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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자기 생명력을 지닌 작업

Writer: 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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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요나 작가의 작업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신기합니다. 램프, 시계와 결합한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의 정체를 모르겠거든요. 그의 말대로 “실용적이거나 무의미한” 느낌입니다. 전시 공간 전체와 건물 내외부 표면까지 점유하는 스케일로 확장하면,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의 장대한 모습이 과연 “장소 특정적인지 자기 충족적인지, 미니멀리즘 또는 맥시멀리즘”인지 헷갈립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탄생한 공간과 구조의 단면에서 유추한 여러 정보를 기반으로 공간의 문맥에 맞는 작업을 배치해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그의 작업은 구조물과 오브제가 1/3, 공간이 1/3, 그리고 우리 같은 관객이 나머지 1/3을 채우며 비로소 완성된다고 해요. 간혹 자신의 작업이 생명체 같다고 느끼는 작가는 작업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약간의 무심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 적당한 거리를 가지려고 노력하죠. 평생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언제나 열렬한 마음으로 작업하는 미래를 꿈꾸는 이요나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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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나, ‹램프 인 트랜짓›, 2020, 스테인리스 스틸, 랜턴, 110 × 100 × 97 cm,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클랜드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요나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꿈을 첼리스트로 잡고, 십대 대부분을 연주하며 보냈어요. 오클랜드 음대 오디션까지 합격했는데, 팔목이 다치는 바람에 첼로를 그만두고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운이 따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제 노력이 더해져서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요나, 〈인 루트 홈〉, 2020,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 가변 크기 2020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16

이요나, ‹인 루트 홈›, 2020,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 가변 크기, 2020 부산비엔날레,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업의 반 정도는 컴퓨터 앞에서, 나머지 반은 공장, 워크숍 등 작업실에서 보내요. 작업실은 한 곳으로 정해져 있기보단 유동적입니다. 철제공장에서 작업할 때도 있고, 스케일이 큰 작업의 경우, 공간을 따로 빌리거나, 때로는 전시 현장에서 작업하기도 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인간의 필요에서 탄생한 결과물을 보며 영감을 얻어요. 사물, 다양한 공간, 도시, 하부 구조 등을 관찰하면 사람이 사는 방법, 생각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데요.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역으로 사람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작업을 구상할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관객이나 주변 동료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영감받고요. 다른 시각에서 작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요나, _공간 배치 서울_ 설치 전경. 사진_ 남서원. 제공_ 아트선재센터. ⓒ 2024_8 (1)

‹공간 배치 서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이요나, _공간 배치 서울_ 설치 전경. 사진_ 남서원. 제공_ 아트선재센터. ⓒ 2024_9

‹공간 배치 서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먼저 전시하는 공간과 문맥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요. 최대한 오랜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며 관객의 움직이나 공간성을 관찰합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제가 직접 레이저나 줄자를 이용해서 공간을 측정하기도 해요. 그다음으로 스케치업SketchUp과 블렌더Blender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공간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고, 컴퓨터에서 작업을 이어가요. 제작에 필요한 다양한 도면을 그린 후 마침내 제작 과정에 이르면, 가공 업체에 맡기거나 제가 직접 용접합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 상반기에 열린 2024 아트 바젤 홍콩의 디스커버리 섹션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벅스턴 컨템퍼러리Buxton Contemporary에서 진행한 그룹전에 참여했고, 지금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이요나: 공간 배치 서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배관과 일상적 오브제를 결합한 작업으로, 세 공간의 상반된 공간적 문맥과 특성에 반응해 스케일과 포맷format 등 형태에 변화를 주었어요. 아트 바젤 홍콩에 선보인 ‹In Transit› 은 사회적 공간(social space)에 중점을 두었고, 벅스톤 컨템퍼러리 전시에 출품한 ‹Upper-floor Composition›은 보통 전시용으로 쓰지 않는 공간―천장의 지붕틀, 전시 바깥 공간 등―을 활용했습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전시와 동명의 작업 ‹공간 배치 서울›은 한옥과 서울의 풍경이 전시의 중점이 되는 시공간을 연결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과 오브제가 작업의 1/3, 공간이 또 다른 1/3, 그리고 관객이 나머지 1/3을 채운다고 생각해요. 공간과 관객은 제 작업의 일부이자 중요한 협력자입니다.

이요나, _인 트랜짓_, 2024,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 가변 크기 2024 아트바젤 홍콩 디스커버리 전시 전경,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20

이요나, ‹인 트랜짓›, 2024,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 가변 크기, 2024 아트바젤 홍콩 디스커버리 섹션,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이요나, _Upper-floor composition_, 2024, 설치 전경, Buxton Contemporary.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12

‹Upper-floor composition›, 2024, «The Same Crowd Never Gathers Twice», Buxton Contemporary.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사진: Christian Capurro

이요나, _Upper-floor composition_, 2024, 설치 전경, Buxton Contemporary.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14

‹Upper-floor composition›, 2024, «The Same Crowd Never Gathers Twice», Buxton Contemporary.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사진: Christian Capurro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여러 전시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스케줄이 무척 힘들었어요. 하지만 일단 일정을 모두 다 소화했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 작업을 같이 진행하는 팀을 구성하는 부분에서 준비가 미약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강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이요나, _공간 배치 서울_ 설치 전경. 사진_ 남서원. 제공_ 아트선재센터. ⓒ 2024_1

