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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감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Writer: 김나훔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일상 풍경을 그려내는 김나훔 작가의 작업을 자세히 보면 뭔가 낯선 느낌이 들어요. 관람객의 시선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인데요. 매 순간 흘러가는 것을 붙잡기 위해 늘 한 손에는 카메라를, 그리고 다른 손에는 메모장을 들고 다닌답니다. 우연히 마주하는 상황에 감탄할 준비를 하는 거죠! 스스로 느낀 감탄을 작업에 녹여내고, 다른 이로 하여금 새로운 감탄을 자아내는 데 열중하는 김나훔 작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공유하고픈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고등어›, 2017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강릉에서 그림, 사진, 글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김나훔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아내와 함께 갤러리 겸 소품샵 ‘오어즈Oars’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연습장에 만화도 즐겨 그렸고, 학교에서는 미술 시간을 기다렸죠. 하지만 예술·창작 분야를 업으로 삼은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먹고 살기 수월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여러 분야를 경험하다 잠시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창작물로 만들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고, 결국 적성과 감각이 이끄는 1인 ‘창작’으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답니다.

‹고흐›, 2018

‹시리얼›, 2018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주로 노트북과 아이패드로 작업하다 보니 고정적인 작업 공간이랄 게 없어요. 그래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면 집 안 작업실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희 집은 오래된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한 아내와 저만의 공간인데요. 해가 잘 들어서 계약했고, 창밖으로 작은 텃밭과 나무가 눈에 들어와서 참 좋아요. 작은 방을 작업실로 만들었는데, 여기에서 가장 많은 창작물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에서 불현듯 ‘번쩍’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편인데요. 특히 낯선 곳을 걷다 보면 재밌는 생각이 자주 찾아와요. 평소 잘 가지 않던 집 근처 어딘가 또는 낯선 여행지에서 흥미로운 영감을 얻는 것 같네요.

‹아침운동›, 2021

‹경주›, 2019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머릿속으로 ‘오, 재밌겠다!’는 날것의 농담이 떠오르면, 습관적으로 메모장을 켜고 기록해 둬요. 창작물로 이어질 거란 기대까진 하지 않지만, 우선 재밌으니까요. (웃음) 그리고 메모해 둔 여러 농담 중, 시각적으로 풀어내면 재밌어 보이는 걸 끄집어내어 스케치로 구체화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경우 그림이나 사진 작업으로 완성되고, 때로는 글감으로 탄생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오랜 시간 그림 작업에 집중해 왔는데요. 최근 들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장르를 구분 짓지 말고 표현해 보자’고 생각 중이에요.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에 그림을 얹어 보는 등 장르적인 혼합을 시도하고 있어요. ‹집으로 가자›, ‹수퍼마켓 고양이›, ‹구름쿠션›이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이에요.

‹구름쿠션›, 2021 (좌)

‹집으로 가자›, 2022 (우)

‹수퍼마켓 고양이›, 2020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평소 일상적이고 익숙하다 여기던 대상을 새롭고 낯설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관람객의 시선을 일종의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꾸는 것처럼요. 그래서 전혀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포착하기도 하고, 일상적인 것에 비일상적인 요소를 막무가내로 결합해 작업하기도 해요.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에 유머와 감동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2021

‹엄마가 된 누나›, 2021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매일매일의 감각을 좇으며 일상에서 무언가 발견하고 창작하는 데 즐거움을 느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만, 다양한 작업을 한 가지 주제로 엮어내는 게 다소 어려워서 작업물이 한데 모일 때 어떻게 보일지 고민인데요. ‘시간이 지나면 완성작들이 어떠한 묶음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또 하나 불만족하는 지점은 최근 제 하루하루가 비교적 만족스럽고 평탄하거든요. 그래서 따뜻한 분위기를 담은 작업물을 많이 만들게 되는데요. 비판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때 나오던 날카롭고 임팩트 있는 작업물이 최근에는 줄어들어서 조금 아쉬워요.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네요.

‹저녁의 위로›, 2019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 상당히 평이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강아지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독서와 외국어 공부를 병행하고 있어요. 얼핏 보기엔 따분할지 몰라도,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장기적으로 좋은 작업을 위한 자양분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의 시간에는 보통 아내와 실내·외 활동을 함께 하며 여유롭게 보내는 편이에요. 어떤 재미난 일을 마주칠지 몰라서 항상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다녀요. 아내는 무거운 카메라가 몸에 안 좋다고 말리는데, 이제 거의 강박적으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네요. (웃음) 보통 저녁이 되면 그림, 사진, 글 작업에 돌입합니다. 강릉에 이사 오고 확실히 업무나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든 것 같아요. 앞으로도 불필요한 일 때문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나 창작에 대한 호기심이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반년 전 입양한 두 살배기 강아지 ‘보뜨’요. 작은 생명이 주는 에너지가 놀라워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살면서 마주하는 아름답고 인상적인 것을 손으로 기록하고 가공하지 않으면 흐르는 삶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록에 대한 집착은 결국 ‘매 순간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카메라와 메모장을 꼭 들고 다니는 건 우연히 마주하는 상황에 감탄할 준비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읽은 책에서 ‘사람은 감탄하거나, 또 감탄 받기 위해서 산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느낀 감탄을 작업에 녹이고, 다른 이가 새로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일. 그게 곧 삶과 작업에 대한 저의 태도인 것 같아요.

‹츄파춥스›, 2021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이건 슬럼프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서, 작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쓸데없는 일을 시작해요. 저는 꽤 단순한 사람이라, 조금만 딴 곳에 몰두하면 곧장 집중력이 새거든요. (웃음) 만약 슬럼프를 겪는 기간이 길어지면 여행을 갑니다. 현재 상황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요.

‹5층 베란다›, 2020

‹경포호수›, 2021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누구나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고들 하죠. 그런데 최근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고 자주 생각해요. 전에는 다른 이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게 꿈이었는데요. 이제는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항상 ‘자립’에 대해 생각해요. 자연 속 식물처럼, 인간도 저마다 태어난 환경이 다르잖아요.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라는 꽃을 피우는 게 예술적인 삶이라고 믿어요. 예술은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운명만큼 뻗어나갈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평가 아래 둘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할 수 있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당당하게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요.

‹학교›, 2018

‹적성›, 2018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자격증 시험처럼 뜻을 품으면 단기간에 이뤄질 것이라는 마음은 내려놓는 게 좋겠어요. 딱 그만큼, 뜻밖의 성취감과 기적이 존재하는 게 창작 세계의 놀라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원하는 지루하고 예측할 만한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이 들 때는, ‘과연 내가 불안하더라도 춤을 추며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 같아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늘 꿍꿍이를 갖고 있는 사람,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어떤 형태로든 매일 창작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둘러앉아 담소를 즐기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Artist

김나훔은 강릉에서 작가로 활동한다. 주로 그림과 사진을 작업하며, 최근에는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는 작업도 시도 중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아내와 갤러리 겸 소품샵 ‘오어즈’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전으로 «계획은 없습니다»(2020, 갤러리 가이아, 서울), «계획은 없습니다»(2020, 아트아치, 서울), «낯선»(2019, 호반아트리움, 광명), «Warum nicht?»(2018, The Watcher Berlin, 독일)을 열었고, «ㅎㅎㅎ»(2023, OCI미술관, 서울), «컷 CUT»(2022, 교보아트스페이스, 서울), «The Third Print : New Combination»(2021, 명주예술마당, 강릉)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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