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Visual Portfolio

한국은 처음이라서

Writer: QUICKNAP.ZZZ
header_quicknap.zzz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QUICKNAP.ZZZ은 타이포그래피와 서체 디자인, 레터링에 관심이 많습니다. 근데 지금은 모든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고 해요. 이유는 바로 한국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교포인데,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 체류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회사 일에 평일을 모두 쓰고, 주말에는 쉬어야 하므로 개인 작업을 할 시간이 없어진 건데요. 그래도 계속 머리는 열어두고 있답니다.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영감이 찾아오면 놓칠 수 없으니까요. 냉장고에서 야쿠르트 꺼내는 것처럼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영감 대신 그가 믿는 건 자신의 직관입니다. 그가 경영학을 포기하고 그래픽 디자인을 선택했을 때처럼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 시도할 기회를 얻기 전에 열정이 식지 않기만을 기원하는 그에게서 찐 창작자의 느낌이 나는 건 왜일까요. QUICKNAP.ZZZ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01_quicknap.zzz

‹RUNIQ› 폰트 디자인, 2023~현재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QUICKNAP.ZZZ입니다. 파리의 에꼴 에스티엔느École Estienne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라틴 캘리그래피에 대한 학업을 마치고 지금까지 로고, 레터링, 타입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교포인데요.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 온 이후 한국어가 서툴러서 많이 힘들었지만, 여기에 머무르는 상황에 감사함을 느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누나의 관심사를 많이 흡수한 것 같아요. 누나가 무엇을 하든 저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기 위해 직접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만화, K팝과 함께 비디오 게임도 그중 하나였죠. 닌텐도 게임큐브로 ‹테일즈 오브 심포니아Tales of Symphonia›,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멜레Super Smash Bros. Melee›를 즐길 때, 항상 누나와 함께했어요. 그 외에도 ‹포켓몬스터›, ‹S4 리그›, ‹프리프Flyff› 등도 제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10대 시절, 제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그리거나 가장 아끼는 게임의 사운드트랙을 듣는 건 학교에서 마주하던 과중한 학업 부담에서 자아를 회복할 방법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저 자신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일을 할 이유가 없었죠. 

02_quicknap.zzz
03_quicknap.zzz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차례대로 ‹CD PLAYER 1›, ‹PROPHECY›, 2020~2021

(상) ‹CD PLAYER 1›, 2020-2021

(하) ‹PROPHECY›, 2020-2021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 서울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 다니는데, 주변에 가보고 싶은 맛집이 많아요. 지금까지 제일 좋았던 음식은 돌솥비빔밥이었어요. 뜨끈한 돌솥에서 밥이 바삭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어요. 베트남 비빔국수인 보분Bo bun도 훌륭한 선택이에요. 건전한 동료와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어서 항상 행복합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은 냉장고에서 야쿠르트 꺼내는 것처럼 제 마음대로 불러낼 수 없어요. 영감이 떠오르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야만 하죠. 저는 보통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떠올리곤 해요. 그렇게 여러 접점을 탐색하면서 때로는 재미있는 내적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해요.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영감이 찾아오는 경험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는 메모를 남겨서 나중에 살펴봐요. 그래픽 디자인에서 레퍼런스와 무드보드는 실용적인 아이디어의 출발점이지만, 저는 (특히) 개인 프로젝트를 할 때 직관에 의존하는 방법을 선호해서 레퍼런스와 무드보드를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즉흥적인 방식으로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음 아이디어를 촉발할 때면 마치 일련의 음표가 멜로디를 형성하는 것처럼 이를 일관적으로 엮어낼 수 있어요. 다소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04_quicknap.zzz

‹S› 폰트 디자인, 2023~현재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스스로 계획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매 획은 다음 획을 가리키고, 뭐든지 천천히 쌓아가요. 타이포그래피든 일러스트레이션이든 똑같아요. 종이에 그릴 때 의도를 더욱더 잘 포착하는 것 같아서 보통 손으로 먼저 스케치를 끝내고, 나중에 필요하면 디지털로 디테일을 마무리하곤 합니다. 글자를 그릴 때는 다양한 리듬감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곡선과 딱딱한 선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걸 선호해요. 예를 들어, 춤을 주요 매개로 활용하는 아티스트 아미르AMIR를 위해 만든 레터링의 경우, 그의 회오리 같은 움직임을 마치 짙은 공기를 뚫고 선을 새기는 것처럼 글자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05_quicknap.zzz

Lettering design for AMIR, 2024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을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요즘 내러티브를 염두에 두는 로고에 관심이 커지던 터에 파리에 기반을 둔 DJ 콜렉티브 LA CASCADE의 캐릭터 ‘WETTERFROSCH’를 디자인할 기회가 생겼어요. 저는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개구리와 뮤직 세트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DJ를 서로 직관적으로 엮었어요. 스타 하프Star Harp의 현이 연주하는 음악 또한 개구리 두건을 쓴 인물로 상징화했죠. 주변의 날씨 요소는 그 과정에서 유발하는 감정을 암시해요.