‹공간 배치 서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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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배치 서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이요나, _공간 배치 서울_ 설치 전경. 사진_ 남서원. 제공_ 아트선재센터. ⓒ 2024_5

‹공간 배치 서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4.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하지 않을 때의 일상은 조금 느리고 심심하게 보내는 걸 선호합니다. 늦잠 자고, 간단히 먹고 커피 마시고, 산책하고, 음악 듣고, 작업 구상을 하는 편이죠. 그런데 사실 이렇게 여유로운 일상은 잘 없어요. 대부분 전투적입니다. 일할 때는 뭐, 정말 먹고 자고 일만 하거든요. 저녁이나 주말에 쉴 짬이 나면 감사하죠. 작업이 너무 바쁘지 않을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강의를 나가기도 하는데, 올해는 엄두도 못 냈네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점점 체력 고갈을 느끼고 있어서 체력을 키우는데 관심이 많아요. 건강한 식단을 공부하면서 작년 11월부터는 운동도 시작했는데, 왜 다들 운동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일을 하면 할수록 체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이요나, _5개의 방을 위한 배치_, 2022,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 가변 크기. 설치 전경.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15

이요나, ‹5개의 방을 위한 배치›, 2022,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 가변 크기, 오클랜드미술관,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번아웃이 왔을 때는 철저하게 스스로에게 보상해요. 쇼핑, 마사지, 맛있는 음식, 휴식 등이죠. 작업이 안 풀릴 때는 다른 일을 하면서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미루기도 하고요. 제가 믿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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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나, ‹시계 인 프랙티스›, 2023,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 40 × 68 × 23 cm,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작업실을 알아보고 있는데요. 시간을 오클랜드와 어떻게 배분할 건지, 장소와 예산은 어떻게 해결할 건지 등등 고려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네요.

이요나, _시계 벤치_, 2023.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 벤치, 59.5 x 110 x 63cm. 전시 전경, Wall Floor and Ceiling, Gertrude Contemporary. 사진 Christian Capurro.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17

이요나, ‹시계 벤치›, 2023.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 벤치, 59.5 × 110 × 63 cm, «Wall Floor and Ceiling», Gertrude Contemporary.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사진: Christian Capurro.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언수 님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네요. 처음 배웠던 문학이 시에 가까웠다면, 서른 살 넘어서는 건축에 가까웠고, 나중에는 생물에 가까워졌다고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어, 농부가 감자를 키울 때 감자 스스로 성장한다면 농부의 할 일은 얼마 없지 않겠냐면서, 이야기 또한 무릇 자기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저도 간혹 작업이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해요.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빼놓지 말고 챙겨야 하지만, 작업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약간 무심한 것도 요구되는 것 같아요. 일단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 무엇인가 직접 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기니까요. 그리고 작업에 집착하면 보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작가 본인도 힘들어요.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요나, _램프 인 트랜짓_, 2022, 스테인리스 스틸, 램프, 44 x 57 x 58.5cm,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23

이요나, ‹램프 인 트랜짓›, 2022, 스테인리스 스틸, 램프, 44 × 57 × 58.5 cm,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멘토 혹은 같은 꿈을 꾸는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 보낼수록 좋아요. 마치 공동체와 비슷한 개념이죠. 작업은 어떤 면에서 종교와도 같아서 일종의 믿음을 요구하는데, 그 믿음이란 녀석이 자주 흔들리거든요. 그럴 때마다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작업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요나, _램프 인 트랜짓_, 2020, 스테인리스 스틸, 랜턴, 110 x 100 x 97cm, 작가 및 파인아트시드니 제공_19

이요나, ‹램프 인 트랜짓›, 2020, 스테인리스 스틸, 랜턴, 110 × 100 × 97 cm, 작가 및 파인 아트 시드니 제공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약간의 여유를 갖고 작업하는 것. 제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Itzhak Perlman이 60년 넘게 연주한 시점에서 인터뷰에 응하면서 “아직도 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고 음악과 연주에 열렬하다”라고 말했는데요. 정말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입니다.

Artist

이요나(@ylee138)는 테이블 위의 오브제부터 미술관 전체의 공간과 건물 내외부 표면을 점유하는 설치 작업까지 다양한 규모의 조각을 만든다. 도시의 기반 시설을 비롯해 공공, 상업, 상업, 주거 공간 속 실용적인 사물의 미학과 물성을 탐구해 여러 크기로 조형한다.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 또는 맥시멀리즘, 공격적이거나 유희적인, 권위주의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실용적이거나 무의미한, 장소 특정적이거나 자기 충족적인, 가벼운 터치 혹은 강한 조정, 조각 또는 드로잉, 심오한 동시에 재미있는, 구조 혹은 시스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파인 아트 시드니(호주, 2023, 2021, 2020), 오클랜드미술관(뉴질랜드, 2022), 더니든공공미술관(뉴질랜드, 2020), 뉴사우스웨일스미술관(호주, 2018), 웰링턴시립미술관(뉴질랜드, 2018)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20 부산비엔날레, 2019 리옹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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