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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매만지고 덧대이는

Writer: 리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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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리리리의 일상은 일정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작업에 몰두하고, 작업 공간에는 꼭 필요한 물건만 두죠. 퇴근 후에는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작업합니다. 빈틈없는 하루를 보내는 듯 보여도 붓을 들 때는 느긋해지려고 해요. 규칙과 비선형이 만나고 이어지죠. 작가를 이끄는 힘은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에요. 켜켜이 쌓여 있는 그림 속 형상만큼이나 자신의 마음을 나란히 놓고 조금씩 움직여 가죠. 리리리의 작품은 거침없고 열정적인 창작보다는 감정을 매만지며 덧대 보는 자기 반영의 시간과도 같아요. 꾸준히 쌓아가는 하루를 작품으로 이끄는 리리리의 동력을 BE(ATTITUDE) 비애티듀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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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WORDS FADE», RIVER ART GALLERY, 2025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회화 작업을 하는 리리리Lili Lee 작가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졸업 작품에 너무 질려버린 나머지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평소 관심이 많았던 그래픽디자인을 배우러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만나 어울리던 친구들이 모두 작품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전공은 달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작업실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그렇게 작업실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저도 어느새 다시 붓을 잡게 되었다는…. 한국에서 그만두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던 마음이 타지의 작업실 한편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풀려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때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진지하게 작업을 이어가게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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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궤도 A Solitary Orbit›, 2025, 보드지에 혼합재료, 13×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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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사이에 두고 Circling the Center›, 2025, 판화지에 혼합재료, 30×2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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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ile Joy›, 2025, 판화지에 혼합재료, 40×39.5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네, 저는 집에서 작업합니다. 창이 크고 층고가 높아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만, 자연광이 너무 좋아서 당분간은 그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복층 구조의 집인데, 1층은 일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고 위층은 침실로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작업하면 더 게을러질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비교적 정해진 루틴을 잘 지키는 편이라 아침에 일어나면 긴 휴식 없이 바로 일과 작업에 몰두합니다. 작업 공간에는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바로 정리하는 편이에요. 또 오염 강박이 조금 있어서 작업 공간을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게 항상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작업을 마치면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작업 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요즘은 제 기억에 남겨진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며 영감을 얻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고 느꼈던 감정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경험한 크고 작은, 때로는 애매한 감정에서 주로 영감을 받습니다. 요즘은 지인들에게 그들이 느꼈던 감정이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양한 감정을 대하는 태도를 질문하면서 제 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선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기록도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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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형 소리지도›, 2025, 비단, 장지에 혼합재료, 50×1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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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WORDS FADE», 2025, RIVER ART GALLERY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평소에 저는 지나간 감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시간을 자주 보내요. 꼭 어떤 사건이 크게 있었을 때만 아니라 별일 아닌 듯 지나간 순간들까지도요. 감정의 농도가 진하든, 옅든, 애매하든 하나하나를 다시 꺼내 그때 그 당시의 기분을 몸으로 다시 느껴보려고 해요. 그렇다고 그 감정을 하나하나 분석하거나 해석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이 너무 빨리 굳어버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슬픔의 감정, 기쁨의 감정처럼 단정하기보다는 그 감정이 어떤 속도로 왔다가 어떤 방식으로 남았는지, 어떤 장면과 이야기로 함께 붙어 있는지 정도만 확인합니다. 그때의 감정이 단독으로 존재했다기보다 다른 감정과 섞여 있던 경우가 많아서 그 섞임 자체를 그대로 두려고 해요. 그러고 나면 이들 감정은 같은 결로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묶이는 순간이 생깁니다. 이런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꽤 많아요. 그 시간은 과거의 감정을 붙잡고 늘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저 자신에게 다시 한번 감정의 온도를 확인해 보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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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VE›, 2025, 판화지에 혼합재료, 26.8×2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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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궤도 위에서 On Parallel Orbits›, 2025, 판화지에 혼합재료, 30×21.5cm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평행 궤도 위에서›는 저의 최근 작업 중 하나입니다. 이 작업은 비슷한 감정을 지닌 두 관계에서 출발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회전하는 두 개의 나선형은 얼핏 비슷한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각 다른 방향성으로 회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움직임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나선형으로 합쳐지지 못한 채, 그렇다고 완전히 끊어지지도 못한 채 평행한 궤도 위를 서로 밀고 당기듯 맴돌게 됩니다. 결국 이 작업은 닮아 있지만 끝내 하나가 될 수 없는 감정의 형태를 담고 있습니다. 완전히 멀어지지도, 완전히 합쳐지지도 않는 상태, 그사이에 머무는 감정이 만들어 내는 고유한 움직임을 시각화한 작업이에요. 너무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라 사라지기 전에 작업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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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방석 如坐針氈›, 2024, 장지에 혼합재료, 181.6×145.6cm

