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은 작가는 그림의 언어를 기반으로 시각 예술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작업을 선보이는 공간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작업의 물리적 조건과 노출할 정보의 양을 결정한 후 형식을 선택해 그림의 언어를 결정한답니다. 그가 꾸준히 관심을 보이는 대상은 도시 공간의 변화에요. 효율성과 경제성에 기반해 도시를 계획할 때 발생하는 도시의 새로운 이동 풍경이 향하는 방향성과 이를 동시대 사람들이 신체와 정신을 통해 경험하며 탄생하는 미적 결정들이 시각 언어와 맺는 관계에 집중합니다. 터널, 도로 지하화, 상부 공원화, 동굴 등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자신의 작업이 지닌 여러 레이어 중 하나를 미래에 꺼내 보았을 때 그 단면만으로도 시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김세은 작가. 도시의 청사진을 실현한 후 어긋난 상태로 남겨진 자투리 공간에서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고민하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새 길을 위한 정지(Pause for new road)›, 2023, Water mixable oil and cement pigment on canvas, 230 × 160 × 5 cm. 사진: 이의록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김세은입니다. 그림의 언어를 기반으로 시각 예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창작 활동에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지니고, 현실의 경험을 넘어선 상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어 현실로 만들고 가능성을 확장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해 왔어요. 인간의 사고 확장에 관한 그들의 영향력과 기여도에 대한 생각 또한 자주 했었고요.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간격이 있는 조각과 공백들에 대한 A(A for spaced figure and collective void)›, 2023, Water mixable oil and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165 × 130 × 3 cm. 사진: 이의록
‹굴러서 제 자리를 찾는 시간(Actions for positioning)›, 2022, Water mixable oil and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240 × 340 × 5 cm, 사진: 이의록, 제공: 두산갤러리
‹힘의 공간(Room for muscle)›, 2022, Water mixable oil and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180 × 240 × 5 cm. 사진: 이의록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 작업 공간은 서울 외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웃음) 공간의 구조적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작업할 때 빈 벽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해서, 공간을 나누는 디자인이나 가구는 존재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거의 매년 작업실을 옮겨 다녔고, 이사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각각 다른 작업 공간의 물리적 조건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스케일의 작업을 그곳에 지내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최대한 큰 작업이 제가 마주하는 현재 단계에서 필요한지 자문하면서 공간을 체크하는 느낌이에요. 공간이 충분히 넓고 높다면 이런 행동을 굳이 안 하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지금 처한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작업과 그렇지 않은 작업의 종류를 생각해 보게 되네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사진을 많이 찍고, 글이나 드로잉 등 메모도 많이 남겨서 자료를 풍부하게 모으는 편입니다. 자료와 상상을 기반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과 표현 형식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이미지 트레이닝해요. 그 후 작업을 선보이는 공간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신체가 그림을 만났을 때의 공간 경험과 보는 행위가 전달하는 시각 경험을 상상합니다. 이를 통해 작업의 물리적 조건과 노출할 정보의 양을 결정하고, 형식을 선택해 그림의 언어를 하나씩 결정해요.
«PIT STOP», 두산갤러리, 2022. 사진: 이의록, 제공: 두산갤러리
«잠수교», 금호미술관, 2020. 사진: 이의록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 있는 작업으로, ‹입체도로›, ‹지하화›, ‹연말도로› 시리즈를 뽑을 수 있어요. ‹입체도로›는 올해 선보일 개인전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효율과 경제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도시를 계획할 때 발생하는 풍경의 구조에 초점을 맞춥니다. ‹지하화› 또한 도로 지하화 사업의 결과로 등장할 새로운 이동 풍경을 생각하는 작업이에요. 계획에 의해 생성되고, 대체되며, 사라지는 도시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인지적 활동, 신체적 경험, 그리고 시각 예술의 형식 실험을 통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현대 사회 속 인간은 새로운 공간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전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도시 공간의 변화가 야기한 현재의 이동 풍경 구조의 변화를 경험하는데요. 바뀐 위치, 깊이, 거리에 대한 감각을 지각하고 인지하는 과정을 그림의 언어로 찾고 있어요.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계획과 규칙에서 발현한 새로운 형식으로 다가오는 도시 풍경의 모습, 그 구조와 형태적 결정을 신체와 정신을 통해 경험하는 개인은 매 순간 어떠한 미적 결정을 합니다. 이와 시각 언어가 맺는 관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어요. 금방 다른 것으로 대체되겠지만요.