06_quicknap.zzz
07_quicknap.zzz

WETTERFROSCH Character logo design for LA CASCADE, 2024

최종적으로 선정되지는 않았는데, 음악 레이블·크루 LA WALONE의 로고 작업도 재밌었어요. 블랙레터 모노그램, 나비 심볼, 그래피티 로고타입 등 다양한 요소를 조화롭게 조합해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완성했어요.

08_quicknap.zzz
09_quicknap.zzz

WALONE logo design proposal, 2024

최근 작업하면서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제 비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적절한 기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터라, 최근 작업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하고 있어요. 지금 다시 작업한다고 해도, 다르게 접근하지 않을 것 같아요. 현재 가장 아쉬운 점은 로고와 레터링 작업 외에 더 폭넓은 창작물을 만들지 못한다는 거예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개발, 그림 등 제가 도전하고 싶은 다른 분야가 많거든요. 이를 시도할 기회를 얻기 전에 열정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불어 글꼴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등 예전에 집중하던 개인 프로젝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_quicknap.zzz

‹RUNIQ› 폰트 디자인, 2023~현재

11_quicknap.zzz

진행 중인 폰트 디자인 ‹NONAME›, 2022~현재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파리에서는 가까운 친구들과 자주 영화를 보러 갔는데, 팬데믹 때문에 영화관람권 구독을 취소하면서 그런 습관을 잃어버렸네요. 서울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정해진 루틴이 있는 거 같진 않아요. 근무하는 스튜디오 업무에 평일 대부분을 쓰고, 주말에 휴식과 취미, 친구들과 외출을 즐기는 정도에요.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난 몇 달간 샘플러 겸 시퀀서인 EP-133 K.O. II를 가지고 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해당 장비의 한계를 고려할 때, 어떻게 하면 곡의 핵심 요소만 추출할 수 있는지 고민할 때가 많아요. 작곡을 최소화하면서도 매력적인 음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어두곤 해요. 더불어, 한국에서는 포켓몬 도감이라고 부르죠? 포켓덱스Pokédex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받아서 경쟁뿐 아니라 미적 시너지를 기반으로 한 팀 꾸리기를 실험하고 있어요. 항상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12_quicknap.zzz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HEN’S DEN›, 2020~2021

13_quicknap.zzz

진행 중인 폰트 디자인 ‹REKIEM› with illustration by Salomé Baude, 2022~현재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클라이언트의 생각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 상황마다 다르지만, 가끔 대담하고 실험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이를 완전하게 끌어가기 위해서 초과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창의적으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라면 주저하지 않을 때가 많죠.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방법이 없어요. 하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시간을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네요.

14_quicknap.zzz
15_quicknap.zzz

MINUS TWO를 위한 커스텀 그래피티 서체 디자인(Malo Haffreingue와 협업), 2022 

Custom graffiti typeface design for ‘MINUS TWO’, in collaboration with Malo Haffreingue, photo by MINUS TWO, 2022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하루 대부분을 업무에 쓰다 보니까 프랑스어처럼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잊고 지냈어요.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결국 구글 번역기를 흉내 내거나 소환해야만 하는 상황이 분명 존재해요. 제 농담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는 경우도 코믹하고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어떤 상황이 오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해요. “내 직관을 먼저 따르자. 내가 알아서 해결하자.” 예전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지니스 스쿨을 중퇴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더욱더 그랬죠. 저는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재정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제 열정을 더 탐구하겠다고 저 자신에게 말했어요. 다행히 제 포트폴리오로 그래픽 디자인 학교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덕분에 제 커리어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어요. 저는 피상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개념에도 큰 가치를 둬요. 필수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6_quicknap.zzz

«I’D RATHER DIG WRINKLES INTO THE GROUND WITH MY UNEVEN WHEELS»에 선보인 ‹HAND SEQUENCE›, 2023, LA VITRINE ROUGE

17_quicknap.zzz

«I’D RATHER DIG WRINKLES INTO THE GROUND WITH MY UNEVEN WHEELS», 2023, LA VITRINE ROUGE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아직 젊은 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웃음)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자기 업적을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제 친구와 가족이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면서 하와이 날씨의 안정감을 묘사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요. 상황이 허락한다면, 저도 그 느낌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18_quicknap.zzz

공간의 현상학을 주제 삼아 크리스티앙 가일리Christian Gailly의 저서 『LES FLEURS』를 기반으로 진행한 졸업 작업, 2022

19_quicknap.zzz

공간의 현상학을 주제 삼아 크리스티앙 가일리Christian Gailly의 저서 『LES FLEURS』를 기반으로 진행한 졸업 작업, 2022

Artist

QUICKNAP.ZZZ는 서체 디자인에 집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파리에서 나고 자랐다가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서의 체류를 결심했다. 현재 서울에 있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