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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항상 일어나는 일들 사이

Writer: 김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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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민훈 작가는 사물과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질서가 어떻게 서로를 견디고 다시 균형을 이루는지를 관찰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데 모일 때 생기는 긴장과 조화의 감각, 그 사이에서 기둥은 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어서는 법을 터득하죠. 때문에 그가 주목하는 것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세계의 모순과 이야기가 일어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실패와 성취를 구분하지 않는 눈으로 이 세상의 견고한 모습이 서로에게 기대어 위태로운 조화 속에서 이루어져 있음을 간파하죠. 그래서 이 기둥들은 늘 손길을 필요로 하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수시로 덧대야 하기도 하고 싸매기도 하고, 문질러 모양을 내야 하거든요. 비록 그 결과물이 누군가에게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보일지라도 작가는 말합니다. 세상에 혼자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요. 어긋남을 끌어안고 간신히 일어선 김민훈의 기둥,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무엇일지 «비애티튜드» 웹사이트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손돌 여명 기억›, 2024, 시멘트 위에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흙 혼합물(흙, 석회, 산화철, 천연 안료) 위에 새끼줄, 206×35×30cm, 사진 홍철기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조각 작업을 하는 김민훈입니다. 사물과 사건 내부에서 여러 가치와 질서가 어떻게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지 관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수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도우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는 일에 익숙해졌고, 또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이런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낡은 것들이 수리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한 일이 지금도 저에겐 중요한 기억 중 하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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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 밑동›, 2024, 흙과 밧줄과 소금, 12×26.5×26.5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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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 밑동›, 2024, 흙과 밧줄과 소금, 12×26.5×26.5cm, 사진 홍철기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가 작업하는 곳은 고양시의 거주 지역에 있는 작은 일층 상가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 부근에서 쭉 지냈는데, 작업실도 근처에 구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조용하고, 고양이가 많은 곳입니다. 큰 공간은 아니라, 얼마 전엔 작업 공간과 완성된 작업을 보관할 곳을 분리했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산책, 기사나 뉴스, 친구들과의 대화, 지나간 작업이 남기고 간 묵은 유감들 등, 제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그 중 일부는 작업의 모습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성애적 질서가 만든 ‘직립’ 조각의 반복이 아니라, 동료적 관계로서 ‘기립’하는 조각을 희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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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사 01›, 2024, 멀바우 나무 위에 시멘트 위에 은분칠 위에 소금석, 30×25.5×28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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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탈라사 02›, 2024, 멀바우 나무 위에 시멘트 위에 은분칠 위에 소금석, 35×38×22.5cm, 사진 홍철기

‹탈라사 03›, 2024, 멀바우 나무 위에 시멘트 위에 은분칠 위에 소금석, 34.5×33.5×19.5cm, 사진 홍철기

(왼쪽부터) ‹탈라사 02›, 2024, 멀바우 나무 위에 시멘트 위에 은분칠 위에 소금석, 35×38×22.5cm, 사진 홍철기

‹탈라사 03›, 2024, 멀바우 나무 위에 시멘트 위에 은분칠 위에 소금석, 34.5×33.5×19.5cm, 사진 홍철기

채굴하는 과정에서의 노동, 운송하는 과정에서의 노동들. 혹은 무거운 돌을 값싸게 받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의 경제적으로 최적화된 운송 경로들, 까마득히 오래 전 바다가 천천히 마르며 만든 거대한 지층, 그리고 그것을 발견된 것이 나폴레옹의 영토 확장이 관계되어 있다는 점, 그것이 섭취 가능한 상품이 되기 위해 거치는 어떤 과정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이 소금석이 마치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연해 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돌이 쉴 수 있는, 요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두자. 그렇게 나온 게 수석을 닮은 조각이었어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의 두 개인전을 소개해볼 수 있겠습니다. 작년에는 Hall 1 공간에서 «나뭇등걸»이라는 전시를 진행했어요. 이 전시에선 흙과 밧줄, 소금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당최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것들은 당시에 제가 생각하기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수적인, 땅이고, 영양소고, 도구였어요. 그리고 동시에, 모두 착취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가 기대어 왔던 생산의 논리나 질서가 잘 작동하지 않는 공간을 빚어보고 싶었습니다. 툭 튀어나와 마주보게 되는 흙, 큰 크기에 올려다보게 되는 밧줄, 수석이 되어 내려다보게 되는 소금, 이건 모두 잔존의 방식에 대한 응시를 실험하는 조각적 매개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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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등걸», Hall 1, 2024,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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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모래 손바닥›, 2024, 시멘트 위에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흙 혼합물(흙, 석회, 산화철, 천연 안료) 위에 새끼줄, 180×29×30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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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구름 가리개›, 2024, 시멘트 위에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흙 혼합물(흙, 석회, 산화철, 천연 안료) 위에 새끼줄, 220×33×30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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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사 04›, 2024, 멀바우 나무 위에 시멘트 위에 은분칠 위에 소금석, 31×25×16.5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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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 개 오줌보›, 2024, 시멘트 위에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흙 혼합물(흙, 석회, 산화철, 천연 안료) 위에 새끼줄, 229×27×24cm, 사진 홍철기

