요.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음악은 전혀 다른 의미로 존재하잖아요. 동일한 대상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감각과 의미가 생기는 대상이 흥미로웠어요.
가공하지 않아서 본연의 에너지가 드러나는 작품을 좋아해요. 그 안에 가장 민감하고 본질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날 것’의 상태를 구현하려면 오히려 많은 편집과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계속 불필요한 요소를 깎아내며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지점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 작품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요. 작품은 보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가는 보통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해요. 그래서 전시 일정이 몰려 있을 때는 버거움을 느낍니다. 일정을 무사히 소화한 건 무척이나 다행인데, 촉박한 일정과 복잡한 제약 때문에 생각한 것을 작품으로 모두 실현하지 못한 점은 아쉬워요. 시간과 여건상 다 풀어내지 못한 부분은 다음 작업에서 연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양껏 자고, 건강한 밥을 챙겨 먹고, 주문해 둔 책이나 궁금했던 자료를 보고, 동네를 걷는 느린 하루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여유로운 날은 무척 드물어요. 일정이 좀 더 규칙적일 때는 뉴욕에서 강의도 맡았는데, 최근에는 그럴 여력이 없었어요.
틈이 생기면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안 해본 것을 시도하려고 해요. 낯선 환경과 사람을 마주하면 자기 주변을 환기된 눈으로 보게 되잖아요. 멀리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고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사람에게도, 작품에서도 유머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대부분 고통을 대가로 얻게 되는데요. 그런 경험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으려면, 가장 쉬운 말과 단순한 형식으로도 전달할 수 있으려면, 타인의 슬픔에 자신의 슬픔으로 공명하려면… 그래서 유머가 어려운 것 같아요.
뉴욕에서 지내던 스튜디오에서는 당시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내며 작업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를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형성됐죠. 주변에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 몇 명이 있으면,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어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던 제가 지나온 점과 점이, 어느 순간부터 이어지는 걸 발견하면서 작업을 지속하는 동력이 된답니다.
Artist
손수민(@soominshon)은 인간이 구축하고 신뢰하는 시스템 및 네트워크의 한계와 가능성을 조명한다. 개인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동시대 사회적 현상의 근원과 이면을 들여다보며, 이를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 등의 매체에 담고 있다. «현실은 메타포»(SeMA 창고, 2023), «A Good Knight»(합정지구, 2023)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Unmellow Yellow›(SAPY, 2024), ‹Heavenly Bodies›(윈드밀, 2022)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2024) 등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