‹가시방석[如坐針氈]›이란 작업은 예전에 느꼈던 지속적인 불편과 긴장을 다룬 작업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쉽게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상태를 겪은 적이 있어요. 그냥 혼자 소멸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말끝마다 조심스러워지고, 사소한 반응에도 예민해지면서 안에서는 계속 긴장이 이어졌어요. 그때의 경험은 마치 조심스럽게 앉아 있어야만 하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상태처럼 느껴졌어요.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찔릴 것 같은 감각이 지속되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편함은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몸의 감각으로까지 번져 갔어요. 이 작업은 그런 감정의 축적과 불편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쌓이면서 만들어 내는 밀도와 압박감을 화면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어요. 내용은 저렇지만 아주 즐겁게 작업했던 경험으로 기억합니다.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관람자 개개인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되길 바랐어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 관계의 온도 같은 것이 화면에서 흔적처럼 부유할 때 보는 사람도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끌어와서 작품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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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TALK›, 2024, 장지에 혼합재료, 34.8×27.3cm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 오후 5시 이전까지 회사 일을 하고, 그 이후 시간은 오롯이 작업에 씁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 많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하루 흐름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려고 해요. 업무 시간에는 일에 집중하고, 5시가 지나면 작업 모드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식으로요. 루틴 중 하나는 점심시간이에요. 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운동을 다녀오며 몸을 한번 리셋합니다. 요즘은 SNS 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서 일과가 끝나면 스마트폰을 보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감정이 늘 정확한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껴요. 좋아하는 마음도 불안이 섞이고, 그리움도 화로 바뀌고, 어떤 감정은 자신을 보호하려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 왜곡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증거처럼 느껴져서 그 결을 작업 안에 담아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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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山北斗 1 (guiding light in the field 1)›, 2025, 장지에 혼합재료, 125×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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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WORDS FADE», RIVER ART GALLERY, 2025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 삶을 대하는 태도는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 판단하기보다 머무는 것에 가까워요. 예를 들어 감정이 생길 때 그걸 빨리 정리하거나 결론 내리기보다는 왜 그런 결로 나타나는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편이에요. 그 태도가 작업에서 감정을 명확한 이야기로 고정하기보다 그 흐름을 반복과 간격, 층의 밀도로 옮겨요. 그래서 작품 안에는 조금 어긋나고 왜곡된 감정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가 오면 답답하고 우울하죠. 근데 저는 ‘극복해야지!’ 하고 애쓰는 순간부터 더 지치는 타입이라 내버려두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완전히 쉬지는 못해서 작업이 막혀도 뭐라도 계속 끄적이긴 합니다. 눈물 뚝뚝 흘리면서…. 상태는 이미 바닥인데 손은 일하는 이상한 상황이랄까요. 그 대신 요즘은 슬럼프가 자주 안 오게 미리 관리하는 쪽에 힘을 많이 쓰고 있어요. 멘털 관리와 체력 관리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면서 슬럼프가 오기 전에 문 앞에서 돌려보내는 연습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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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화 쌓기, STACKING FRAGMENTS», COSO SEOUL, 2025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제가 너무 독립적으로 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관계에서도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려고 자신을 계속 단단하게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가끔 인간관계를 생각할 때 이성적인 부분을 넘어 마치 AI처럼 감정 없이 상황을 정리하고 판단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차분하고 편해 보이긴 한데, 그 방식이 오히려 제 마음을 더 멀리 떨어뜨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려고 방어하는 자세가 어느새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순간을 다시 한번 알아차리고 감정이 올라오는 걸 인정하면서도 휘둘리지 않는 균형을 다시 연습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진정성 있게 작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진정성은 선택이 아니라 작업의 최소 조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럴듯하게 보이거나 안전한 답을 택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저는 그 지점에서 한 번 더 멈춰 자신을 점검하려고 합니다. 진정성 있는 작업은 결국 작품의 완성도만큼이나 그 안에 담긴 태도를 느끼게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그 진정성이 화면 밖으로도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과정 자체를 더 성실하게 쌓아가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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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altar1›, 2023, 장지에 혼합재료, 71.5×5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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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p›, 2024, 비단, 장지에 혼합재료, 130×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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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altar2›, 2023, 장지에 혼합재료, 101.5×74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될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게 되면 나중에 그럴듯한 나에게 맞춰 작업을 하게 될까 봐서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구온난화가 없는, 양극화가 심하지 않은, 낭만이 좀 더 많아진, 이상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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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리리리Lili Lee(@ooo_lilili)는 한국화를 전공한 시각예술가다. 회화를 중심으로 국내외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Circular Conversations»(Courtyard Hiroo, 도쿄), «Where Words Fade»(River Art Gallery, 대만), «Stacking Fragments»(COSO SEOUL, 대한민국), «Where the heart lingers», «Time holds still»(GBLUE GALLERY, 대한민국)이 있고, «The Artist Project»(캐나다), «Sha-vana»(River Art Gallery, 대만), «Rea Art Show»(이탈리아), «Art Central»(OAE Gallery, 홍콩), «Airy Disk»(River Art Gallery, 대만)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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