그리고 올해 초에는 dive.seoul 공간에서 «깊게 얕은 Deeply Superficial»이라는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워홀의 ‹Silver Clouds› 작업을 참조하며 시작되었는데요, 워홀이 은색의 반사성을 통해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의 표면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도 그 이면의 욕망과 구조를 암시했던 것처럼, 저도 은빛과 표면이 가진 양가적 성질을 공부하고자 했습니다. 초창기 사진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은’이라는 물질성에 대해, 미니멀리즘과 장식성의 관계에 대해, 화이트큐브 전시 공간의 신화에 대해 동시적으로 언급하면서, ‘다큐멘터리적 세계관과 표면이 권력을 영속화해 온 방식’을 어떻게 조각적인 일로 놀려볼 수 있을 지 고민했었어요. 두 전시는 다른 시점과 다른 방향을 이야기하지만, 공통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조각이 어떻게 물질(사물)의 역사성과 시각적 질서를 다시 (비틀어) 매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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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ed Cube (Bottom Piece)›, 2025, 좌대 위에 나무 위에 거울, 각 35.5×35×35cm,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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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얕은 Deeply Superficial», dive.seoul, 2025, 사진 최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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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의 백색 방›, 2025, 벽 위에 대량생산된 타일과 바닥 위에 임시 보양재, 공간 전체 크기, 사진 신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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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덩어리 (개 오줌보)›, 시멘트 위에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흙 혼합물(흙, 석회, 산화철, 천연 안료) 위에 새끼줄 위에 은색 필름, 229×27×24cm, 사진 신유진

두 전시는 다른 시점과 다른 방향을 이야기하지만, 공통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조각이 어떻게 물질(사물)의 역사성과 시각적 질서를 다시 (비틀어) 매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요. 또 전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지대한 공을 들인 것이 있는데요. 얼마 전에 23년도에 진행한 개인전 «네 기둥»과 상술한 «나뭇등걸» 전시를 엮어 『기둥들』이라는 도록을 출간했어요. 전시 마지막 날 소등을 할 때, 많은 것이 함께 휘발되는 아쉬운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이 도록을 준비하며 그 마음이 관계와 시간의 문제임을 느꼈습니다. 전시가 끝난 이후로도 책이라는 매체가 갖는 물질성과 시간성을 통해 전시의 시간이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김국한 디자이너님과 여러 번 의견을 주고 받으며 판형부터 두께감, 종이가 묶이는 방식까지 신중하게 결정했습니다. 완성된 도록을 받은 날 얼마나 개운하던지 말로 표현이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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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er 02›, 2023, 콘크리트 위에 에나멜 페인트 위에 폐침목, 139×59×30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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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춤 공중›, 2024, 산화철과 소목으로 염색한 밧줄, 356×52×52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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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춤 가르마›, 2024, 산화철과 쪽풀로 염색한 밧줄, 336×62×42cm,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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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들』, 2025, 김민훈·김승진·백필균·이한범·QF(하상현), 밤과 호두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근엔 오독 혹은 낯섬이 가지고 있는 창발성과 창조성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매달려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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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잎 바람춤 01~04›, 2025, 숯으로 염색한 마끈, 각 215×30×30cm, 210×30×30cm, 265×30×30cm, 265×30×30cm, 사진 최산 Courtesy of Frieze and San Choi, «UnHouse», 프리즈 하우스 서울, 2025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산만한 사람이라, 어떤 작업을 하고 나면, 충분히 다루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자주 생깁니다. 그러면 그게 다음 작업이나 전시로 이어져요. 이건 제가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기에 한편으로는 만족하는 부분이에요. 수치스러운 날도 너무 많지만 작업과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 지금은 나쁘지 않습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실에서 오후까지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쉬거나 해야 할 업무가 있다면 처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해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전부 또는 전무라는 이진의 특성을 적용할 수 없는 것들. 이 말은 언젠가부터 메모장에 적혀 있는, 출처가 불분명한 말인데, 자꾸 떠오르는 것을 보아하니 제 태도가 향하는 방향이 되는 것 같네요. 또 다른 매체도 조금씩 시도를 해보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 상상의 단계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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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거기에 있었다›, 2022, 조각폐기물, 해양폐기물, 시멘트, 275×400×400cm, 사진 이강준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영달의 성취가 중요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아니기에, 제가 지금 여기서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일들을 지속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내압에 의해서, 혹은 외압에 의해서 좌절하게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매우 빈번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시간을 게워내서 다시 씹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더 소화가 잘 되게끔요. 그게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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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둥», 보안1942, 2023,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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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2023,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시멘트 위에 숯으로 염색한 밧줄, 235×45×45cm, 사진 홍철기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최근 모종의 이유로 나름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소비하며 준비한 일을 (당장은) 실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조건으로 실현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정치의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이렇게 받았다는 점이 억울하고 화가 났어요. 같은 처지의 분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함에 대해 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요.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이런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삶이 흔들렸을까. 저는 생계와 직접 맞닿은 문제는 아니기에 단지 기회의 상실로 남았지만, 만약 그게 삶을 지탱하는 얼마 안 되는 길이었다면 억울함은 감정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되기도 했겠죠. 지금 제가 겪은 일도 누군가에게 분명 그런 일로 남았을 것이고요. 개인적인 상실을 넘어서, 이러한 상황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연대를 붙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노력과 훈련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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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2023, 생활 폐기물 위에 철망 위에 시멘트 위에 숯으로 염색한 밧줄, 242×50×50cm, 사진 홍철기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궁금한 것을 많이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눈과 뇌를 잠시 잡아두는 무언가를 오래도록 작동시키고 싶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서로를 향하는 모든 종류의 혐오가 없는 시간을 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가능해질 것이라 믿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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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김민훈(@minhoon)은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고양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사물과 물질, 사건 내부에서 여러 가치와 질서가 어떻게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지 관찰하며, 이를 조각으로 발표해 왔다. «깊게 얕은»(dive.seoul, 2025), «나뭇등걸»(Hall 1, 2024), «네 기둥»(보안1942, 2023)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UnHouse»(프리즈 하우스 서울, 2025), «조각운동회»(서울대학교 파워플랜트, 2025), «틈믙»(공간:일리, 2024), «Bench Side»(d/p, 2023) 등 다양한 그룹전과 기획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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