‹입체도로(Layered view)›, 2024, Water mixable oil and transfer paper on canvas, 145 × 170 × 5 cm. 사진: 전민혁, 제공: 캔 파운데이션
‹지하화(New Note)›, 2022, Water mixable oil on canvas, 230 × 240 × 3 cm. 사진: 이의록, 제공: 두산갤러리
«PIT STOP», 두산갤러리, 2022. 사진: 이의록, 제공: 두산갤러리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작업실에 있거나, 사진을 찍으러 다녀요. 평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이 긴 편인데요. GPS를 활용해 제 위치를 확인하며 따라가고,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서 해당 시간을 보냅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터널, 도로 지하화, 상부 공원화, 동굴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시각 환경.
«먼 거리 획득», 유머감각, 2023. 사진: 이의록
‹먼 거리 획득(Long shoot)›, 2021, Water mixable oil on canvas, 145 × 220 × 3 cm. 사진: 이의록
‹터널(Sinus)›, 2022, Water mixable oil and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296 × 226.5 cm. 사진: 이의록, 제공: 두산갤러리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몸을 다치거나 아플 때는 쉬는 기간 동안 몸이 늘어지고 일하는 템포에 변화가 생겨요. 바뀐 템포가 습관이 되기 전에 잠도 많이 자고, 몸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돕는 운동을 하며 해당 기간을 최대한 빨리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점점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지니, 이제는 제 주변의 모든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와요. 그중 2024년을 돌이켜 보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에 대해 사유하게 됐어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매 순간 징후가 가득했고, 그것을 읽어내느냐 여부에 따라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돌출돌기(Hubble Bobble)›, 2020, Water mixable oil on canvas, 190 × 200 × 3 cm. 사진: 이의록
‹돌출 구멍(Pitting Bay)›, 2020, Water mixable oil on canvas, 200 × 170 × 3 cm. 사진: 이의록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특별한 방법은 아닌데요.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 외 다른 것을 포기하는 용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 작업이 지닌 여러 레이어 중 하나를 미래에 꺼내 보았을 때, 그 단면만으로도 제가 살았던 시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최근 청사진의 이미지와 계획도 특유의 형식적인 특징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어요. 도시의 이상을 발표하고 계획을 실현할 때, 공간적인 효율 및 경제적인 가치가 구성하는 도시의 모습과 함께 그 옆에 무언가 어긋난 상태로 남겨진 자투리 공간을 보면,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상을 위한 계획과 규칙은 현실 속 어긋남과 공존할 수 없기에, 이상적인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현실에서 제가 상상하는 바의 실현가능성을 생각해 봅니다.
‹접는 그림-시작을 위한 거리(Folding painting-start with relation)›, 2023, Water mixable oil and cement pigment on canvas, 224 × 215 × 3 cm. 사진: 이의록
‹접는 그림-다음을 위한 선(Folding painting-Lines for the next)›, 2023, Water mixable oil and cement pigment on canvas, 210 × 147 × 3 cm. 사진: 이의록
Artist
김세은(@ssen36)은 경제성과 효율성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멈춤 없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계획을 내세우며 변화하는 오늘날의 도시 공간에서 발생한 공간적 이슈를 신체적, 정신적 행위를 통해 탐색하고 탐험한다. 이를 통해 거듭 등장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규칙에서 발생한 공간과 경험적 시간을 지각하고, 새로운 위치 감각을 인식하는 여러 경로의 시각 언어를 찾는다. 특히 이상적인 계획 앞에 남겨진 자투리 공간과 성공적인 발전을 목표로 둔 새로운 청사진의 전략적 규칙에서 파생되는 도시 공간에서 등장하는 오늘날 이동의 풍경에 집중해, 결말이 되지 못하고 지속되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도시의 풍경을 상상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영국왕립예술대학(RCA)에서 페인팅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먼 거리 획득»(유머감각, 2023), «핏 스탑PIT STOP»(두산갤러리, 2022), «잠수교»(금호미술관, 2020)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뮤지엄헤드, 학고재,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울시립미술관, 두산갤러리, 원앤제이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하이트컬렉션 등에서 열린 기획전에 참여했다. 2017년 ‘The Valerie Beston Prize’ 위너, 2020년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